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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가족력 안질 국화로 다스리다

예인짱 2017. 10. 24. 08:16
조선시대 임금의 눈병을 치료할 때 쓰던 국화의 일종인 감국.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한의학에서는 눈을 불의 통로로 본다. 밤중에 고양이의 눈이 파랗게 불타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분노와 스트레스, 화병은 불의 통로에 불을 더해 눈의 신경을 팽창시키거나 건조하게 한다. 그래서 성격이 불꽃 같고 집중을 잘하는 사람들이 안질에 취약하다. 조선 왕 중 안질로 고생한 이가 많았던 이유도 조상 중에 태조 이성계처럼 성정이 불같은 무장(武將)이 많았던 탓이다. 일종의 가족력이었던 셈.

기록에 따르면 태종 세종 문종 세조 명종 광해군 숙종 등이 안질로 고생했다. “내가 안질(眼疾)이 있어서 일을 결단하지 못한다”(태종 9년 10월). 안질이 너무 심해 눈이 멀 정도였던 세종대왕의 사연은 잘 알려져 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이유가 심한 안질 때문이었다는 일설도 있다. “안질이 심해 부득이 침을 맞으며 조섭하고 있으니 그동안만은 잡된 공사(公事)를 보고하지 말라고 누누이 하교했었다”(광해군 10년 윤4월).  

현종의 증상은 승정원일기에 아주 세밀히 기록돼 있다. 재위 1년 2월 3일에 현종은 시력 저하와 두통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해 6월에는 어의 유후익으로부터 “좌우 동공 모양이 다르고 염증 상태가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현종은 “눈초리에 뭔가 있는 것 같고 손으로 문지르니 통증이 있으며 가까이는 괜찮으나 멀리 보이는 것은 연기가 중간에 끼인 것 같다”고 호소했다. 지금으로 보면 포도막염에 가까운 증상이다. 12월엔 “안질이 매우 위중해 붓을 잡고 낙점(落點)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열혈남아 숙종도 재위 43년 7월에 “왼쪽 안질이 더욱 심해져 전혀 물체를 볼 수가 없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승정원일기에서 임금의 안약으로 쓰인 것은 국화의 일종인 감국이다. 영조 50년 눈물이 계속 나면서 눈썹 뼈 부분의 고통을 호소하자 감국을 달여 마셨다. 심지어는 베개 속에 감국을 넣어 그 향기로 두통과 안질을 치료했다. 감국은 눈의 열과 건조함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다. 국화는 줄기나 잎이 시들어도 계속 개화 상태를 유지하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 한 예로 꽃꽂이를 할 때 국화는 다른 꽃과 같이 심으면 다른 꽃이 못 견디고 일찍 시든다. 사군자 중에서 국화는 가을의 덕을 지닌 식물이다. 특히 서리를 딛고 노랗게 피어나는 모습은 모진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 여름의 더운 열기를 거두어 화사한 꽃으로 피어난 뒤, 차갑고 서늘한 기운을 몸에 가둔다. 그 기운으로 눈의 열을 식히고 안질을 치료한다.

‘신농본초경’에 감국이 안구건조증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 눈물에는 기름이 섞인 눈물과 맹물인 반응성 눈물이 있는데, 안구건조증은 기름이 든 눈물이 마르면서 우리 몸이 온도 변화, 습도 변화, 먼지, 스트레스 등의 외부 자극을 적으로 인식해 발생한다. 감국은 눈물샘에 윤활액인 기름 눈물을 채워주는 한편으로 눈의 열을 잠재움으로써 안구건조증을 치료한다. 가을철 심한 알레르기 비염으로 인한 가려움증에도 아주 도움이 된다. 

 

감국은 구하기도 쉽지만 차를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그냥 감국에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내 먹으면 된다. 깨끗하게 씻은 감국으로 우려낸 차를 냉장고에 넣어 식힌 후 눈에 한두 방울 떨어뜨리면 눈이 훨씬 편해진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