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일기

신앙의 단계별 이해

예인짱 2009. 9. 18. 02:22
날짜:
2009.09.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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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반드시 가져야할 단계가 있다.

그 단계가 잘 정돈된 사람일수록 신앙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가 바르게 형성된다.

신앙의 단계별 이해는 이렇다.

 

A. 실존하는 생명에 대한 믿음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이다.

 

신앙은 단 하나의 믿음을 요청한다.

그게 바로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지금 살아계신,

지존하신,

전능하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본질인 것이다.

 

이 주제에 분명한 확신을 갖지 못하면 그 신앙은 한낱 종교가 되고 만다.

 

종교는 이론과 형태만이 자리한다.

그러나 신앙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현장을 살아간다.

 

번개보다 빠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분 앞에서 모든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이다.

 

AA. 하나님을 존중하라.

 

신앙의 생명이다.

신앙은 이 하나의 주제를 가르친다.

하나님을 존중하면 존중, 하나님을 멸시하면 경멸.이게 신앙이다.

 

신앙은 이 하나의 주제를 절대적으로 세워간다.

이 베이스가 제대로 된 사람만이 온전한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신앙의 주제,

모든 삶의 주제는 이 하나의 주제에 집중된다.

이게 신앙인의 삶이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현장은 다양하다.

영적인 일이든, 삶의 주제이든, 사람과의 관계이든,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장받는 것이요,

그것을 잊고 사는 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중의 현장을 사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삶의 현장인 것이다.

 

AAA.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하나님 존중의 핵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찿아 그 주제에 집중하는 사람이 가장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인 것이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 존중은 자기들의 기준과 틀에 의해 존중한 것이다.

그 존중을 하나님은 극도로 싫어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이름으로 자기들의 영웅심을 키워가는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를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그 사람을 예뻐하신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 현장이 예배의 현장이든지, 사람과의 만남의 현장이든지,  아니면 혼자의 묵상의 시간이든지,

그 어떤 시간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자(존중의 마음)를 하나님은 존중히 여겨주시고 사랑하시는 것이다.

 

AAAA. 항상 기뻐하라.

 

하나님이 나에게 요청하는 가장 강력한 요청은 항상 기뻐하라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베이스가 되길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다.

 

기쁨의 삶은 기분이나, 감정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기쁨의 삶이 감정의 영역이라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분노와 원망과 불평의 시간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의 신앙은 참으로 경건의 핵심인 주제이다.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 기쁨의 당사자인 나를 기뻐하는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 나와 관계된 사람, 나와 관계된 사물과의 온전한 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을 이루어가는 현장은 어쩌면 기쁨의 현장과는 거리가 먼 아픔과 고통과 좌절의 현장일 수 있다.

 

이것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오히려 그 현장을 담대히 이기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항상 기뻐하라의 현장은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것을 담는 것이 바로 신앙의 현장이다.

 

AAAAA. 예수 그리스도안에 살라.

 

항상 기뻐하는 사람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영적 현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의 용서, 사랑, 위로, 격려,

이 모든 것을 바탕의 되지 않으면 나를 기뻐할 수도, 다른 이를 기뻐할 수도,

어떤 현장도 포용하고 사랑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현장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자기를 붙잡아 세우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그 자리를 세워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에게 들려준 음성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신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임을 말씀하신다.

 

그게 내 존재의 자리이다.

그런데 난 나를 하찮게 여기고, 나를 비하하고, 나를 부정하고, 나를 혐오하는 버릇이 있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릇된 정서를 갖고 있다.

 

잘못된 정서이다.

난 예수님을 모셨다.

내겐 예수님이 계시다.

 

예수님의 사랑은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위로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

일흔번씩 일곱번도 용서하시고,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 주신다.

 

난 빚진 자요,

난 만삭되지 못해 난 자 같지만,

난 예수님의 보혈로 새 사람이 되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매 주일마다 이것을 경험하는 것이 예배의 특권이다.

 

그안에 내가 살면서 나를 사랑해야 한다.

당신은 소중한 존재,

당신은 존귀한 존재,

이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은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을 외쳐야 한다.

 

그래야 남이 보인다.

그래야 남을 사랑하는 눈이 생긴다.

남의 기쁨을 볼 줄 아는 시각적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하찮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 앞에서,

내 앞에 있는 그 사람, 그 사물을 대하는 눈이 생겨야 진정한 기쁨을 소유하게 되고,

그것이 되어야 항상 기뻐하는 신앙적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위대한 주제앞에 있는 것이 신앙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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