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Q.T

선한 양심을 가지라(베드로전서3:13-22)

예인짱 2008. 5. 7. 12:51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소동치 말고,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해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 영으로는 삶, 저가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노아의 날 순종치 않은 자들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멋진 말씀이다.

참으로 베드로의 사상이 무엇인지를 집약해주는 귀한 말씀이다.

이런 보석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신앙은 자신의 죽임이다.

그 죽음은 막연한 선언이 아니라 교만을 부수고, 불순종을 부수고, 오직 순복함을 배워나가는 삶이다.

이게 신자의 죽음인 것이다. 이 죽음의 인생을 살아갈 때, 인생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신앙의 삶을 기준으로 갖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전서의 큐티는 내 인생을 새롭게 살아갈 중요한 기준점이요, 카이로스의 시작점임에 분명하다.

이런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어제 많이 따분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의 큐티가 나를 새롭게 했다.

순복하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순복하라는 말씀이 나를 새롭게 했다.

 

나는 높은 자(?)이다.

나를 나무랄 사람도 없고, 내가 섬겨야 할 사람도 없다.

나는 내게 순복할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있다.

나는 순복할 필요가 없고 순복시킬 사람만 있다.

이건 마귀생각이다. 이건 마귀적인 의식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다.

 

마귀는 말한다.

너를 순복하게 하라고,

그런데 문제는 나는 순복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게 마귀다.

 

난 내가 섬겨야 할 분들이 많다.

아니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내가 섬기라고 보낸 분들이다.

아들도, 아내도, 성도들도, 리더들도, 다 섬겨야 한다.

그분들께 순복해야 한다. 그러면 살고, 성장한다.

 

그런데 순복시키려고 하면 싸운다.

안된다. 서로 갈라선다. 망한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이게 마귀인 것이다.

 

섬기라.

순복하라.

죽이라. 이 깊은 의미안에서의 삶을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