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일기

나는 제자인가

예인짱 2013. 1. 15. 07:37

 

 

 

사도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고 했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 앞에 고개를 숙인다.

그런 성찰과 노력이 있었기에 바울이라는 인물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나는 어떤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제자인가?

이 주제만큼 절대적인 주제는 없다.

내가 제자가 아니면서 다른 이를 제자 세운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란 누구인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그 기준을 4가지로 압축한다.

 

 

1.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지금 살아계신,

영존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음을 믿는다.

예수님 속에 강같이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그대로 간직하며 눈물겨워한다.

 

나는 하나님을 존중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높이는 것이 내 양심의 일번이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우선한다.

어릴적부터 오늘까지 예배를 존중했다. 연보를 드리는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일에 조금도 인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하며 그 길을 가리라는 하나의 의지로 오늘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가슴속에 하나님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잘 못받아서 하나님께 죄송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때마다 예수님의 강같은 사랑을 깨닫게 하심으로 더욱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함속에 살아간 것이 내 존재의 코람데오다.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애썼지만,

내게 돌아온 결과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점점 더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빚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내 모습이다.

 

 

2.  회복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그리고 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예수님은 나를 완전히 새 사람되게 하셨다.

이것이 내 존재에 대한 고백이다.

 

예수님은 나의 옛 사람을 완전히 없애주셨다.

예수님은 나를 완전한 새 사람 되게 하셨다.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 매일매일의 삶을 새 사람으로 산다.

용서가 내 가슴속에 은혜의 강이 되어 흐른다.

이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소중한 내 존재의 존엄과 가치로움을 갖게 해 주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의 용서, 사랑, 긍휼, 자비, 온유,

나는 예수님의 사랑에 빠져 사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나는 영생을 믿는다.

나는 죄사함을 믿는다.

나는 천국본향이 회복되었음을 믿는다.

나는 천구본향의 사람으로서 오늘 이 땅을 사는 사람임을 믿는다.

 

내 존재의 삶을 부끄러움과 부족함으로 인해 얻어진 예수님의 보혈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리스도의 피가 온 몸에 씻겨진 존재가 바로 나다.

나는 그 피흘리심 앞에 겸손히 고개숙여 감사와 사랑을 입은 존재로 오늘을 사는 존재이다.

 

 

3. 금 집

 

나는 내 기준과 원칙이 있다.

이 기준과 원칙으로 삶을 살아가는 때가 많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때가 많다.

그래서 난 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길 힘쓴다.

성령의 인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혼자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과 동역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요,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에 바탕하에 선택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나는 용서받은 자이다.

나는 사랑받은 자이다.

난 용서해야 한다.

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내게 주신 삶의 기준이다.

 

난 예수님이 평안을 주셨다.

그 평안으로 다른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내 삶의 자리이다.

 

난 예수님으로부터 기쁨을 얻은 자이다.

그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내 삶의 자리이다.

 

난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자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해 사랑과 희생과 용서와 긍휼을 베푸셨다.

난 내게, 그리고 다른이에게 이 사랑과 희생과 용서와 긍휼을 베푸시길 원하신다.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내가 천국본향에 지을 금집의 모습이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염소와 양을 구별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가난한 자에게, 마음 아픈 자에게, 상처 받은 자에게, 나약한 자에게, 고통속에 사는 자에게,

눈물과 한숨과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같이 나누는 의인 양으로 살아가길 기도하고 기도드린다.

 

 

4. 면류관

 

난 면류관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열심히 최선을 다하리라는 마음을 굳게 가졌다.

그러나 난 포기했다.

 

면류관은 커녕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고부터다.

난 면류관은 커녕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나쁜 인간이라는것을 알고 한 없이 부끄럽고 죄송했다.

그때 난 예수님을 체험했다.

 

예수님은 내 존재 자체를 품어주셨다.

예수님은 나의 자랑도, 나의 부끄러움도 다 값주고 사셨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포용하셨다.

 

한없이 부족한 나,

한없이 나약한 나,

한없이 부끄러운 나를 감싸시는 예수님의 품 안에서 난 눈물짓는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 내게 부탁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은,

너는 이런 예수를 전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예수를 만나게 하라는 것이었다.

 

내 속엔 하나의 가치가 흐른다.

예수의 가치이다.

예수가 들어가는 사람은 변한다.

예수가 들어가는 사람은 생명을 얻음과 함께 자신의 존엄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가 있는 사람은 삶의 에너지를 가진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있는 사람,

예수님이 있는 사람,

성령님이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내 목회의 생명이었다.

 

하나님은 내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셨다.

천국본향 사람이다.

내가 천국본향에 예정된 사람임을 알고,

예수로 인해 그것이 회복된 사람임을 알고,

천국본향에 금 집을 짓는 현장으로 오늘을 살고,

천국본향에 면류관을 쓰는 현장으로 오늘을 사는 사역자의 삶을 원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갖게하는 것이 제자사역이요,

 

제자사역의 완성은 제자세우기이다.

내가 제자인것과 제자 세우는 것은 너무도 다른 주제이면서도 동의어인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30살 때 내 마음을 사로잡는 말씀을 주셨다.

골로새서1:28절의 말씀이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각 사람을 권하고,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제자사역,

그 사역은 그 때부터 내 가슴을 사로잡는 주제였고, 오늘까지도 내 가슴속에 자리하는 위대한 신앙의 원리가 되었다.

 

난 수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중에 결신한 사람, 세례받은 사람이 수 백명이다.

그중엔 그것이 끝인 사람도 있고, 그중엔 많은 기독교 기관에서 나름대로의 빛을 발하는 분들도 있다.

 

난 지금도 복음을 전하는 일,

제자를 삼는 일에 최우선과제를 둔다.

그것이 가장 귀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제자다.

제자는 나와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자요,

나와 동일하게 제자삼는 자이다.

이 사람을 만드는 일에 내 남은 인생을 송두리채 바치리라.

 

면류관을 바래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생의 소중한 가치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천국본향의 면류관임을 알기에 더욱더 열정을 다해 매진한 일이다.

 

하나님.

저로 제자삼는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