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성경연구

빌립보서1:20-26절

예인짱 2011. 2. 27. 10:13

 

 

 

빌립보서1:20-26절

사도바울이 가진 삶의 가치체계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의 고백은 나를 전율케 한다.

사도바울속에 자리한 복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뜨거운 복음인가를 보며 감탄하며,

이분이 가진 이 복음의 세계가 예수님이 그토록 알게 하시려는 복음의 세계와 일치됨에 감탄하며,

이 복음의 현장을 이렇게 아름답게 세워감에 감탄을 드린다.

 

정말 위대한 분이시다.

사도바울은 예수를 알았다.

예수가 내 존재에 어떤 분인가를 깊게 깊게 각인하며 사신 분이 사도바울이다.

 

사도바울은 두가지 고백을 한다.

이 두가지 고백이 제대로 되는 사람이 아름다운 신앙의 현장을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금생과 내생의 약속을 가진 사람이다.

 

오늘 사도바울의 가장 위대한 고백이 무엇인가?

그는 생과 사를 뛰어넘는 위대한 신앙의 현장을 살았던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의 형태에서는 나름대로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지만,

죽은 다음엔 무의미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은 이 땅의 가치에 얽매여서 사는 사람을 어리석은 부자라고 비유하신다.

어리석은 부자가 누구인가?

그는 지혜가 있었고,

부지런했고,

계획적으로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가 말한다.

내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 말을 들은 하나님의 평가가 무엇입니까?

오늘밤 네 영혼을 취하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이것을 알고 사는 사람이 크리스챤입니다.

 

이 크리스챤중이 크리스챤이 바로 사도바울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이렇게 고맥하십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

 

이 얼마나 위대한 고백,

감동적인 고백입니까~!

 

사도바울의 관심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였다.

빌립보서3:8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고린도전서2: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히브리서3:1절-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사도바울이 맨처음 예수님을 만난 때는 다메섹에서였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고 만난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없애려고 만나려 했던 것입니다.

 

왜 예수를 믿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이게 사도바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적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직접 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택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반드시 믿게 하십니다.

예정설입니다.

사도바울이 가진 믿음중에 중요한 믿음이 믿기로 작정된 자들은 믿더라입니다.

믿기로 작정하신 분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 사람은 믿어야 문제가 풀립니다.

 

그런 대표적인 분이 우리 아버님이십니다.

우리 아버님은 교회 안다니신 분이십니다.

심성은 착했지만 교회은 안다니셨습니다.

우리집은 우리아버지가 종손이고, 제사를 많이 지내서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속에는 아버지의 구원이 제일 큰 주제로 다가왔습니다.

아버지가 지옥가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저의 사명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에수 안 믿어서 지옥가는게 아닙니다.

자기행위책을 없애지 못해서 지옥갑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게 없습니다.

여러분, 내 모든 것이 공개된다면 자랑스러워할 분이 누구입니까?

없습니다.

행한대로 심판받는게 하나님의 심판대입니다.

이걸 알고 믿는 사람이 신앙의 사람입니다.

 

법원에 가보셨습니까?

저는 30여년 전에 법원에 간적이 있습니다.

우리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예비군 신고기일을 놓쳐 고발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법원에 가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아~! 정말 죄를 지으면 안되겠구나,

죄지은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일인가를 실감했습니다.

 

죄인으로 살면 안됩니다.

그래서 저는 죄인으로 안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이십니다.

이것을 발견한 분이 사도바울입니다.

예수그리스도,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이 위대한 진리가 사도바울의 가슴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움입었습니다.

 

예수가 누구입니까?

나를 대신하여 나의 모든 값을 지불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의 막힌 담,

죄 값,

어둠의 영,

낡은 가죽부대같은 옛 사람의 행실을 다 없애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안에 거해 살아가는 자가 바로 신앙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끝까지 예수믿게 하십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고2때부터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해도 저희 아버지는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기도했습니다.

신학대학에 갔습니다.

전도사로 일하면서도, 저희 아버님을 생각하면 잠이 안옵니다.

지옥갈걸 생각하면,

대학교에 다니면서 아버님께 10장짜리 편지를 해서 여러분 보냈습니다.

아버님이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요.

그 아버님은 미적미적 그랬습니다.

결과가 뭐였습니까?

중풍으로 쓰러지셨습니다.<대학2학년>

도망가는 소를 잡으러 가시다가 눈내리는 추운 겨울에 그만 뇌출혈이 되신 것입니다.

저는 아버님의 손을 붙잡고 약속했습니다.

이번에 하나님을 믿자고,

그럼 나으실 것이라고,

일주일 뒤에 걸어서 교회가자고요.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저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불가능이 가능해 집니다.

없는 것이 없어지게 되고, 있는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저는 그런 기적의 현장을 체험했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기도 하고,

희귀병에 걸린 사람이 그 병에서 노임받기도 하고,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우리아버지를 고쳐주셨습니다.

2주만에 걸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갔습니다.

한번 가고, 두번가시더니 안가신 답니다.

난 교회체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찬송도 모르겠고, 성경도 모르겠고, 도무지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며서 살살 뺍니다.

희안한것은 그것과 몸 낫는게 정비례합니다.

아버님은 그렇게 쉽게 나으신 상태로 많이 좋아지실 수 있었는데,

그냥 그 상태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대학원1학년<그로부터 5년 뒤>

어느날 밤에 꿈을 꾸는데,

꿈에 교회 지붕 같은 곳에 밧줄이 있는데,

어머니는 그 밧줄을 붙잡고 올라가는데,

아버지는 못올라갑니다. 자기 밧줄이 끊어져서 못올라가는 꿈을 꿨습니다.

이상하다. 이게 무슨 꿈이지,

시골에 전화를 했습니다. 순간 무슨일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에 내려가보니까, 아버님이 병원에 다녀오셨는데, 못고칠 병이라고 진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전 아버님을 모시고 서울에 가서 큰 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진단결과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날에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아버님이 일찍 예수님을 모셨더라면,

우리 어머니처럼 지금도 살아계실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빠져드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누구로 만나셨습니까?

사도바울이 만난 예수를 여러분의 예수로 만나셨습니까?

이 예수로 충만한 여려분의 삶이 도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의 또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그 주제가 무엇입니까?

나는 왜 이 땅에 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존재하는가?

하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의 답이 무엇입니까?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저는 지금 요한복음10:10절에 빠져있습니다.

이 구절로 보는 성경의 세계에 환희와 기쁨, 감격과 소망을 가득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을 깊게 해주는 위대한 말씀임을 알고 어제밤을 설레임으로 보냈습니다.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

너희 자랑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이 요한복음10:10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과 일치되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초대교회 신자들이 가진 중요한 신앙적 주제가 바로

생명을 얻는 라인과,

더 풍성함을 얻게하는 라인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대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생명을 얻게하고,

그 생명 얻은 사람이,

진보와 기쁨을 얻게하여 자랑스런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위대한 진리가 우리교회 진리가 되어 여러분의 삶속에 진보와 기쁨이 이루어져 자랑스런 분들로 자라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이 충만함이 영원히 함께 하는 우리교회가 되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