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일기

내 소명의 자리

예인짱 2011. 6. 9. 08:26

 

 

 

 

하나님은 나를 불렀다.

하나님은 내게 구원을 주셨다.

난 이미 구원받음안에 사는 축복을 누리며 사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내겐 무언지 모를 긴장이 흘렸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하나님께 보여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부담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나의 소망이기도 하였지만, 소망보다는 부담으로 이해해야 될만큼 내 속에 터 잡았다.

 

신앙을 시작한 내게 두가지 소망이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을 하는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 일등이 되고 싶은 심정이 가득했다.

또하나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의식이었다.

실제 성공에 대한 의식은 마치 본능처럼 신앙하기 이전부터 내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나의 가치관은 나의 전 생애를 통해 영향을 미쳤다.

교단을 선택한 것도,

성경적 세계관을 갖게 된 것도,

그리고 내 삶의 스타일까지 바꾸어 놓았다.

 

내가 쌓아갔던 신앙이 탑은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하나님이 내게 가장 강하게 거부했던 것은 인정받는 신앙을 하는 것이었다.

실제 난 하나님께 인정되지 않은 신앙을 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였고, 그런 사람을 가까히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은 나를 크게 부수셨다.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과 별개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나의 호, 불호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은 내게 예수님을 주셨다.

예수님은 나의 가장 인정받는 그 행위 위에 계신 분이요,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인정받지 못함 아래 있는 그것까지도 다 품으시는 높고 깊은 분이심을 알게 하셨다.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의 의미를 깊게 깊게 담게 되었다.

 

내가 의지하고 따라 갈 분이 오직 예수님 이심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예수님이 나의 포도나무요, 나는 그분의 가지임을,

그 가지로 사는 것 자체가 가장 온전한 구원안에 거하여 사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근본임을,

그 안에 영원히 거하는 축복을 입은 존재가 바로 나임을 알게 되었다.

오직 나의 구원자는 예수님이시요,

예수님의 품안에 거함이 구원의 시작이요, 끝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하나님께 인정받을 그 어떤 주제도 없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자유자가 되었다.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나를 매이거나, 묶거나 할 수 없는 나는 존재의 자유를 가진 자가 된 것이다.

 

그런 내게 찾아온 주제가 바로 성공이라는 주제였다.

난 성공하고 싶었다.

난 내가 꿈꾸어 오던 인생을 살고 싶었다.

내 속엔 그 무엇과도 융합되지 않는 성공에 대한 그림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성공의 그림을 없애시길 원하셨다.

그 성공조차 또 다른 야심이요, 율법적인 요소임을 알게 하셨다.

 

난 기도중에 버렸다.

성공의 꿈을,

성공의 꿈은 나를 살려내는 힘의 원천도 되었지만,

나를 늘 스크레스를 받게하는 올무의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삶은 오직 하나,

항상 기뻐하라는 주제안에서 평온과 안정과 감사의 삶을 사는 것이 내 존재의 값이었다.

그리고 그안에서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현장을 만드는 것이 내 삶의 본질이었다.

 

그것이 예수님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내가 만난 분이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자리와는 너무도 다른 신비 그 자체였다.

 

예수님의 주제가 생명을 얻음에 투영되었다면,

성령님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위대한 가능성을 발휘시키는 힘이었다.

 

난 예수를 만났고,

그 예수안에서 모든 것을 초연히 받아드리며,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받는 삶을 살게 된 것었다.

 

그런데 성령님은 예수님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른 정서로 나를 사로잡아 왔다.

 

넌 할 수 있다.

성령님은 너를 도우신다.

진리의 영,

능력의 영,

지혜의 영,

지식의 영,

이 영이 너와 함께 하시고,

이 영이 너를 내가 한 일을 하게 하시고,

이보다 더 큰 일도 하게 하시는

대 변화를 꿈꾸시는 것이다.

 

그 앞에 있는게 나라는 존재인 것이다.

 

난 예수로 다 이루었다.

난 예수로 인해 무엇의 부족도 남은도 없이 다 이루어진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 내게 성령님은 찾아오셔서,

내 생에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뜻 앞에 거하는 것이 오늘 나의 나됨의 자리임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난 오늘 예수안에 다 이루어진 존재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며 사는 삶의 현장을 사는 존재가 된 것이다.

 

성령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너 어떤 존재로 살길 원하니?

한달란트를 가진 자로 살길 원하니?

아님 다섯 달란트를 가진 자로 살길 원하니?

난 대답한다.

 

다섯 달란트를 가진 자로 살길 원한다고,

그것을 이루는 길이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 사는 길임을,

 

난 40살 모세를 살았다.

내 의지와 결심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돕는다는 결심을 갖고 생을 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자리를,

그 자리는 나를 인정받음에서,

성공이라는 주제에서 나를 뭉글트렸다.

 

난 주저앉은 80세의 모세가 된 것이다.

난 말을 할줄 모르고,

난 아무런 힘도 없다고 주저앉아 있는 모세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그 모세를 일으켜 세워 바로 앞에 보내신다.

새파란 모세가 아닌,

이미 노쇠한, 힘도, 정력도 다 잃어버린 모세를 보내신다.

손엔 지팡이 하나와 나귀새끼에 가족을 실고 바로 앞에 서게하신다.

그게 하나님의 방법이다.

 

오늘 내 모습이 그러하다.

난 이미 나이가 많다.

난 이미 마음을 닫았다.

난 이미 성공의 꿈을 접었고, 난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하다.

 

그런 내게 말씀하신다.

넌 어떤 사람으로 죽고 싶니?

넌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난 대답했다.

정말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고 싶다고,

복음이 살아있고,

사람이 살아있고,

교회가 살아있는 그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고 싶다고,

그것이 내 본능이라고,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그것을 하라고,

내가 돕겠다고,

그게 오늘 내 삶의 자리이다.

 

그런데 왜 난 주저 앉아 있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좋다고 펄펄 뛰어도 부족할 판인데,

난 주저앉아 있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참 아이러니칼한 일이다.

그토록 원했던 일인데,

왜 주저하는지?

알 수 없다.

 

난 할거다.

난 성령님을 믿는다.

나를 도우시는 성령님을,

나를 통해 위대한 기적을 이루시는 성령님을 믿는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한걸음 한걸음 노력해 나갈 때,

위대한 성령의 역사가 함께하는 삶의 현장을 체험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한발짝씩 나아가자~1

성령님~!

인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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