신앙의 삶/로마서 강해

유대인의 율법의 자리.^^ 로마서2:12-29절

예인짱 2020. 1. 15. 11:14





1. 율법의 자리 (12)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율법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요, 은혜이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것은 율법의 유무가 아니다.

율법이 있음이 신앙의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율법이 만들어내는 결과이다.

그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율법의 유무로 하나님 경외의 유무를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가진 율법에 대한 기준이다.


자기 자신도 율법을 알았고,

율법을 지켰지만

율법이 자기를 의롭게 해 준 것이 아니요,

오직 주 예수가 자신을 의롭게 해 주셨음을 알기에 그는 담대히 이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2. 율법을 가진 유대인의 모습(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택받은 선민이라 여기며,

자신들 만이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외치는 자들이 아닌가?


선과 악을 알고,

자신들이 세상을 인도하는 인도자가 된 듯한 생각을 갖고 사는 자들이 아닌가.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이 현실적 모순

이것을 풀지 못하면 영원히 자유란 없다.

이것이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이 문제를 풀 길은 내게 없다.

이것을 아는 것이 신앙의 열쇠를 여는 키다.

그런데 그것을 얻기가 그리 힘드니 바울을 이것을 깨기 위해 이 많은 논리를 동원하는 것이다.


신앙은 윤리나 도덕이 아니다.

신앙은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 너머의 세계를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을 제시해주신 것이 복음이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네가 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에게서니라.


신앙인은 믿음의 형태가 아닌 삶의 내용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율법을 믿나 안 믿나?

할례를 믿나 안 믿나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말 싸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그 내용을 담고 있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그 능력에 있다고 했다.

그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믿음은 곧 그 능력과 일치한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를 구별하지 않는다.

할례와 무할례를 구별하지 않는다.

율법의 유무를 구별하지 않는다.


바울은 주 예수가 있나? 없나를 구별한다.

주 예수가 없다면 모순이요, 문제요.

주 예수가 있다면 모든 것을 이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 절대 기준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