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예배를 드리고

쓰임받는 자

예인짱 2007. 12. 20. 16:55

 

 

 

누가복음 첫 장을 읽으며,

엘리사벳과 마리아통해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하셨다.

정말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받는 자를 얼마나 원하시고 계신지를 보게 하신 것이다.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했다.

성령으로 잉태한 여자는 전무후무하다.

그의 남편 요셉까지도 그를 조용히 끊으려고 할만큼 그는 치명적인 문제앞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도전과 위기를 극복했다.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기 위해 쓰임받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몸을 성령으로 잉태한 아들을 낳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것이다.

그의 위대한 선택이 없었다면 메시야의 오심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신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의 간절한 요청이 우리 앞에 요청되는 것이다.

 

난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참으로 익숙한 자이었다.

처음 교회를 나가면서 부터 난 쓰임받는 자라는 주제가 자리했고 나의 일생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라는 중요한 주제가 자리했던 것이다.

 

난 이런 주제를 갖고 사는 사람이 가장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난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가 된다면 그것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삶이 없다는 소신을 갖고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 지도자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쓰임받는 자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절대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보다도 더 앞서 갖는 가치가 있다.

예수의 가치를 가슴에 품어 예수로 인해 내 존재의 변화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의 변화안에서 자유와 평화와 안정과 힘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평안의 삶, 행복의 삶이 그안에 자리하는 일체의 비결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삶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자가 되시길 원하시는 것이다.

그 사람속엔 항상 기뻐함과 쉬지말고 기도함과 범사에 감사함이 자리하는 사람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삶의 부정적인 의식이 사라지고, 삶의 현장을 싸움의 현장으로 대하지 않고 말이다.

 

쓰임받는 자라는 주제를 대하면서,

난 새로운 산소를 공급받는다. 정말 내가 존재하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찾는다.

정말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로 세워짐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깊게 각인한다.

 

이전에 가졌던 쓰임받는 그 자체에 절대 값을 인정하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자리이다.

 

예수와 함께 예수의 품에 거하는 자로서,

예수 사랑을, 예수 은혜를, 예수님이 주는 분량만큼 그를 돕는 자로 살아가길 소망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살길 간절히 소망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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