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전도

제1강 전도의 즐거움

예인짱 2017. 9. 18. 11:11

1  전도의 즐거움

 

전도의 기쁨을 회복하자

 

빌립보서 4 4,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이 주안에서살아가면 기쁨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기쁨이 되어야 한다.

 

하박국 3 17-18,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자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기쁨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비밀이요, 능력이요, 매력이다.  기쁨, 이교도들의 작은 기사거리였던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어마어마한 비밀이 되었네.” (G.K. 체스턴) 그리스도인의 이 비밀스러운 기쁨이 바로 전도를 가능케 하는 힘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항상 들어도 기쁜 소식이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2:10) 복음은 전하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즐거운 것이다.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4:36)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가 나온다. 이 세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뭔가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이야기에서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후에 등장하는 동일한 단어가 있다. 바로 즐거워한다는 단어이다. 또 찾은 즉 즐거워 어깨에 매고 집에 와서.”(6)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9)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32) 결국 이 세가지 비유의 핵심은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았을 때에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은 전도하는 것이다. “한 영혼이 구원받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기쁨의 폭죽으로 광채를 발하는 불꽃놀이 밤하늘이 된다.”(맥스 루카이도)

 

디모데후서 4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얼굴 전도지가 중요하다

 

예수를 믿으면 당장 두 가지가 잘라진다. 첫째는 우리의 신분이 달라지고, 둘째는 얼굴이 달라진다. ,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얼굴이 기쁨이 가득한 웃는 얼굴로 바뀐다. (사랑에 빠진 사람도 신분이 싱글에서 커플로, 고독하고 우울한 얼굴에서 기쁘고 행복한 얼굴로 바뀐다.) 내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구원의 감격이 기쁨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성령은 기쁨의 영이시다.

 

C.S. 루이스는 이러한 기쁨을 예기치 못한 기쁨이라고 표현하였다. 예수를 믿으면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듯이 우리의 내면에서 터져 나온다. 그래서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이 웃는 얼굴로 바뀐다. 이 얼굴이 전도를 가능케하는 전도의 힘이다. (지옥에서 갓 출장나온 얼굴로는 전도를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종이 전도지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얼굴 전도지가 더 중요하다.

 

한국인은 대체로 양 미간이 좁고 코와 입 사이 인중이 짧아 입술이 아래로 처져 있어서 웃지 않고 있으면 화가 나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좋은 인상을 주려면 우리 한국인은 무조건 웃어야 한다.

 

오랜 역사 동안 격심한 혼란기와 가난을 겪은 한국인의 정서에는 슬픔과 한이 스며들어가 있다. 이런 정서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는 눈물이 많은 교회이다. 그래서 한국 교인들은 실컷 울어야 은혜받았다고 말한다. 반면에 실컷 웃고 나면 그냥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슬픔과 한의 정서가 지배적인 한국인들은 기쁨에 굶주려 있다. (그래서 은혜로운 설교보다는 재미있는 설교를 더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한국인들에게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기쁨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의 지수를 높여야 한다. 우리는 호모 휴머러스(Homo Humorous, 웃을 줄 아는 동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웃기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은 긴장을 풀어주고 조급한 마음을 가라 앉혀주는 진정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웃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건강을 위해 부여해 주신 일종의 양약이다. 실제로 웃음이 치료효과에 탁월하다는 것은 임상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웃으면 혈액순환이 촉진되며, 게다가 면역성을 증가시키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병원체의 활동을 억제시킨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요 근심(스트레스)은 뼈와 살이 썩느니라.”(17:22) 마음의 즐거움이 양약이다.

 

[실제로 면접을 볼 때에 단순히 외모보다는 인상을 중요시 한다고 한다. 면접시에 감점 대상은 날카로운 인상(21%)과 무표정한 얼굴(18%)이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에는 자신감이 없는 얼굴’, 여자의 경우에는 너무 짙은 화장이라고 한다.]

 

<서로 인사하기> 얼굴 전도지를 활짝 펴세요. 지옥에서 출장나온 얼굴로는 전도가 안됩니다.

 

복음을 보여주는 전도를 해야 한다

 

21세기의 전도는 복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복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복음을 듣기 보다는 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보여주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먼저 좋은 소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도 훈련도 복음을 전하는 훈련에서 복음을 보여주는 훈련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우리의 삶 속에서 참된 기쁨과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

 

꽃들은 아무도 초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꽃들을 보며 탄성을 자아내며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한다. 꽃들의 무엇이 사람들을 이처럼 끌어 들이는 것일까? 꽃들에게는 아름다움과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고 사람들을 불러 들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아름다움과 향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힘이다.

 

사랑은 신비하게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다. 전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전도를 아름답게 만들고 전도를 가능케 하는 힘이다. 사랑이 먼저 선행되어야 전도가 가능하다. 결국은 사랑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사랑이 없으면 믿음과 소망은 불꺼진 등대이다.

 

[사랑스러움의 반대말 중의 하나가 무례함이다. “사랑은 . . .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고전13:5) 무례한 전도가 아니라 사랑스럽고 즐거운 전도를 꿈꾸어 보자.]

 

오이코스 전도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더불어 살면서 하는 관계 전도이다. 단순히 교회 부흥을 위해서 얻으려고 하는 전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전도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나눌 때 영혼을 얻을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