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전도

잃어버린 교인을 위한 전도 소책자 개발

예인짱 2017. 9. 18. 11:07

잃어버린 교인을 위한 전도 소책자 개발


             
                                    이 논문을 풀러 신학교 목회학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정  창  석


  
                          
                                                                     감사의 말씀


     부족한 죄인을 구원의 길로 부르셔서 성도의 반열에 서게 하신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날 이 정도의 모습으로나마 성장하기까지 저의 성장을 위해 가르쳐 주신 수많은 신앙의 스승들과 신앙의 선배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논문을 이해와 애정으로 지도해 주신 민종기 박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학위 과정 내내 도와 주시고, 논문을 쓸 수 있도록 많은 격려를 해주신 김태석 박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날까지 이 아들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저의 어린 시절 보호자와 양육자가 되어 주신 큰아버님 큰어머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들었을 때, 격려와 용기를 불어 넣어준 아내 김록이 사모에게 감사하며, 나의 희망인 딸 한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특별히 못난 목사를 항상 사랑해 주실 뿐 아니라 이 과정을 잘 마칠 수 있도록 이해해 주고 기도해 주신 포항성안교회 모든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3년 3월 정창석 

 

 

 


목   차


Abstract  ⅱ
감사의 말씀  ⅳ

제 1 장 서 론  1
   제 1 절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1
   제 2 절 연구의 범위와 방법 5

제 2 장 "잃어버린 자"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 6
   제 1 절 구약 성경에서의 "잃어버린 자" 7
       1. 언약의 개념 7
       2.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 10
       3. 언약과 "잃어버린 자" 14
       4. 언약과 "돌아오라"는 부르심 18
       5. "잃어버린 자"에 대한 구약적 의미 22
    제 2 절 신약 성경에서의 "잃어버린 자" 23
       1. 세례요한의 사역 23
       2.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25
       3. 사도들의 사역 30

제 3 장 "잃어버린 자"에 대한 목회적 이해 33
   제 1 절 "잃어버린 자"의 발생 원인 34
       1. 교회 내적인 원인 34
       2. 교회 외적인 원인 42
   제 2 절 "잃어버린 자"의 다양한 상태 45
       1.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상태 45
       2. 무종교나 무신론자가 됨 45
       3. 타종교로의 개종 46
       4. 다른 교회 출석 47
   제 3 절 "잃어버린 자"와 한국교회의 대책 48
       1. 낙심자를 막기 위한 대책들 48
       2. 낙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대책들 52
      
제 4 장 "잃어버린 양"의 관점에서 본 개인전도 방법들 57
   제 1 절 사영리 58
       1. 사영리가 나온 배경 58
       2. 사영리의 신학 59
       3.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사영리의 장점 61
       4.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사영리의 단점 62
   제 2 절 다리 전도법 65
       1. 다리 전도법이 나온 배경 65
       2. 다리 전도법의 신학 65
       3.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다리 전도법의 장점 69
       4.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다리 전도법의 단점 70
   제 3 절 전도폭발훈련 72
       1. 전도폭발훈련이 나온 배경 72
       2. 전도폭발훈련의 신학 73
       3.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전도폭발의 장점 75
       4.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전도폭발의 단점 76
   제 4 절 요한복음 3장 16절 전도법  77
       1. "요 3:16 전도법"의 배경 77
       2. "요 3:16 전도법"의 신학 78
       3.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요 3:16 전도법"의 장점  80
       4.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요 3:16 전도법"의 단점  81
제 5 장 "잃어버린 자"를 위한 새로운 전도 소책자 82
   제 1 절 소책자 "5가지 질문"이 나온 배경 83
   제 2 절 소책자 "5가지 질문"의 신학 85
       1. 신론 85
       2. 인간론 87
       3. 기독론 89
       4. 구원론 90
   제 3 절 소책자 "5가지 질문"의 내용 93
       1.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94
       2.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아십니까? 94
       3.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아십니까? 94
       4.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아십니까? 94
       5.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95
       6. 지금, 당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95
       7. 기도문 95
   제 4 절 소책자 "5가지 질문"의 특징 96
       1. 사용 면에서 96
       2. 내용 면에서 97
   제 5 절 소책자 "5가지 질문"의 사용 요령 99
       1. 전도자의 준비 99
       2. 전도 대상자 파악 99
       3. 소책자 전도를 시작할 때 유의점 102
       4. 소책자의 효과적인 사용법 102

제 6 장 결 론 105
부록  112
참고문헌  120
Vita  130


표 목 차

<표 1> 한국경제와 한국교회의 유사점 비교표 42
<표 2> 종교별 이미지 평가 44
<표 3> 오이코스(불신자) 분류표 101

 

 

 

제 1 장
서  론

 

 

제 1 절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사역을 이루시고 승천하시면서,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순종해야 할 지상명령을 주셨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는 "가라 그리고 제자를 삼으라"(go and make disciple(NIV))는 명령이 있고, 또 마가복음 16장 15절에는 "온 천하에 다녀라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라"(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NIV))는 아주 강한 전도의 명령이 있다. 또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으로, 이는 곧 주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순종해야 할 명령을 주셨고, 그리스도인이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그래서 로버트 콜만(Robert Coleman)은 "이 지상명령은 결코 특별한 소명이나 은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삶의 형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도를 은사로 보든지 그렇지 않든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한 가지는 교회의 존재 이유가 전도에 있으며 성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전파 사역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는 그 무엇보다 현대교회의 믿음과 영성의 부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초대교회가 현재와 같은 발달된 전도의 도구가 별반 없는 가운데서도 효율적으로 복음전파를 감당했던 것은 초대교회의 영성과 믿음과 그로 말미암은 역동성이 그 원인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처럼 역동성 있는 복음전파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도행전적인 영성의 회복과 믿음과 역동성을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아직도 평신도들이 사역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은 로마 카톨릭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개혁교회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하여 헨드릭 크레머(Hendrik Kraemer)는 다음과 같이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칼빈이 세운 교회는 종교개혁으로 생긴 교회 질서 중에서 가장 박력있는 것이었다. 그는 교회를 잘 지도할 교역자의 권위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강조는 뜻하지 않게 평신도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렇게 평신도가 하나님의 일에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어 버린 것은 복음전파라는 차원에서 보면 하나의 재앙이었다. 그것은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할 선수가 관중석에 앉아 구경하는 관중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복음전파는 성직자들과 소수의 평신도들만의 사역이 되고 말았고 결과적으로 복음의 효율성 있는 전파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지난 세기에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평신도 운동으로 말미암아 평신도가 복음사역에 객체가 아닌 주체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또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셀교회 운동은 '평신도 목회'라는 새로운 개념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복음전파에 평신도가 수동적인 입장에 있다가 이제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셋째는 복음전파가 현장 상황에 잘 들어맞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할 것 같다. 이에 대하여 "상황화"(contextualization)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이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정치나 사회 문화에 무관심했던 복음주의적 선교에 반발해서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물론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상황화의 잘못된 측면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거나 포기하는 측면   에 대해서는 거부한다. 그러나 상황화의 긍정적 측면 즉 복음을 어떤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전달하려고 하는 노력은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이에 대하여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교수인 데이빗 헤슬그레이브(David J. Hesselgrave)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상황화된 복음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을 위해 성경의 메시지를 상황화하고자 할 때, 먼저 성경 말씀이 당시의 문화권에 있었던 청중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현대적인 언어로 현재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도록 오늘날의 문화에 적합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우리 한국교회의 복음전도는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는 물론 영성의 회복이 필요하고, 그 다음 절실한 문제는 평신도의 사역자화이며, 그 다음에는 한국 실정에 맞는 복음전도가 필요하다. 서양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와 사역한 모습을 살펴보면 이 민족의 상황을 고려한 복음전파의 노력을 별로 찾아볼 수 없으며, 오늘날 전 국민의 20.7퍼센트인 970만 명의 개신교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이 나라 교회에 아직도 자체에서 연구 개발한 대중화된 전도 소책자 하나 변변히 없다는 사실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지금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전도 소책자와 전도 방법들이 있기는 하다. 한국대학생선교회의 사영리, 네비게이토 선교회와 여러 선교단체가 사용하는 다리 예화전도법, 글 없는 책, 제임스 케네디 목사의 전도폭발 등이 그것인데, 이것들은 모두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도 소책자이다. 자연히 미국의 상황에 적합한 소책자들이어서 서구인의 체질에 맞는 관념적이거나 분석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또 너무 많은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내용이 길고 복잡하다. 당연히 이런 소책자는 단순한 것을 좋아하고, 논리적이거나 관념적인 것보다는 마음으로 느끼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거리감이 있다. 이런 전도 소책자가 한국에 들어와 상당한 공헌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만약 한국적 상황에 잘 맞는 전도 소책자가 나와서 전국 교회에서 사용되었다면 얼마나 성과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실종교인이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하루빨리 한국적 상황에 맞는 전도 소책자가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이 나라 안에는 어떤 종교도 가지지 않고 무종교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1,094만 명인데, 그들 가운데 개신교회를 다니다가 그만둔 사람이 73퍼센트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주일학교에 다녔던 자들이 많이 있으며, 군대에서 교회를 다녔던 자들도 많이 있는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복음을 전하다가 벽에 부딪히게 되었을 때, 그 피전도자에게 "과거에 교회에 다녀본 경험이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예!" "조금 다녔다" "주일학교에 다녔다" "학생회 활동을 했다" "군대에 있을 때 군대교회에 다녔다"는 등의 대답을 듣게 되는데, 이런 현상은 지역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있으나 10명 중에 적어도 7명은 이런 대답을 한다. 본 연구자도 복음을 전할 때마다 "과거에 교회에 다녀본 경험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한때 교회를 다녔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 때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서 돌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도전하면 상대방이 다소곳하게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이런 전도의 경험들을 통해 실종 교인인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한 전도의 방법이나 전도 소책자가 필요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예수님은 전도에 "잃은 양" 혹은 "잃어버린 자"라는 의미심장한 단어를 사용하여 말씀하셨다. 잃은 양의 비유에서는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눅 15:4-6)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분의 마음 속에는 항상 잃어버린 자들이 있었고, 그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전도의 동기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마음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전도자들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한때는 교회에 다녔었던 "잃어버린 자" 즉 실종교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한다. 그들에 대하여 성경신학적인 이해와 목회학적인 이해를 모색해 보고 난 뒤, 한국교회에서 사용되는 개인 전도 방법들이 "잃어버린 자"들에게 얼마나 효율적인지 알아보고, 그 후에 본 연구자가 개발한 새로운 전도 소책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제 2 절 연구의 범위와 방법

     본 논문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장과 제 6장은 서론과 결론으로 구성되고, 2장부터 5장까지가 본론을 이루고 있다.
     제 2장에서는 잃어버린 양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를 밝혀 보고자 한다. 사실 성경에서의 잃어버린 양은 교회의 교제권에서 떨어져 나간 낙심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경에서는 잃어버린 양에 대해 상당히 광범위한 개념으로 말하고 있는데, 구약에서는 이 잃어버린 양을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이를 전체적으로 밝혀 보고자 한다.  
     제 3장에서는 잃어버린 양에 대한 목회적 이해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잃어버린 양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이 왜 잃어버린 양이 되었는지, 또 현재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그들을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연구해 보고자 한다.
     제 4장에서는 현재 한국교회에 나와 있는 전도 방법들과 전도 소책자들을 잃어버린 양들의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런 방법과 도구들이 피전도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잃어버린 양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이 있는지를 분석하고 판단해 보려고 한다.
     제 5장에서는 본 연구자가 잃어버린 양들을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연구하고 만든 새로운 전도 소책자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 어떤 장점들을 가지고 있는지 제시하게 될 것이다.

 

 


제 2 장


"잃어버린 자"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
 
     복음이 무엇인가? 마가는 그의 책 시작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 1:1)고 함으로써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바울은 복음을 일러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인데, 그의 아들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증언하고 있다(롬 1:2-4). 이와 같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복음전도는 그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복음전도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복음전도의 일반적인 표현 즉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나님을 믿게 함'과 같은 표현을 다 제쳐두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매우 의도적인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잃어버린 자"란 예수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또 예수님 이전의 구약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단지 "잃어버린 자"라는 특정한 단어나 어구에 중심을 두고 이해하면 단편적인 이해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신구약에서 흐르는 잃어버린 자에 대한 전체적인 개념과 사상을 신학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는 잃어버린 자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언약신학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언약사상은 신구약을 흐르는 통일성 있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언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에는 특별한 관계가 성립된다. 하나님은 그 백성의 하나님이 되고, 그 백성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된다.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불쌍한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언약적 이해야말로 잃어버린 자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는 신구약 성경의 잃어버린 자에 개념과 사상에 대한 신학적 조명을 하되, 특별히 언약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제 1 절 구약 성경에서의 "잃어버린 자"

  1. 언약의 개념

    가. '언약'이라는 말
     언약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베리트(    )'는 어원학적 증거가 불확실하다고 알려져 있고 학자들마다 의견도 다양하다. 모세 바인펠트(Moshe Weinfeld)는 "먹다(to eat)"의 뜻을 가진 동사 '바라(   )'에서 그 기원을 찾는데, 그렇다면 언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나누는 제의적 식사에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틴 노트(Martin Noth)는 히브리어 전치사 '베인(    : between)'에 해당하는 아카디아어 'birit'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그는 주장하기를 "언약을 수립한다"의 히브리어 원문은 '카라트 베리트(        )'인데, 이를 직역하면 "언약을 자르다(to cut a covenant)"는 뜻이 되므로, 이것은 곧 언약을 체결하는 방법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동물을 토막내는 저주를 나타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언약 체결 때에 있는 언약적 식사(covenant meal)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밖에 쿠트쉬(E. Kutsch)는 책임(obligation), 또는 결속(commitment)를 의미한다고 하며, 팔마 로벗슨(O.Palmer Robertson)은 이 단어가 성경 문맥에서는 주로 "관계" 혹은 "약정"의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한다.

    나. 언약의 형태
     언약의 형태는 본래 고대 근동에서 개인적으로는 남녀의 결혼 관계나 입양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고, 집단적으로는 나라와 나라간의 조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히타이트(Hittites)의 언약 문서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① 발기인이 명시되는 전문(前文). 
② 역사적 선언.
③ 규정들.
④ 신전의 텍스트 저장소와 매년 행해지는 공중낭독을 위한 조항.
⑤ 그 조약에 대한 증인이 되는 신의 목록들과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목록들.
⑥ 축복과 저주들 

     언약의 이런 형태는 종주권 조약(suzerainty treaty)에서도 나타나지만, 언약 상대자가 동등한 상대일 경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면 성경에서의 언약적 형태는 어떨까? 성경에서 언약 형태를 잘 보여 주는 곳은 역시 시내산 언약이 체결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하여 송제근 박사는 이렇게 소개한다.  

① 역사적인 연관성을 천명하는 서언..................................................(출 19:4)
② 언약 당사자의 관계 규명..............................................................(출 19:5-6)
③ 중재자 모세를 통한 교섭..............................................................(출 19:7-8)
④ 언약 당사자들의 대면..................................................................(출 19:9-25)
⑤ 언약 조건(1): 언약당사자가 직접 준 조건/규범........................(출 20장)
⑥ 언약 조건(2): 중재자를 통하여 준 조건/규범......................(출 21-23장)
⑦ 언약 비준 예식................................................................................(출 24:3-8)
⑧ 언약 비준 축하연회......................................................................(출 24:9-11)

위와 같이 시내산 언약의 체결형태를 보면 히타이트 언약의 형태와 거의 대동소이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언약신학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성경이 언약문서라는 것을 주저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 언약과 피흘림
     언약의 체결 과정에서는 반드시 있는 중요한 과정으로 피흘림이라는 순서가 있었다. 언약체결에서 이런 피흘림의 절차는 구약에서 "언약을 체결하다"라는 구절의 원어를 그대로 직역할 때 "언약을 자른다"(        )라는 것이 된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런 문구는 고대 근동의 언약에는 '절단'의 순서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는 언약의 체결시에 행하는 의식에서 짐승을 절단하여 양쪽으로 벌려놓고, 그 쪼갠 짐승 사이를 언약의 당사자들이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쪼개어진 짐승은 한참동안 그대로 두게 되는데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할 뿐만 아니라, 궁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언약의 당사자가 피흘림의 절차를 밟은 것은 만약 당사자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언약을 파기했을 시에는 그는 저주를 받아 짐승처럼 토막이 나서 죽게 되고  그 시체가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이 된다는 뜻이었다.
     언약체결의 이런 형태는 성경에서 곳곳에 나타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창세기 15장의 이른바 아브라함 언약이 체결될 때이다. 그 과정을 상고해 보면 아브라함이 짐승을 절단하여 쪼개어 벌려 놓고 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며, 마침내 하나님이 풀무불의 모양으로 임하여 그 사이를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창 15:17). 이는 하나님이 친히 저주로써 언약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제사에는 피뿌림이 동반되었는데 이는 피가 생명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언약 백성이 피뿌림의 행위를 통해 언약을 범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언약적 성격을 가진 죽음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의 죽음은 우리가 받아야 할 언약적 저주를 짊어지고 죽으신 죽음이었다.  
 
    라. 여호와 - 언약의 하나님
     구약 성경에는 "엘로힘"과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두 호칭이 번갈아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서 이에 대하여 자유주의자들은 "엘로힘 문서"와 "여호와 문서"가 짜깁기되었다는 문서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 이렇게 두 호칭이 바뀌면서 사용되는 이유가 아주 설득력 있게 제기되었다.
     먼저 "엘로힘"은 보통명사이다. 성경에서 "엘로힘"이 사용될 때는 우주와 자연과 모든 사람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신적 활동을 말하는 경우이다. 그러니까 "엘로힘"은 특정인의 하나님이 아니고 모든 사람과 존재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여호와"는 고유명사로 이방인과는 상관없는 언약 백성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특정인을 불러 언약을 맺으신다. 그리고 그들 속에 거하시며,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의 보호자와 축복자가 되신다. 그러나 그들이 언약을 배반할 때는 신적인 질투를 보이기도 하는 하나님이시다(출 20:5).
     여호와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칭하시는 분이시다. 여호와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고 말한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구약 성경에서 이 두 호칭이 따로따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 둘이 결합된 형태로 많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곧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의 하나님이 그 백성과 언약관계를 가지고 계시는 여호와이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2.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매우 특별한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왕과 백성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 등이다.
 
    가. 아버지와 아들 관계
     보스(G. Vos)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네 가지의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첫째는 도덕적-종교적인(moral-religious) 개념으로 쓰이는 경우이며, 둘째는 본질이 아닌 직무(office)를 묘사하는 경우인데, 그 예로 다윗 계열의 왕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된 점을 들고 있으며(시 2:7, 삼하 7:14), 셋째는 출생적 의미의 하나님의 아들인데, 누가복음 1장과 마태복음 1장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3절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마지막 넷째는 삼위일체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성경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초월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요 1:14,18).
     이 중 첫째의 예가 출애굽기 4장 22-23절과 신명기 32장 6절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출애굽기 4장 22-23절은 여호와가 모세를 시켜 바로에게 이르는 말씀인데, 곧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는 말씀에서 잘 나타나 있다. 여호와는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내 아들, 내 장자"로 표현하시면서 "그들로 나를 섬기게 하라"고 요구하심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신명기 32장에는 모세가 임종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친 노래가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의 배반을 미리 예언하고 책망하는 노래이다. 그 노래 중에는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신 32:6)는 말씀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을 일컬어 "너의 아버지"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부자관계의 묘사는 구약 시대에는 간간이 언급되다가 신약 시대에 와서는 아주 충만히 나타나고 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시고, 또 하나님을 그분의 아버지로 부르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부르도록 하셨다. 이같이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됨은 바울서신에서도 풍부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과의 특별한 언약적 관계로 인하여 이렇게 불린 것이다.

