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일기

사도행전20:24절 나의 달려갈 길

예인짱 2014. 6. 8. 09:06

 

 

 

1. 내 생에 최고의 가치

 

하나님 앞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나님 앞에서 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무엇인가?

하나님은 내 삶에 대한 어떤 평가를 하고 계신가?

 

이 주제가 내 존재의 가장 중요한 주제요,

의미있는 주제이다.

 

 

2. 하나님이 원하는 삶<1988년>

 

하나님은 내게 단 하나의 목적을 주셨다.

그 목적이 바로 디모데후서2:2절이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이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주제로 자리했다.

 

그러나 이 목적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목적이 아니었다.

많은 시행착오와 훈련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힘든 과제였다.

 

한 사람을 초대하여,

그 사람을 구원하고,

그 사람이 정착하여,

다른 사람을 초대하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내 목회의 최고의 과제였다.

 

그렇게 되면 내가 죽어도,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생명력의 전파를 가장 큰 주제로 꼽았다.

 

유감스럽게도 그 때 난 예수 복음의 절대성은 약했다.

예수님을 믿게 하고,

세례를 주고,

예배를 드리고,

연보를 드리고,

믿음으로 살고..

이런 것들을 이어가는 것이 정착이라는 주제 속에 자리했다.

 

난 마치 무엇이 된듯히 내가 자랑스런 존재라고 착각했다.

나름 되어지는 일들을 보며,

다른 이들을 가르치려는 모순 속에 빠졌다.

 

하나님은 나를 치셨다.

하나님은 내게 내 존재 하나를 놔두고 모든 것을 다 없애셨다.

아니, 내 존재조차도 만신창이가 되어, 내가 나를 싫어할 정도로 모든 것을 파괴시키셨다.

 

 

3.  예수 영성에 젖은 삶<2006>

 

나는 내 존재에 예수를 만났다.

 

나는 나도 내가 싫었고,

다른 사람도 나를 싫어했고,

나는 완전히 버림바 된 사람이었다.

 

나는 차라리 이 지선처럼 화상을 입든지,

닉 부이치치처럼 불구가 되어 사는게 낫지,

나처럼 이렇게 버림받은 자로 살아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무슨 목회를,

이런 내가 무슨 사람 앞에 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난 이미 죽은 자요,

버린 자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존재 자체를 존재 자체로 사랑함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나를 인정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때,

예수님은 나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포용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 품에 거해 살았기에 삶이 가능했다.

 

예수님 앞에 난 간절히 매달렸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난 나를 붙잡았다.

난 내가 살아야 한다고 몸부림 쳤다.

나를 정죄하든,

나를 용인하든 나는 나에게 매달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너의 가장 높은 의도,

너의 가장 더러운 죄도,

그것으로 네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가 있어 너가 너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 자유,

그 기쁨,

그 행복이 오늘 나를 만든 내 존재의 값이 되었다.

 

난 열등감이 없어졌다.

난 하나님께 무언가를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졌다.

난 내가 목회를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예수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포용하고, 책임지는,

나의 나, 나의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굳게 갖게 되었다.

 

나는 예수 안에서

내 존재가 구원이 완성된 존재요,

그 터위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었음을 확신하였다.

 

그런 나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가 나의 큰 주제가 되었다.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

난 오늘 왜 이 땅에 사나?

내가 천국에 간 후 난 어떤 사람으로 영원히 사나?
하나님은 내 존재 자체에 어떤 목적을 담고 나를 지으셨나?

이런 주제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목적이 바로 에덴이요,

오늘 이 현장을 그렇게 사는 자임을 알게 하셨다.

 

 

4. 새로운 삶의 가치

 

평온하라.

긴장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민감하지 말고,

평안, 평온, 평화,

이 마음이 너를 지배하게 하라.

 

이 훈련은 내 목숨을 담보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절대 명제로 내게 훈련하셨다.

그 때 내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는 병중에 계셨고,

내 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를 절망 중에 있었다.

그 상황에서 평화를 만드는 훈련을 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모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내게 있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로만 가능함을 알게하시는 것을 깊게 깊게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다음의 훈련은,

기뻐하라.

무조건 기뻐하라.

기쁨 훈련이었다.

 

기쁨 훈련은 없는 것을 보면 안된다.

비교하면 안된다.

시기하거나 미워해선 안된다.

잘 되게 도와주는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기쁨 훈련은 있는 것을 보고,

비교하지 말고,

주는 자로 살겠다는 원칙을 갖고 살아야 한다.

