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건강한 모델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5중복음

예인짱 2009. 2. 5. 10:58

1. 중생의 필요성

1)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음으로써 창조하셨다 (창 2:7).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영혼을 가진 특별한 존재, 영체(靈體, Spiritual Being)인 것이다.
영적 존재인 인간은 영과 함께 혼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다(살전 5:23). 처음 창조되었을 당시 인간의 영과 혼과 육의 관계는 영이 하나님과 교제해서 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혼, 즉 자아 의식을 다스리고, 혼은 그 말씀에 따라 육, 즉 감각적인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를 통하여 영광받기 위함이셨다(사 43:7). 하나님께서는 첫사람 아담에게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세상을 선물로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뿐이었다.

2) 사단의 유혹과 인간의 타락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과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한 법,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법을 세우셨다(창 2:17).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정법(正法)은 절대 예배, 절대 신앙, 절대 순종, 절대 헌신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정법과 뜻대로 살아갈 때 인간은 참 삶을 누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뱀을 통하여 하와에게 접근한 사단의 유혹에 빠진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단의 생각을 중심에두게 되었다. 사단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시 119:68), 정직하시며(시 33:4), 공의로우시다는(신 32:4)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을 의심하게 하였다. 의심이 들어온 하와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사라지고 불신앙과 불순종만 남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바라보자 정욕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고, 결국 그 정욕을 좇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파괴되고 말았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인간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는 전적인 타락이다. 이 타락과 죄는 모든 인류에게 미치이므로(롬 3:9),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스스로 죄와 사단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담의 타락은 철저한 절망뿐인 것이다.

3)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께서는 뱀과 여자와 아담에게 각각 심판의 말씀을 하셨다(창 3:13-19). 뿐만 아니라 환경의 주인인 아담의 타락은 자연에게도 영향을 주어,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척박한 토질로 바뀌었다(창 3:18).
이와 같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형벌을 받은 것은 그 당대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후손인 모든 인류에게도 유전되어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죄 아래, 형벌 아래 있게 되었다. 모든 인류의 영은 아담의 영처럼 죽었고 모든 인간의 육도 아담의 육처럼 땀 흘려 일을 해야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범죄의 결과 인류는 질병과 고난으로 고통받게 되었고, 자연은 인류를 향해 가시와 엉겅퀴를 내었다. 아담과 하와와 뱀과 자연에 대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은 형벌로서 나타난 것이다.

 

2. 중생의 길

인간이 죄와 형벌과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얻고 해방되기 위해서는 구원이 필요하다. 인간은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정죄를 받아(롬 5:16) 모두 죄인이 되었으므로 스스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롬 3:23). 따라서 인간은 구원이 절대 필요하지만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다. 그런데 이처럼 비참한 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구원에 관한 계시를 주셨고 그 계시를 성취하셨다.

1) 구원의 예시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불법을 행하고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께서 구원을 예시하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 말씀에서 여자의 후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음을 밝히고 계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통해서도 구원을 예시하셨다(창 12:1-3).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 땅의 모든 족속이 얻을 복은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복, 즉 구원의 복이다 (롬4:18-22).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서(롬 4:11) 복의 근원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아담과 하와를 통해, 또 아브라함을 통해 예시하셨던 구원의 약속을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야웨)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야웨)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사 11:1-2)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된 말씀 그대로 자신을 만민 구원을 위한 제물로 삼으셨다. 그는 살이 찢김으로써 영생을 주는 산 떡이 되셨고(요 6:51), 언약의 피를 흘림으로써 죄지은 인간에게 죄사함을 주셨다(마 26:28). 그는 모든 구속 사역을 십자가 위에서 이루셨고(요 3:13-15),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었으며(롬 1:4), 그의 부활로 모든 믿는 자를 거듭나게 하신다(벧전 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실 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려져 있던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한 구원은 네 가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첫째,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인간의 죄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사 53:5).
둘째,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 준다(롬 5:8).
셋째, 한 인간의 가치가 어떠한가를 보여 준다(마 16:26).
넷째, 용서의 대가가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사 53:6).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거가 된다(히 5:8,9). 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므로(딛 2:11)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요 3:16) 구원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복음이며, 이 복음을 믿는 자마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엡 1:13).