    나. 왕과 백성의 관계
     고대 셈족에는 "흔히 어떤 힘있는 사람이 나라를 구하거나 점령하는 위대한 행위의 결과로 왕위에 올랐다." 이런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게 구약 성경에도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행위인 출애굽 사건이 나온다.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로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구출해 내시기 위해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쏟아 부으신다. 그리고 그 백성을 구출해 내시고 마침내 시내산에서 언약을 세우신다. 그 십계명의 서두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하나님 자신이 왕권을 가질 자격이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내산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사상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여호와이시다'는 사상이 왕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 예는 사사 기드온에게서 발견되는데, 기드온은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된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드온에게 그들의 왕이 되어 주기를 청하게 된다(삿 8:22). 그러나 기드온은 그런 청을 단호히 거절하면서,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3)고 말을 한다. 이는 여호와의 왕권을 주장한 의미있는 말인 것이다.
     여호와께서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사상은 사무엘상 8장 4-9절에서 또 한 번 명확하게 나타난다. 백성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찾아가서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5절)하고 요구한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아니하시고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7절)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이런 요구는 언약에 의해 세워진 하나님의 신정(theocracy)을 거부하는 반역죄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언약적 왕임은 다윗 언약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시편에서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다(시 45; 48; 93; 95; 96; 98; 100). 그분이 우주적인 왕권을 가지고 계심과 동시에 이스라엘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그들의 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곧 그분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며,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다(시 95:7, 100:3). 이런 언약적 관계는 구약 이스라엘 나라의 타락과 이에 따른 패망이 다가옴에 따라, 선지자들은 미래에 오실 왕 메시야를 예언하게 된다. 미래에 그 백성을 위해 오실 메시야는 바로 여호와 자신이시며,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그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결혼 관계로 묘사하기도 한다. 송제근 박사는 시내산 언약의 여러 장면을 결혼식과 비교하며 해석하였다. 출애굽기 19장에 아주 어린 신부를 기다리는 신랑되신 하나님과 중매자인 모세의 인도로 신부가 산 밑에 도착한다. 신랑인 하나님이 연기와 구름과 화광 중에 시내산에 임하게 되고(출 19:16-19), 신부는 시내산 밑에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정결예식을 행하게 된다(출 19:14,15). 드디어 신랑과 신부는 대면하게 되며, 결혼식이 진행되는데 신부가 신랑과 함께 살아갈 때에 필요한 종교적 윤리적 지침인 십계명을 가지고 언약을 맺게 된다(출 20:1-17). 그리고 결혼식의 피로연까지 하게 되며(출 24:9-11), 같이 동거하게 될 장막(성막)까지 준비가 된다. 이렇게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적으로 남편과 아내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해와 해석은 성경의 다른 부분과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음행의 죄로 인정하시고 언약적 질투를 보이신다. 그 예로 예후는 왕후 이세벨의 바알숭배를 음행으로 말하고 있으며(왕하 9:22),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산 위에서 행한 우상숭배를 음행으로 책망하며(렘 13:27), 에스겔 선지자는 그 백성이 이방나라(애굽, 갈대아)와 함께 하는 것을 음란한 자의 성행위로 묘사하고 있으며(겔 23:14,18,19,27,29,35,43,48), 미가 선지자와 나훔 선지자는 기생이 음행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미 1:7, 나 3:4).
     특히 호세아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부부관계로 묘사하는 대표적인 성경이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불러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고 말씀하신다(호 1:2).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이스르엘"이라 이름짓고, 딸을 낳아 "로루하마"라 이름짓게 되며, 그 다음 아들을 낳을 때는 "로암미"라 이름짓는다. 호세아의 행동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내인 이스라엘 백성이 음란한 행동 곧 우상숭배를 계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적 질투를 촉발시켰다는 것과 그 질투의 결과로 저주를 자초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호세아 2장 13절에는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에 불붙은 남편의 심정으로 다시 호세아에게 말씀하신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호 3:1)는 말씀이다. 이것은 그 백성이 음행하는 여자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여호와의 언약적 질투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으나, 훗날 남편되신 여호와가 아내와 같은 그 백성을 다시 끌어당길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성경은 그 백성과 하나님 사이를 아내와 남편의 언약적 관계로 묘사하기도 한다.  

  3. 언약과 "잃어버린 자"

    가. 언약을 파기함
     여호수아와 갈렙을 비롯한 가나안 정복 1세대가 지나가자 그 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고, 여호와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삿 2:10). 그들은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고, 사방에 있는 이방사람들의 신들을 섬겨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 이같은 행위는 그들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는 언약적 죄를 범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불경건은 총체적인 부도덕을 불러와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의 특성마저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사시대는 이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무법천지의 시대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는 왕정시대로 옮겨가게 된다. 선지자 사무엘은 왕정시대로 진입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선지자이다. 그는 사울을 왕으로 세웠으며, 그 후 다윗에게 기름부어 왕으로 세운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언약을 기억하게 하고, 그 언약을 충실히 지키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세운 다윗 왕은 그런 일을 하기에 합당한 그릇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고 그와 언약을 세우신다. 그것은 다윗 왕가가 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승계하리라는 것이었고, 과연 하나님은 그 약속을 대대로 지키셨다(삼하 7:8-16).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는 솔로몬 이후에 분열하게 되고, 북쪽 이스라엘은 일찌감치 언약의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다. 북왕국의 첫 왕인 여로보암은 그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정치적으로 해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운다. 그리고 선포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왕상 12:28)고 선포한 후 유다의 절기마다 때를 맞추어 제전(祭典)을 열었다. 이 여로보암의 우상은 북왕국 대대로 죄와 올무가 되어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의 표적이 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배반은 남쪽 유다도 마찬가지여서 북왕국의 전철을 밟게 된다. 몇몇 신실한 왕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결국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를 받아 다윗 왕국은 파멸의 길로 가게 된다.

    나. 언약을 파기하는 구체적인 행위들 
      (1) 참된 예배를 저버림
     예배의 진정한 의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는 행위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배에 언약을 맺을 때의 요소들이 다음과 같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① 하나님과의 만남............................성도를 예배로 부름
  ② 정결예식을 행함.............................죄의 고백
  ③ 언약의 회복.....................................사죄의 선언
  ④ 언약문서 낭독.................................성경 봉독
  ⑤ 가르침과 권면.................................설교
  ⑥ 언약갱신 제사(번제, 화목제).......설교 후 기도
  ⑦ 언약갱신 축하연.............................성도의 교제와 나눔
  이와 같은 예배의 순서는 참된 예배의 성격을 분명히 규정지어 주고 있다. 십계명에서도 하나님께서 참된 예배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데, 예배의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어야 하며(제 1계명), 예배의 방법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아야 하며(제 2계명), 하나님의 성호를 망령되이 부르지 말 것이며(제 3계명), 예배드리는 날인 안식일을 준수하라는 것(제 4계명)이었다(출 20:3-11, 신 5:7-15).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며, 온전한 예배는 예배 이전에 삶이 참되고 거룩해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예배를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① 참되신 하나님께 삶으로 예배한다.
  ②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한다.
  ③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한다.
  ④ 안식의 축복을 누리며 예배한다.
  ⑤ 구원의 하나님께 예배한다.
  ⑥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한다.
  ⑦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배한다.
  ⑧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예배한다.
  ⑨ 언약을 새롭게 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예배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참된 예배를 저버리게 되었다. 예배의 타락은 이방신을 찾아 섬기는 것으로 귀결되었는데, 그들이 섬긴 신들은 팔레스타인의 신들로 "그모스", "다곤", "몰록"(밀감, 밀곰), "바알", "아스다롯", "하늘황후" 등이 있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들로는 "느보", "므로닥", "벨", "담무스" 등이 있다.
  그들이 이방신을 찾아다닌 것은 단순한 죄가 아니라 영적 간음이었다. 그들의 주인이요 남편인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남자   실제로 바알신의 "바알"은 주인이나 남편을 의미한다   를 찾아다니는 음부로 인정되어 하나님의 언약적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2) 참된 삶을 저버림
     하나님은 인격적이시며 윤리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이런 속성은 언약 백성에게 내리신 율법의 내용을 통해 명확하게 나타난다. 율법은 크게 두 영역 즉, 도덕법(the moral law)과 의식법(the ceremonial law)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도덕법은 주로 십계명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의식법은 하나님의 윤리적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를 위해 아주 정교한 희생 제도를 세워 두었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언약문서인 십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출 20:2-7)와 예배에 대한 인간의 관계(출 20:8-11), 그리고 사회에 대한 인간의 관계(출 20:12-17)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첫째로 인간이 하나님의 인격과 활동에 대하여 내적 외적인 존경과 사랑을 나타내야 하며, 둘째로 인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권을 인간 스스로 인정해야 하며, 셋째로 인간의 일상생활과 결혼과 재산에 대한 욕구에 대하여 성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백성은 이런 삶에 실패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윤리의 표준을 크게 벗어났으며, 또 그들의 죄를 씻을 정결예식도 번거롭게 여겼다. 역대 왕들은 이방신을 끌어들여 백성을 미혹하였고 이를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다. 관리들은 뇌물을 사랑하고 도적과 짝하였으며(사 2:23), 재판관은 판결을 굽게 하여 과부와 고아의 송사를 수리하지 않았으며, 사마리아의 귀족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으며(암 4:1; 6:3-6), 그들의 선지자들은 죄를 책망하기는커녕 평강을 외쳤다(미 3:5). 그들의 죄는 주변 열국의 죄보다 더욱 심각하였다(대하 33:9).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는 말씀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무지는 그 백성이 언약에서 멀어지게 하며, 참된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그 결과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4. 언약과 "돌아오라"는 부르심
  
     선지자직은 구약 성경의 "나비(    )"나 "로에(   )" 등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단어가 신약 성경에서는 "프로페테스(        )"로 번역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변자였다. 그들은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신 18:18 하)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그대로 선포한 사람들이다. 선지자들의 사역은 모세의 사역의 연장이었고, 그 메시지의 중심이 모세의 율법에 대한 적용이었다. 그들의 사역은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그분을 떠났을 때 맹렬한 활약을 보였다. 그 메시지의 초점은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였다. 이같은 말씀은 심판에 대한 준엄한 경고와 함께 장차 메시야가 오셔서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 예언과 함께 선포된 것이 특징이다.    
   
    가. 기원전 9세기의 선지자
     이 시기에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 이후 하나님의 언약이 일시적으로 최고조에 도달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솔로몬과 그 후에 나타난 왕들은 다윗 왕의 길을 버리고 이방신을 좇았으며 그것이 백성들에게 유혹과 올무가 되었다.
     이 때에 사역한 선지자는 요바댜와 요엘이 있었고, 엘리야와 엘리사는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 이 때에 죽은 사람을 살아나게 하고(왕상 17:17-24),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고(왕상 18:25-40), 요단강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갈라지게 하고(왕하  2:8,14), 엘리야가 산 채로 승천을 하고(왕상 19:11),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이 기적으로 깨끗하게 낫고(왕하 5:14), 아람 왕이 쳐들어올 때마다 엘리사가 왕에게 알려주어 막게 하는 대단한 하나님의 기적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을 떠난 백성의 마음을 돌이켜 보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이었다.
 
    나. 기원전 8세기 선지자
     이 시기에 북왕국이 멸망했으며, 선지자로는 아모스, 호세아, 요나, 미가, 이사야가 있었다. 아모스는 드고아의 목자였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북이스라엘에서 사역했다. 그는 여로보암 2세 때의 일부 귀족의 사치와 방탕과 탐욕을 질타했으며, 왕과 온 백성들의 썩은 종교를 책망했다. 그의 메시지는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암 3:2)는 것이었다. 언약을 떠난 죄는 반드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요나서는 니느웨 사람들이 단 한 번의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들었어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과는 크게 대조되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과 반역적 특징을 지적하는 것이다.
     호세아는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를 부부 관계로 묘사하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는 음부(淫婦)의 행위와 같음을 보여주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불행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데서 초래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렇게 외쳤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 6:1,2). 이런 간절한 호소도 허사가 되어 북왕국 이스라엘은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심판과 구원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흐르고 있다. 먼저 이사야 1장 2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라고 하면서 과거 하나님이 그 백성과 언약을 맺을 때, 증인이 되었던 "하늘"과 "땅"을 불러서 그 백성의 배반을 호소하고 있다(신 30:19). 이와 같은 백성의 배약(背約)으로 인하여 그 백성은 철저히 멸망을 당하여 그루터기만 남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사 6:11-13). 그러나 이사야는 장차 여호와 하나님이 선한 목자로 세상에 오실 것과(사 40:10-11) 그 분이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이루실 구속과(사 53장) 그 후에 오게 될 영광스런 구원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훗날에 그 백성이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경배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사 11:11; 27:13; 35:10; 49:5,6; 51:11). 이제 그 백성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사야는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고 호소했다.

    다. 기원전 7세기 선지자
     이스라엘과 유다 역사상 이 시기만큼 예언자들이 집중된 적은 없었다. 이 시기에 나훔, 스바냐, 하박국,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가 출현하여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임박했음을 경고했다. 그들은 북왕국의 멸망에 이어 남왕국 유다도 언약을 배반한 죄로 심판당할 수밖에 없음을 예언하면서 그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선포했다.
     나훔은 하나님을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a jealous and avenging God)으로 말하면서 하나님이 여전히 그 백성을 위하여 옹호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박국은 죄인은 언약 백성이든, 이방족속이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합 1:5-11; 2:6-20).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선언하고 있다(합 2:4).
     스바냐는 다가오고 있는 파멸에 대하여 예루살렘에 경고하는 내용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면의 모든 것을 진멸하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백성이 언약을 배반한 결과는 무서운 것이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예루살렘의 멸망 과정을 바라보며 전하는 메시지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우상숭배를 음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렘 3:1-10). 그러므로 음행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시면서,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렘 3:14)고 말씀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언약 백성은 돌아오지 않았고, 모든 것은 허사가 되었다. 이와 같은 언약 백성의 배약(背約)의 과정에는 악한 목자들이 있었다(렘 23:1-2). 그 악한 목자들은 양무리를 흩으며 돌아보지 않았다(렘 23:2). 하나님은 그 악한 목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선언하신다. 그리고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곳에서 돌아오게 할 것이며,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예루살렘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정복을 당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도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선지자의 메시지는 미래의 새언약(new covenant)에 대하여 예언하게 되는데, 예레미야 31장 31-34절이 그 내용이다. 새언약을 세우는 것은 그 백성이 옛언약을 지키지 못한 데 있다. 새언약의 특성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다. 결국 이 말씀은 신약의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는 말씀과 요한복음 14장 26절과 요한복음 16장 23절에서 성령이 그들을 가르치고 성령이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에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라. 바벨론 포로기의 선지자
     유다의 포로기에 나타난 선지자로는 에스겔와 다니엘이 있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계속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는 그 백성의 완고함을 지적하면서 그 완고함의 결과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에스겔 역시 예레미야처럼 그 백성이 언약을 배반하고 떠난 이유가 악한 목자들에게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만 먹이는 목자요 양무리를 먹이지 않는 악한 자들이었다(겔 34:2,8). 주 여호와께서는 그런 목자들의 손에서 양무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겔 34:10). 그리고는 그 양무리를 "내 종 다윗"이 먹이게 하리라고 예고하셨다(겔 34:23,24). 바로 그 때가 하나님 나라가 회복될 때라는 것이다.
     다니엘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멸망이 결코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서 초래된 현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곧 유대인의 하나님은 온 세계의 통치자이심을 보여주고 있는데, 장차 그분의 나라가 도래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마. 포로 귀환 후의 선지자
     이 시기에는 에스라,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활동했다. 바와 같이 학개는 성전재건 운동을 일으킨 선지자였고, 스가랴는 신약 시대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슥 1:3)는 거듭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울러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아주 희망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지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같이 되리라"(슥 10:6)고 하셨다.
     말라기는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의 삶에 다시금 종교적 방종(말 1:6-14)과 잡혼(말 2:10-16), 십일조에 대한 외면(말 3:7-12) 등이 성행하면서 언약을 멀리하는 현상을 책망했다. 말라기 역시 "내게로 돌아오라"(말 3:7)는 말씀이 주된 초점인데, 그것은 장차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말 3:1-6; 4:1-3).
     이와 같이 선지자들의 사역은 그 백성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로 다시 돌아올 것을 촉구하는 사역이었으며, 그 백성의 완악함은 결국 언약적 저주를 자초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였으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장차 그 잃어버린 백성을 다시 찾으실 것임을 바라보게 했다.
 
  5. "잃어버린 자"에 대한 구약적 의미

     "잃어버린 자"의 의미를 구약의 언약적 개념에 기초를 두고 찾아보려 했다. 구약의 언약적 개념으로 볼 때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브라함 언약과 모세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의해 하나님의 아내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컬음을 받았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둘도 없는 영광이었으나, 아담이 언약을 배반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듯이, 그들도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나가 버렸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통해 음행을 자행한 자들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저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자"의 구약적 의미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언약적 삶에서 멀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제 2 절 신약 성경에서의 "잃어버린 자"

     신약에서 "잃어버린 양" 혹은 "잃어버린 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는 먼저 언약적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또 그 말은 구약과 연계하여 이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새언약"(new covenant)은 옛언약의 성취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의 특수한 관계 즉,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백성이었다. 그러나 구약 역사를 통해 확인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떠나버렸다. 이같이 배약하고 떠난 자들을 향해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호소는 구약 시대 내내 계속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하나님의 열심(the zeal of the Lord)이 새언약의 시대를 연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고 사도들의 사역을 중심으로 "잃어버린 자"를 찾는 하나님의 역사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

  1 . 세례요한의 사역

    가. 그의 사역의 성격
     세례요한의 사역은 첫째로 그 백성을 돌아오게 하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다. 그 백성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는 사역이었다. 구약 말라기 4장 5-6절에는 세례요한을 선지자 엘리야로 말하면서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예언했다. 이같은 예언은 그의 탄생과 사역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그의 사역을 통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마 3:5). 그 뿐 아니라 그의 사역의 영향은 심대하여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에게까지 다 알려진 놀라운 사건이었다. 

    나. "회개하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   
     세례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할 때, 그가 전파한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는 말이었다. 우리가 그의 메시지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말 "회개하다"의 헬라어 "메타노에이테"(          )의 의미를 충분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헬라어 메타노에인(         )과 메타멜레이아  (          )는 의미상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자는 의지의 변화를 의미하는 "회개"를 의미하며, 후자는 단지 범죄의 결과로 오는 "후회"나 "가책"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게 되면 한글개역판 성경의 "회개(悔改)하라"는 번역은 헬라어 원어를 비교적 원만하게 번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영어성경 KJV나 NIV 그리고 NASB 이들 번역은 공히 "repent"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좋은 번역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왜냐하면 영어에서 "repent"는 의미상 "to be sorry again"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번역상의 문제에 대하여 A. T. 로버트슨(A. T. Robertson)은 브로더스(Broadus)의 말을 인용하면서 "최악의 번역"(the worst translation)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메타노에이테"(          )라는 단어가 고대 수리아 역본(The Old Syriac)에는 "Turn ye"의 뜻으로 번역되었다는 점과 프랑스어 번역(Geneva)도 "Amendez vous"로 번역된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repent"보다는 "Turn ye"(너는 돌아오라, 혹은 너는 돌이키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 연구자도 이같은 주장에 공감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성격의 메시지인 "돌아오라"는 말과 일치가 되기 때문이다.

    다. 하나님의 절박한 부르심
     "회개하라"는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구약 시대 내내 계속되었던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다시 그 백성들에게 들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와 지금의 다른 점은 회개의 시급성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세례요한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며, 지금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했다고 말하고,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상태라고 했다(마 3:7,10). 그러므로 그 백성들에게 "Turn ye"(너는 돌아오라, 혹은 돌이키라)라고 급박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언약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 말로써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떠난 그 백성에게 다시금 언약적 관계와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촉구하시는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세례요한이 잡혀 들어간 후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었을 때, 예수님도 세례요한과 똑같은 메시지로 "돌이키라(Turn ye)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직역)고 선포했다. 또 예수님이 제자들을 내보내시며 전파하도록 한 말이 "돌이키라"(직역)(막 6:12)는 말이었다. 이와 같은 메시지는 언약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주님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떠난 언약 백성들에게 다시금 돌아오라고 부르신 것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잃어버린 자"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잃어버린 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주님께서 어떤 정황에서 그 말씀을 하셨는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1) 열두 사도를 전도에 내보내실 때(마 9:35-10:42)
     마태복음 10장은 마태복음에 실려 있는 예수님의 다섯 강화(講話) 가운데 두 번째 강화이며, 전도에 대한 것이 그 주제이다. 이 강화의 배경은 예수님이 제2차 갈릴리 전도여행을 하시면서 그 백성의 불쌍한 영적 상황을 목도하신 것이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고 있었는데, 이런 현상은 에스겔 34장 1-16절의 예루살렘 멸망 때의 상황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백성들이 그런 형편에 처하게 된 것은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마음 깊이 그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던 것이고(마 9:36), 그것이 열두 사도를 세우는 동기가 된 것이다. 이것은 예수 자신이 이스라엘의 성취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전도강화 중에는 아주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복음이 먼저 유대인에게 전파되어야 하며, 복음전도가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에게로 가라'는 말씀을 피하시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떠나 있으며, 그 결과 그들이 하나님께는 "잃어버린 양"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명이 먼저 그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오는 것이었고, 그 다음이 이방인의 차례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마 8:11-12, 마 28:18-20).