 

항상 기뻐하라를 실천하는 길도 성령의 인도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나의 기쁨을 막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과 의식으로 이루어진 것인가를 생각하며 많은 것을 바꾸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다음의 훈련은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은 그 존재에 대한 선호도,

사랑할만하는 주제나 의미를 찾는 것이 일번이었다.

난 주지도 받지도 않는 사람이요,

의미 없는 일에 눈길조차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요청하는 사랑은 무조건적이었다.

그 존재를 그 존재로만 사랑하는 사랑,

그 사랑을 요청하셨다.

 

그가 내게 ~해서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요청하는 사랑을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자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사랑은,

긍휼, 자비, 오래참음, 온유, 겸손이라는 것을 매일매일 외우며 살았다.

그 사랑의 현장을 만들어가려고 애쓴 기억들이 새롭다.

 

 

5. 내 생애 최고의 가치<섬김의 가치>

 

예수님은 누가복음22:27절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아멘.

 

섬기는 자

섬김의 행복

이 주제야 말로 내가 왜 이땅에 사는 가를 보여주는 위대한 가르침이요, 내 존재의 답이 되었다.

 

나는 존재한다.

내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님이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신다.

 

난 영생한다.

이 영생의 가장 위대한 가치가 무엇인가
그 가치가 바로 섬김이다.

 

누군가,

나의 사랑이,

나의 이,

나의 자원이 필요한 그에게 무언가를 함께 나눠주고, 유하며, 살아가는 삶을 사는

그것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길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내가 지금 이런 저런 일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도,

섬기고 싶어서다.

섬김의 삶을 살고 싶어서,

섬김의 현장을 만들어가고 싶어서

난 오늘도 소망을 불태우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의 호, 불호를 떠나,

그 사람의 섬김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떠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섬김의 현장을 겸손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의인 양으로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나를 살맛나게 한다.

내가 잘 났든,못났든,

내가 인정받든, 인정받지 못하든,

내가 원하는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 안에서 유익된 일이라면 그 일을 감당하는 섬김의 현장을 만드는 것을 꿈으로 가졌다.

 

 

6.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의 갈등

 

디모데후서4: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힘쓰라.

 

이 말씀은 나의 심장의 고동처럼 내 속에 뜨겁게 불타고 있는 내 생의 주제이었다.

이 주제로 인해 내가 존재했고,

이 주제를 이룸이 내 존재의 목표였다.

 

그러던 내게 디모데 후서는 준비없이 내게 다가왔고,

이 말씀은 나를 낭떠러지로 떨어트리는 말씀이 되었다.

 

난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는 자책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교회를 보면 우리 교인들의 한계가 눈에 환하게 보이고, 그 끝은 안봐도 뻔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의 목회는 실패요,

나는 더 이상이 목회를 지탱할 이유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게 지난 주 나의 의식이었다.

패닉상태의 의식이었다.

 

난 생각한다.

옛날에 그토록 갈망했던 교회성장이라는 테마와,

오늘 내게 만들어준 절대 섬김 안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의 자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그 단어는 동일하지만, 그 주제의 깊이는 많이 다름을 인정하게 된다.

 

 

7. 결론

 

한 인간은 예수를 만나야 한다.

그 예수로 부터 사망을 폐함 받아야 한다.

 

이 땅의 인간에 갇혀 사는 틀,

죽음,

지옥이 폐하여 져야 한다.

 

그는 에덴이 회복된,

천국이 이루어진 사람으로,

영원안에서,

영생의 사람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를 얻은 그는,

생명이 드러나야 한다.

 

생명의 절대 축이신 하나님

스스로 있는자,

모든 것을 있게하신 전능자,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파트너,

그분을 섬기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생명영성이 자리해야 한다.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 예수가 내게 쏟아부어주는 은혜영성,

그 영성 안에 충만히 거해야 한다.

 

또한 성령의 이끌리심을 확신하며,

그 이끌림에 순종하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것이 생명이 드러나는 삶이다.

 

또한 예수로 인해,

썩지 아니함드러나야 한다.

 

정신이 썩지 않는,

열등감이 아닌 자존감

마음이 썩지 않는,

근심, 걱정이 아닌 평온함과 기쁨과 사랑함이

습관이 썩지 않는,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아닌 사랑과 평화와 섬김의 삶

 

이런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목회의 중점주제이다.

 

이 사람에게,

너도 나처럼을 말하는,

그것을 전파하는,

오직 예수가 이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절대 원칙을 선포하는,

 

내가,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그것이 디모데후서4:2절을 해석하는 가장 온전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