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성경연구

갈라디아서 강해(1) -오직 예수로 말미암은 자 바울

예인짱 2012. 2. 19. 09:34

갈라디아서 강해(1)

오직 예수로 말미암은 자 바울

갈라디아서1:1-24절

 

 

 

 

 

 

1. 존재의 라인-누구를 붙잡나?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

 

온전한 신앙의 라인은 오직 하나이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라인을 따르는 것이 신앙이다.

 

죽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온 천하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행복한 일인가..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게 붙잡혔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소통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품에 거해 사는 훈련을 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 사람이 신앙의 사람이다.

 

사도바울은 사람에게서 난 것,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을 철저하게 배격했다.

그는 사람으로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유대인이요, 바리새인이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한 최고의 인재였다.

 

그런 그가 만난 복음은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속에서 배운 성경, 사람속에서 배운 율법, 사람속에서 배운 진리가 그를 죽였다.

그는 예수를 부정했고, 예수 믿는 자를 핍박했다.

그는 예수를 없어져야 할 분으로 인식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거짓말쟁이요, 처단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했다.

 

그를 바꾸어 준분은 하나님이시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예수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존재에게 예수가 누군가를 알게하였다.

그리고 예수안에서 그는 하나님의 비밀과 존재의 비밀과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으로 말미암은 사람의 복음이 아니었다.

 

그 위대한 복음 앞에 있는 사도바울이 오늘 나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2. 존재의 가치-누구를 좋게하나?

사람들에게 좋게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하나님의 기쁨과 사람의 기쁨은 대립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기쁨은 사람의 기쁨이 되고, 사람의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

 

문제는 중심이다.

무엇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목적인가에 의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 삶의 현실이다.

 

사람의 기쁨은 구하는 사람은 결국은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사람은 결국은 하나님의 기쁨을 구한다.

그 결과는 너무도 다른다.

 

내가 누구를 의식하는가.

무엇이 내 신앙양심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식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우선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이 우선한다.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되고 만다.

 

창세기12장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그 때 아브라함을 함께 따라 간자가 있었다.

롯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따라 갔고,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 갔다고.

 

겉보기엔 똑 같이 따라 간 것 같은데,

결과는 전혀 다른다.

아브라함은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며 믿음의 조상이 된다.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 가다가 결국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하고,

그곳에서 살다가 결국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할때 함께 멸망을 당하고 만다.

 

하나님을 좋게하랴.

사람을 좋게하랴.

우리교회가 지금 여기있다.

하나님을 좋게하랴. 사람을 좋게하랴.

 

내가 목회를 하고 있다.

하나님을 좋게하랴. 사람을 좋게하랴.

 

우리가 이교회의 성도로 있다.

하나님을 좋게하랴. 사람을 좋게하랴.

 

이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나,

사람의 손에 붙잡히나를 결정해 준다.

하나님을 좋게하랴를 택하는 우리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3. 존재의 축-무엇을 믿는가?

다른 복음이냐.

그리스도의 복음이냐.

 

복음은 복음이다.

그러니까 복음이라는 단어를 쓰면 다 복음처럼 들린다.

 

그러나 복음이라고 해서 다 똑 같은 것이 아니다.

다른 복음도 있고,

그리스도의 복음도 있다.

 

기독교의 역사는 복음의 역사이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복음의 현장에 있지 못하고,

다른 복음이 복음의 현장에 있는 것이 문제이다.

 

사도바울 당시에 다른 복음이 있었다.

교회가 생긴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그 시대에 다른복음은 이미 존재했다.

 

다른 복음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점점 더 흥행되고 있었다.

초대교회의 다른 복음은 율법중심, 할례중심이다.

기독교가 빠질 위험중의 가장 무서운 유혹이 율법주의이다.

이 율법주의가 성행되면 예수는 없고, 성령은 없어지게 된다.

오히려 율법이 예수 위에 놓이고, 행위가 성령위에 놓인다.

 

내 복음은 무엇인가.

내가 믿는 복음은 무엇인가.

 

갈라디아서를 읽으며,

이 말씀과 내가 동일하지 않으면 이미 다른 복음을 믿는 사람이다.

갈라디아서의 복음과 내 복음이 일치되는 경험을 하는 우리가 되자.

 

사도바울이 전해주는 복음과

오늘 내가 가진 복음이 일치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