      (2) 수로보이게 여인과의 대화 때(마 15:21-28)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역에서 만난 이 여인은 수리아에 속하는 고대 페니키아인이었다. 이 민족은 일찍이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북쪽으로 쫓겨 간 가나안 민족의 자손이다. 예수님을 만난 그 여인은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자기 딸을 흉악한 귀신으로부터 구하여 달라고 간청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간청에 대하여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마 15:26)고 거절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하고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시고 그녀의 소원대로 이루어주셨다.
  예수님은 그 여인과의 대화에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특권은 언약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지상생애 동안에는 아직 이스라엘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여기에서도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 대하여 책임과 부담을 갖고 있음을 말씀하셨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떠나간 사람들로서 그들을 찾아 데리고 오는 것이 주님께 급선무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1) 요한복음 10장에서 
     요한복음 10장은 주님을 선한 목자로 묘사하고 있다. 선한 목자로서의 예수에 대하여 윌리엄 헨드릭슨(William Hendricksen)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 문으로 들어가며 문지기에게 환영을 받는다(요 10:3)
② 양들을 철저히 알고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요 10:3,14,15)
③ 그들을 인도해 나간다(요 10:3)
④ 양들에 앞서서 나간다(요 10:4)
⑤ 양들이 그를 알며 그를 따른다(요 10:3,4)
⑥ 온갖 축복으로의 접근을 허락한다(요 10:7-9)
⑦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한다(요 10:10)
⑧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요 10:11,14)
⑨ 양들을 인도하며 다른 양들도 모으며 그렇게 하여 모든 양이 한 목자와 한 무리가 되게 한다(요 10:16)
⑩ 아버지께 사랑을 받는다(요 10:17)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⑨번에서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인도하여 한 무리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양들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의 무리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들을 인도하실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되어 왔었던 것이다(창 12:3; 시 72:8-9; 87:4-6; 사 60:3; 욜 2:28; 습 2:9; 말 1:11 등).
     그러면 우리가 이 "다른 양들"(요 10:16)도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예수님은 이방인이 구원받을 것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셨다. 그 예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 8:11)라고 하셨다. 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그들은 주님께로 나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요 6:37, 39),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7:6). 이런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그분에게 주신 자 중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잃은 자"로 여기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다.

      (2) 요한복음 4장에서
     요한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이 일부러 사마리아로 통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곳을 통과하신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예수님이 그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기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자신을 생수를 주는 자요 그리스도로 계시하여 그 여인으로 자신을 믿게 하셨다. 예수님은 이 일 자체가 예수님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다(요 4:31-34). 이 여인 외에도 많은 사마리아인을 만나셨고 그들로 예수님을 믿게 하셨으며, 그 동네에 이틀을 유하시며 그들로 주님을 "세상의 구주"로 믿게 하셨다(요 4:39-42).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동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시는 장면은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는 목자의 모습이다.

      (3)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원망을 듣고(눅 15:1-32)
     누가복음 15장 1-32절의 세 비유는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원망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눅 15:2)   을 듣고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 텍스트(text)는 유대적 상황이지만, 누가가 이 내용을 쓸 때의 상황 즉, 콘텍스트(context)는 이방인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비유는 이방인 독자의 마음에 "잃어버린 자"가 바로 자신이며, 예수님이 찾는 자도 자신임을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비유는 이렇듯 잃은 것을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각기 강조점은 약간씩 다르다.

       (가) 양을 잃은 목자의 이야기
     양을 잃은 목자의 이야기(눅 15:3-7)는 고난을 통하여 양을 찾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목자에게는 일백 마리의 양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었으니 그 양의 가치가 대단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목자가 그 잃은 양을 찾아 나선 것은 그 양이 자기의 양이며, 그 양이 심히 약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목자의 도움이 없으면 돌아올 수 없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제 그 목자는 자기의 그 잃은 양을 찾아다닌 끝에 찾았고,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와서 이웃을 불러모으고 함께 즐거워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첫째 이야기의 강조점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죄인(세리와 죄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정당성을 보여주고 있다. 

       (나) 여인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이야기
     여인이 잃어버린 은화 드라크마 하나를 찾는 이야기(눅 15:8-10)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는 주제이다. 그런데 찾는 이유가 그 잃어버린 돈의 가치 때문에 찾는다는 이야기이다. 그 여인의 은화는 부유한 여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금화에는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그 여인의 일생에 소중한 결혼 지참금이며, 또 머리에 달려 있는 열 개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은화는 그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그 은화가 잃어버려진 상태가 되었을 때, 그 한 개의 은화 자체도 가치를 상실하게 되고 나머지 아홉 개의 은화도 가치를 상실하게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한 개의 은화가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나 다른 아홉 개의 은화가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그 은화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이 이야기의 강조점은 주님이 찾으시는 죄인들의 가치에 있다. 그들이 잃어버려진 상태에 있을 때는 무가치한 존재이지만, 그들이 주님에게 돌아왔을 때는 가치를 발휘하게 되며, 더욱이 그들이 속한 공동체 하나님 나라에 아주 가치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다) 방탕한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
     이 이야기 역시 잃어버렸던 것을 찾는 이야기이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억지로 받아내고, 그것을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처분을 해버리고, 그것을 다 탕진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연신 입을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발에 신을 신겨주고 잔치를 열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는 맏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와 같이 있으면서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던 아들이었다.
     예수님의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강조점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것이며, 그들이 돌아온다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그들에게 온갖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하며,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현상에 대하여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3. 사도들의 사역

     사도들의 초기 구령사업은 유대주의 전통 틀 속에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파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유대주의 전통의 틀은 성령에 의해 깨지게 되었다. 사도들은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오순절 체험과 똑같이 그들도 성령세례 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행 10:9-48). 결국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유대인과 똑같이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의 포문을 열게 된 것이다(행 11:1-30). 그러면 사도들은 이방인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현상을 "잃어버린 양"이 돌아오는 현상으로 이해했을까?

    가. 예정론의 관점에서
     예정론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신적 속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예정은 모든 피조세계에 적용되며, 특히 인간의 구원에 대한 선택(選擇)과 유기(遺棄)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예정은 사람이 아직 태어나기 전, 선악을 알기 전부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되는 것이다. 사도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예정을 유대인 성도뿐 아니라 이방인 성도에게도 적용시켜 말하고 있다(롬 9:19-29). 그들에 대한 예정이 창세 전에 된 일이며(엡 1:4),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이라고 했으며(엡 1:5),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된 것이라고 했다(엡 1:9). 이와 같은 예정론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 택함을 입었으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잃어버린 양"이다.

    나. 새언약의 관점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옛언약에 의하면 이방인이요 무할례당이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어서 약속의 언약에 외인이었던 자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엡 2:11-13). 옛언약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랐던 벽이 새언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하여 허물어졌다고 말하고 있다(엡 2:13-15).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개념도 새로워지는 것이다. 사도들에 의하면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이 아닌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며(갈 3:29), 할례도 육신의 할례가 아닌 성령에 의한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며(롬 2:28,29), 하나님의 백성도 이스라엘이 아닌 교회로 대치되는 것이다(고후 6:16-18). 그래서 전에는 백성 아니었던 자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던 자도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가 되는 것이다(벧전 2:10).   
     옛언약에 의하면 당연히 제외될 수밖에 없던 이방인들이 이제 새언약에서는 유대인과 동일하게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고 말하고 있다. 
제 3 장
"잃어버린 자"에 대한 목회적 이해

 

 

     "잃어버린 자"를 성경신학적으로 고찰해 본 결과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떠나 살아가는 영혼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 중에 아직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못한 영혼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보면 한때 교회를 다녔고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자들이 지금은 하나님과 교회를 떠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교회행정학 학자이자 목회자인 이성희 박사는 한국의 미래교회 메가트랜드(megatrend)에 대하여 열한 가지로 열거하며 예견한 바 있다. 그것은 곧 개교회주의, 출석교인의 감소와 헌금의 상승, 평신도사역의 극대화, 조직교회에 대한 반대, 교회의 일치와 에큐메니즘의 활성화, 교회의 마케팅 이론의 발달, 영성적 기능의 부활, 디아코니아의 발달, 교회정치의 민주화, 여성의 교회정치 참여의 증대, 목회구조의 대변혁 등이 그것이다. 이들 중에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출석교인의 감소와 헌금의 상승이라는 기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1990년도에 들어와서는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대도시의 도시형 교회들은 출석교인이 등록교인의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왔다. 도시교회의 등록교인의 절반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교회를 떠나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외에도 장기결석자가 되어 제적된 영혼까지 생각하면 불신자의 70-80퍼센트는 한때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본 장에서는 한국교회에서 "잃어버린 자"가 발생한 원인과 또 "잃어버린 자"가 처해 있는 다양한 상태와 모습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그동안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하여 사용했던 다양한 프로그램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 1 절 "잃어버린 자"의 발생 원인

  1. 교회 내적인 원인

    가. 바른 신앙관의 결여
     한국교회 초기의 신앙은 대체로 복음적이며 보수적이었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하여 마포삼열 박사(Samuel A. Moffett)가 논평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을 유일하고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지난 50년간의 한국 복음화에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한 점이 이를 확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이런 좋은 신앙은 그리 오래지 않아 깨어지기 시작하여 1925년경부터는 자유주의 신학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두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사회참여 신학으로 또 하나는 범종교주의 신학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 중 사회참여 신학은 해방신학의 한국판인 민중신학을 내놓게 되었으며, 또한 범종교주의 신학은 종교다원주의를 낳았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런 신학 사상이 혼재(混在)하는 가운데 성도들은 점차 바른 신앙관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김명혁 박사는 현재 한국교회 생존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관의 재정립과 인간관의 정립, 문화관의 정립, 통일 및 선교관의 정립, 내세관이 정립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신관의 재정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올바른 신관은 성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온 우주의 창조주가 되시고, 또 그 아들 예수를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 인간에게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나 동시에 인간 속에 임재해 계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헤겔(G.W.F.Hegel)의 우주신(宇宙神)이나 동양 사상의 자연신(自然神)이나 다신론(多神論)은 신을 올바로 정의한 것이 아니며, 신을 인격이 아닌 우주의 근본이치로 설명하는 유교적인 신도 아니다. 신은 오직 한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가 참신이시다. 그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셨으며, 그 백성을 택하시고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신이시다. 그가 말세에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천하로 회개하라고 명하신 신이시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계시된 신관이 한국교회에서 흔들리고 있는데, 그 뚜렷한 증거는 비종교인의 63퍼센트가 과거에 개신교를 믿었다는 사람이었으며, 개신교에서 불교로 개종했다는 비율이 타종교 보다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어 충성도(loyalty)가 타종교에 비해 떨어지고 있으며 이탈률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결국 "잃어버린 자"를 양산하게 된 원인은 바른 신앙관의 결여로 인하여 한국교회의 신관이 굳게 서 있지 못한 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나. 주일학교 교육의 부족
     주일학교 운동은 영국의 로버트 레이크스(1735-1811)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몰려온 노동자들이 많았고, 그들의 자녀들이 거리에 방치된 채 놀고 있었다. 레이크스는 이런 아이들을 모아 주일학교를 시작했는데, 그 프로그램은 세수하기, 머리빗기, 싸움하지 않기, 어른들에게 순종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다. 이 학교는 교회의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영국 전역과 전 세계로 번져 나가게 되었다. 이처럼 주일학교 운동의 초기 모습은 오늘의 주일학교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프로그램이 다양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의 신앙 뿐 아니라 생활을 지도하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의 주일학교는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율동, 동화, 아이들의 기호에 못 미치는 예배 그리고 분반공부가 전부인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주일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하여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 기자재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과거 주일학교로 몰려들었던 아이들이 지금은 주일이면 TV나 컴퓨터나 다른 흥미 있는 것을 찾아다니고 있는 형편이다.
     주일학교 교회 교육의 부족 현상은 몇 가지로 논할 수 있다. 첫째는 주일학교 운영의 미숙, 둘째는 과외열풍으로 인한 시간확보의 어려움, 셋째는 신세대 문화에 대한 대응 부족, 넷째는 가정교육에 대한 포기 등이다.

      (1) 주일학교 운영의 미숙
     과거 한국교회는 교재 개발이나 운영에 있어 일반학교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주일학교 사역자들과 교사들은 신앙심으로 무장하여 사명감이 있었고, 그 사명감으로 창의적인 교재들을 많이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주일학교가 일반학교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일반학교의 운영이 현대화되었으며, 교재와 교육기자재 또한 상당한 수준으로 현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학교에서는 OHP는 창고에 들어가 있는 형편이며 칠판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학급당 교사 일인당 컴퓨터가 한 대씩 배정되어 있고, 실물화상기와 대형 TV 모니터가 비치되어 있어서 교사는 컴퓨터에 앉아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학생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시청각 학습교재를 대형 TV 화면으로 공부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주일학교 운영이나 교재에 있어서 모두 일반학교에 비하여 상당히 뒤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주일학교는 전문화되지 못한 교사와 교역자에 의하여 운영되는 형편이고, 교재 또한 일반학교의 그것에 비하여 뒤떨어지고 있어 어린 영혼을 구원하고 양육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과외 열풍으로 인한 시간확보의 어려움
     한국은 오래 전부터 대학입시로 인하여 몸살을 앓아왔다. 정부의 입시정책은 묘안이 없는 가운데 표류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을 앞둔 고등학생의 경우에만 고생했으나 이제는 고등학교 재학 중의 내신성적이 대학 입학에 많이 반영하게 되면서 입시과열 경쟁으로 중학생과 초등학생 심지어는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들까지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주일날만큼은 별 어려움이 없이 교회에 올 수 있었고, 교회에서는 아이들의 신앙교육에 어려움이 별로 없었다. 주일학교를 오전과 오후로 진행하기도 하여 내실 있는 신앙교육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일에도 학원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교회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할 시간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과외열풍으로 인한 신앙교육의 부실은 성경을 잘 모르는 신앙인을 양산하게 되었고, 그들이 장성하여 교회를 떠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3) 신세대 문화에 대한 대응 부족
     1991년도에 제정된 "청소년 기본법"에 따르면 청소년은 9-24세에 이르는 연령층을 말한다. 이 연령층에 해당하는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4.3퍼센트로 약1,1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소위 X세대(X-generation)로서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들을 C.T.V 세대라 부르기도 하는데, 컴퓨터(computer), 텔레비전(television), 비디오(video) 즉 영상세대라는 것이다. 이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며, 책을 사도 글자가 없는 책을 산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각적인 것에 길들여 있고, 감각적이며 충동적인 세대이다. 
     이 X세대 청소년들에게 교회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모습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으며, 디지털 세대에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런 기독교의 모습은 청소년들에게 고루한 것으로 비춰지게 되고 세련되지 못한 모습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기독교 문화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으며, 교회와 신세대문화와의 괴리에서 청소년들은 교회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교회도 있는데, 그 중에 서울에 소재한 장석교회(이용남 목사 담임)가 있다. 이 교회는 '21세기를 맞는 장석교회 발전계획 종합보고서'라는 것을 내놓으면서 그 대응책을 몇 가지로 마련했다. 그 대응책 중에는 특히 '장년 중심이 아닌 청소년 중심의 교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즉 교회가 젊어져야 한다'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장래에 청소년들이 없는 교회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4) 가정교육에 대한 포기
     이스라엘 교육의 중요한 형태는 가정교육이었다. 신명기 6장 6-7절에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는 형태가 가장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의 교육은 오늘날도 가정교육이 주된 교육이며, 유대인 어머니들의 교육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교육은 영어 'jewish mother'라는 말을 낳게 했는데, 그것은 '자녀들에게 배움의 필요성을 지겹도록 강조하는 극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자신들이 직접 챙기고 있다. 강정훈 목사는 유대인 어머니들의 교육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가) 유대인들은 내 자녀와 다른 아이들과의 다른 점을 중시한다.
(나) 유대인들은 배우기 위해서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다) 유대인들은 머리를 쓰는 일에 운명을 걸었다.
(라) 유대인들은 매사에 논리적이며 토론 문화가 발달되었다.
(마) 유대인들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다.

이처럼 유대인 어머니의 교육은 자녀들의 교육을 직접 챙기고 있으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자녀의 신앙교육을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고 교회에다가 전부 맡겨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은 가정에서 교회로 넘겨진 채 대책이 없이 표류하고 있는 형편이고, 또 귀한 영혼들은 교회의 주일학교에서도 제대로 양육받지 못하여 장성해서는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다. 교회 내의 많은 불신자
     한미준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한국교회 내에는 많은 불신자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의하면 "00님은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라는 물음에 "예"라고 대답한 사람이 73.2퍼센트이며, "아니오"라고 대답한 사람이 26.8퍼센트로 나타났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26.8퍼센트나 되는 많은 불신자를 보유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또 다른 설문 조사에 의하면 세례를 받을 때 "사죄와 중생을 체험하고 받았다"는 사람이 응답자의 51퍼센트이고, "사죄와 중생을 모르고 받았다"는 사람은 21퍼센트, "세례의 뜻도 모르고 받았다"는 사람이 8퍼센트였다. 
     이같은 비율은 심각한 일로서 한국교회 전반적으로 새신자 양육과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에 들어온 상당수의 새신자들은 복음을 체계적으로 소개받지 못한 상태이거나, 소개받고도 영접하지 않는 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생을 체험하지 못하고 세례를 받거나 세례의 뜻도 모르고 세례를 받는 이들이 많아서 이것이 결국 "잃어버린 자"를 많이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라. 기독교 윤리의 부재
     전도책자 천사도 흠모하겠네라는 책으로 유명한 김순애 권사는 자신이 만난 전도 대상자의 90퍼센트는 한 번 이상 교회에 나가본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첫째가 교인들에게 실망, 둘째가 교회 다니는 부모님이 가정사역을 잘 하지 못함, 셋째가 교회학교에서 신앙이 성장하지 못함 등이었다. 
     이와 같이 교회 밖 사람들이 보는 교인들의 기독교 윤리는 아주 부정적이며, 이런 부정적인 인식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한국교회가 전도에 열심히 있으나 전도한 영혼이 교회에 붙어있지 않는 기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교회 교인들은 신앙생활이 모범이 되지 않아 교회에 대한 혐오감을 산다"는 응답이 응답자의 45퍼센트, "교인들이 불의한 일에 거리낌없이 동참하는 사례가 많다"는 응답이 23퍼센트, "장로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직분에 충실함으로 모범된 생활을 하라"는 대답이 50퍼센트였다. 이같은 기독교 윤리 부재 현상은 전도의 문을 막아버리고,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들도 자긍심을 잃어 교회를 등지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마. 교회의 부정적 모습
     한국 교회에 대한 교회 내부의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김명혁 박사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모습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한 후,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발표하셨다. 

첫째, 정직성의 결여, 불일치한 그리스도인의 삶, 즉 자기안일과 형식에 빠지는 것, 윤리적 무신론에 빠져 교회 밖에서 기독교적 삶을 상실하는 것,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타협을 범하는 등 균형 잡히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 무신론적 세속주의를 따르는 것, 교역자들의 스캔들, 신앙이 생활을 통해 표현되지 않고 무당주의로 기울어지는 것, 형식주의.
     둘째, 지나치게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는 것, 축복 중심적 신앙.
     셋째, 분열과 난립, 연합의 불가능, 교회 이기주의, 교회 개인주의, 편협주의, 권위주의적 가부장주의와 배타주의.
     넷째, 주지주의에 빠져 성령의 감화를 소멸시키는 것, 카리스마티즘에 빠져 시공세계로부터 떠나 타계주의로 향하는 것, 종교 다원주의와 세속주의. 