 

3. 중생의 방법

1) 중생의 조건
복음의 초청에 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회개와 믿음이다. 회개와 믿음은 동시에 일어나는 한 사건의 양면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회개의 능력을 주시고(행 11:18), 성령을 주셔서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 있게 하신다(막 9:24).

구원에 이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완전한 회개이다. 세례 요한이 외친 첫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였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예수님의 첫 말씀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였다. 또한 성령 강림 후 사도 베드로도 "회개하고 죄사함을 얻으라"(행 2:38,3:19)고 외쳤다.

그 외의 많은 성경 구절에서도 진실된 마음으로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심을 증거하고 있다 (행 11:18; 고후 7:10; 요일 1:9). 그러나 우리의 배후에서 마음을 감동 감화시킴으로써 회개하게 하시는 이는하나님이시다. 그것은 또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이기도 하다(롬 2:4; 딤후 2:25).

구원에 이르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믿음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갇혀 있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증거하였으며, 로마에 있는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라고 썼다.
이 구원의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위에 하나님의 믿음이 은사로 주어질 때 생겨난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는 믿음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자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이끈 자"(요 6:44)라고 하셨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고 있는데, 이는 믿음을 만들어 내시고 또 우리에게 믿음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는 뜻이다. 이러므로 구원의 믿음은예수님께서 그 말씀으로 우리 마음속에 만들어 주시는 은혜요 선물인 것이다.

2) 중생의 수단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만백성을 향하여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회개와 믿음으로 먼저 응답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주라고 확실히 믿는 믿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고전 12:3).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아 우리의 영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감화 감동시키고 거듭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요 3:5-7).
우리가 구원을 얻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죄를 책망하심으로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하고, 의에 대하여 책망하심으로 우리의 행위로써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써 우리가 의롭게 됨을 깨닫게 하며, 심판에 대해 책망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미 마귀가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요 16:8-11),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들어 오셔서 일하시는 성령의 사역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도, 구원의 역사를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 주인이 되시는 상태를 말한다. 죄를 지음으로 사단의 권세 아래 속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순간 그 종된 상태에서 벗어나는 사건을 '거듭난다'고 하는 것이다. 즉 사단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셔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영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이다(롬 8:9,15,16; 갈 4:6).

 

4. 중생의 결과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가?
첫째,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게 된다(롬 8:11).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성령을 모신 마음은 그리스도의 평강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어 미움 대신 사랑이, 절망 대신 소망이, 죽음대신 생명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삶 또한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는 고백을 하게 된다.

둘째, 죄의 세력에 대해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는 담대한 선언을 하게 된다. 이렇게 선언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롬 8:1,2).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세력에 눌려 사단의 노예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된다. 주를 믿기 전에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였으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 2:5),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12)를 주셨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다. 새로운 피조물이 받는 복은 무엇보다도 영혼이 잘 되는 복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된 우리는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요삼 1:2) 되는 복을 누리게 되며,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요 10:10)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들이는 모든 새로운 피조물은 영과 육과 범사가 잘 되는 삼중구원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중생을 체험한 신자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권능을 얻고 복음을 증거하게 되며, 또한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역사를 힘입어 죄악의 권세와 본성적인 타락에서 벗어나 성결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메마르고 소극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감격과 감동이 넘치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성령충만의 복음이다.

1.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

1)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
성령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과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삼위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초대교회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의 얼마를 감추고마치 전부인 것처럼 사도들을 속일 때 베드로는 성령을 속임이 곧 하나님을 속임이라는 말로 성령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였다(행 5:3,4).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동일한 하나님의 반열에 세워 놓으심으로 성령님이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한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여 주셨다.

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다. 성경은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속성인 영원성(히 9:14), 전능성(눅 1:35), 전지성(고전 2:10), 무소 부재하심(시 139:7,8)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2) 인격을 지니신 성령님
성령께서 인격을 지니고 계신다는 깨달음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 생활이 보다 깊어지고 능력이 따르며 현재적인 열매를 맺게 하는 역사가 바로 인격적인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일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격적인 성령님을 모셔들이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 성령님께 예배하게 된다.
둘째, 자신을 성령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겸손한 심령으로 그 앞에 내어 드리게 된다.
셋째,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한 인격이 구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물을 깨달아 아는 지(知)와 희노애락의 느낌을 갖는 정(情)과 사물을 판단하고 자기의 태도를 결정짓는 의지(意志)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지성(롬 8:27; 고전 2:10)과 감정(롬 5:5,8:27; 엡 4:30)과 의지(행 16:6,7; 고전 12:11)를 갖고 계신다.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는 인격적 성품을 갖고 계시므로 어떤 힘이나 능력같은 비인격적 존재가 아닌 인격적 존재이시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되 특별히 다른 보혜사가 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구주로서 보혜사이셨다면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다른 보혜사'가 되셔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도우신다
(요 14:16,17).

