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상담심리학

엄마를 통해 아이의 지아가 만들어진다.

예인짱 2009. 8. 26. 15:08

엄마를 통해 아이의 지아가 만들어진다.  

 

 

0-6세까지의 인격발달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엄마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이다.

이것이 잘 되면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또한 다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이때 원시적인 인과법칙을 배우게 되는데 배가 고프면 울고, 괴로워서 울었더니 누가 와서 해결을 주었더라.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세상에 대해 불신하게 되고 자신의 무능력함을 갖게 된다.

이때 충격이나, 깜짝 놀라는 일, 사건이 없어야 한다. 충격으로 인해 지각 능력이 떨어지고 정신분열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물론 7~13세(사춘기를 접어들면서 정신적인 구조는 아버지에게로 감)까지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의 돌봄도 참 중요하며 필요하다.


  절뚝발이 나의 엄마에게서 여성을 느꼈어요!


  30년을 넘게 나의 엄마를 자랑해 왔다. 내가 어린 시절 살던 집에 불이 났을 때 금덩이와 돈보다도 성경책을 들고 나온 엄마를 멋진 신앙인이라며 힘주고 힘주어 자랑해 왔었다.(나의 엄마는 절뚝발이가 아닙니다라고 외쳤던 것이다) 엄마를 존경한다고 그리고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이다.

  나는 나의 형제 2남 4녀 중 유일하게 외모(와 성격이)가 가장 많이 닮았으며 엄마에게는 남들이 말하는 효녀였다. 하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 힘들어 내겐 평생 갖고 지고 가야할 짐 같았다. 결혼해 엄마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생각하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삶의 실패자인양 슬퍼할 때가 많았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내 내면에는 심한 수치심과 불안함이 늘 따라다니며 날 괴롭혔다.

  엄마가 나에게 상처를 준적이 없다며 용서할 것이 없었던 엄마는 내 자신 안에 이미 내가 되어있었다.

  언젠가 주님은 내게 세미한 내면의 음성으로 나를 재촉하셨다. “나비가 벗어놓은 저 번데기처럼 너의 엄마의 옷을 벗으라고, 그럼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수 있단다.” 주님은 소망을 주셨다.

  치유를 받으며 나의 Life history를 적어내려 갔다. ‘나의 엄마는 급수는 없지만 다리를 약간 절으십니다.’ 남편은 내가 어렸을 때 엄마 다리 저는 것이 챙피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표현이 너무 느끼하다고 지적했다. 난 강하게 부인하며 전혀 챙피하지 않았고 지금도 문제가 안 된다며 폴짝 뛰었다. 내 자신의 반응에 나도 놀랐다.

  며칠 후 내안에 진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난 직면하며 인정했다.

  “나의 엄마는 다리를 저는 절뚝발이입니다. 다리가 정상이 아닌 한쪽 다리를 저는 절뚝발이입니다, 나의 엄마는 다리 한쪽이 병신입니다. 난 절뚝발이의 딸입니다. 장애자인 절뚝발이 엄마가 나를 낳았습니다.”라고 200명에 가까운 대중 앞에서 나를 드러냈다.

  이제까지 내 입으로 엄마 다리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고 남에게 말해본 기억이 없다. 엄마가 아파할까봐 내안 깊숙이 아픔을 넣어 내 엄마를 가슴에 묻고 엄마의 수치를 그대로 끌어안고 절뚝발이로 살았다. 그리고 그 수치를 가리느라 포장하고 또 포장하기 위해 얼마나 내 자신을 학대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내 몸 구석구석 마음에 드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머리카락은 너무 가늘어 가라앉는 머리라 싫었다.

  얼굴은 길게 생겨 싫었다.

  눈을 찢어져서 싫었다.

  코는 콧구멍이 커서 싫었다.

  입은 작고 튀어나와 싫었다.

  목은 길어 싫었다.

  어깨는 넓어 싫었다.