위와 같이 한국교회 내부의 교회에 대한 인식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다. 교회는 교회내부의 부정적인 인식을 속히 긍정적으로 돌려놔야 할 것이다.
     또한 다른 설문조사에서 기독교 신앙 유무에 관계없이 "무엇이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사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5.6퍼센트가 "도덕성 회복"이라고 했다. 또한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29.1퍼센트였다. 무려 응답자의 74.7퍼센트가 한국교회의 도덕성 회복과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는 그런 사회적 필요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교회 내부에서나 교회 외부에서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이고, 이런 부정적인 인식이 결국 전도를 가로막을 뿐 아니라, 교인들의 자긍심마저 저하시켜 "잃어버린 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바. 목회자들의 자질 문제
     김상복 목사는 교회와 목회자의 리더십이라는 책에서 목회자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말했다. 첫째는 지식(knowledge)이요, 둘째는 인격(character)이며, 셋째는 기술(ministry of skills)이고, 넷째는 리더십(leadership)이라고 했다. 
     그러나 설문조사에서 한국 목회자들에 대한 영적 측면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해 본 결과 "목회자들에 대하여 영적 측면에 있어서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대답이 7.7퍼센트에 불과했고, 중립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72.4퍼센트나 되었다. 또 목회자들의 윤리적 수준에 대한 신뢰도에서도 응답자의 5.7퍼센트만이 윤리적으로 목회자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고, 68.2퍼센트는 중립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이와 같은 사회전반의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현실은 은혜만능주의에 빠져 지식을 소홀히 하며, 서로 돕고 연합하며 사역하는 인격이 부족하고, 사역의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목회자가 의외로 많으며, 제왕적 리더십에서 나오는 독단적 행사를 일삼는 목회자들이 많아 성도들과 자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문제에다가 목회 세습 문제, 고급 승용차를 타는 모습, 크고 작은 스캔들, 무성의한 설교 작성 등이 교인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카톨릭의 사제나 불교의 승려들이 독신생활을 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과 무척 대조적이어서 교인들이 카톨릭 교회나 불교로 빠져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2. 교회 외적인 원인
 
    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원인
     한국교회의 성장은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큰 요인이 작용해서 이루어졌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교회의 성장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으며, 1987년도에는 최고조에 도달했고, 그 후 1992년까지 수평을 유지하고, 그 후로는 소폭의 감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성희 박사는 그의 책 미래 목회 대예언에서 아래의 <표 1>과 같이 한국 경제와 한국교회 성장의 유사점을 비교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표 1>  한국경제와 한국교회의 유사점 비교표


한국은 기독교 전래 초기인 조선시대 말부터 일제시대와 해방 후 6.25 한국전쟁과 1980년대 중반까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무척 불안한 상태였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다가 북한의 위협과 경제발전에 대한 의욕 등 국가 사회적인 긴급한 상황이 국민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 한국교회는 침체상태에 들어갔다. 생활향상과 교회성장을 연구하는 이들은 개인소득이 1만 달러 이상이 되면 기능적 대행물(functional alternatives)의 발달로 놀이문화가 많아지기 때문에 교회는 침체를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과거에는 교회 안에서 심리적인 욕구를 충족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교회 밖에서도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으므로 교인들의 이탈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나. 전통문화로의 회귀 현상
     한국은 80년대부터 민족전통에로의 강력한 회귀운동이 일어났다. 전통적인 미신행위인 점이나 굿을 하는 사람들도 민족문화를 계승하는 자들로 인식되었고, 점이나 굿, 풍수지리설, 단전호흡, 기(氣)체조, 단군숭배 등이 사람들의 생활 한복판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뉴-에이지(New Age) 운동의 여파로 동양사상이 유포되어 사람들은 신과의 합일이나 범신론이나 윤회사상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전통문화로의 회귀현상으로 인하여 기독교 신앙은 서양종교라는 인식과 함께 전통문화의 파괴자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분위기에 신앙적 무장이 없는 교인들은 유혹을 받아 교회를 떠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다. 비판적인 사회여론
     한국교회에 대한 일반사회의 여론은 아주 부정적이다. <표 2>는 한미준 보고서에 나타난 비종교인의 종교별 이미지 평가이다. 아래의 <표 2>를 통해 개신교가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증가와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인식은 타종교에 비하여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제와 봉사활동에 대한 인식은 천주교보다 낮고, 종교지도자의 자질과 헌금강요는 종교 중 가장 나쁘다고 했으며, 종교가 참진리보다는 교세확장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을 때도 가장 나쁘다는 응답이 나왔다. 
     이와 같은 한국교회에 대한 일반사회의 부정적인 여론이 교회 내의 신자들로 교회를 떠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또한 교회를 떠나 방황하고 있는 "잃어버린 자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데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표 2> 종교별 이미지 평가   ("그렇다" 비율)-비종교인 대상(%)    


    라. 개신교에 냉소적인 언론
     한국교회 언론위원회가 2002년 1월부터 6월까지 전국발행 일간신문의 기독교에 대한 보도율을 조사해 보니, 기독교 보도비율 19.4퍼센트, 천주교 17.4퍼센트, 불교 31.5퍼센트, 기타(소수종교, 문화소식) 31.7퍼센트였다. 기독교에 대한 보도비율이 천주교보다는 높은 편이지만 불교에 비하여 많이 미흡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TV를 통한 기독교 보도내용은 내용의 많고 적음을 떠나 기독교의 부정적인 부분이 많이 보도되었다. 특히 MBC TV의 'PD수첩'이나 SBS TV의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에서는 기독교 이단사이비 교회의 부패상을 집중해왔다. 그 중에는 1992년도의 다미선교회 휴거소동, 1998년도의 우종진 목사외 교인 7명이 집단자살한 영생교회 사건,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사건, 할렐루야 기도원의 김계화 원장의 사건 등 이단사이비 단체를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오히려 정통 기독교회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아울러 대형교회의 목회세습 문제나 목회자의 신자 간통사건 등을 보도하기도 하여 그 사건의 진위를 떠나 한국교회는 언론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제 2 절 "잃어버린 자"의 다양한 상태

  1.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상태
 
     현재 한국교회를 떠난 상당수의 교인들은 교회출석을 하지 않는 상태로 있다. 그 비율을 조사해 보니 자신을 개신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응답자 중 11.7퍼센트였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사람이 41.0퍼센트, 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반감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이 36.8퍼센트, 기타 건강이나 가족의 반대 등으로 출석하지 못하는 사람이 22.2퍼센트였다. 
     그러나 이런 비율도 '자신을 개신교인이라 자처한 사람'이 아니라 '과거 한때 교회를 다녔던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수치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실제로 본 연구자의 복음전도로 교회를 다닌 청년이 있었다. 그는 운동과 공부 등으로 7년 가까이 교회를 등지고 살았다. 그가 교회에 다시 나왔을 때 이유를 물으니 가까운 직장 동료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무서워 교회를 나왔다고 했다. 이처럼 교회를 떠난 "잃어버린 자" 중에는 그 마음에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있어서 언젠가는 교회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사람이 많이 있다.

  2. 무종교나 무신론자가 됨

     한국교회 교인 중 이 세상의 신은 오직 하나라는 유일신 사상을 믿는 신자는 79.4퍼센트였고, 유일신 사상을 믿지 못하는 신자가 20.6퍼센트나 되었다. 이같은 조사결과를 볼 때 한국교회 교인 중 20퍼센트 이상이 유일신 사상을 믿지 못하고 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과거 개신교회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비종교인 중에 63.0퍼센트나 되는데, 이는 천주교 16.8퍼센트와 불교 20.2퍼센트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까닭은 교회의 전도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가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전도방식은 불신자를 교회로 초청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교회에 새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첫째는 가족이나 친구 또는 직장 동료의 초청 때문이고, 둘째는 교회의 명성 때문이고, 셋째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과 사역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에 나오는 새신자 중에 진리에 갈급하여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전도에 의해서 이끌려 나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교회를 나오게 되었어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상태로 계속 남아 있게 된다면 그들이 낙심하여 교회 출석을 포기하게 될 때 무종교나 무신론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3. 타종교로의 개종
   
     한국교회를 이탈한 상당수의 "잃어버린 자들"은 천주교와 불교로 개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종교 인구간 이동패턴(Switching Pattern)을 보면 개신교인의 11.7퍼센트, 불교인의 19.3퍼센트, 천주교인의 16.3퍼센트가 과거에 다른 종교를 믿다가 현재의 종교를 믿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개신교인의 경우 불교에서 개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불교인은 개신교에서 개종했다는 비율이 높았고, 천주교인은 개신교에서 개종한 비율과 불교에서 개종한 비율과 비슷하게 나타났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에 370여만 명이 종교간 이동을 했는데, 개신교회를 다니다가 천주교나 불교로 넘어간 사람이 58.4퍼센트라는 놀라운 숫치가 나타났다. 이는 삼대 종교 중에 개신교 이탈 비율이 가장 높이 나타난 것으로 한국교회의 현재 형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4. 다른 교회 출석

     한국교회 교인들은 교회간 이동(switching)이 매우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있는 개신교인들에게 이전에 다니던 교회가 있는지를 질문했을 때, '있다'가 59.7퍼센트, '없다'가 40.3퍼센트였다. 교회이전의 이유는 '이사/결혼'이 71.7퍼센트였고 '거리가 가까워서'가 55.8퍼센트였다.
     그러나 '가족이 다닌다' '아는 사람이 있다' '목회자가 안 좋다' '큰 교회로 옮기고 싶었다' '교회활동을 더 하고 싶었다' '나를 필요로 하더라' '작은 교회로 옮기고 싶었다' '지나친 헌금 강요가 싫었다' '교인간의 관계가 싫었다'는 등 이유를 말하는 사람이 23.1 퍼센트나 된다.
     이런 통계치를 볼 때, 23.1퍼센트나 되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이사나 결혼 등과 같이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교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교회를 옮기는 건전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서울의 홍은동에 소재한 홍성교회(이근수 목사 담임)의 1999년 새신자 통계를 보면 다른 교회에서 유입된 교인이 많음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그 교회에 출석하기 전 응답자의 종교가 무엇이었는지를 조사해 보니 개신교가 63퍼센트, 천주교가 3퍼센트, 불교가 12퍼센트, 유교가 3퍼센트, 무종교가 20퍼센트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개신교 교회 내에서는 "잃어버린 자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다른 교회로 이동하는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교회가 그만큼 교인들을 효과적으로 양육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증거로 볼 수 있으며, "잃어버린 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제 3 절 "잃어버린 자"와 한국교회의 대책

  1. 낙심자를 막기 위한 대책들
 
    가. 교회 내 구역 조직의 변화
     종래 한국교회의 구역조직은 교인관리에 있어서 상당한 효율적인 조직이었다. 전통적인 구역은 대체로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모임 형태는 구역 식구들이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는 것이 전부였다. 구역장의 역할은 구역예배를 인도하며, 구역원들의 교회출석을 독려하며, 구역식구들의 상황을 교회에 보고하는 일을 맡아했다. 이같은 구역조직도 과거에는 낙심자를 막는 데 효과적인 조직이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꾸면서 상황이 변화되자 기존의 구역조직으로는 낙심자를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결국 낙심자를 막기 위한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모색은 소그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소그룹은 교인들의 신앙성장을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으며, 동시에 교인 상호간의 유대를 강화시켜 줌으로써 신앙이 어린 신자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교회 내의 소그룹은 전통적인 형태의 구역예배 모임이나 성경공부 중심인 소그룹이 있고, 친교나 동호회 같은 소그룹도 생겨나고 있으며, 셀모임과 같이 작은 교회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1) 구역예배를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으로
     구역예배의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으로의 변화는 주로 선교단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CCC나 네비게이토나 IVF 등 선교단체들은 소그룹 중심의 모임을 통해 전도와 양육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잘 수행해 왔으며, 교회의 구역에 비하여 활발한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들 선교단체의 소그룹은 종래 한국교회의 구역조직과는 모임 방법이 많이 달랐다. 교회의 구역에서는 주로 예배중심이었던데 반해 이들 소그룹은 전도와 성경공부가 중심 기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선교단체의 소그룹을 교회에서 연구하고 수용하게 되면서 교회는 전통적 구역조직과 모임 방법에 변화를 시도했다. 교회는 'OO 구역'이라고 하던 것을 'OO 다락방' 'OO 사랑방'이라는 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구역장'을 '인도자' '순장' '리더' 등으로 호칭하며, 실제 모임형태도 예배 중심이 아닌 성경공부 중심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선교단체의 소그룹을 모방한 이같은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이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거나 선교단체에서의 역동성을 갖지 못했고, 또 낙심자를 막는 데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2) 구역조직을 셀교회로
     한국교회의 제자훈련과 소그룹 성경공부는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제자훈련이나 소그룹 모임을 통해 제자의 재생산이나 신앙의 성장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게 되었으며, 이에 목회자들은 지금까지의 것보다 훨씬 성경적이고도 역동성이 있는 교회조직과 소그룹을 연구하고 찾게 되었는데, 그 결과 셀교회 운동이 그 대안이 아닌가 하고 눈을 돌리고 있다. 셀목회를 철학으로 하는 목회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셀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셀은 성경적이다.
㈏ 셀을 통하여 실제적이고 설명 가능한 성장을 가져온다.
㈐ 셀 안에서 성령께서 표적과 기사로써 일할 수 있게 한다.
㈑ 셀 모임 안에서 전교인이 사역에 동참할 수 있게 한다.
㈒ 셀 모임을 통하여 잘 인도되며, 조직적인 방법으로 지도자를 개발함으로써 평신도 지도자를 신속히 배가할 수 있다.
㈓ 셀 모임 안에서 영적 가치의 교환이 이루어진다.
㈔ 셀 모임을 통하여 제자화가 'Body Life'라는 개념 안에서 이루어진다.
㈕ 공동체 전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

이와 같이 셀교회에서는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이 훨씬 강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셀교회에서는 소그룹을 '목장'이라 하고, 그 구성원을 '목원'이라 하며, 그 리더에게 흔히 '목자'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상당한 리더십과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목회자의 기존 목회영역 중에 상당한 부분을 평신도 지도자에게 넘겨주어서 그 평신도 지도자들로 또 다른 작은 목회를 실현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에서의 셀교회 운동은 실험 과정에 있기 때문에 셀모임이 한국교회에 잘 정착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보여진다. 이 운동의 과제로는 첫째로 어떻게 신학적 건전성을 잘 가지고 정착시키느냐가 중요하며, 둘째로 셀교회의 좋은 모델을 보여주는 교회가 속히 나와야 하며, 셋째로 장로교회가 다수인 한국적 상황을 고려할 때 장로교 체제를 잘 유지하면서도 셀교회를 잘 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나. 심방
     아마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심방만큼 강조된 사역은 없었을 것이다. 곽안련 박사(C.A.Clark)는 목회적 심방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교인들의 사정을 심방함으로써 더 잘 알 수 있다.
(2) 교우의 가족 중에서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나 고용인들에게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그들을 믿게 하는 데 더 효과적인 권면을 할 수 있다.
(3) 교우들의 경제, 지식, 사교의 형편을 알 수 있다.
(4) 설교재료를 수집할 수 있다.
(5) 심방함으로써 기도의 제목을 알 수 있다.
(6) 심방이 없으면 불평이 있다.
  
이런 심방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한국 목회자들에게 충분히 각인되었으며, 그들의 사역에서 항상 최우선순위에 있었다. 웬만한 교회에서는 심방을 전담하는 심방전도사를 채용하여 그 일만을 전무하도록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열심 있는 심방사역의 결과 많은 신자들이 영적인 도움을 입은 것이 사실이고, 또 교회에서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던 교인들이 교회에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교인들의 목회자에 대한 의존성은 만인제사장설에 배치되며 상당히 소모적 활동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한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으로 볼 때 심방목회는 성과가 그리 높지 않고 목회자를 탈진케 하는 비생산적 요인을 지닌다는 지적이다. 이제 목회자들은 전통적인 심방사역보다 성경연구와 설교준비가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교인들의 내적인 신앙강화에 사역의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다. 양육을 통한 신앙강화
     현재 개신교회에 다니는 교인 중에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람이 73.2퍼센트이고, 영접하지 못했다는 사람이 26.8퍼센트이다. 교회 안에는 26.8퍼센트나 되는 많은 불신자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많은 교회들로 하여금 기본적인 신앙교육과 양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되었다. 교회들은 1980년대 초부터 제자훈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각종 성경공부와 세미나를 열어 교회의 질적 성장과 교인들의 양육에 많은 투자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를 통해 신자들의 지식이 많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훈련받은 대로 사는 데 있어서는 너무나 미흡하다는 반성이 일게 되었다. 그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로 성령의 능력과 은사에 무관심한 것을 들고, 이제는 제자훈련과 병행하여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데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라. 다양한 동호회 활동
     이는 비교적 최근에 보이는 교회적 현상이다. 교회 안에서 볼링, 등산, 꽃꽂이, 사회봉사활동 등 다양한 동호회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동호회는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동호회 활동을 통해 신앙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자의 내적인 신앙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연약한 신자들을 붙들어 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친목중심의 동호회는 교회의 본질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럽게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2. 낙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대책들

    가. 총동원전도
     한국교회가 장기 결석자들과 불신자 전도에 가장 많이 활용해 본 방법이 총동원전도이라고 본다. "예수초청 큰잔치" "대각성 전도집회" 등의 이름으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총동원전도의 기본 전략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1) 목표를 분명히 정하라.
(2) 조직을 잘 활용하라.
(3) 전도 대상자를 미리 물색하라.
(4) 교회 형편에 알맞은 전략을 세우라.
(5) 신속한 지원 체제를 마련하라.
(6) D-day를 정하고 그 날이 축제가 되게 하라.
(7) 전도의 붐이 일도록 하라.
(8)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라.
(9) 평가회를 가져라.

     위의 (1)번 (3)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총동원전도는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전도대상자를 미리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무차별적 다수가 아닌 교회에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총동원전도에 대한 평가는 서로 엇갈리고 있다. 어떤 교회는 상당한 등록교인을 얻기도 하지만, 또 어떤 교회는 후유증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총동원전도가 효과적인 행사가 되는 여부는 철저한 준비와 후속 조치에 달려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교회를 보면 주안장로교회(나겸일 목사 시무)의 경우 1998년도 행사에서 27,863명이 새가족으로 등록하여 3,127명의 알곡신자를 얻어 약 10퍼센트 이상의 좋은 결과를 얻었으며, 사랑의 교회(옥한흠 목사 시무)의 경우 1997년도 행사에서 참석자 4,323명이었고 그 중에 결신자가 1,977명으로 45.8퍼센트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이처럼 총동원전도 행사는 준비와 후속조치를 철저히 할 경우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낙심자 전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 간증집회
     한국교회에서 상당히 선호한 프로그램이 간증집회가 아닌가 하는데, 주로 유명인사를 초청하여 간증을 듣는 형태였다. 초청받는 유명인사는 주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혹은 방송으로 유명해진 기독교 신자들이었는데, 이들의 간증이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흐름이 설교의 퇴색에서 빚어진 좋지 않은 모양들이라는 지적도 있다. 로이드 존스(D. M. Lloyd Jones) 목사는 "설교가 설교로서의 제 구실을 못하고 하향추세에 있을수록 설교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간증하도록 이용한다. 그것이 설교나 복음강해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오락(entertain -ment)에 소속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실제로 이런 대중스타들의 간증이 집회 후에 얼마나 신앙적인 면의 효과를 거두게 하며, 불신자를 교회로 끌어들이는지는 의문이다.
     본 연구자는 시무하는 교회에서 한 달에 한번씩 마지막 주일에 한영혼 초청예배를 개최하고 전도행사를 가져본 적이 있다. 그 때 본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들 중 두 사람을 앞에 세워 각기 5분 간증을 하게 했다. 그 중 한 사람은 구원간증을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본 교회에 출석한 후 은혜 받았던 경험을 간증을 하게 했다. 이들은 미리 본 연구자의 지도를 받아 간증문을 작성했기 때문에 진솔하고 잘 짜여진 간증을 했으며, 간증을 한 결과 반응은 참석한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을 보았다.
     이런 식의 집회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초청받아 온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또 신앙생활의 기쁨을 인식시켜주어 간증의 좋은 예를 제공해 준다고 본다.