 

2. 성령의 사역

1) 불신자와 관련된 사역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6:8-11). 성령님은 예수를 믿지 않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신다. 또한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사람들을 책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의롭게 되며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세상 임금인 마귀를 따르는 사람들은 장차 있을 마지막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시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내세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게 하신다.

2) 신자와 관련된 사역
성령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요 3:5). 성령님은 믿는 사람들 안에 내주하셔서(요 14:16) 가르치시고(요 14:26), 인도하시며(롬 8:14),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신자들을 위해 간구해 주신다(롬 8:26). 그 외에도 신자를 인치시며(엡 1:13,14; 딤후 2:19), 일을 시키시며(행 13:4; 16:6,7; 고전 12:11), 보증이 되시며(고후 1:22; 엡 1:14), 능력과 기름 부음을 주시며(눅 24:49; 행 2:1-4; 고후 1:21; 요일 2:20,27), 몸을 부활시키시며(롬 8:11; 고후 4:14),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거하는 사역을 행하신다(롬 8:16; 갈 4:6).

3. 중생과 성령 세례

중생과 성령 세례는 분명히 다른 별개의 체험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체험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어떤 기간을 두고 일어날 수도 있으나 분명히 다른 체험인 것만은 확실하다. 성경에는 중생의 체험을 한 성도들이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예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택함을 받았으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순종하였음으로 이미 중생을 체험하고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 이외에는 모두 깨끗하다고 하심으로써 그들의 중생을 보증하셨다(요 13: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또한 사도행전 8장 5절부터 13절까지를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자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은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다음 8장 14절부터 17절까지를 보면, 세례는 받았으나 동시에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확실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에 가서 제일 처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는 질문을 하였다. 이 말은 우리가 믿을 때에 자동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성경적 증거를 볼 때, 중생과 성령 세례는 확연히 다른 별개의 체험임을 알 수 있다.

 

4.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

1) 성령 세례
성령 세례는 중생한 자가 주의 사역을 감당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성령께 사로잡히는 영적 체험의 출발이다. 성령 세례의 증거는 다양하나 그 대표적인 외적 표현으로 '방언'을 들 수 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 세례의 체험을 기록한 기사가 네 군데 나와 있는데(2:1-4, 8:4-24, 10장, 19:1-7), 이 중 8장의 사마리아 부흥회 때 외에는 모두 방언을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성령 세례의 대표적 표적은 방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확실한 성령 세례의 증거는 '능력 있는 복음 전파'에 있다. 즉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행 2:14-41).
성령 세례는, 그 증거가 방언이든 혹은 복음을 능력있게 증거하는 전도의 생활화든, 성령 세례를 받은 신자의 마음에 큰 확신으로 경험될 수 있는 사건이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는 그 결과로서 자신에게 허락된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 대표적인 성령의 은사로는 고린도전서 12장 8절부터 12절까지에 기록된 아홉 가지의 은사, 즉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성령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성령의 은사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각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고전 12:7).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신자들은 그것을 소유물로 여기거나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되며, 오직 겸손하게 성령의 뜻을 따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활용케 할 뿐 아니라, 성도의 내적 성품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게 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성령의 열매는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을 통하여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그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롬 8:29; 고후 3:18). 예수님께서는 과실을 맺게 할 목적으로 그의 제자들을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셨다(요 15:16).

2)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외적)와 성령의 열매(내적)가 계속적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것을 성령 충만이라 부른다. 성령 충만한 삶은 곧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이다(롬 6:11).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삶이다(갈 2:20). 나의 몸은 이제 그리스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쓰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나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은 주의 마음이 되고, 나의 의지는 주의 의지의 지배를 받고, 나의 전인격과 재능은 남김없이 주의 것이 되는 삶인 것이다.

