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정리
1. 중풍병자를 고치심(1-8)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
사람들에 데리고 오거늘,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서기관-신성모독
예수님- 악한 생각을 하느냐?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와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중에 어느것이 쉽겠느냐?
인자가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2. 마태를 부르심(9-13)
마태가 세관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의 집-앉아 음식을 먹음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님-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호6:6)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3. 금식 논쟁(14-17)
요한의 제자들-우리와 바리새인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님-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되느니라.
4. 한 관리의 딸의 죽음과 혈루증 여인의 기적(18-26)
한 관리-와서 절하며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니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는 여자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지를 만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님-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피리 부는 자,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사람들이 비웃음
소녀의 손을 잡으심, 일어나는 지라.
5.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심(27-31)
두 맹인-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내가 능히 이 일 할줄을 믿느냐
맹인-주여 그러하오이다.
예수님-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그 눈을 밝아진지라.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6.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심(32-34)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
예수님-귀신이 쫓겨남,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함
사람들-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바리새인-저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더라
7. 예수님의 사역의 현장(36-38)
예수님 모든 도시, 마을에 두루 다니심
그들의 회당에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심, 모든 병,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심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시니,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기진함이라.
제자들에게-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오늘의 교훈
1. 예수님의 마음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의 강력한 마음을 가슴깊이 새긴다.
예수님은 그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그 모습으로 계신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분이시다.
그 마음을 알아야 중풍병자를 고치심도, 죽은 소녀를 고치심도, 열두해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치심도,
말 못하는 소경을 고치심도, 다 이해가 된다.
그 마음 속에 내가 있고,
그 마음 안에서 자유하는 것이 내 존재의 자유인 것이다.
2. 예수님은 내 존재의 신랑
종교는 사람을 괴롭힌다.
수행을 하게 하고, 고통을 강요한다.
바리새인들과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안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계신 사람을 금식할 이유가 없다.
신랑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도 금식이 요청될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금식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의 현장을 만드는 것이 우선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자리이다.
3. 제자를 향한 열망
세상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기진하는 세상이다.
이것을 넘게하느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문제는 추수할 일꾼이 없다는 것이다.
추수는 예수님 혼자서 할 수 없다.
함께 추수할 제자가 요청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속에는 불쌍한 생명들에 대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해 갈 동역자를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자리했던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인가?
나는 예수님의 제자를 삼고 있나?
나와 제자들은 세상의 불쌍한 자들, 고생하는 자들에게 진정한 복음을 주고 있나?
이 사역의 현장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한 사역의 현장임을 명심하고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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