    다. 부흥회
     부흥회는 한국교회 영적 각성에 큰 기여를 했으며, 유명한 부흥강사들을 많이 탄생시키기도 했다. 한국의 초대교회 부흥사인 길선주 목사는 한국의 오순절이라 부르는 1897년의 대부흥운동으로부터 1920년대까지 전국에 부흥의 불을 붙였다. 김익두 목사는 1920년대부터 부흥운동을 일으키다가 1950년 인민군에게 순교할 때까지 부흥운동을 일으켰고, 이성봉 목사는 1930년대 말부터 1950년대까지 전국에 회개와 부흥의 불을 붙여 한국의 무디라고 일컬음을 받았다. 이천석 목사는 한얼산기도원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을 폈으며, 신현균 목사는 1964년부터 전국교회를 돌며 부흥운동을 일으켜 왔다.  
     한국교회는 이런 부흥회를 통해 은혜 받아 구원을 받거나,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이들이 많았으며,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한 이들도 많이 일어났다. 부흥 강사들의 설교는 성경을 가르치면서도 적절한 예화를 많이 사용하여 성도들의 흥미를 유발시켰을 뿐 아니라, 복음, 죄, 교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 대한 헌신에 대하여 약 4일간 주야로 집회를 열어 집중력이 있는 집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리면 그 교회뿐 아니라 그 일대 모든 교회 교인들이 관심을 갖고 참석하였으며, 부흥회는 곧 온 동네 사람들이 초청받는 복음의 잔치로 여겨졌다.  
     전형적인 부흥강사였던 신현균 목사는 부흥사가 부흥회 설교시에 유의할 점으로 다섯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로 본문에 충실해야 하며, 둘째로 과장을 하지 말아야 하며, 셋째로 절도가 있어야 하며, 넷째로 논쟁이 될 소지가 있는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며, 다섯째로 자신의 설교를 자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강조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부흥회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게 나타났는데, 그것은 첫째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하고, 둘째 목회자에 대한 섬김을 너무나  강조하며, 셋째 은사주의적 집회 등으로 인하여 부흥회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교인들이 많았다. 이제는 부흥회가 열리는 교회에서도 교인들의 부흥회 출석률이 70-80퍼센트 수준이어서 복음잔치로서의 부흥회 성격이 많이 퇴조한 실정이며, 교인들의 영적 충전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 형편이다.

    라. 대규모 집회
     한국교회는 1888년도에 25명의 세례교인이 있었는데, 이것이 1907년도에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으로 1922년도에는 23만 명으로 불어났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100만 명이 되었고, 1970년에서 1985년까지 15년 사이에 약 1000만 명으로 성장하는 경이로운 성장을 거듭했다.  
     이런 경이로운 교회 성장에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주도의 민족 복음화 운동이 있었는데, 가장 기록적인 집회로는 1974년도의 엑스폴로 '74 대회와 19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를 들 수 있다.
     한국대학생선교회의 자료에 의하면 엑스플로 '74는 사상최대의 기록들을 몇 가지 남겼다. 최대의 합숙 훈련(78개국에서 온 323,419명이 등록)과 최대의 철야 기도(기도회가 6일 밤 계속되었는데, 매일 밤 수십만 명이 참석)와 최대의 전도 실천(하루에 420만 명 이상에게 전도하여 274만 명 이상 결신)과 최대 성령 충만(150만 명의 참석자 가운데 약 70퍼센트가 성령충만을 확신)과 최대 헌신 결심(마지막 날에 모인 65만 명 가운데 90퍼센트가 헌신을 표시)이 나타났다고 하였다.
     또한 1980년 8월 1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대성회는 다섯 가지 목표를 가지고 열렸다. 그것은 주님의 지상명령 성취, 한국이 전도의 모델화, 모든 교회 교인 수의 배가, 민족 복음화 성취, 한국 주도의 세계 선교 계기 마련이 그것이었는데, 교계 지도자가 3만 명 참석하고, 평신도가 20만 명 참석했으며, 외국 대표가 1만4천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이었다.100) 이와 같은 대규모의 집회는 민족복음화와 교회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대형집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자들도 있는데,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대중전달(mass communication)의 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101) 그러니까 이런 대중집회에서 나오는 결신자들이 복음을 깨닫고 회심을 경험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조직의 힘과 군중의 호기심이 많이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회의론이 상당한 타당성을 갖는 것은 80년대 이후에 한국교회는 많은 불신자를 교회 안에 품게 되었으며, 이런 불신자들로 인하여 교회의 질적 저하는 기독교인의 윤리에 많은 문제를 낳게 되었고, 결국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순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여론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규모 집회가 한편으로는 민족복음화운동에 큰 역할을 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교회 안에 많은 불신자를 갖게 했고 또 다량의 "잃어버린 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제 4 장
"잃어버린 양"의 관점에서 본 개인전도 방법들

 

 

     앞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한국교회는 많은 수의 "잃어버린 양"들이 있다. 우리나라 전 국민의 20.7퍼센트인 970만 명이 개신교를 믿는다는 통계가 나와 있는데, 개신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11.7퍼센트나 되는 사람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고,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 중에도 불신자가 26.8퍼센트나 되는 상황이다. 또 비종교인 중에 63.0퍼센트나 되는 사람들이 과거 개신교회에 출석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인데, 이는 불교인의 19.3퍼센트나 천주교인의 16.3퍼센트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수치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에 370여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바꾸었는데, 개신교회를 다니다가 천주교나 불교로 넘어간 사람이 58.4퍼센트나 되었다. 그래서 전도자들이 나가서 전도할 때 90퍼센트 이상이 교회에 나가 보았던 사람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만큼 "잃어버린 자들"이 있는데, 한국교회는 일반적인 전도 방법만 구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전도 방법에서 떠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전도를 한다면 보다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본 장에서는 한국교회에서 구사하고 있는 개인전도 방법들을 살펴보고, 이런 전도 방법들이 "잃어버린 자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제 1 절 사영리(The Four Spiritual Laws)

  1. 사영리가 나온 배경
     사영리는 C.C.C.(Campus Crusade for Christ)의 빌 브라이트(Bill Bright) 총재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미래의 의사결정권자들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게 하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성을 갖춘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고, 1951년 UCLA에서 C.C.C.를 창설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52년도에 "하나님의 계획"(God's Plan)이라는 것을 C.C.C. 간사들 암기용으로 개발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20분 동안 제시하는 내용인데,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왜 그가 세상에 오셨는가, 그를 어떻게 개인적으로 알 수 있는가 하는 내용으로 복음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1957년도에 이르러서는 보다 간단명료한 내용으로 전도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복음을 네 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오늘날의 사영리와 비슷한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죄,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영접함 등이었다.
     이와 같이 원래 내용의 순서는 당시 미국의 대다수의 보수적 교회들의 전도 방법대로 제1원리에 인간의 죄를 강조하는 내용이었으나, 인쇄소로 넘겨지기 직전 그 내용이 변경되어 제1원리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게 되었다. 그 때의 상황을 빌 브라이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제 1원리에서 인간의 죄를 강조했었으나 주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도록 감동을 주셨다. 원래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압도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나왔고,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복음전도의 기초가 되어왔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보네트를 불러내어 제1원리를 '당신은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로 수정하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제1원리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

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고 시작하게 한 것이다. 그 후 1965년도에는 단일책자로 인쇄된 사영리(The Four Spiritual Laws)가 나왔으며, 2000년 현재 전세계 주요언어로 25억 개가 배포되어 세계에서 가장 대중화된 전도 소책자가 되었다.

  2. 사영리의 신학

    가. 신론(神論)
     사영리는 제1원리에서 신론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에서 강조하는 신론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사영리는 제일 먼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God loves you)라고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을 사영리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장 부정적인 측면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에서 사영리가 만들어질 당시의 복음전도는 당연히 죄를 제일 먼저 언급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시작은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수적 기독교인들도 전도를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성경적이며 좋은 전도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다. 
     C.C.C.에서는 예수님의 전도를 예로 들며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 선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예로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 전도한 것(요 4장)을 든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먼저 사랑을 보이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이방인 여자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먼저 다가가셨고, 자신이 그녀에게 생수를 주실 의향이 있음을 언급하셨으며(요4:7-14), 그 다음 그녀의 삶의 문제를 언급하셨고, 궁금증을 처리하시며 마침내 그녀가 주님을 영접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강조하는 것이 사영리의 신학이다.

    나. 인간론(人間論)
     사영리 제2원리에서는 "사람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다"(Man is sinful and separated from God)고 말한다. 또 죄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도 없고 체험도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죄의 증거로는 하나님께 대한 반항적인 마음이나 무관심한 마음이라고 했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하면서 사망은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인간의 전적타락과 부패를 믿고 칼빈주의 교리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죄에 빠진 인간이 선행이나 철학이나 종교 등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자력구원론(自力救援論)을 거부하는 것으로 정통 신학적 노선을 취하고 있다.

    다. 기독론(基督論)
     기독론에 대한 사영리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Jesus Christ is God's only provision for man's sin)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로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고(롬 5:8), 또한 죽음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에(고전 15:3-6), 그분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요 14:6).
     세계교회는 지금 서서히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버리고 종교혼합주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1948년 화란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정식으로 조직된 이후 세계종교의 공존을 위하여 종교적 보편주의와 혼합주의를 수용해 왔으며, 해가 거듭할수록 더욱더 심각하게 나타났는데, 그 대표적인 모습이 제네바의 W.C.C. 본부 앞에 인디안 토템기둥을 만들어 세운 것이다. 튜빙겐대학교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W.C.C.의 이같은 신학적 좌경화를 걱정하면서 복음진리가 없이는 세계가 구원받을 수 없고 자유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 진리를 수호하는 데 최대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추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죄의 용서와 부활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로 선포하는 사영리의 신학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라. 구원론(救援論)
     구원론은 제4원리에서 참된 신앙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We must individually receive Jesus Christ as Savior and Lord)라고 강조하면서 영접을 강조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앙관에서의 참된 신앙은 인간 전체의 활동으로 지적(知的) 요소와 감정적(感情的) 요소와 결의적(決意的) 요소를 가진다고 본다. 특히 결의적 요소는 신앙에 있어서 최고의 요소가 되는데, 신앙은 단순히 지식의 문제이거나 지식과 감정을 결합한 문제만이 아니라, 생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의지의 문제요 영혼이 그 대상으로 나아가 그것을 붙잡는 영혼의 행위이다.
     그러나 천주교의 신앙관은 신앙을 단순히 진리에 대한 찬동(贊同)으로만 보는데, 사람이 교회의 교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도 그것에 찬동하기만 하면 그를 참 신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와 같은 천주교의 신앙관과 비교해 볼 때 사영리는 개혁주의 신앙 노선과 같이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영리는 이처럼 성경에 계시하고 있는 기독교 근본 교리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으며 주장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복음주의 노선에 서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3.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사영리의 장점

     사영리는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전도 소책자답게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가. 사용 면에서
     (1) 누구나 쉽게 전도할 수 있다. 그대로 읽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2) 긍정적으로 시작하므로 피전도자의 거부감을 없애준다.
     (3)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4) 글과 함께 있는 그림이 내용을 잘 이해하게 해준다.

    나. 내용 면에서
      (1)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말하여 믿다가 떠난 사람에게 설득력이 있다.
      (2) 죄의 성격으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지고 말았다"는 설명이 좋다. 이같은 내용은 낙심자들에게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죄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가 죄에 대한 해결책으로서나 하나님께 이르는 길로서나 유일한 길임이 강조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4) 제4원리의 내용에서는 많은 장점이 보인다. 첫째 믿음은 곧 영접임을 강조했고, 둘째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 낙심자에게는 호소력이 있다고 여겨지며, 특히 두 종류의 사람을 그림과 함께 보여주면서 도전하는 것은 사영리의 가장 좋은 장점으로 생각된다.
      (5) 영접기도를 한 다음 11페이지부터는 신앙의 확신과 성장에 대하여 권면하는 것도 좋은 장점이라고 본다.

  4.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사영리의 단점

    가. 사용 면에서
     사영리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용상의 단점을 말한다.
      (1) 전하는 방법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2) 피전도자와의 대화가 거의 없이 진행되므로 그들의 생각을 잘 알 수 없다.
      (3) 문서를 읽는 것 같은 딱딱함이 느껴진다.
      (4) 젊은 지성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만들어져 전 연령층에 잘 맞지 않는다.
이런 것들 외에도 본 연구자의 오랜 경험을 통해 사영리의 미흡한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1) 서구 사람들의 특징에 맞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에게 잘 맞도록 되어 있어서 감성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2)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하는 내용이 많다는 느낌을 준다. 좀더 간단명료하면 좋을 것이다.
      (3) 대화가 거의 없는 일방적인 전도 방법이므로 피전도자의 관심을 집중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4) 피전도자가 주님을 영접할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못한 상황인데 영접을 강요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5) 책자의 글씨가 너무 작아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나. 내용 면에서
     사영리의 내용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로 미국의 대학생들과 지성인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것을 한국에서 그대로 번역해서 사용함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이라고 볼 수 있다.
      (1) 사영리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로 시작하는 것은 좋은데, 왜 사랑하는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도 시에 이런 말을 읽어주게 되면 사람들 대부분이 의아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 사영리에서는 "영적"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며, 이 말을 아주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지도 않고, 그 뜻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매우 어려운 말이다. C.C.C. 간사로 오랫동안 사역했던 어떤 사역자에게 이 말의 뜻을 물었을 때 그도 잘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3) 제4원리에서 영어 사영리는 "We must individually receive Jesus Christ as Savior and Lord"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말 번역은 "우리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라고 번역된 것을 볼 수 있다. "Lord"
가 "하나님"으로 번역됨으로 인해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대신, 예수님의 주(主)되심을 강조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긴 것이다. 이것은 영어 사영리가 가지고 있던 중요한 논점(論點)   자기 중심의 삶을 버리고 주님 중심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강조점   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되었다. 영어판의 작성자가 쓴 단어는 일반사람들이 예수를 구주(구출자)로서는 믿지만 자신의 주인(주관자)으로서는 믿지 않는 것을 보고 그것을 염두에 둔 의도적 표현이었다고 본다.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볼 때는 차라리 영어를 직역해서 "주님"이나 "나의 주님" 혹은 "나의 주인"으로 번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4) 사영리 10페이지 영접 기도문에서는 더 큰 혼란이 생기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이 마지막 기도가 끝날 때에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은 단일신론(單一神論)이라는 오해를 줄 수도 있는 기도문이다. 
      (5) 사영리 11페이지부터 13페이지까지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도와주는 부분이다.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영접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지 영접하지도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영리 전도 시에 아직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영접 기도까지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또 그런 사람에게 즉시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영접기도에 이어 즉시 11페이지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확신 편 소책자를 따로 만들어 사용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제 2 절 다리 전도법(Bridge to Life)

  1. 다리 전도법이 나온 배경
     네비게이토 선교회(The Navigators)는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Dawson Trotman)이 1933년 미국 해군들을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1943년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선교단체로 설립되었다.
     사역 초창기에 도슨 트로트맨은 복음 전달의 6요소를 정리하여 가르쳤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롬 3:23, 사 53:6), 죄의 형벌(롬 6:23, 히 9:27), 그리스도가 형벌을 받음(롬 5:8, 벧전 3:18), 선행으로는 구원받지 못함(엡 2:8-9, 딛 3:5), 그리스도를 모셔야 함(요 1:12, 계 3:20), 구원의 확신(요일 5:13, 요 5:24) 등 여섯 가지로, 이것이 다리 전도법의 시작이 되었다.
     이 전도법은 그 후 그림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허드슨 테일러가 창립한 중국내지선교회(CIM)의 복음전도 그림을 사용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 그림은 한 편으로는 많은 군중이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그 밑에는 불꽃 속에서 고통당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십자가 형태의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그림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그림은 더욱 발전하여 십자가가 반듯하게 세워진 모양으로 되었고, 절벽 아래 불꽃도 지우게 되었다. 그리고 왼쪽 절벽에는 죄인, 심판, 형벌 그리고 인간의 노력들이 있음을 나타냈고, 오른쪽 절벽에는 요한복음 5장 24절의 영생, 심판받지 않음, 사망에서 생명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후 다리 전도법은 전도자가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전도하는 전도법과 인쇄된 소책자로 전하는 두 가지 전도법으로 나뉘게 되었다.

  2. 다리 전도법의 신학

     오늘날 다리 전도법은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다리 전도법의 신학을 2:7 시리이즈 과정 3에 소개되어 있는 "다리 예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곳에 소개되어 있는 다리 전도법은 4 가지 개념을 염두에 두고 전도를 진행하게 하는데, 그것은 ①하나님의 사랑 ②인간의 문제 ③하나님의 해결책 ④인간의 응답이 그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여기에 소개된 내용을 중심으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으로 나누어 분석하되 간간이 소책자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도 분석해 보고자 한다.

    가. 신론(神論)
     다리 전도법은 시작 부분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또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며, 또 "우리 인간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난 후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로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의 창조가 전도의 앞 부분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인간이 진화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원을 두고 있으며, 또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고귀한 존재로 지음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설명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내가 창조된 자라고 한다면,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내 속으로부터가 아니라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 생존의 뿌리는 하나님께 있는데, 그 하나님께 범죄하고 떠나버린 것은 풍성한 삶의 상실이며 곧 죽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책자는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교제하는 관계였으며, 인간은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결과적으로 이런 관계가 죄로 인해 끝나버렸음을 말하고 있다. 이 소책자는 매우 간단하지만 창조신학을 가지고 복음을 전개하고 있다. 

    나. 인간론(人間論)
     다리 전도법의 최대의 강점은 인간론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부분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하는데, "하나님은 사람에게 의지를 주시고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는 것과 불행히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사는 편을 택했고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다"고 전도한다.
     특히 죄인된 인간의 상태를 "당신은 죄인입니다"(롬 3:23), "당신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 9:27), "형벌은 사망 곧 지옥입니다"(계 21:8)라고 언급하면서 세 가지로 강조하고 있는데, 이 인간관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도 "이 범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 가졌던 의를 잃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끊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망에 이르게 되었고, 그들의 영혼과 육신의 모든 기능이 전부 더러워졌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소책자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들은 선행의 공로를 쌓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며, 교육이나 철학을 통해서, 또는 종교를 가지고 종교 의식을 충실히 행함으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열심히 수고를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의의 수준에 도저히 이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위의 설명은 인간의 의와 구원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노력은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일찍이 스펄전(C. H. Spurgeon)은 "에스겔서의 버려진 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죽음이 바로 여러분의 뒤편에 있습니다. 지옥이 여러분에게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버려진 어린아이에 불과 합니다"하고 강조한 바가 있다. 스펄전의 말처럼 다리 전도법은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담고 있어서 신학적 건전성을 가지고 있다.


