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성경연구

빌립보서4:4-7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예인짱 2011. 6. 5. 09:42

빌립보서4:4-7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이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사람과 우리가 겉보기엔 조금도 다를바가 없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내면을 보면 전혀 다른 인간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사람과 비 신앙의 사람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혼자 있습니다.

자기의 틀, 자기의 한계, 자기의 범위에 묶여서 사는 사람으로 삽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혼자 있지 않습니다.

내 생명의 주가 계심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생명의 주가 지금 살아계시고, 전능하시고, 나를 사랑하심을 믿음안에 사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은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태어난 그대로, 갖고 있는 한계 그대로를 갖고 죽을때까지 운명처럼 살아가는 한계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은 어떻습니까?

예수를 만납니다.

내 존재 앞에 계신 예수,

그 예수를 만나, 그 예수 안에서 전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존재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땅은 사탄의 지배아래 있습니다.

이 땅은 태어나, 살다가, 죽는 인생의 굴레아래 종속시킵니다.

도적질 당하고, 죽임 당하고, 멸망당하는 구조속에 인간을 포로삼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어둠과 절망과 허무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만난 자들입니다.

예수가 누구입니까?

내게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시는 분,

십자가 사랑성령을 강같이 쏟아 부으시는 분,

더이상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거듭나게 하신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 예수안에서 영원히 사는 자들이 바로 신앙인인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과 신앙인이 가장 크게 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사람은 자기 영에 의해 삽니다.

이것을 육에 속한 인간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늘 요동하는 바닷물결 같습니다.

이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성령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은사가, 열매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이 사람의 삷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첫째,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안에서,

항상,

항상 기뻐하라.

이 얼마나 위대한 명령입니까?

기쁨의 샘이 터지는 자가 신앙인입니다.

 

왜 기뻐할 수 있습니까?
삯이 아니요, 은혜임을 알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일번이 무엇입니까?

주권자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노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그분이 주신 것입니다.

내 몸도, 내 건강도, 내 행복도, 내 능력도 다 그분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일번신앙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이 지금 인도하십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함께 하십니다.

도우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쁨을 만드는 요소입니다.

 

둘째,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관용.

관용이 무엇입니까?

인정을 베푸는 것,

상대를 인정해 주는 것,

포용, 이런 것입니다.

 

긍휼과 조금 다릅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관용은 좀더 적극적입니다.

그 사람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해보다도 더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이것이 기독교 정신입니다.

 

사탄은 무얼 하는 것입니까?
정죄합니다.

대적합니다.

송사합니다.

단절합니다.

이게 사탄입니다.

 

기독교는 관용을 베풀게 합니다.

기독교는 관용의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알게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옆에 계신 분은 여러분을 보면서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관용을 알게 합시다.

먼저 관용을 베풉시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다 이런 삶을 삽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으로 연결되는 성령의 인도를 깊게 가슴에 담읍시다.

 

셋째,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무슨 뜻입니까?

 

신앙인의 삶의 현장은 늘 안정되고,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늘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삶의 현장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는 자입니다.

어떻게 넘습니까?

그게 바로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께 아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세가지 앞에 사는 자가 신앙인입니다.

이렇게 살면 그 자체가 승리하는 자요, 성공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은 어떻습니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가 몇점입니까?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하라가 몇점입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가 몆점입니까?

 

이 점수를 높이는 사람이 모든 환경을 아름답게 다스리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됩니다.

이 점수를 높이는 사람이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축복의 삶을 삽니다.

 

항상,

매일 매일,

꾸준이 이 일을 해나가는 여러분이 되셔서,

하나님께 칭찬듣고,

사람에게 칭찬듣는,

귀한 축복의 자녀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