이러한 성령 충만한 삶은 기쁨이 넘치는 삶(살전 1:6,7), 담대한 믿음이 넘치는 삶(히 11:1,2),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삶(롬 5:5), 생명력이 넘치는 삶(요 6:63), 병 고침의 능력이 넘치는 삶(막 16:18), 감사와 평화가 넘치는 삶(엡 5:20; 빌 4:7), 방언 기도가 넘치는 삶(행 2:4), 기적이 충만한 삶(막 16:17,18), 열매가 충만한 삶(갈 5:22,23), 전도하는 삶(행 1:8)으로 나타난다.

 


1. 질병의 근원

질병의 주요한 3대 근원은 마귀와 범죄와 저주이다. 마귀는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케 만들고, 이러한 인간의 범죄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으로 질병이 온 것이다.

1) 마귀
마귀가 있는 곳에는 죄가 있고 죄가 있는 곳에는 마귀가 있다. 마귀는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고 범죄하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질병이 다가오게 하였다. 이와 같이 질병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어서 우리를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역사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요 10:10).

2) 범죄
질병도 없고 죽음도 없던 인간에게 갑자기 사망의 선고가 내려진 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이었다. 그 때로부터 사망의 권세가 인간의 영혼을 부패시키고 육체를 죽이기 시작했다(롬 5:12).

3) 저주
질병은 마귀나 인간의 범죄뿐만 아니라, 그 죄로 말미암은 저주로서도 다가온다. 범죄한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질병의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다(신 28:58-62). 그 외에 과로나 과식 또는 무절제한 생활 등으로 육신을 잘 돌보지 않거나, 하나님의 징계(히 12:6-11), 또는 성찬식에 무분별하게 참여함(고전 11:27-30),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항거(민 12장) 등이 질병의 원인이 된다.

 

2. 질병을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

1) 구약의 모형
질병을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의 모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유월절 어린 양과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한 나무와 모세의 놋뱀 사건이다.

(1) 유월절 어린 양
출애굽기 12장과 민수기 9장에는 유월절 어린 양에 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예시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를 먹고 힘을 얻어 광야로 나간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께서 우리의 치료의 능력과 힘의 근원이 되어주심을 상징한다.

(2) 쓴 물을 달게 한 나무
출애굽기 15장에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마라에 이르러서 체험한 하나님의 기적에 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사흘 동안 갈증에 시달리며 물을 찾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 이르러 물을 찾았으나 그 물은 써서 도저히 마실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한 나무를 물에 던지자 그 물은 단 물로 바뀌었다. 마라의 쓴 물은 우리의 영.혼.육간에 다가오는 고통과 질병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물에 던진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신유의 언약을 세우시고, 그 자신을 '치료하는 야웨'(야웨 라파)로 계시하셨다(출 15: 25,26).

(3) 모세의 놋뱀
민수기 21장 4절부터 9절까지를 보면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모세가 만든 놋뱀을 쳐다봄으로써 고침을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불뱀은 마귀를 상징하고,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요 3:14), 불뱀에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봄으로써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예시해 주고 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질병의 대속
죄의 용서와 병 고침, 이 두 가지 일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베푸셨던 중요한 사역이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칠 때마다 죄의 용서와 질병의 치유를 불가분리의 것으로 결부시키고 그 증거를 보여 주시기까지 하셨다(막 2:9,10). 또한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실 때마다 마귀가 떠난 것을 알 수 있다(행 10:38). 그것은 죄에서 구속되는 것은 곧 질병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마귀의 종살이로부터도 해방되는 것임을 증거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은 곧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병의 근원이 죄로 말미암은 저주에서 왔기 때문이다(갈 3:13).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극형을 당하는 마당에 채찍까지 맞으셔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이에 대해 성경은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것은 우리의 병을 담당하기 위함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하신 것이다(사 53:4; 벧전 2:24).

3) 부활의 생명력
예수님께서는 그의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를 치료해 주신다. 질병의 치료가 건강이라면 죽음의 치료는 부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치료의 원동력이요, 완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주 안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병을 고침받고 끊임없이 새 힘을 공급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짓게 한 마귀의 일을 멸하셨고(요일 3:8), 인간이 범한 죄를 사하셨으며(히 9:15), 하나님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갈 3:13).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질병의 근원인 마귀, 범죄, 저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사역을 그의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으며(마 10:1), 이 사역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변치 않는 지상 명령이 되고 있다.