    다. 기독론(基督論)
     다리 전도법의 기독론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다리는 단 하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그 다리는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기독교의 배타적 정체성을 잘 나타낸 전도로, 타종교와의 대화를 구실로 기독교 진리를 상대화시키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는 것이다. 강원용 목사는 "복음주의 선교는 신자들을 둔화시키는 세뇌공작"이라고 했고, 변선환 교수는 "예수란 말을 사랑으로 해석하면 이런 사랑은 불교에도 있고 따라서 동양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보살이 될 수도 있다"고 했으며, 유동식 교수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구원의 체험은 불승들도 똑같이 체험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현대 신학자들의 비복음적인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이 때에 예수님의 유일성 교리를 더욱 분명히 선언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형벌과 심판을 받으신 것이라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단순하면서도 명백하게 기독론을 정리한 것이다.
     런던 신학교 학장인 빌립 입슨(Philip H. Evseon)은 "만일 사람들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교리의 적실성을 인식하고 감사해야만 하는 진리라면 우리는 반드시 형벌적이며 대속적인 희생제사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성경적 교훈을 반드시 견지하고 전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 구원론(救援論)
     이 전도법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로 건너가는 유일한 다리가 되기 때문에 풍성한 삶을 누리게 위해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요한복음 1장 12절과 요한계시록 3장 20절 성경 구절은 그리스도를 기도로 모셔 들이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구절들로 제시된다.
     아울러 전도한 내용을 요약하는데, 사람이 있는 왼쪽 편 절벽에는 "죄", "심판", "사망"이 있고, 오른쪽 편 하나님이 계시는 곳 절벽에는 "영생"과 "심판을 받지 아니함"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김"이라는 글자가 있음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다리는 놓여졌고 하나님의 약속은 주어졌다. 그러나 당신이 그 다리를 건너가지 않는 한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하고, 의지적 결단을 내릴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만일 믿기만 한다면 요한복음 5장 24절의 세 가지 약속   "영생을 얻었고(현재),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미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과거)"   을 누릴 수 있다고 전도한다.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초대교회의 복음 선포를 세 가지로 말했는데, 그들은 한 인격 즉,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고(they preached a person), 그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선포하였으며(they proclaimed a gift), 그들은 반응을 기대하였다(they looked for a response)고 했다.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회개를 권유하기도 하며 복음을 받아들일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다(행 2:40; 3:17-19; 16:31; 26:29).
     천주교는 신앙을 단순히 진리에 대한 찬동으로 보며, 신앙에 있어서 지식의 요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도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계시된 진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찬동하며, 영혼이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서 그를 붙잡는 영혼의 행위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전도법은 성경적이며, 초대교회 전도모델을 따르고 있음을 본다. 

  3.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다리 전도법의 장점

    가. 사용 면에서
      (1) 다리 전도법은 피전도자의 상황에 따라 길이와 내용을 조절할 수 있어서 "잃어버린 자"의 상태에 따라 길이와 내용을 조절할 수 있다.
      (2) 종이를 접고 그림을 그려가며 전도하므로 시청각적인 전도효과를 얻을 수 있다.
      (3) 전도자와 피전도자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며 피전도자의 관심을 이끌어 들이는 데 용이하다.
      (4) 피전도자 즉 "잃어버린 자"로 하여금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한다.
      (5) 두 개의 절벽 그림으로 계속되기 때문에 설명이 일관성 있다.

    나. 내용 면에서
      (1) 하나님의 창조가 전도의 앞부분에 놓인 것이 "잃어버린 자들"에게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2) 사영리에 비하여 죄를 구체적으로 말하며 심판과 지옥에 대하여도 그대로 전하는 점은 가장 돋보이는 장점이다.
      (3)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건너가는 유일한 다리가 됨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당연히 강조되어야 할 복음의 골격이다.
      (4) 요한복음 1장 12절과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통하여 추상적인 단어인 "믿음"을 "영접"이라는 행동적 언어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본다.
      (5) 요한복음 5장 24절을 인용하며 선택을 권하는 것도 "잃어버린 자"가 결단할 수 있도록 하므로 좋은 전도법이라고 본다.

  4.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다리 전도법의 단점

    가. 사용 면에서
      (1) 길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내용이 많고 길다는 느낌을 받으며,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부담이 되는 전도법이다.
      (2)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도법인지라, 서구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맞을 것 같다. 그러나 감성적인 우리나라 사람의 마음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3) 영어판 소책자인 "Bridge to Life"는 간단명료한 내용이나, 한글 번역판인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은 내용을 바꾸거나 덧붙여 놓은 곳이 많아 큰 흠이라고 생각된다. 차라리 영어 원문 그대로 번역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4) 전도를 원활히 하기 위해 암기와 실습 등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므로 전도가 어렵게 느껴진다. 전도가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은 다수의 평범한 성도들을 전도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나. 내용 면에서
      (1) 일반적인 전도로서는 좋은 전도내용이라고 볼 수 있으나,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호소를 느낄 수 없다.
      (2) 다리 전도의 그림이 하나님과 사람을 수평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점은 사영리의 수직적인 그림에 비하여 좋지 못한 점이다.
      (3) 소책자의 인간의 죄 부분을 보면 영어판에서는 이사야 59장 2절을 인용하면서 당신의 죄가 당신을 하나님께로부터 '잘라냈다'(cut off)고 한 후, 로마서 3장 23절로 옮겨가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해시킨다. 그러나 한글판 소책자나 2:7 시리이즈 "다리 예화"에서는 로마서 3장 23절을 먼저 말하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이 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지 못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어서 아쉬운 부분이다.
      (4) 한글판 소책자에서는 영문판에 없는 부분인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지 못함"이라는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놓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공로사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나, 내용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느낌이며, 영문에 없는 에베소서 2장 8-9절을 인용하는 것은 사영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5) 한글판 소책자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해주신 일"을 설명하면서 로마서 5장 8절, 고린도전서 15장 3-4절, 요한복음 14장 6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반해, 영문판은 디모데전서 2장 5-6절과 베드로전서 3장 18절을 인용한다. 한글판은 역시 사영리와 너무 비슷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차리리 영문판을 그대로 번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6) 영접하도록 도와주는 부분에 이르면 영문판 소책자는 요한복음 1장 12절과 요한계시록 3장 20절과 요한복음 14장 14절을 차례로 인용하면서 진행시켜 참 좋은 전도라고 느껴지나, 한글판은 요한복음 5장 24절을 인용한 후 장황하게 설명하고, 그 다음 요한복음 1장 12절과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인용하며 전도를 진행한다. 그리고 영접 기도문이 나오게 되는데, 영접 기도문 후에 요한복음 3장 36절과 로마서 2장 4-5절을 인용하면서 재차 도전하는데, 그 내용이 불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는 것이어서 피전도자는 자칫 협박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지 않게 느껴진다. 

제 3 절 전도폭발훈련(Evangelism Explosion Ⅲ)

  1. 전도폭발훈련이 나온 배경
   
     이 전도는 미국 플로리다주 코럴 릿지 장로교회(Coral Ridge Presbyterian Church of Fort Lauderdale, Florida)의 제임스 D. 케네디(James. D. Kennedy) 목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목회 초기에 실패를 경험하고 낙담하던 중에 조지아주 데카튜(Decatur, Georgia)의 한 전도집회의 설교자로 부탁받아 전도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으며, 그 곳 목사의 능숙한 전도 방법을 통해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그가 곧 교회로 돌아와 그 전도 방법을 적용해 본 결과 열매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때의 전도 방법은 바로 실습훈련의 원리에 초점을 두고 있었는데, 이것이 전도폭발의 원리가 되었다.         
     그는 후에 자신이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보다 전도자 한 사람을 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는데, 이는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multiplying)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기하급수적 번식을 하는 전도 방법이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도폭발훈련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후에 16주 훈련과정으로 실시하되, 한 명의 훈련자가 두 명의 훈련생을 데리고 나가는 방법을 취하게 되었으며, 훈련의 형태도 강의실 수업과 가정 연구과제와 현장실습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전도폭발훈련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82년 남서울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것으로, 이 전도훈련이 교회에서 개발된 것인지라 관심이 대단했고, 1997년도에 나온 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교회에서는 사영리 전도보다 전도폭발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 전도폭발훈련의 신학

     이 전도법의 신학은 전도폭발 제2장 복음의 제시(a presentation of the gospel)와 제3장 복음제시 내용분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가. 신론(神論)
     이 전도법의 복음 제시는 5가지로 진행되는데, 그것은 "은혜" "인간" "하나님" "그리스도" "믿음" 등이다. 이 전도법의 신론을 보면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 즉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벌하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도 하나님의 사랑의 성격을 자기만족의 사랑이라고 하면서,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한하신 완전성과 그의 도덕적 형상을 지니고 있는 피조물을 생각할 때 느끼시는 기쁨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은혜와 긍휼과 오래 참으심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벌하셔야만 합니다"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동시에 하나님의 의를 말하며, 그 의로 인하여 천하를 공의로 심판의 날을 정하시고(행 17:31), 사람들의 은밀한 것까지도 심판하시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전 12:14).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처벌하기를 원치 않는 분이시나, 그분의 의로우신 성품으로 인하여 죄를 반드시 벌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 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 인간론(人間論)
     "인간은 죄인이다"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 전도폭발의 인간론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는 말씀을 통해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우리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함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으며,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못박는다. 이는 인간의 전적무능을 주장하고 자력구원론을 부정하는 정통 신학노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 기독론(基督論)
     이 전도법의 인간론은 "그리스도는 무한하신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인간이다"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우주의 창조자요 삼위일체의 2위이신 하나님으로 말하면서 그 분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고 설명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아주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분을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그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하늘의 처소를 마련하시기 위해 죽으셨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속죄와 천국을 선물로 주심을 말하여 복음을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형벌의 대속"(penal substitution)을 거부하는 사상이 있어왔다. 하나님에게는 대속이라는 절차가 없이 죄인을 용서할 수 있으며 그런 것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존 스토트 박사는 이사야 53장을 통해 이런 그릇된 사상을 반박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대신한 대속제물이었음을 적절하게 논증하고 있다.

    라. 구원론(救援論)
     소책자 좋은 소식에 먼저 천국은 거저 주는 선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공로로는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3면). 그것은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이다(4면). 그러나 대속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6면). 이 믿음은 단순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며, 현세적인 신뢰도 아니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의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7면).   
     안토니 A. 후크마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원하는 신앙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반응으로서 전 인격 즉 구원에 있어서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섬김에 대한 참된 서약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말을 통해서 전도폭발의 구원관이 이것과 상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전도폭발의 장점

    가. 사용 면에서
     전도폭발훈련의 특징과 장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 단순한 전도이론이 아닌 현장실습 전도훈련이다.
      (2) 전도자를 무장시켜 준다.
      (3)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서 전도하므로 잃은 양에게 효과적일 것이다.
      (4) 선교단체가 아닌 지역교회 중심이다.
      (5) 복음의 내용과 전달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다.
      (6) 출석만 하는 교인들을 활동적인 일꾼으로 변화시킨다.
      (7) 주님을 영접한 새신자를 즉석에서 양육하므로 이탈자를 방지할 수 있다.
      (8) 목회자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 중심의 사역이다.
      (9) 높은 영접률을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나. 내용 면에서
      (1) 공로주의 구원사상을 확실하게 배격한다.
      (2)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라는 속성을 설명하면서 전도한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무한하신 하나님으로 소개한다.
      (4) 믿음은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만을 의뢰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5) 마지막으로 결단을 촉구하면서 기도를 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잃어버린 자"에게는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좋다고 본다.

  4.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전도폭발의 단점

    가. 사용 면에서
      (1) 교육기간이 16주 동안 계속되므로 너무 길다는 느낌을 주며 전도에 빨리 싫증을 내도록 만든다.
      (2) 전도자가 복음의 내용과 질문을 외워서 대화식으로 전도해야 하는데, 암기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쉽지 않다.
      (3) 작은 교회는 전도훈련을 받을 사람이 많이 없는 까닭에 전도훈련이 금방 중단되어 버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 전도법은 큰 교회에 잘 맞는 전도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4) 전도훈련이 끝난 후 전도자 개인적으로 계속적인 연쇄적인 전도를 잘 해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로 나타난다.
      (5) "잃어버린 자"를 전도 대상자에 넣어 접촉할 수는 있으나, 전도의 구성이 그런 관점에서 고려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6) 이 전도법이 실제 전도보다는 확신이 결여된 교인 양육에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 내용 면에서
      (1) 천국을 먼저 말하고 이 주제를 가지고 끝까지 끌고 나가는 전도인데, 이런 내용의 전도가 노인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을 것 같으나 현세적인 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을까 의심된다.
      (2) 천국을 시종 말하며 전도하는 내용인데 반해, 천국이 어떤 곳인지는 말해주지 않으므로 피전도자에게 답답함을 줄 수 있다.   
      (3) 죄를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죄의 결과와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과 그 후에 있을 지옥형벌을 충분히 말해주지 않는다. 
      (4) 전도용어에 일반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종교적인 용어가 많다. 예를 들면, "은사" "영생" "구원" "자비" "공의" "회개" 등인데, 일반인들이 쓰는 용어로 바꾸면 보다 더 효과적인 전도가 될 것이다.  
      (5) 잃어버린 자가 많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는 성경 인용이나 전도 내용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6) 영접 기도문을 보게 되면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이 필요합니다"로 기도를 시작하여,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기도하는 모양이 되어 단일신론(單一神論)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제 4 절  요한복음 3장 16절 전도법

  1. "요 3:16 전도법"의 배경

     이 전도법은 셀교회 운동을 이끌어가는 랄프 네이버(Ralph W. Neighbour)가 만들어낸 전도법이다. 셀교회 운동은 현대의 건물 중심의 교회, 프로그램 중심의 교회, 성직자 중심의 교회, 전통 중심의 교회를 탈피하여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회복해 보자는 운동으로서, 프로그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건물 중심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오라' 구조에서 '가라' 구조로, 관료주의적 교회에서 종으로 섬기는 교회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랄프 네이버가 그의 셀교회 이론을 처음 적용한 것은 1970년 무렵 로렌스 콩 목사가 개척한 싱가폴의 FCBC교회(Faith Community Baptist Church)에서 4년 동안 협동목사로서 같이 사역하게 된 것이 첫 케이스였으며, 그 때 셀교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전도수양회 때 "요 3:16 전도법"을 가르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도법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랄프 네이버가 2001년 1월에 서울과 부산에서 있었던 '한국 셀교회 컨벤션'에 강사로 초빙받아 내한하여 강의할 때였다.  

  2. "요 3:16 전도법"의 신학

     이 부분은 랄프 네이버의 셀그룹 성경공부 교재 "전도 가이드"(셀그룹 커리큘럼 4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교재에서는 "오이코스 전도"에서 활용하는 전도법으로 "요 3:16 전도법"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A 유형'의 불신자   기독교에 대하여 호의적인 유형의 사람으로 교회 행사나 셀모임에 참석하고 있으나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   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1단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17단계 셀모임으로 인도하기까지 도표를 그려가며 단계적으로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

    가. 신론(神論)
     이 전도법은 먼저 "하나님"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계시다는 것과 영원하시다는 것과 그분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창조론으로 인간을 접근하며 전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자라고 한다면, 우리 인생의 의미는 우리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곧 우리를 창조하신 자로부터 오는 것이다.

    나. 인간론(人間論)
     이 전도법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되어 있었으며, 로봇처럼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길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죄성(sin)과 죄된 행동들(sins)을 분명히 나누어 설명하면서 "나무의 본성이 사과이면 그 열매는 사과일 것이고, 사과를 다 따 없앤다고 나무의 뿌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선택의 결과는 영원한 시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살게 되며, 그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하는 영원한 죽음이라고 했다.
 
    다. 기독론(基督論)
     이 전도법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출하러 오셨다"고 말하면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지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점과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신 분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주 간단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과 우리의 죄를 해결하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점을 도표를 그려가며 잘 설명하고 있다.

 

    라. 구원론(救援論)
     이 전도법에서는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시도는 하지만, 자신들의 삶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나가는 행위나 선행을 하는 것이나 다른 종교를 찾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려 하지만, 이런 인간적 노력은 아무런 효과가 없으며 자신의 삶을 자신이 다스리겠다는 고집이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통한 죄용서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전도법의 구원론에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도록 도전하는 부분인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려면 우리는 우리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분께 합당한 자리를 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하고 영접 기도로 나가가기 전에 예수님의 주되심(Lordship)과 그분께 대한 헌신을 무척 강조한다는 점이다.

  3.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요 3:16 전도법"의 장점

    가. 사용 면에서
      (1) 도표를 그려가면서 전도하므로 전도가 시청각적이다.
      (2) 피전도자와 대화를 하면서 전도하기 때문에 피전도자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고, 피전도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대응하며 전도할 수 있다.
      (3) 성경구절은 오직 요한복음 3장 16절만을 인용하기 때문에 다리전도나 전도폭발보다는 전도가 쉬우리라고 본다.
      (4) 종이와 필기도구만 가지고도 언제든지 전도할 수 있다.
      (5) "잃어버린 자"들은 오이코스 'A 유형'의 불신자에 속하기 때문에 이 전도법이 잘 맞을 것이라 생각된다.
      (6) 셀모임에서 오이코스 대상을 미리 파악하고 중보기도를 한 후 방문하여 사용하는 전도법이므로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나. 내용 면에서
      (1)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인간의 죄를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2) 인간의 죄를 죄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3) 죄에 대하여 충분히 다루고 난 뒤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4) 전도 말미에 셀모임에 참석하도록 권유하고, 교회를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선택적 사항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교회 모임에 들어올 것을 강조하는 것도 좋은 점이다.  

  4. "잃어버린 자"의 관점에서 보는 "요 3:16 전도법"의 단점

    가. 사용 면에서
      (1) 보다 쉬운 전도를 위해 소책자가 따로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2) 도표를 그려가며 전도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평균적인 평신도들에게는 어려운 전도법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다리 전도법이나 전도폭발보다는 쉬운 전도법이라 생각된다.

    나. 내용 면에서
      (1) 하나님의 창조를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사랑도 언급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렇게 했더라면 "잃어버린 자"들이나 오이코스 'A 유형'의 불신자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다.
      (2) 구원을 헌신과 직접 연관시키고, 피전도자가 예수님의 주되심(Lordship)을 인정하고 자신의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십자가를 질 때에만 구원을 얻는다는 식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신학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제 5 장
"잃어버린 자"를 위한 새로운 전도 소책자

 

 

     한국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전도 소책자들(사영리, 다리전도법, 전도폭발)과 최근에 셀교회 운동과 함께 들어온 요한복음 3장 16절 전도법을 분석해 본 결과, 그 배경과 신학 그리고 장단점에서 각각 독특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C.C.C.의 "사영리"는 소책자를 그대로 읽어 주는 전도법이고,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다리 전도법"은 그림을 그려가며 전도하는 시청각 전도법이고, 제임스 D. 케네디 목사가 개발한 "전도폭발"은 질문을 많이 던지는 대화식 전도법이며, '요 3:16 전도법'은 다리전도법과 유사하나 간단해진 것이 특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전도법 외에도 공격적인 전도법으로 류광수의 '다락방' 전도법이나 이유빈의 예수전도협회의 '외침전도'가 있다. 전자의 전도법은 전도를 사탄과의 영적 대결로 보고 불신자들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생각하며, 후자의 전도법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등 매우 자극적인 구호를 외치도록 한다.   
     또한 여운학 장로의 '이슬비 전도 편지'가 있는데 이는 연속적으로 보내는 복음편지로 피전도자의 마음을 열게 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있으며, 특히 "잃어버린 자"들에게는 약간의 내용을 보완한다면 효과적인 전도법이 되리라고 보여진다.
     이들 전도법의 아쉬운 점은 한국적 정서에 잘 맞지 않거나, 피전도자가 이해하기 힘든 종교적인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하거나, 특히 우리 사회의 비신자 중 70-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는 이탈 교인 즉 "잃어버린 자"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일반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보편성을 띤 이들 전도법과 그 소책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때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으나 지금은 그 품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다수의 "잃어버린 자"를 생각하고 그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전도 소책자가 꼭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된다. 
     본 장에서는 본 연구자가 개발한 전도 소책자인 "당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5가지 질문"을 소개하면서, 이 소책자가 만들어진 배경과 신학과 특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제 1 절 소책자 "5가지 질문"이 나온 배경

     본 연구자는 대학 재학 중에 회심하여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전도할 때 사영리를 자주 사용하며 복음을 전했다. 사영리는 그대로 읽어주면 되는 전도 소책자이므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소책자였다. 그러다가 본 연구자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포항성안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게 되었으며, 1989년도에는 체계적인 전도훈련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 한국대학생 선교회(K.C.C.C.)의 새생명훈련원(N.L.T.C.)에 들어가 6개월간의 전도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 훈련과정을 통해 사영리의 내용과 신학 및 전하는 방법과 전도훈련을 인도하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배우게 되었으며, 또 그것을 교회에서 적용해서 전도운동을 일으켜 보기도 했다. 그런데 사영리 전도 시에 항상 느끼는 것은 그것이 대학생과 지성인에게는 잘 맞는 것 같지만 일반인에게는 거리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본 연구자는 네비게이토 선교회에 잠시 몸담아 교제하던 중, 그들의 전도 방법인 '다리 전도법'을 배우게 되었다. '다리 전도법'은 백지 한 장과 필기도구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나 전도가 가능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실제 전도를 해본 결과 피전도자들이 관심을 집중해서 듣는 것 같아서 한동안 이 전도법에 매료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본 연구자의 관심은 언제나 교인들을 간단히 훈련시킬 수 있고, 또 그들로 쉽게 전도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교인들이 이 다리 전도법을 쉽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다리 전도법은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전도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약 10개 정도의 성경구절을 막힘 없이 외울 수 있어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접어가며 진행하는 순서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피전도자의 반응까지 살펴가며 민감하게 전도해야 한다는 것이 사영리 전도에 비하여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쉬움으로 인하여 본 연구자는 한국적 전도 소책자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소책자는 적어도 여섯 가지 정도의 특징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는 일반 교인들로 하여금 쉽고 간단히 전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둘째는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과 말로 구성되어야 하며, 셋째는 대화식 전도를 통해 피전도자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고, 넷째는 많은 수를 차지하는 한국교회의 "잃어버린 자"들을 인도하는 데 효과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다섯째는 사영리와 다리전도와 전도폭발에서 이미 제시된 네 가지 내용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죄, 예수 그리스도, 믿음   을 담고 있어야 하고, 여섯째는 소책자에는 복음의 내용을 그림으로 형상화시켜 보여주는 삽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소책자를 개발하던 중에 처음 나온 소책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소책자에 한글 개역판 성경을 인용한 결과 한글 고어체로 인하여 교인들에게는 친숙하나 피전도자에게는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둘째는 삽화를 사영리와 이미 공개된 그림으로 사용하게 되어 출판 윤리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었으며, 셋째는 내용상의 문제로 인간의 죄를 너무 피상적으로 취급하거나, 영접 기도문에서 사영리나 전도폭발의 경우처럼 예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단일신론의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되었다.
     이에 두 번째로 펴내는 소책자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성경 인용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펴낸 '현대인의 성경'을 사용하여 피전도자에게 쉽도록 배려했으며, 일러스트를 통해 삽화를 직접 그려 넣게 되었으며, 인간의 죄 문제와 영접 기도문의 문제된 부분은 수정하여 인쇄하게 되었다.   

