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심리교실

아이 행동장애, 유전보다 환경 탓 크다

예인짱 2017. 12. 29. 14:29


30~50%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이어져"열악한 가정환경에 남아가 여아보다 민감"

초등학교에서 여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은 경찰 조사에서 지난해 정신병원을 찾아 '반사회적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인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범죄행위를 하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일종의 정신질환자다.

18세 미만의 아동이나 청소년이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비슷한 정서나 행동을 보이는 경우 소아정신과에서는 '행동장애'라고 진단한다. 행동장애의 원인으로 유전보다 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부모가 누구냐 보다 어떻게 자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근거다.

행동장애아 성인 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 가능성

행동장애 아동은 거짓말을 자주 하거나 폭력을 많이 쓰거나 사소한 도둑질을 하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일찍 발견해 잘 치료하면 대부분 성인이 된 뒤엔 나아진다. 그러나 행동장애 아동의 30∼50%는 18세 이후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국립목포대 심리학과 허윤미 교수팀은 3∼13세 한국인 쌍둥이 603쌍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자녀들의 문제행동에 대한 설문조사(SDQ)를 실시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완전히, 이란성은 절반이 동일하다. 행동 유형에 유전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한다면 이란성보다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 행동이 비슷한 경우가 더 많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일란성이나 이란성 쌍둥이에서 행동 유형이 닮은 정도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조사 대상 쌍둥이는 부모가 같으면 모두 동일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결국 아동의 행동 발달이 유전보다 가정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는 행동장애를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보여준다. 허 교수는 "가정환경 때문에 행동장애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며 "문제의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주면 자연히 치료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유전적 소인이 강한 일부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행동장애를 고치지 못하고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행동장애와 관련 있는 것으로 밝혀진 유전자는 모노아민옥시데이즈-A(MAO-A). 심하게 매를 맞는 등 좋지 않은 환경에서는 MAO-A 유전자의 활동이 늘고, 좋은 환경에서는 반대로 줄어든다.

여아보다 남아가 환경에 더 민감

행동장애는 여아보다 남아에서 실제로 많이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허 교수팀은 쌍둥이 설문조사 데이터를 남아와 여아로 구분해 통계처리를 해봤다. 그 결과 행동 유형에 가정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남아에서는 44%, 여아에서는 30%로 각각 나타났다. 나머지는 가정 밖에서의 개인적 경험이나 기타 다른 요인들의 복합적인 영향, 측정 오차 등이다.

허 교수는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보다 가정환경에 더 민감하다는 증거"라며 "열악한 가정환경이 주어졌을 때 행동장애가 나타나는 속도가 여아보다 남아의 경우 더 빠르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들이 이미 보고돼 있지만, 국내에서 여아와 남아에 미치는 가정환경의 영향을 구분해 분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허 교수는 덧붙였다.

성격과 주의력은 유전 영향 커

행동장애와 혼돈하기 쉬운 증상으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다. ADHD 진단을 받은 아동은 보통 행동이 부산스럽고 감정 변화가 심하며 집중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이다. 기억력과 학습능력 언어능력이 떨어진다. 아동이나 청소년 시기에 진단을 받은 뒤 15∼20% 정도는 어른이 돼서도 증상이 계속된다고 알려져 있다.

허 교수팀은 쌍둥이 603쌍을 대상으로 아동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기질 3가지인 정서안정성과 활동성 사교성을 측정하는 검사(EAS)를 실시했다. 아동기의 기질은 성인이 됐을 때의 성격을 결정하는 기초 요소다.

검사 결과 ADHD 증상이 나타나는데 영향을 미치는 전체 요소를 1이라고 했을 때 3가지 기질 중 정서안정성의 영향이 0.3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정서안정 정도가 낮은 아동이 ADHD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뇌에서 분비돼 기분을 조절해주는 물질인 세로토닌 분비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정서안정과 ADHD 발현에 동시에 영향을 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행동장애와 달리 ADHD는 환경보다 유전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도 나왔다. ADHD와 정서안정성의 상관관계 점수인 0.3 중 0.18(60%)은 유전자, 0.12(40%)는 환경이나 경험의 영향으로 계산됐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달 4∼7일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에서 열린 국제쌍둥이연구학회에서 발표됐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