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노인복지

요양원은 ‘돌봄’, 병원은 ‘치료’…제구실하게 제도 손질을

예인짱 2019. 10. 24. 10:35
광주시립제1요양병원에서 한 작업치료사가 지난 15일 오후 경증 치매환자 등 노인을 대상으로 인지능력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시립제1요양병원에서 한 작업치료사가 지난 15일 오후 경증 치매환자 등 노인을 대상으로 인지능력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고령화의 그늘 요양병원이 불안하다
❹ 시설 연계 체제 재정비해야

요양병원이란 ‘장기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기 위한 병원’이다.(의료법 제3조 2항) 이런 요양병원에 입원하려면 치매나 관절염 등 노인성 질환 또는 만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외과적 수술이나 상해 사고 이후 회복기를 필요로 하는 경우라야 한다.(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


법령과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장기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아닌데도 버젓이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현실이 대표적이다. 요양병원을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이런 노인의료 체계에서 비롯한다. 돌봄 서비스 중심의 요양원 등 ‘시설’을 이용하거나 집에서 생활해도 될 노인이 의료 서비스가 이뤄지는 ‘요양병원’을 찾더라도 이를 막을 법·제도적 장치가 없다. 전문적인 의료시설 및 인력이 부족한 일부 요양병원은 되레 입원 치료가 필요없는 ‘환자’를 반긴다. 건강보험이 입원 적절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입원비를 대신 내주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두 기관 서비스 분절·중복 부실운영
돌봄 필요한 노인, 병원 입원하기도


광주시립1병원, 요양원 따로 열어
의료와 효율적 연계…만족도 높아
서울 미소들 병원, 보호센터도 운영
병원·요양원·센터·집 유기적 연결

의료복지 분야 전문가들은 요양병원 부실화를 막으려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연계 방안 마련 등 요양병원이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환자가 자기 상태에 따라 각각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두 기관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입원·입소의 적절성 평가 기준은 좀더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13년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역할 정립 방안 연구’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등) 두 기관의 서비스가 분절되고 중복된 상태에서 운영되다보니 요양(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의료적 처치가 필요한 노인이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요양시설에서는 의료 서비스 연계를 강화하고, 요양병원은 본래의 의료적 서비스 제공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역할 정립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광주시립제1병원(옛 광주시립인광노인병원)은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연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대표적 병원으로 꼽힌다. 광주시가 설립해 의료법인 인광의료재단이 운영을 맡고 있는 이 병원은 2002년 처음 문을 열 때부터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재활을 통한 사회복귀’에 서비스의 초점을 맞췄다. 대신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인을 위해서는 2008년 병원 옆에 50병상 규모로 세운 요양시설 인광전문요양원을 열었다.

재활치료 등 의료적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는 병원으로, 돌봄 대상 노인은 요양원에서 맡겠다는 취지다. 박인수 인광의료재단 이사장은 21일 “많은 노인이 딱히 아픈 곳이 없어도 요양병원에서 지내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는데, 우리 병원은 그들이 기능장애를 극복해 다시 건강하게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운영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와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전문 인력이 자연스레 많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모두 270여 병상을 갖춘 이 병원에는 235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는데,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이 170명에 이른다. 환자 3명을 2명의 전문 인력이 맡는 꼴이다. 환자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환자 정아무개(87)씨는 “2010년 가을 갑자기 왼쪽 팔과 다리가 뻣뻣하게 굳는 뇌경색이 찾아와 다른 병원 몇 곳을 거쳐 이리로 왔다. 재활치료의 수준이나 환자에 대한 세심한 관리는 이 병원이 단연 으뜸”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미소들병원도 2009년 문을 열 때부터 각각 430병상과 80병상 규모의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을 동시에 갖춘 ‘의료-복지복합체’ 형태로 출범하며 의료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미소들병원은 노인 40명을 돌볼 수 있는 주야간 보호센터도 함께 마련해놓고 있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주야간 보호센터 등 기능이 각기 다른 세 개의 시설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의료적 서비스가 필요하면 병원으로, 여기서 상태가 좋아지면 집이나 시설로 옮기는 등 병원과 시설의 유기적 연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윤영복 미소들병원 원장은 “지금의 요양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등급을 받아야 입소할 수 있는데, 입소 자격이 주어지는 1~3등급 노인은 사실 요양원이 아닌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병세가 심한 환자고, 등급이 낮아 요양원에 입소하지 못하고 요양병원을 찾아오는 노인은 신체 기능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요양원이 더 적합한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요양병원을 찾는 환자의 입원 적절성 판단을 병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좀더 주도적으로 나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