 

3. 신유의 조건

1) 기도
성경은 기도함으로 병이 치유된 예를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다. 야고보서 5장 14,15절에서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제거하시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한 일이 있는지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몸의 병을 치료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구해야 한다. 낙심하지 않고 끈기있게 기도할 때 신유를 체험할 수 있다.

2) 믿음
신유는 본인이나 타인의 믿음으로 낫는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마 9:22)

이 경우는 본인의 믿음으로 치유받은 경우이다. 또한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 8:13)

이렇게 타인의 믿음에 의해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
신유는 지식이나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치실 수 있으며 또한 고쳐 주셔서 강건하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체험할 수 있다.

3) 말씀의 준행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면 하나님께서 질병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셨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야웨)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야웨)임이니라"(출 15:2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으면 질병으로 징계하실 것을 경고하신다(레 26:14-16).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 행할 때 증명된다(요이 1: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으며(잠 4:20-22), 병이 들어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말 4:2).

이와 같이 질병은 죄의 결과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그 모든 결과로부터 인간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의 죽음을 당하셨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이 땅에 오셔서 죄와 신체적인 연약과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고 계신다.

 


1. 성경의 축복관

구약의 복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생산의 능력 곧 자손의 번창(창 1:22,28)과 물질적 번창(창 13:2;24:35), 원수를 무찌르는 능력(창 24:60,27:29; 민 24:17- 19), 삶을 성공시키는 능력으로서의 지혜(출 35:35; 왕상 4:29; 단 9:22) 등이다. 이와 같이 구약에 나타난 복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즉 영적인 복 뿐 아니라 육적, 현세적인 복도 포함하고 있다.
신약의 복은 구약의 복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이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야웨의 복이 온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의 복으로 바뀌어진 것과 신령한 영적 복이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2. 물질 세계에 대한 바른 이해

1) 물질 세계를 먼저 지으신 하나님
하나님의 복 주심은 천지 창조 때부터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이 세상의 물질 세계를 먼저 지으셨다. 모든 물질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말씀하셨다. 아울러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그들의 식물로 풍성히 주셨다(창 1:29).
더욱이 인간이 창조되어 맞은 첫날은 바로 야웨 하나님의 안식일이었다(창 2:2). 그러므로 인간은 인생의 첫날을 하나님과 함께 풍성한 물질 세계를 즐기며 안식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것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근본 의도였던 것이다.

2) 물질적 복의 상실
범사에 부족함이 없던 세계가 파괴된 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물질 세계의 모든 것을 그들에게 다 허락하셨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 그럼으로써 물질 세계도 당신의 주권 아래 있음을 분명히 선포하셨다.
그런데 사단이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도록 꾀었다(창 3:1-5).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게 되었고, 이렇게 죄를 지음으로 타락하고 말았던 것이다(창 3:6). 그 결과 우주의 질서가 파괴되었고,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의 형벌과 저주가 임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인간에게 임한 저주는 잉태의 고통과, 종신토록 수고를 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는 것과,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죽음이었다(창 3:16-19). 그러나 이러한 저주와 고통의 삶은 결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3. 십자가의 대속과 축복

1) 예수님의 가난과 우리의 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사신 이유가 밝혀져 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사신 것은 바로 우리에게 부요를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에서뿐만 아니라 가난에서도 이미 대속받았다. 만일 우리가 이 말씀의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사신 것을 헛되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어 주신 부요를 누리며 살아야 하며, 받은 바 축복을 나누어주며 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적인 하나님의 뜻이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길인 것이다.

2) 예수님의 저주와 우리의 축복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만 대속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저주도 속량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다가온 모든 저주가 예수님의 몸 위에 옮겨졌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저주를 받으신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는 데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갈 3:14).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미 저주에서 속량된 자들이요,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복을 누려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그리스도의 원하시는 바이다.

