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예배를 드리고

초대교회의 신앙관

예인짱 2007. 5. 10. 01:35

 

 

 

사도행전 16장을 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의 현장을 경험한다.

 

초대교회의 신앙관이 얼마나 분명했으며, 그들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그 신앙관에 기인한 삶을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탁월한 신앙관을 보게 된다.

 

초대교회 신앙관은,

예수관이다. 그들의 예수에 대한 절대적 자리는 무엇과도 비길수 없는 절대적인 자리였다.

그동안 신학을 하며, 목회를 하며, 목회의 현장에서 수 많은 사역을 하며 예수의 자리를 지금처럼 강력하게 가진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예수의 강력함이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자리했던 신앙관이었는가를 돌아보며 감사와 함께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떤 이유로도 예수의 자리를 약화시키지 않으려는 그들의 신앙관을 보게된다.

사도행전 15장에 나타난 예수로 인한 구원, 그 은혜, 그 사랑, 그 축복, 그 행복의 자리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정말 초대교회가 어떤 잇슈앞에 당당히 서갔는지를 보여주는 절대 근거가 되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신앙관의 또하나의 특징은,

그들의 교회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베드로도, 성도들도 아니었다.

그들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셨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당시의 지도자들은 묵묵히 따랐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인 순종을 했다. 그것이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었다.

오늘 사도행전 16장의 사도바울도 성령이 인도하시는대로 자기의 진로와 노선을 바꾸는 일을 서슴치 않고 행했다.

 

사도바울의 유럽을 선교한 것은,

자신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순종의 결과였던 것이다.

 

비두니아와 마게도냐의 갈림길에서,

성령님은 마게도냐를 선택하게 했고, 사도바울은 마게도냐를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생각과 뜻, 계획과 목표가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모른다.

모든 결정을 인간들이 나서서 다 하기 때문에 성령님의 역사하실 자리를 주지 않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신앙관이 회복된 교회가 되어,

오늘날의 교회의 현장에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에 민감한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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