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성경연구

빌립보서4:14-23절 풍성한 열매의 삶

예인짱 2011. 6. 26. 01:38

빌립보서4:14-23절

풍성한 열매의 삶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우리는 그동안 빌립보서를 살펴 봤습니다.

빌립보서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시작은 은혜와 평강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영원한 시작과 끝의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얼마나 잘 가져가는가가 신앙의 성숙의 본질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주제 앞에서 자신의 고백을 나눕니다.

내 존재가 영원히 예수안에 있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 주제야 말로 신앙인이 고백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주제를 뛰어넘는 영원한 신앙의 원칙,

그 원칙이 바로 내게 예수님이 계시고,

그 예수님의 보장과 책임안에 내가 영원히 존재함을 아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안에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오늘 사는 것은,

믿음의 기쁨과 진보를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이 고백이야 말로 영원한 신앙인의 가치가 되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오늘 내가 왜 사는가?

이 주제의 답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기쁨,

믿음의 진보,

이 주제야 말로 영원히 가슴에 새겨야 할 절대 가치인 것입니다.

 

이것을 만들어 주는 대 룰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사는 것,

성령의 이끌림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의 내용과 정신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 빌립보서의 큰 주제였습니다.

이 주제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

그 가치가 바로 오늘의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말씀을 끝으로 빌립보서를 마칩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풍성한 삶의 열매의 삶입니다.

그 풍성함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내 주머니를 채우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돕는 것입니다.

나누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 주제의 의미를 알고,

그 주제안에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유럽에 세워진 맨 처음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가진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 전통의 무엇입니까?

 

복음의 사역을 하는 바울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아는대로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는 분이셨습니다.

남의 도움을 애써 거절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사도바울의 쓸것을 보내 주었고,

사도바울은 그 고마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재물관은 무엇입니까?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바울은 자기를 도우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분이 자신을 어떻게 돕고 계신지를 아신 것입니다.

누가 도우시는 것입니까?

하나님..

그 하나님의 도우심 앞에 사는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이 고백을 드리며 사는 자들이 신앙인입니다.

 

바울이 정말 잘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에 대해 고백하시길,

고린도후서11:24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배고픔,

주림,

목마름,

굶고,

헐벗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마음은 한결 같았습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풍부한지라.

이것이 일체의 비결을 가진 자의 고백입니다.

 

여러분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이런 고백을 드리며 사는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되시길 바립니다.

 

사도바울의 또 다른 재물관입니다.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너희가 내게 준 재물은

너희가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재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아멘.

 

연보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연보는 사람 앞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연보는 교회 앞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연보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정확하게 갖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져야 할 재물관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드려라.

그러면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주라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후히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리라. 아멘.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이런 사람이 풍성한 열매의 삶을 사는 사람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는 인생을 삽니까?

받는 인생을 삽니까?

 

받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늘 부족합니다. 궁핍합니다. 만족을 못합니다.

주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늘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소중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25:32절에 기록된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들었을 때에 보았고 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의 인간에게 말씀하신 마지막 경고의 말씀입니다.

얼마나 잘 살았는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풍성함의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나누어 주었는가?

얼마나 섬기었는가가 풍성함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얼마나 나눔의 삶을 사십니까?

여러분은 사람에게 얼마나 나눔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풍성한 열매의 삶,

그 삶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