 

제 2 절 소책자 "5가지 질문"의 신학

     "5가지 질문"의 신학은 이 소책자의 5가지 질문 즉,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심을 아십니까?"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아십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아십니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아십니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등 5가지 질문과 이어지는 호소인 "지금 당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를 중심으로 말해 보고자 한다.

  1. 신론(神論)
   
    가. 사랑의 하나님
     이 소책자는 사랑의 하나님을 먼저 전하면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고 질문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말하는 전도는 C.C.C.의 빌 브라이트 총재가 고안한 사영리가 처음이었다. 사영리가 처음으로 이런 문구를 썼을 때, 이는 인간의 죄를 먼저 언급하는 전통적인 전도를 뒤집는 것이었고 획기적인 일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반대도 만만치 않게 일어났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보는 사도들의 전도 설교는 긍정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책자는 사랑을 먼저 말하면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무척 사랑하셔서"(현대인의 성경)를 인용하여 "잃어버린 자"인 피전도자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언급한다. 윌리엄 헨드릭슨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의미를 다섯 가지로 정리하면서 사랑의 성격(이처럼 사랑하사), 사랑의 창조자(하나님), 사랑의 대상(세상), 사랑의 선물(그의 아들 독생자), 사랑의 목적(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 등으로 정리해서 말했는데, 이 중에 사랑의 창조자와 사랑의 대상과 사랑의 성격을 소책자에서 말한 것이 된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야곱 그리고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 사랑하신 것처럼 죄인들을 먼저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전도자가 피전도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며, 더구나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에게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 창조주와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이 소책자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 다음 그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그는 너희 아버지요 창조주가 아니시냐?"(신 32:6) 라고 반문하는 말씀 속에 그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가 되신다는 선언은 전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그만큼 창조주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가 쉽기 때문이다. 제임스 패커 박사(James I. Packer)는 "우리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전능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창조주가 함께 계시고 주목하시는 가운데서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삶은 두려운 사업이 된다"고 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설명 또한 전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소책자에서 인용한 신명기 32장 6절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에게 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자들 즉 신약의 백성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말씀이며, 또한 하나님을 믿다가 지금은 그분을 떠나 살고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적용이 가능한 말씀이라고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직은 주님 앞에 돌아오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된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미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되었기 때문이다(엡 1:5).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잃어버린 자들"로 말씀하셨고, 탕자의 비유에서는 잃었다가 돌아오는 아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 "그는 너희 아버지요" 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선택에 관계없이 모든 피전도자에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볼 수 있다. 본 연구자는 이런 생각에 대하여 언약적인 관점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와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에서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 근거로는 사도행전 17장 28-29절의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아덴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행한 설교(행 17:22-31)의 일부분인데, 그가 헬라의 시인 아라투스(Aratus)가 읊은 시구(詩句)를 인용하면서 "신의 소생(     )이 되었은즉"이라고 전도설교를 이끌어간 것이다. 이 시구(詩句)는 시인이 본래 쥬피터(Jupiter)를 찬양하고 읊은 것이지만, 사도바울은 그것이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찬양으로 생각하여 설교한 것이다. 사도바울이 아덴의 일반 대중을 향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현대인의 성경)라고 설교하며 전도한 것을 참고한다면, 소책자의 "당신이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는 표현은 지나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언약적인 관점에서 먼저 적용시키며 또한 사도행전 17장 28-29절의 예처럼 일반적인 의미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2. 인간론(人間論)

     소책자 '5가지 질문'의 인간론은 신명기 32장 6절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창조주이심을 밝힌 다음,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아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있다. 신론이 먼저 분명히 서게 되면 인간론은 저절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순서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인간이 바로 창조주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외면한다는 것이 바로 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죄의 개념을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전제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책자는 인간의 죄를 "우리는 다 길 잃은 양처럼 제각기 잘못된 길로 갔으나"(사 53:6) 라고 규정하고 있다. 성경 본문에서 저자인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이스라엘이 그렇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길을 좇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게 한다. 그러니까 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이 목자 잃은 양들과 같이 잘못된 길로 갔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에드워드 J. 영 박사(Edward J. Young)는 이렇게 본문을 해석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그릇된 길로 가버린 이 죄행(罪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길로 돌아서 버린 것으로 특징 지워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제시해 놓으신 길로 가기를 힘쓰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자신의 길을 추구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창조주보다 오히려 피조물에게 영광을 돌렸다. 우리는 이기적이었으며, 우리의 행동의 결과로 우리는 길을 잃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죄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인간의 교만한 마음이며, 그 죄가 우리를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목자 잃은 양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게 하는 것이다.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J. Smith)는 사람의 죄성이 사람으로 죄짓게 만들며, 죄악이 노골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은 죄인임을 사과나무를 예로 들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린다고 해서 그것을 사과나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그것이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를 맺는 것이다. 사과가 열리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사과나무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인간은 예외없이 죄인이며 반드시 구원받아야 한다.   

이처럼 본 전도 소책자는 이사야 53장 6절을 인용하여 인간의 죄와 목자 잃은 양처럼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어리석은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소책자가 그 다음으로 소개하는 것은 죄인된 인간이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고(히 9:27), 그 결과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에 들어가게 된다"(마 25:41)는 사실이다. 이는 장로교 교리를 나타내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Westminster Shorter Catechism)의 제19문에서 "모든 인종이 타락함을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또 그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어서 금생에 모든 비참함과 사망과 내세에 영원한 지옥의 벌을 받게 되었다" 고 나와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이 소책자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이 심판과 그 후 있게 될 형벌을 가감 없이 전하고자 했다.   

  3. 기독론(基督論)

     본 소책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기 전에 이미 천상에 선재(先在)하셨던 분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리스도의 선재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원을 설명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언급해야 할 부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베드로전서 3장 18절의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한 번 죽으신 것은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이다"(현대인의 성경)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기독론을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현대인의 성경과 한글 개역판 성경이 번역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페리 하마르티온"(             )이라는 헬라어 원문이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죄인들을 위해"라고 번역되었고, 한글 개역판에서는 "죄를 위하여"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한글 개역판이 원문에 가까운 직역한 번역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소책자에서는 피전도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 현대인의 성경을 인용할 수밖에 없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은 짧은 구절 안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과 그분이 죄인들을 위해 죽었다는 사실, 그분이 오직 한번 죽으셨다는 것과 그리고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집약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네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자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 셋째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넷째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이다. 본 전도 소책자가 지면상 가지고 있는 한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충분히 나타내지는 못하였을지라도 꼭 필요한 기독론은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4. 구원론(救援論)
 
     구원론은 기독론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그리스도를 소개받았다면 거기에 대한 응답이 필요하다. 구원론에서는 세 부분 즉, '두 종류의 사람', '참된 믿음'을 논하고,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통한 도전' 으로 나누어 말하게 된다.

    가. 두 종류의 사람
     이 부분에서는 사영리의 최대의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사영리 9페이지의 "두 종류의 사람"에서 크게 도움을 받았다. 그러므로 내용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두 종류의 사람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과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을 비교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본 소책자는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은 "모든 일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삶의 혼란과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현대에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인간 생활에 많은 편리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고 있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인간의 마음과 삶에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면도 있다. 그래서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보다 많다. 전 세계에서 과학과 기술이 가장 앞서 있는 미국에서 여론조사를 해본 결과 "서양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에 관하여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비관적이라는 사람이 65퍼센트였고 낙관적이라는 사람이 16퍼센트이며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21퍼센트였다. 그리고 "서양문화가 의미의 느낌, 소속감, 목적과 가치의 틀을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예"라는 대답을 한 사람이 84퍼센트나 되었다.   
     소책자는 이어서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공급받아 살아가기 때문에 삶의 안정을 느끼고 소망을 가집니다"라고 소개한다. 모든 인간은 이렇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으나 자기중심적인 삶을 선택했으므로 이런 복된 삶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켜 이렇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D. Martyn Lloyd-Jones)는 복음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복음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줍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룩해 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됨이 그 사람 자신의 행실이나 그 사람이 처한 환경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됨이 바로 될 때에 그의 행동들이나 그가 처한 환경들이 바르게 될 것임을 말하여 줍니다. 인간에게 만물에 대한 고상한 관점을 주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선한 삶을 살고자 열망하는 심정을 줍니다. 복음은 인간에게 능력을 제공해 줍니다.

이와 같은 복된 삶은 주님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먼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앎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구원은 곧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갈 때 주어지는 것임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은 예수님을 알고 영접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인생의 주인(Lord)으로 모셔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그리스도께 자신을 던져 맡기고 신뢰하며 확신을 두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 참된 믿음 
     이 소책자는 참된 믿음에 대하여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믿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피전도자가 추상적인 단어인 "믿음"을 복음에 대한 단순한 찬동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영접"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며(마 7:21),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마 7:22). 그것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하며,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해야 하고, 그리하여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다.
     안토니 A. 후크마(Anthony A. Hoekema)는 "믿음이란 순간적인 결정 그 이상이며, 또한 지적인 진술들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이며, 믿음은 전인격(whole person)뿐만 아니라 삶 전체(whole of life)를 포함한다"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믿음을 논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며, 이것이 개혁주의 구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통한 도전
     복음 전도에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인용하며 권면하는 것에 대하여 이의(異意)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이므로, 이 말씀은 교회에 주신 말씀이지 교회 밖 불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박윤선 박사는 그의 주석에서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신자들을 회개시키려고 만반노력(萬般努力)하시며, 간절히 권면하심이다"라고 해석했고, 필립 E. 휴스(Philip E. Hughes)도 그의 주석에서 "이 호소의 내용은 복음전도에 자주 사용되긴 하지만, 사실 이것은 교회 밖의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교회의 지체들에게 주는 말씀이다"라고 해석한 예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윌리암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은 그의 주석에서 교회 안의 신자에게만 국한하는 해석을 취하지 않았고, 구원이 필요한 일반적인 상황의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해석을 취했다. 그는 "주님의 음성이 복음 안에서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성령에 의해서 심령에 작용한다. 주님께서는 친히 각자 개개인에게 말씀하신다. 구원은 절대 개인적인 문제이다"라고 했고, 또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이 열려지게 될 때, 성령의 힘에 의하여 중생한 개인이 그 심령의 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중생의 원리가 실현된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이 구절에 대한 본 연구자의 견해는 먼저 교회 내의 교인에게 주신 말씀으로 생각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어떤 교회였는가? 그 교회는 주님의 교회다운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주님이 토하여 내칠 지경이었고(계 3:16), 영적으로 눈먼 소경이었고(계 3:17), 자신들의 수치를 가릴 옷이 없는 자들이었고(계 3:18),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있는 자들이었다. 바로 이런 자들은 명목상의 신자일 뿐이지 구원받은 참된 신자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각기 개인적으로 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영접하여 온전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교회 안의 구원받지 못한 명목상의 교인들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볼 때, 교회 밖의 불신자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한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다.  

제 3 절 소책자 "5가지 질문"의 내용

     복음전도에는 복음의 주요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주요한 요소를 충분히 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서 전도하려고 하는 피전도자들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거리에서나 가정방문 시 10-20분 사이의 잠깐의 시간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의 주요한 요소를 빠뜨리지 않고 간략히 복음을 소개하는 소책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피전도자가 놓여 있는 환경과 처지 및 신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본 논문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 한국사회에는 한때 교회를 다녔던 비신자가 전체 비신자의 70-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형편이며, 교인의 11.7퍼센트가 교회 출석을 하지 않고 있고, 교회를 출석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26.8퍼센트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들 "잃어버린 자들"을 돌아오라고 부르는 전도 소책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본 절에서는 "5가지 질문" 소책자의 내용을 모두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무척 사랑하셔서"(요 3:16)라고 했습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러면, 왜? 당신을 하나님이 사랑하실까요?
     "그는 너희 아버지요 창조주가 아니시냐?"(신 32:6)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2.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아십니까?
 
    "우리는 다 길 잃은 양처럼 제각기 잘못된 길로 갔으나"(사 53:6)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떠나 살아왔다면 그것이 죄입니다.
    죄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고 했으며, 심판 후에는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마 25:41).

  3.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아십니까?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한 번 죽으신 것은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이다"(벧전 3:18)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① 당신을 대신해서 벌을 받으시고
     ②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셨으며
     ③ 당신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4.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아십니까?
     ①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
     모든 일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삶의 혼란과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②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
     모든 일에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공급받아 살아가기 때문에 삶의 안정을 느끼고 소망을 가집니다.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
     또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

  5.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분(예수님)은 자기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 1:12)고 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①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것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②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③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당신의 마음 속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④ 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6. 지금, 당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보라, 내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 3:20)
     당신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을 때 행복했습니까?
     이제 예수님을 모시고 새 삶을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도하신다면 그분이 당신 안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7.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나는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 하루하루 살아왔습니다.
     나의 삶은 힘들었고 만족이 없었으며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시오.
     이제 내 마음의 문을 엽니다.
     내 마음 속에 들어오시고
     나의 인생을 인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접일:              이름:

제 4 절 소책자 "5가지 질문"의 특징

     본 절에서는 소책자 "5가지 질문"이 전도에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특히 "잃어버린 자"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그 특징을 내용 면과 사용 면에서 진술해 보고자 한다.

  1. 사용 면에서
 
     (1) 전도시 소책자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면 된다. 그러므로 누구나 소지하고 다니면서 쉽게 전도에 활용할 수 있다.
     (2) 내용이 사영리보다도 오히려 간단하다. 그러므로 약 8-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다.
     (3) 소책자의 내용이 질문하고 대답을 듣고 설명하는 식의 대화식으로 되어 있어서 피전도자의 관심을 유도하면서 전도를 진행할 수 있다.
     (4) 글과 함께 있는 그림이 복음의 내용을 시각화시켜 주며, 피전도자의 머리에 오랫동안 잔영(殘影)이 남아있도록 도와준다.
     (5) 소책자의 개발이 학원이나 특수 상황에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개발된 소책자이기 때문에 지역교회와 일반성도들에게 잘 맞을 수 있다.
     (6) "영적" "영생" "구원" 등의 단어들은 비신앙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신앙인들도 선뜻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을 담고 있는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을 피했기 때문에 한국의 전도자들과 피전도자들에게 한결 이해가 쉬운 소책자가 될 것이다.
     (7) 소책자에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한글 개역판 성경'을 피하고 '현대인의 성경'을 인용했다. '현대인의 성경'은 한국교회의 예배용 성경이 아닐 뿐 아니라, 성경원문에 충실한 번역이 아닌 의역 위주의 번역이기 때문에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도는 피전도자의 입장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대어로 쉽게 의역(意譯)을 한 '현대인의 성경'을 인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전도자에게는 좀 어색하지만 피전도자에게는 한결 이해하기 쉬운 소책자가 되게 할 것이다.

  2. 내용 면에서

     (1) 전도를 시작하면서 "당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5가지 질문"이라고 시작한다.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 피전도자 특히 "잃어버린 자"에게 궁금증을 갖게 하며 관심을 유발시킬 수 있다. 
     (2) 하나님의 창조와 사랑-->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 예수 그리스도--> 참된 믿음--> 결단과 기도문, 이런 순서로 전도를 진행해 가기 때문에 복음을 일관성 있고 조리 있게 설명해 갈 수 있다. 
     (3)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 "당신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라는 긍정적인 말로 시작하므로 피전도자에게 관심을 이끌 수 있으며, 특히 "잃어버린 자"에게는 효과적인 말이 될 것이다. 
     (4)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피전도자의 아버지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고(신 32:6), 피전도자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영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에, 피전도자들이 의아해 하고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소책자는 사랑의 이유를 설명해 주면서,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요 당신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하신다"라고 전도할 때 "잃어버린 자"들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킬 것이다.
     (5) "잃어버린 자"를 염두에 두고 죄를 언급한다. 인간이 죄로 인하여 목자를 떠나 제 마음대로 다니는 양처럼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며, 또한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죄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자"가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려는 것이다.
     (6)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중요한 이유가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이다"(벧전 3:18)이라고 설명한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을 인용하는 것은 "잃어버린 자"를 돌아오도록 하는 데에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당신을 대신해서 벌을 받으시고,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셨으며, 당신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라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준다.
     (7) "두 종류의 사람"을 보여주어 "잃어버린 자"가 현재 서 있는 위치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며,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과거가 혼란하고 불안한 삶이었음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으로 위치를 옮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8)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될 수 있는 "믿음"을 "예수님을 모셔들이는 것"으로 설명한다. 아울러 "뉘우친다" "돌아온다" "모셔들인다" "인생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전인격적인 믿음이 되어야 할 것으로 설명했다. 
     (9) "지금, 당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하고 호소한다. 그런 다음 "당신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을 때 행복했습니까?" 하고 도전하며, 예수님을 모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권한다.
     (10) 영접기도문 역시 "잃어버린 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나는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 하루하루 살아왔습니다"하며 고백하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제 5 절 소책자 "5가지 질문" 사용 요령

  1. 전도자의 준비
 
     ①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라(막 16:15).
     ② 예수님이 전도에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어라(마 28:20).
     ③ 깨끗한 그릇이 되어 복음을 전하라(딤후 2:21).
     ④ 성령이 나에게 충만히 임하시도록 간구하라(행 1:8).
     ⑤ 전도에 상급이 있음을 기억하라(단 12:3, 마 25:21).
     ⑥ 전도 소책자 "5가지 질문"의 내용을 숙지하라(벧전 3:15).
     ⑦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를 만나도록 기도하라(눅 19:10)
     ⑧ 간증이 준비되면 더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 있다(사도바울의 예).