  가슴은 커서 싫었다.

  엉덩이는 펑퍼짐해 싫었다.

  특별히 다리의 무릎과 종아리에 컴플랙스가 심해 괴로워할 때가 많았고 너무 싫었다.

  발은 크고 발가락이 길어서 싫었다. 눈에 보이는 작은 약점 아닌 약점은 클로즈업되어 내 눈에 학대되어 보였다.

  나의 사고는 장애자의 사고였다. 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나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고집 센 사람이 되어야만했다.

  남이 뭐라 하지 않아도 내 스스로 장애자가 되어 있었고, 내가 장애자이기에 남과 똑같이 대우를 받으면 성에 안차 절른만큼 더 주세요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또한 정상이 아닌 절뚝발이 이기에 무엇이든지 잘하고, 완벽하게 보여 가릴려는, 그래야 남과 동등할 수 있다는 건강치 못한 완벽주의가 생겼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누구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이렇게 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간접적인 의미를 가지고 내 자신을 드러냈다.

  나도 엄마가 되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라고 나 자신을 방어했고, 나는 정상인이며 장애인이 아니라고 확인해 주고 싶었다.

  내가 절뚝발이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내 자신에게 속고 남을 속이고 남에게 속았다.

  내가 절뚝발이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아버지의 아내가 되어있었고 음란했다.

  절뚝발이 엄마보다 정상인 내가 더 낫다 생각했고 아버지에게 관심을 끌어 아내 역할을 해왔던 것이 얼마나 죄악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마음의 장애는 죄악이며 자녀에게 그대로 대물림되어 있었다.

  몇 년 전 큰딸아이 학교의 운동회 때 스타킹을 신고 발가락이 보이는 구두를 신고 갔다.

  학교에서 나를 보자마자 ‘엄마’하고 안겨야 할 딸아이의 눈은 나의 발로 갔다. “엄마 양말 신고 오지 그랬어요.” 엄마인 나는 충격이었다. 내 모습을 답습하며 나의 수치를 그대로 받아 흉내 내고 있었다.

  내 엄마안의 어린아이는 나에게 ‘사랑해주세요. 사랑해줘’라고 호소했고 난 그 소리를 들어주었다. 내가 아니면 도와줄 이가 없다는 착각 속에 엄마를 이겨왔다. 나의 엄마는 내 앞에서 사랑받고 있는 아이였다. 그래서 당신의 딸 앞에서 늘 약해보였다. 그래야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엄마의 딸이며 엄마가 주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그 사랑은 장애 입은 사랑이었다.

  육신의 장애를 부인하는 것은 마음의 장애를 초청하며 더 큰 마음의 장애를 갖게 한다.

  절뚝발이 엄마가 내 엄마 맞습니다. 엄마로 인정하고 난후 나의 사고가 나의 마음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구석구석의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고 아름답게 느껴져 남 앞에 자유하고 당당해졌다.

  나를 나타내지 않아도 나인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며, 포장하지 않아도, 완벽하려고 하지 않아도 나를 그대로 인정하는 여유와 힘이 생겨졌다.

  신기하게도 나의 엄마 치유 후 딸아이 샤론이와 아들 아론이가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자신감 있는 대범한 아이라고 선생님들의 칭찬을 들어오고 있다.

  불쌍하고 안쓰러워 엄마의 모든 가방을 들어주던 난 생전 처음으로 나의 엄마에게서 여성을 느꼈다. 엄만 엄마고 나는 나이다.

  더 이상 연민을 받아야할 불쌍한 엄마가 아니었다.

  절뚝발이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엄마를 미워하고 있었던 나는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고 엄마의 자궁을 통해 나를 낳아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왜? 하필!! 절뚝발이 엄마가 내 엄마이어야 했습니까? 하나님께 불평하고 불평했던 삐뚤어진 내 마음의 회개와 함께 기쁨과 감사를 얻게 되었다.

전인치유 사역자 정에스더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