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세계는 깊고 오묘하다.
마치 산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깊고 오묘하듯이 신앙의 세계는 그 깊이를 헤아릴수 없다.
그러나 그 깊고 깊은 신앙을 하나로 정리하게 하는 것이 신앙의 지혜이다.
이 지혜를 가진 자만이 신앙의 넓이와 깊이와 길이와 높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마치 산이 깊고 깊어도 그 산을 지칭하는 분명한 기준이 있듯이 말이다.
a,
신앙의 절대주는 유일한 생명이시다.
The Life
생명
有
스스로 있는 자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단어이다.
이 有에 대한 신앙이 신앙의 절대 신앙이다.
모든 만물의 시작이 無냐? 有냐?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이 신앙의 근본이다.
無라면 無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존재의 의미도,
목적도,
가치도 다 소용없다.
無에서 무얼 찾는단 말인가?
有라면 有하다.
있다면 무언가를 찾는 것도 의미가 있고,
그 찾는것 속에 진정한 의미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은 有를 믿는다.
유일한 有
이 有가 모든 것을 有하게 하셨다.
그분은 전능자이시다.
그분은 온전한 분이시다.
그분이 뜻과 목적을 갖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 有를 믿는 것이 신앙의 1번이다.
이 주제안에서만 신앙은 의미가 있다.
그 有를 믿는다면 그 有는 지금 有하시고,
지금 전능하신 분으로 有하시는 것이다.
b.
신앙의 절대주제는 그분의 마음, 뜻, 의지의 앎이다.
그 의지(will)가 바로 에덴동산이다.
에덴은 이분이 이름 붙여준 최초의 이름이다.
그 이름속에 그분의 꿈과 소망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에덴동산은
희락의 동산
기쁨고 즐거움의 동산이다.
하나님은 이 꿈을 이루시기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 하나님은 하루하루의 창조 의미를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끝맞추신다.
그 과정 과정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목적을 이루실 구도를 완성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마지막 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왜 그런가?
하나님의 가슴속에 자리하는 에덴동산의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실 위대한 계획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슴속엔 에덴동산이 자리한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이루는 삶을 꿈꾸신다.
아담이 타락해서 에덴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 에덴을 이루시길 소망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솔로몬을 통해 그 나라가 이루어지길 소망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신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인간에게 주신다.
그분이 주시는 복음이 무엇인가?
그 복음이 바로 에덴동산의 회복의 소식인 것이다.
에덴동산의 회복
희락의 동산의 회복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의 회복
이것이 기독교의 절대진리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 성령님을 보내신다.
성령님은 희락의 영이시다.
성령님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는 기쁨의 샘을 터트리는 분이시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이 모든 명령은 기독교인에게 주시는 절대명령인 것이다.
이것을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이 신앙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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