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라는 주제에 대한 묵상을 하며 기쁨의 깊이가 얼마나 크고 깊은가를 실감한다.
참으로 기쁨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를 깊게 인식하며 기쁨의 자리를 새롭게 정립한다.
항상 기뻐하라.
이 주제의 자리,
이 주제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큰 가를 가슴에 담는다.
기쁨의 인간이 되는 첫번째 구조는
내가 기쁨의 존재임을 깊게 인식하는 것이다.
난 못난 존재이다.
난 남 보다 부족하고 못난 것이 많은 존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난 기쁨의 존재이기는 커녕 한 없이 불쌍하고 가여운 슬픔의 존재이다.
그러나 난 나만이 가진것이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난 영혼이 있는 인간이다.
난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난 예수님을 통해 죽기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존재이다.
난 나만이 가진 소중한 것들이 있는 귀한 존재이다.
세상은 자기가 없는 것을 보는 불행한 인간과 자기가 가진 것을 보는 행복한 인간이 존재할 뿐이다.
헬렌켈러는 눈, 귀, 입의 장애를 넘어 세계의 등불이 되는 소중한 삶을 사셨다.
크로스비는 앞을 못보는 장애를 넘어 하나님의 위대한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 되셨다.
송명희 시인은 나 가진 재물, 지식, 건강 없으나,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음을 노래한다.
이게 존재적 기쁨이다.
내 존재가 베노니인지, 내 존재가 베냐민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게 존재의 기쁨의 자리이다.
기쁨의 인간이 되는 두번째 구조는
내 삶의 현장이 기쁨이 현장임을 깊게 각인하는 것이다.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고,
나의 나됨의 자리에 겸손함과 감사함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내 것은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은혜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 주신 선물인 것이다.
오늘 내 삶의 현장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고백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기쁨의 인간이 되는 세번째 구조는
내 모든 삶의 현장을 기쁨을 창조하는 현장을 만드는 노력이다.
기쁨은 없다.
기쁨은 기쁨을 가꾸어가는 노력의 현장에 자리하는 아름다운 인격이다.
기쁜 일을 기뻐하는 것은 1%의 확률게임이다.
불가능하다.
삶의 순간 순간은 늘 긴장과 불안과 문제와 과제를 안겨다 준다.
하루의 한 순간도 내게 평안함과 안일함을 안겨다 주지는 않는다.
이 모든 순간을 기쁨을 가꾸어가는 현장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곧 기쁨의 사람인 것이다.
기쁨의 인격을 담고, 기쁨을 가꾸어가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모든 현장을 승화시켜 나가는 사람이 곧 기쁨의 사람인 것이다.
내 기쁨을 위해,
모든 현장을 포용하고 수용하고 가꾸어가는 사람,
기쁨을 창조하는 현장으로 모든 현장을 가꾸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기쁨의 사람인 것이다.
이런 기쁨의 구조를 내 안에 심고,
다른 이에게 이 기쁨의 구조가 자리하도록 돕는 작업이 오늘 내게 주어진 가장 긴급한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