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성경연구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

예인짱 2010. 10. 11. 19:10

 

1. 두 종류의 인간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이다.

 

고린도전서2:14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2. 육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자연인을 지칭하는 언어이다.

하나님이 지은 인간은 흙(dust)인 인간에게 생명(life)을 넣으셨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명을 거두어가셨다.

그 인간이 흙덩어리인 dust인간이다.

 

dust인간은 육체 중심의 삶을 산다.

육체가 전부다.

태어나 살다가 죽는,

그리고 그안에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가 전부의 주제이다.

 

육체의 소욕을 좇으며,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한다.

 

그 사람의 삶을 에베소서2:2은,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허물과 죄,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사는 삶,
육체의 욕심을 따르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삶,
본질상 진노의 자녀,
바로 그 사람이 육에 속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하는 일은 갈라디아서5:19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더러운 것호색우상 숭배술수원수를 맺는 것분쟁시기분냄당 짓는 것분리함과 이단투기술 취함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 사람이 만드는 삶은,
슬픔에 근거한 우울,
남이 잘되는 것을 미워하는 미움,
모든 근심, 걱정을 끌어안는 어둠을 만든다.
 
인간은 오차범위안에서 누구나 다 이런 인생의 굴레속에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흙의 인간이 걸어가는 삶의 길이다.
 
3. 영에 속한 사람
 
하나님이 만드시려는 사람은 영에 속한 사람이다.
영에 속한 사람은 오직 하나의 선택으로만 가능해 지는 사람이다.
 
요한복음3: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이요 성령으로 난 것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거듭남
육으로 난 인간이 성령으로 난 인간으로 거듭나는 변화를 경험한 사람
이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인 것이다.
이것을 만드는 방법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세례는 인간이 거듭나는 유일무이한 길이다.
 
사도행전2: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성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는 길은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핫 잇슈는,
사도행전19:2절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신다.
그 성령이 임한 사람을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영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함께 하신다.
성령이 인도하신다.
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소멸치 말고 멸시치 않는 것이다.
이것이 되면 이 사람은 점점 더 신령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6: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데살로니가전서5:19절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4. 영에 속한 사람의 삶의 모습
 
영에 속한 사람은 내 소욕 중심이 아닌 성령의 소욕 중심의 삶으로 바뀐다.
갈라디아서5:16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다고 해서 내 소욕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속에는 내 소욕이 끝없이 인간에게 다가와 인간을 괴롭힌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성령의 열매인 절제이다.
 
고린도전서9:27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내가 복종시켜야 할 내 소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흙인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정서속에 파묻혀 자신의 존재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요, 그 상실된 정서로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정서속에서 인간은,
우울감,
미움,
어둠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는 한계에 부딛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 자라가는 성령의 소욕은 무엇인가?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얻어진,
존재의 전환, 존재의 값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영생의 사람,
깨끗한 사람,
인정받은 사람,
그래서 자존감이 충만하고,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소욕이 우리에게 주는 절대 값인 것이다.
 
둘째는, 성령의 능력으로 인한,
 
기쁨의 능력,
약한 것, 능욕, 궁핍, 핍박, 곤란을 기뻐하는 탁월한 기쁨,
 
사랑의 능력,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으로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
빛의 능력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궁핍핍박곤란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린도후서12:10)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자비겸손온유오래 참음을 옷입고 (골로새서3:12)
 
셋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신명기6: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는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영에 속한 사람의 삶의 자리인 것이다.
 
5. 내 삶의 자리
 
오늘 우리는 이 삶의 자리에 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점점 더 낮아지고,
영에 속한 사람의 삶은 점점 더 깊어지는 현장을 살아가는 것이다.
 
신앙의 영성,
성령 충만,
경건의 훈련을 할 수록 그 인간은 점점 더 영성이 깊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 영성만큼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육체의 일을 중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다 이 현장의 어느 한 점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높이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 내게도 내 소욕, 육체의 소욕은 자리하고,
또한 내 속에 성령의 소욕도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 속해 있다 할지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위해 노력해 나가는 성령충만을 사모하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령님~! 인도해주세요.
를 외칠 때,
성령님은 내게 예수영성과 성령의 능력영성, 그리고 하나님 존중의 영성을 쏟아 부어주신다.
 
이것이 되어질 때,
내 삶엔 바삭바삭한 밝은 사람,
기쁨과 사랑의 능력이 가득한 능력의 사람,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존중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을 게을리 하거나, 등한시 할 때,
내겐 흙인 정서가 틈타서,
나를 부정적이고, 수구적인 소심증과,
미움과 시기와 다툼으로 끌어 내리는 미움의 정서와,
오히려 남을 짓밟고, 고통을 안기는 존중과 반대되는 정서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매 순간,
성령의 인도로 극복해 가는 삶의 과정을 사는 것이 오늘 내 삶의 자리이다.
 
이것을 계속적으로 지속시켜 나갈 때,
성령의 충만함이 자리하는,
성령의 열매,
성령의 은사,
성령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이것을 꿈꾸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것이,
오늘 내 삶의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