  2. 전도 대상자 파악

    가. 오이코스: 복음의 주된 전달통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과 교회 성장운동가들은 복음이 주로 인간의 사회적 관계망을 타고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복음의 주된 전달통로가 신자의 친구나 이웃사람, 직장 동료, 클럽회원 등 오이코스망을 통해 전달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어떤 경위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가?" 하고 질문해 보니, 미국교인의 85퍼센트가 친척이나 친구 등 오이코스망을 통해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통계는 더욱 비중이 높게 나타났는데, 친구/선배/직장동료의 전도에 의해서가 29.7퍼센트, 부모의 전도가 20.9퍼센트, 이웃사람의 전도가 17.1퍼센트, 배우자의 전도가 11.5퍼센트, 형제의 전도가 10.5퍼센트, 친척의 전도가 8.2퍼센트, 성직자의 전도가 1.7퍼센트, 무응답 0.3퍼센트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오이코스망을 통해 교회에 나온 사람이 98퍼센트에 이른다는 놀라운 통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이코스망을 잘 활용해서 전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나. 오이코스의 다양한 사람들
      다음은 우리들의 오이코스망이다. 이들 중에 우리가 찾아가서 전도해야 할 전도대상자들이 많이 있다.

      (1) 가족 및 친척
     ① 조부모 ② 부모 ③ 아내 ④ 자녀 ⑤ 친정부모, 장인장모 ⑥ 형님, 오빠 ⑦ 누나, 언니 ⑧ 동생 ⑨ 외가 ⑩ 삼촌, 사촌 ⑪ 사돈댁 ⑫ 고모댁 ⑬ 이모댁 ⑭ 처가 ⑮ 기타친척
 
      (2) 이웃
     ① 집주인 ② 세든 사람 ③ 앞집, 옆집, 뒷집 ④ 같은 동 ⑤ 같은 번지 ⑥ 반상회 회원 ⑦ 세탁소 ⑧ 복덕방 ⑨ 관리사무소 직원 ⑩ 이사온 분 ⑪ 자녀들의 친구 부모 ⑫ 미장원 ⑬ 통장집 ⑭ 주변 가게 ⑮ 기타 이웃

      (3) 지역
     ① 동사무소 직원 ② 파출소 직원 ③ 경로당 노인 ④ 청소부 아저씨 ⑤ 우유 판매원 ⑥ 화장품 판매원 ⑦ 신문 배달원 ⑧ 학교 선생님 ⑨ 자모회, 학부모회 ⑩ 병원, 은행 ⑪ 야채 판매원 ⑫ 지역 유지 ⑬ 기타 지역 주민
 
      (4) 친분관계
     ① 친구 ② 동창생 ③ 선배 ④ 후배 ⑤ 고향사람 ⑥ 종씨 ⑦ 친목회 ⑧ 믿다가 낙심한 사람 ⑨ 구역원 가족 ⑩ 계모임 ⑪ 기타 친분이 있는 자
  
      (5) 직장 및 생업
     ① 직장 동료 ② 사장 ③ 직속 상관 ④ 부하 직원 ⑤ 기사 ⑥ 경비원 ⑦ 단골손님 ⑧ 종업원 ⑨ 거래처 ⑩ 직장에 관련된 사람 가족 ⑪ 그들의 친구 ⑫ 직장 주변의 사람들 ⑬ 다방
 
      (6) 기타
     ① 거리에서 만난 사람 ② 사거리 ③ 정류장 ④ 역전 ⑤ 지하철 ⑥ 개인택시 ⑦ 취미그룹 ⑧ 버스 ⑨ 축호 방문 가정 ⑩ 목욕탕 ⑪ 군인 ⑫ 놀이터 ⑬ 약수터 ⑭ 우연히 인사 나눈 사람

    다. 오이코스(비신자)의 분류
     이상만 목사가 만든 오이코스 분류표를 보면, 비교적 가까운 <오-1>에서 <오-3>까지의 오이코스 전도 대상자는 아래의 도표를 참고해서 파악하여 작성해 볼 수 있다.

<표 3> 오이코스(불신자) 분류표

 

  3. 소책자 전도를 시작할 때 유의할 점
 
     ① 두 명씩 짝지어 나가도록 했던 주님의 전도 방법을 배우라.
     ② 되도록 당신의 오이코스를 찾아가라
     ③ 되도록 교회를 다니다가 낙심한 자를 먼저 찾아가라
     ④ 피전도자에게 10분 정도의 시간을 얻도록 하라.
     ⑤ 전도에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을 택하라.
     ⑥ 가정을 방문했을 때는 TV나 라디오를 끄고 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라.
     ⑦ 상대방이 불편한 감정을 보이면 전도를 중단하라.
     ⑧ 정중한 자세를 가지되 담대히 대화를 시작하라.
     ⑨ 전도 시 입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라.
     ⑩ 마음 속으로 기도하면서 시작하라(느2:4).
     ⑪ 소책자를 들고 그대로 읽어주라.
     ⑫ 소책자를 반으로 접어 진행하라. 피전도자가 다음 페이지를 보면 전도의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⑬ 여러 사람이 있는 곳이면 소책자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읽어 주라.
     ⑭ 볼펜의 심을 끄고 문장 밑에 대면서 읽어 주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⑮ 상대방에 대한 적당한 호칭을 생각하라. 형, 누나, 선생님, 아저씨, OO아빠, 아주머니, 아줌마, OO엄마, OOO씨 등. 

  4. 소책자의 효과적인 사용법

     먼저 피전도자에게 현재 교회를 다니는지 물어본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과거에는 다닌 적이 없었는지 물어본다. 이유는 우리 사회의 비신자 대부분이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함이다.

    가. 현재는 교회를 안 다니지만 과거에 교회를 나갔었다는 사람에게
     ① 피전도자가 과거에 교회를 다녔다고 대답하면,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이므로 "선생님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5가지 질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소책자를 읽어준다.
     ② 계속 읽어나가다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아십니까?"라는 부분이 나오면 그 부분을 읽고 난 후 마지막 질문을 지혜롭게 진행해야 한다.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피전도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하면, "또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하고 질문한다. 피전도자가 대답하기를 그래도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편을 택하면, 이 사람은 믿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을 한 것이므로 정중히 인사하고 헤어진다. 
     ③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피전도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하면, "또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하고 질문한다. 피전도자가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하면, 소책자를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마침내 영접 기도문까지 인도한다.

    나. 현재 교회를 안 다니고 과거에도 교회를 안 다녔다는 사람에게
     ① 이런 경우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나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여 돌아오지 못한 영혼일 수 있다.
     ② 읽어주다가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올 때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피전도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그러면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하고 질문한다. 피전도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편을 택하면, 그 사람은 믿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을 한 것이므로 정중히 인사하고 헤어진다. 
     ③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피전도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하면, "또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하고 질문한다. 피전도자가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하면, 이 사람은 믿을 의사를 표현한 것이므로 소책자를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마침내 영접기도문까지 인도한다.

    다. 현재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는 사람에게.
     ① 현재 한국교회 교인 중에 이런 사람이 26.8퍼센트나 된다.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며 소책자를 읽어주는 것이 좋다.
     ② 읽어주다가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올 때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피전도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하고 질문한다. 피전도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편을 택하면, 이 사람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 관망하는 사람이므로 신앙을 도와줄 다른 방법을 택한다.  
     ③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피전도자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하면, "또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하고 질문한다. 피전도자가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하면, 소책자를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마침내 영접기도문까지 인도한다.

    라. 현재 교회를 다니고 또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사람에게.
     ①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사람 중에는 예수님을 참으로 영접한 사람과 영접하지 않았으면서도 대충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에도 읽어주는 것이 좋다.
     ②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피전도자가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하면, "예수님을 언제 영접하셨습니까?"하고 정중하게 질문해 본다. 예수님을 분명히 영접하고 확신이 있는 사람은 이런 질문에 확신있게 대답할 것이다.
     ③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신앙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전도를 받으면서 잘못된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 때에는 "또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하고 질문한다. 피전도자가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소책자를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마침내 영접기도문까지 인도한다.

    마.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 침묵하는 사람에게. 
     ① 그 사람이 불편한 심기가 아니면 소책자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읽어준다. 
     ②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올 때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피전도자가 침묵하면, "또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하고 질문한다. 피전도자가 또 침묵하면, 피전도자의 반응을 봐서 그가 호의적이면 소책자를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영접기도문까지 읽어준다. 그러나 이미 영접한 사람에게는 또다시 영접하도록 기도를 인도해서는 안 된다. 

    마.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 중 침묵하는 사람에게. 
     ① 그 사람이 불편한 심기가 아니면 소책자를 읽어준다. 
     ②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올 때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피전도자가 침묵하면, "또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하고 질문한다. 피전도자가 또 침묵하면, 피전도자의 반응을 봐서 그가 호의적이면 소책자를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영접기도문까지 읽어준다. 그러나 억지로 영접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5. 전도의 마무리

     ① 억지로 결신을 시키지 않도록 주의한다.
     ② 기도를 개인적으로 하기 원하는 경우 그것을 존중한다.
     ③ 결신자를 먼저 교회의 소그룹(구역, 셀모임, 사랑방 등)에 데리고 간다.
     ④ 결신자를 데리고 같이 교회에 온다. 등록해서 정착할 때까지 도와준다.
     ⑤ 결신자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양육을 시작한다.
     ⑥ 복음을 거부한 사람에게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헤어지도록 한다.
     ⑦ 복음을 거절한 자라도 가급적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
  
제 6 장
결  론

 

 

     예수님이 팔레스타인의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던 중에,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는데,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마 9:35-36). 이에 그분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다(마 9:37-38). 추수할 일꾼이 부족하다는 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추수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일꾼부족 현상은 복음전파의 사역이 목회자 중심이 되어버리고, 교인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평신도가 사역에서 소외되어버린 결과 더욱 심화되어버렸다. 그러나 에베소서 4장 11-13절을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우리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 성도들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나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로 부름을 받은 자 뿐 아니라 전체 교회가 영적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만인 제사장직이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목회자들은 패러다임(paradigm)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 평신도가 복음사역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목회자의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목회자들은 사역의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고, 평신도들은 관중석에서 바라보며 응원하는 불합리한 사역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제 평신도들을 관중석에서 운동장으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그 평신도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돕는 코치가 되어야 한다. 평신도가 복음사역의 주체가 되고, 그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그들을 무장시켜야 한다. 특히 복음전도에 있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복음전도가 목회자 중심적이었다면 과감히 평신도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복음전도가 평신도 중심이 되고 그들의 손에서 전도의 꽃이 피려면 그 무엇보다도 쉬운 전도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전도할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언제든지 전도할 수 있게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 소책자의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전도 소책자는 맹렬한 전도훈련이나 대단한 암기 실력이 없이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전도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란 것이다. 즉 우리가 전도해서 낚아 올려야 할 사람고기들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부들은 물고기들마다 잡는 방법을 달리 쓴다. 그 중에 오징어는 그 잡는 도구가 특이한데, 오징어를 잡는 데는 미끼가 필요 없다. 단지 강력한 집어등(集魚燈)을 많이 준비하고, 또 날카로운 바늘 서너 개가 한데 묶여진 낚시를 많이 준비해서 바다에 던지면 된다. 오징어는 강력한 빛을 보면 떼를 이루어 모여 올 것이고 그 때 미끼가 달려 있지 않은 낚시대로 자꾸 낚아 올리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전도해야 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특성을 알아야 한다. 그 특성을 알게 되면 전도는 그런 특성에 맞추어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 연구자가 전도에 관하여 연구하던 중에 참으로 우연히 주님의 한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는 말씀이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해야 한다는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연구를 해 보고 또 이것을 전도에 적용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제 1 절 요약

     제 2 장에서는 "잃어버린 자"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를 모색하면서 언약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보게 되었는데, 언약이란 피로 맺는 약정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강력한 연합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구약 시대 내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아버지를 떠난 아들같이, 왕의 통치를 거역하는 백성같이, 남편을 떠나 음부(淫婦)가 된 여인같이 언약을 배반했으며, 하나님은 언약을 배반한 그 백성을 향해 "돌아오라"고 부르셨는데, 그 부르심은 구약시대 내내 계속되었다.
     이런 부르심은 계속되어서, 신약 시대가 도래하자 세례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말은 의미상 "돌아오라"(turn ye)는 메시지였는데, 이런 메시지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전도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우리가 관심을 두는 대목은 예수님이 "잃어버린 자" "잃은 양"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전도하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난 그 백성을 찾는 사역을 하셨는데, 그 예로 열두 사도를 전도에 내보내시면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다. 이는 언약을 떠난 유대인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유대인의 범주를 넘어 이방인 에게까지 범위가 확장되어 "잃어버린 자"에게로 복음이 향하게 되었다. 누가복음 15장을 통해 이방인인 누가가 "잃은 양" "잃어버린 자"를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도 적용시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를 모색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자"는 언약을 배반하고 떠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과 또한 하나님이 부르시기로 예정하신 자 중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방인을 말하는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제 3 장에서는 "잃어버린 자"에 대한 목회적 이해를 모색해 보았다. 우리 한국교회는 많은 수의 이탈자(잃어버린 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비종교인 중에 적게는 70-80퍼센트 많게는 90퍼센트가 교회를 출석했던 사람이라는 전도자들의 말이 있고, 비종교인의 63퍼센트가 과거 개신교를 믿었다는 보고서도 있었다. 이런 다량의 이탈자가 생기는 원인을 짚어보는 가운데 교회 내적으로는 바른 신앙관의 결여현상, 주일학교 교육 운영의 어려움, 26.8퍼센트나 되는 교회 내의 불신자, 기독교 윤리 부재 현상, 교회의 부정적 모습, 목회자의 자질 문제 등을 볼 수 있었고, 또 교회 오직 원인으로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원인, 전통문화로의 회귀 현상,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 냉소적인 언론의 보도 등으로 나타났다.
     교회를 이탈한 많은 사람들이 무종교나 무신론자가 되어 있고, 타종교로 개종해 버린 경우도 많이 있으며, 교회 출석을 미루고 있거나 다른 교회로 출석하는 다양한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이탈자를 막기 위해 한국교회는 소그룹의 강화, 전통적인 심방사역, 성경공부를 통한 양육, 다양한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해 이탈자를 막으려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총동원전도나 간증 집회, 부흥회, 대규모 집회 등을 통해 전도하려 하고 있으나 "잃어버린 자"를 위한 전도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제 4 장에서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많이 사용된 개인전도 방법들   사영리, 다리 전도법, 전도폭발, '요 3:16 전도법'   을 살펴보면서 각 전도법들이 얼마나 "잃어버린 자"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지 분석해 보았다. 모두 복음에 충실한 면을 보이고 있으나, 아쉬운 점은 외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라 한국 사람에게는 거리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C.C.C.의 사영리는 전하는 법이 아주 쉽다는 점, 긍정적인 전도의 시작은 대단한 장점이나, 한국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내용이 딱딱하며 보통사람 보다는 지성인에게 초점을 맞춘 전도라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다리 전도는 그림을 그리면서 전도를 진행하기 때문에 시청각적이라는 점과 양쪽 절벽을 가지고 진행하는 일관성 있는 전도라는 점이 장점이다. 그러나 역시 미국에서 만들어져 한국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내용이 너무 많다는 느낌을 주며 전도 방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또 소책자가 영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이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전도폭발은 지역교회 중심의 전도라는 점에서 한국교회에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훈련 과정이 너무 어렵다든지, 내용이 너무 천국 위주로 진행이 된다든지, 한국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없는 종교용어를 다반사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점이었다.
     '요 3:16 전도법'은 간단하면서도 명확히 전도하는 보기 드문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책자 전도가 아니므로 일반적인 교인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제 5 장에서는 본 연구자가 개발한 "잃어버린 자"를 위한 새로운 전도 소책자를 소개하였다. 본 연구자의 소책자는 부록에 보는 바와 같이 몇 가지 주안점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첫째는 일반 교인들이 간단하고 쉽게 전도할 수 있는 소책자, 둘째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는 소책자, 셋째는 대화식 전도를 하는 소책자, 넷째는 한국교회의 "잃어버린 자"들을 인도하는 데 효과적인 소책자, 다섯째는 복음의 네 가지 내용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죄, 예수 그리스도, 믿음   을 담고 있는 소책자, 여섯째는 내용과 함께 그림을 보여주는 소책자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이 소책자는 보수적인 신학을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사용 면이나 내용 면에서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 교인들이 쉽게 전도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고, "영생", "구원" "영적" 등 한국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피했으며, 현대인의 성경을 인용하여 피전도자에게 쉽게 이해되도록 배려했고, 대화식 전도이므로 피전도자를 전도에 끌어들일 수 있으며, 특히 "잃어버린 자"를 생각하고 내용을 만들었으므로 "잃어버린 자"가 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제 2 절  제 안

     첫째, 한국교회에 많은 수의 "잃어버린 자"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이들을 찾고 돌이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과 방법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둘째, 지역 교회가 연합하여 "잃어버린 자"를 찾는 연합행사를 했으면 하고, 적어도 일 년에 한 차례라도 개최했으면 좋겠다. 
     셋째, "잃어버린 자"를 위한 좋은 서적들이 많이 나와서 그 책들이 그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고, 그들이 돌아오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넷째, 본 연구자가 개발한 소책자처럼 우리 한국의 목회자와 성도에 의한 전도 소책자가 앞으로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리하여 한국인을 잘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전도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다섯째, 지금까지의 전도법들은 전도훈련이 너무 어려웠다. 이제 전도자가 전도할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는 쉬운 전도법과 쉬운 전도 소책자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여섯째, 이미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사영리, 다리 전도법, 전도폭발 등의 전도 소책자와 전도법들이 우리 한국 사람에게 잘 맞을 수 있도록 개정되었으면 한다.
     일곱째, 피전도자가 이해하기 쉬운 전도 소책자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며, 특히 영·유아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각 연령층에 맞는 소책자가 나왔으면 한다.  
     여덟째, 특히 각 연령층에 맞는 "잃어버린 자"를 위한 전도 소책자가 개발되었으면 한다.
부  록
잃어버린자들을 위한 전도소책자

 

 

 

 

 

 

 

1.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무척 사랑하셔서"
(요3:16)라고 했습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러면, 왜?
               당신을
               하나님이
                사랑하실까요?

"그는 너희 아버지요 창조주가 아니시냐?"
       (신32:6)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2.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아십니까?
     
                       "우리는 다 길 잃은 양처럼 제각기 잘못된 길로
                         갔으나"(사53:6)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떠나 살아왔다면
                        그것이 죄입니다.

                      죄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9:27)고 했으며,
     심판 후에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마25:41).

3.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아십니까?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한번
                          죽으신 것은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이다"(벧전3:18)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①당신을 대신해서
                            벌을 받으시고
                         ②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셨으며
                         ③당신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4.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아십니까?
                   
 ①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
모든 일을 자신의 힘으로 살아
가기 때문에 삶의 혼란과 불안
을 느끼게 됩니다.

                               ②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
                         모든 일에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공급받아 살아가기 때문                           에 삶의 안정을 느끼고 소망                           을 가집니다.

                         어느 쪽이 당신의 인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까?
                         또 어느 쪽에 속하고 싶으십니까?


5.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분(예수님)은 자기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1:12)고
                       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①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것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②하나님 앞으로 돌아오
                     는 것이며
                     ③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님을 당신의 마음 속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④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보라, 내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3:20)

당신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을 때 행복했습니까?

이제 예수님을 모시고 새 삶을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도하신다면 그분이
당신 안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  도  문

 

본 소책자는 잃은 양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으며, 쉬운 이해를 위해 <현대인의 성경>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포항성안교회는 언제나 여러분의 상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담전화:054-244-4578. 인터넷 http://siloam.han.ac.kr
펴낸곳: 포항성안교회. 지은이: 정창석. 일러스트: 정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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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inux.kccc.org/home/history/his2.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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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a of
Chang-Suk Chung

 

    Present Position
      Senior Pastor of Pohang SungAn Prebyterian church, Kyungbuk, S. Korea
   
    Personal Data
            Birthdate:        November 6, 1956
            Birthplace:       KyungBuk-Do, S. Korea
            Marital Status:   Married to Rocky Kim
                             with one Children, HanByul
            Home Address:  357-13, Yonghung 1-Dong, Buk-ku, Pohang-Si,
                             S. Korea
            Denomination: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Ordained:        September 9, 1987

    Education
            B.A.:     Chongshin University, Seoul, Korea, 1983
            M. Div.:  Hapdong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Suwon, Korea, 1985
            D. Min.:  Fuller Theological Seminary, Pasadena, CA, U.S.A. 2003

    Personal Experience
      2/1984  to  8/1987       Minister
                              of Pohang SungAn Presbyterian Church.
      9/1987 to present        Senior Pastor
                              of Pohang SungAn Presbyterian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