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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한규화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5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세상 부모 중 몇 명이나 ‘부모됨’을 준비할까? 청춘남녀의 정체성이 엄마 혹은 아빠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품에 안은 첫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엄습하는 아득한 기분. 부모 유경험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느꼈을 법한 감정이다.
배운 바 없으니 되는 대로 키우자. 옛날 부모들은 그랬을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좀 다르다. 귀하고 귀한 내 아이 기왕이면 훌륭하고 번듯하게 자라도록 돕는 게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략 없는 전투의 승률이 높을 리 만무하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신의 화법으로 자녀와 대화하고 자신의 꿈을 자녀에게 투영한다. 그래 놓고 자위한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도 좋을 거라고 말이다.
힘이란 뜻의 한자 ‘역(力)’으로 끝나는 단어들이 있다. 학력·재력·체력·매력·통솔력·추진력·창의력…. 하나같이 타고나거나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공 들여 꾸준히 갈고닦아야 높아지는 자질이다.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저절로 되는 것처럼 보이는 부모 노릇에도 이 ‘역’자를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부모교육 전문가로 활동 중인 송지희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이런 내용을 담아 지난 4월 ‘명품자녀로 키우는 부모력’이란 책도 펴냈다.
우물쭈물하다 대책 없이 부모가 된 후 우왕좌왕하는 이들에게 ‘부모력’이란 키워드는 솔깃하다. 특히 자녀와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부모라면 더더욱 그 내용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주간조선은 저자 송씨를 만나 부모력의 개념과 등장배경을 물었다. 책 곳곳을 뒤져 실생활에서 적용할 만한 상황별 대처요령도 정리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선 나름대로의 방황을 거쳐 자녀교육 안정기에 접어든 ‘부모력 9단’ 3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여기까지 읽은 후 ‘우등생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듯 좋은 부모가 되는 데도 공부가 필요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면 그걸로도 이 기획은 절반쯤 성공이다.
‘부모力 전문가’ 송지희의 경험담
“아이 낳으면 저절로 엄마 될 줄 알았는데… 분리불안 겪는 딸 보고 ‘부모 공부’시작”
‘긍정의 씨앗을 심는 사람’. 송지희(44)씨가 건넨 명함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회사 이름인가요?” “아뇨, 제 닉네임이랄까요. (웃음) 강의 나갈 때마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에게 긍정의 씨앗을 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명함에도 한번 적어봤어요.”
송지희씨 역시 자기 자식 다루는 법조차 몰라 우왕좌왕하던 평범한 엄마 중 한 명이었다. 대학(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을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일했던 그는 스물아홉에 결혼, 노산을 걱정하는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3개월 만에 임신했다. 결혼한 지 꼭 1년째 되던 날 딸을 낳았지만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준비 없이 엄마가 됐잖아요. 엄마는 애 낳으면 자동으로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애 키우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남편은 너무 바빠 거의 저 혼자 애를 보다시피 했거든요. 산후우울증에 걸렸죠.”
출산 후에도 일을 계속하던 그는 육아로 고민하다 20개월 된 딸을 동네 놀이방에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놀이방에 다녀온 딸이 좀 이상했다. 엄마와 조금만 떨어져도 견디지 못하고 울어댔다. 전형적인 분리불안 증세였다.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금 얘한테 필요한 건 엄마이고 내가 엄마 노릇을 해야 하는 거구나, 깨달았어요.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사건이 계기가 돼 그는 시간적 제약이 비교적 적은 프리랜서로 일을 바꿨다. 남는 시간엔 어떻게 하면 딸과 더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궁리하며 보냈다. 서점을 돌며 육아책을 뒤지고 백화점 문화센터를 기웃거리며 좋다는 강좌를 찾아 듣기도 했다.
딸이 유치원에 들어간 후엔 같은 유치원 학부모들과 함께 교육정보를 나눴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갈증이 생겼다. ‘부모교육 프로그램’이란 게 있단 사실을 안 건 그 즈음이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진학하며 여유가 생기자 그는 본격적으로 이 분야 공부에 뛰어들었다. 여러 곳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을 수강했고 심리상담사·부모교육 강사·동기부여 리더십 강사 등 관련 자격증도 땄다. 제일 도움을 준 건 딸의 존재였다. 초등생이었던 딸은 배운 걸 바로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용지였다. 거짓말처럼 달라지는 딸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보람도 쏠쏠했다.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자 욕심이 생겼다. 배운 걸 더 많은 부모들과 나누고 싶었다. 여기저기 강의할 만한 곳을 찾아다녔고 한번 기회를 잡으면 열과 성을 다해 강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공공도서관·백화점 문화센터·기업·학교·종교단체…. 여기저기서 강의 의뢰가 쏟아졌다. 그렇게 눈 깜짝할 새 6년이 흘렀다.
