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열며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난 왜 이렇게 사나?
내가 해야 할 일을 이것밖에 못하나?
내 삶의 끝은 무엇인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문득 지난 해 오늘 쓴 일기를 봤다.
그런데 그 때의 일기도 똑같은 고민을 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난 언제나 그렇게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당황됐다.
무언가 나를 고쳐야 할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난 평생을 이렇게 살게 되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내가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난 오늘을 사는 존재라는 깊은 중심을 갖고 있다.
지금 여기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속엔 이상한 논리가 있다.
난 Being의 인간을 꿈꾼다.
그러나 그 Being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Doing을 잘 해야 한다는 공식이 깊이 성립되어 있다.
내가 찾는 것은 Being이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것은 Doing이다.
여기에 갭이 있다.
하나님이 만드시려는 사람은 Being의 인간이다.
그것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이 만드시려는 Being의 인간은 예수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 모든 길이 예비되어 있는 생명의 인간이다. 영원한 속죄와 깨끗함의 존재로의 전환이 예수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안에 거함이 나의 존재의 값인 것이다.
이것이 Being의 인간의 핵심주제이다.
하나님은 이 Being의 인간에게 성령을 주셨다.
성령님은 내 소욕이 아닌 성령의 소욕을 좇게 하신다.
성령의 소욕은 능력을 주신다.
기쁨의 능력, 사랑의 능력, 그리고 모든 삶을 능력있게 하는 힘을 공급해 주신다.
그 공급이 내게 자리하는 존재가 된 것이 곧 성령의 인간인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성령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그 가능성안에 거함이 곧 하나님이 내게 주시려는 Being의 자리이다.
하나님은 내게 소중한 가치를 입히셨다.
내가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가의 깊은 자리이다.
그 자리의 핵심이 하나님 존중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자리,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하나님이 높이는 것을 높이는 자리를 가진 자로 서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소망한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것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에 내 인생이 헌신하길 소망한다.
이것이 나의 나됨의 자리인 것이다.
나는 하나님안에서 온전한 Being의 존재가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나됨의 가치인 것이다.
그안에서 내가 소망하는 것들,
내가 계획하는 것들은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한 일들의 영역인 것이다.
Being의 인간으로 살아가자~!
이것이 내 생명을 향해 가지신 하나님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