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신앙하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 너무도 깊게 깨닫게 된다.
내가 처음 신앙을 할 때,
난 내세 중심적인 신비주의에 몰입되어 있었다.
우리 목사님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사시는 종말론적인 신앙의 틀 속 계신 분이셨기 때문에<목사님은 6개월밖에 못산다는 암의 선고를 받고 사신 분이시다> 그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 나는 늘 종말론적 신앙이 몸에 익었다.
그런데 내 나이는 너무 어렸고,
내가 종말론적 신앙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긴 너무 멀은 시간으로 인해 차츰 종말론적 신앙이 이슈화 되지 못했고,
내 속에서는 현재적인 질문, 나는 왜 살며 무엇을 하는 것이 가치로운 삶인가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난 현실적인 주제, 현장적인 삶의 주제에 몰입되게 되었고,
내세적인 주제는 당연히 가는 세계로 이해하는 흐름이 자리하게 되었다.
오늘 난 내 신앙의 모순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았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은 내가 가진 신앙의 터와는 다름을 분명하게 알게 하셨다.
난 이 땅의 사람이다.
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에 근거하여 신앙을 논한다.
이것은 신앙적인 본질이 아니다.
신앙은 내 본향이 어디인지?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어디에 근거한 자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난 천국이 내 본향, 내 고향, 내가 머물 곳이요,
난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이 땅을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
그 나라의 시민된 자로서 그 나라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이 땅을 잠시 살고 있다는 절대 믿음이 내게 요청된다는 것을 오늘 깊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나라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내가 힘써야 할 신앙적 주제가 바로 휴거가 내 앞에 예비되어 있고,
그 날을 준비하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신앙적 주제요, 신앙의 본질인 것이다.
이 삶 앞에서 나를 돌아볼 때,
나는 이 땅을 하나님 나라의 현장을 살아가야 한다는 주제로 집중되었지,
내가 천국 시민권자로서 이 땅을 살아간다는 절대 터, 절대 본향에 대한 기준이 희박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 터위에서 휴거와 재림에 대한 믿음을 현실적으로 깊게 반응하지 못하는 모순속에 있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믿음의 부족이,
마치 내 존재가 땅에 근거하여,
육체의 굴레속에 사는 것이 전부인양 생각하는 오류에 근거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끝은 허무요, 부정이요, 어둠일 뿐이다.
내 본향은 천국,
내 뿌리는 천국,
내 본부는 천국이요,
그 천국이 이미 내게 회복된 자로서,
오늘 이 땅은 잠시 머물 곳이요,
어찌 머물든 큰 자극을 받지 않고,
오직 하늘의 소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갖는 것이 오늘 내 신앙의 본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되어야,
마음에 근심도, 걱정도, 염려도 다 없어지게 되고,
심지어는 순교자의 삶을 살아간대도 크게 걱정하지 않고,
훌훌 털어벌리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완성되는 것이다.
내 본향,
내 뿌리,
내 터를 분명히 세워야한다.
이 위대한 주제가 깊게 자리하길 기도하고 기도한다.
성령님.
내 존재의 터가 무엇인지,
내 존재의 신분이 어디에 있는지,
이 모든 진리를 가득히 부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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