요즘도 그는 방학 때를 제외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의뢰기관이 요구하는 일정에 맞춰 짧게는 1회, 길게는 6개월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강의해주는 게 주요 일과다. 최근엔 아버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달라는 요구도 늘었다. 그의 일정을 따라 몇 년씩 쫓아다니는 ‘열혈 수강생’도 꽤 된다. 그의 실험대상이 돼줬던 외동딸은 어느덧 중2가 됐다.
책 낼 결심을 한 건 3년 전쯤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모든 부모님을 만날 순 없었어요. 특히 지방 강의는 한계가 있었죠. 강의 내용을 카세트 테이프로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는 어머님도 있었어요. 지방에 있는 올케가 교육 문제로 힘들어하는데 보내주고 싶다고 하더군요. 결국 지난 겨울 모든 일정을 접고 들어앉았어요. 마침 상담사례도 제법 많이 모였더라고요. 2개월 정도 두문불출하면서 책에만 집중했어요. 처음엔 일과 병행해볼 생각이었는데 어휴, 책이라는 게 결코 만만하지 않던데요.”(웃음)
송씨가 남보다 부모교육 관련 공부를 많이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소아정신과 의사나 심리학박사 수준의 학식을 갖췄다곤 할 수 없다. 그건 송씨 자신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번 책도 최대한 실제로 아이 길러본 엄마의 입장에서 쓰려고 노력했다. “이론 100개 알면 뭐해요. 막상 아이와 딱 부딪치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걸요. 그래서 제 책은 일반 엄마들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매뉴얼이나 지침서에 가깝게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부모력(力)’은 이번 책을 쓰며 그가 만들어낸 말이다. “부모는 결코 저절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제가 이쪽 공부를 해보니 정말 그래요. 부모력을 열심히 쌓아 써먹으면 효과도 바로바로 나타나죠. 전 건강을 위해 체력을 기르듯 자녀를 잘 키우려면 모든 부모가 부모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론 부모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력이란 말이 회자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부모 교육에도 때가 있다’고 말한다. “어리면 어릴수록 좋아요. 가장 어려울 땐 사춘기죠. 물론 그때라고 효과를 못 보는 건 아니에요. 단 ‘이자’가 많이 붙죠. 어릴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해야 하거든요. 제가 만날 이렇게 말하고 다녔더니 한번은 제 강의에 임산부가 찾아왔더라고요. 아주 잘 왔다고 칭찬해 드렸어요.”(웃음)
그가 처음 부모교육을 시작했던 때와 요즘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반항’의 시기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자녀의 반항은 사춘기 때부터 시작됐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초등 저학년, 심지어 유아기 때 부모에게 반항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어요. 일종의 반항장애죠. 그건 전적으로 엄마의 잘못입니다. 지나친 조기교육의 영향도 크고요. 특히 어릴 때부터 아이를 쉴 틈 없는 일정으로 몰아넣는 경우 아이의 반항심이나 분노가 한순간 폭발할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그에게 워킹맘을 위한 ‘맞춤 육아 조언’을 부탁했다. “양육자를 잘 고르는 게 제일 중요해요. 친정이나 시댁 어른께 맡기더라도 되도록 자신과 사이가 더 좋은 쪽으로 선택하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장기간 정성으로 맡아줄 수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해요. 유아기는 타인과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라서 이때를 놓치면 사회성 발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아무리 일이 바쁘고 힘들어도 웬만하면 같이 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루 30분씩만 떼어서 집중적으로 놀아주면 24시간 함께 있는 것 못지않은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란 말도요.”
그는 육아에서 소외되기 마련인 아빠를 위한 충고도 들려줬다. “엄마들 중엔 아빠가 하기 어려운 ‘미션’을 요구하는 분이 많아요. 예컨대 책 읽어주라는 건 남자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전 아빠들을 만나면 몸으로 많이 놀아주라고 얘기합니다. 무등 태우기, 비행기 놀이, 김밥말이 놀이 같은 것들요. 좀 더 크면 자전거나 축구 같은 스포츠를 함께 해도 좋고요.”
송씨는 올 봄 한 단체가 주최하는 대학생 리더십 교육에 강사로 나섰다가 충격을 받았다. 명색이 대학생인데 하나같이 목표도 없고 유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 그는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자녀를 무조건 믿어주라’고 강조한다. “부모가 먼저 믿고 기다려주면 애들은 자발적으로 큽니다. 믿지 못해 사사건건 간섭하고 통제하면 제 힘으론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로 크고 말죠. 앞으론 평균 수명 120세 시대라잖아요. 아이들이 그 세월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가려면 자기계발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좀 못해도 지켜봐 줘야죠. 제가 늘 강조하지만 자녀를 명품으로 만드는 건 100% 부모 할 노릇이에요.”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사진 =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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