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로마서 강해

하나님의 긍휼.^^ 로마서9:1-18절

예인짱 2020. 2. 3. 16:37





1.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니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인 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은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그리스도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을실 하나님이시니라.


사도바울을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다.

그것을 바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아픔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세상 어떤 민족과도 다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끝없은 사랑과 언약을 세우셨다.


바울은 그들이 양자됨과 언약들과 율법과 예배와 약속이 있는 자들이요,

그들에게서 그리스도께서도 나신 것을 높게 평가하셨다.


맞다.

그들은 그 어떤 민족과도 비길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이었다.

그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필요하다.


난 유대인의 나음을 인정한다.



2. 약속의 자녀(6)


러나 하나님이 말씀이 폐하여 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악을 향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으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무작정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약속에 근거하여 약속의 자녀들만을 사랑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원칙이시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이삭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사랑하지 않으셨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하신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선택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주 예수를 모신 것도,

성령의 인치심 안에 사는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사랑 때문이다.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 드릴 뿐이다.



3. 하나님의 긍휼(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는 자를 긍휼이 여기시고

하고자 하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다.

그가 인간을 어떻게 선택 했는냐에 따라 주를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 하나님의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다.

긍휼을 입은 자는 은혜를 받는 것이요,

긍휼을 입지 못한 자는 은혜를 입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계시기에,

주를 믿고,

성령의 인침 안에 사는 은혜를 입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면,

난 영원히 구원을 입지 못하는 버려지 자로 살아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