3) 대속의 은총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무조건 부자로 만들어 주시겠다고는 하지 않으셨지만, '부족함이 없는 삶'을 약속하셨다(시 23:1). 또한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쳐 주셨다(마 6:11). 바울도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고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심으로 우리가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것을 원하고 계신다(고후 9:8).
또한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말씀하고 있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생활 이념은 이와 같이 '주는 것'이다. 사랑을, 소망을, 기도를, 물질을 나누어 줄 때 진정한 복을 누리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4. 성경적인 축복신앙과 기복신앙의 비교

1) 축복신앙과 기복신앙의 비교
(1) 유사점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현실적인 복은 물질의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물질의 복에는 자손의 번성, 가축의 번식, 그리고 토지 소산의 증가도 포함된다. 구약의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약속된 복을 살펴보면 특히 자손 번성의 복이 강조되고 있으며 질병이나 다른 것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받는 복도 포함되고 있다(신 28:1-14).
무속에서도 물질적인 복을 강조한다. 부락제나 집안의 고사를 지낼 때에는 구체적으로 물질에 대한 축원이 포함되고 있다. 무교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신봉되며 중요한 비중을 갖는 것이 가신(家臣)인데, 이 가신이 제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신의 역할은 그 집에 물질적인 풍요를 보장하고 안전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물질적인 풍요를 축원한다는 것이 기복 신앙과 기독교의 축복 신앙의 유사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차이점
① 구원의 유무
기복 신앙과 축복 신앙의 차이점 중 가장 중요한 점은 구원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기복 신앙에 있어서는 그 복이 구원을 전제로 하여 받는 복이 아니다. 기복 신앙에는 구원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축복 신앙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복은 그 구원이 현실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열매이다. 전통적인 기복 신앙에는 기독교와 같은 대속의 교리가 없으며 죄의 용서가 없다. 그들은 근원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이 없이 그저 막연하게 물질적 복 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② 이기적인 기복과 윤리적인 축복
기복 신앙은 구원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내세적이거나 윤리적인 면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복 신앙은 현세적이며 살아 있는 사람의 이기적인 복이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축복은 윤리적이다.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인간이 지녀야 하는 종말적이고 절대적인 윤리를 말씀하셨다. 초대 교회의 순교 역사에서도 현세적 부귀 영화와 재물의 획득보다는 내세를 향한 현세의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의 절대적인 윤리를 계승 정립하려고 애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독교의 축복 신앙은 전통적인 기복 신앙이 추구하는 부귀 영화, 무병 장수보다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가지고 윤리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내세의 부활과 영생의 복락을 더 귀하게 여기며 소망한다.

③ 요행적 기복과 계약적 축복
샤머니즘의 기복 신앙은 윤리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요행성이 따른다. 복을 받고 못받는 것은 귀신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기 때문에 사람은 그저 귀신의 비위를 맞추어 귀신의 진노를 풀고 복을 많이 내려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기복 신앙에서는 복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셈이다. 오직 인생 만사는 자기의 사주 팔자 때문이라고 체념하고 한탄만 하는 운명주의 신앙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축복 신앙은 하나님의 계약과 그 약속에 축복의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약 속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말씀, 즉 축복의 언약이 있기 때문이다(갈 3:13,14). 개인의 순종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④ 주술적 기복과 신앙적 축복
기복 신앙의 대표적인 무속 신앙을 보면, 복을 주는 귀신을 부를 때 무당이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무당은 영계와 인간 사이에서 주문을 통해 귀신들을 부르고 그 귀신들로 하여금 치성(致誠)을 드리는 사람에게 복을 내리도록 중간에서 연결시키는 중재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기복 신앙은 어떤 미신적인 주술이나 주문으로 복을 기원한다.
이에 비해 기독교의 축복은 신앙적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단순히 어떤 주문을 외우거나 술법을 행함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불러내거나 부릴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을 따라 아름답고 선한 삶을 살 때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2) 성경적인 축복 신앙
우리가 '복 받았다'고 할 때, 거기에는 상당히 다양한 의미와 내용이 담겨져 있다. 영적인 복, 즉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물질적인 복, 지혜의 복, 마음과 생활의 평안, 심지어는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복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시 119:71).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 복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그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때 진정한 복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복을 받으면 그에 따른 관리자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은 샤머니즘적인 기복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받아 가난하고 고난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독교의 축복 신앙과 샤머니즘의 기복 신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독교의 축복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구해야 하는 뚜렷한 근거가 있고, 또한 복을 받아야 할 분명한 목표가 있는 것이다.
축복 신앙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고 삶의 원천이시다. 그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그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문제는 우선권(Priority)의 문제요, 사용 방법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성경적인 복은 영의 구원뿐 아니라 육신의 제반사와도 관계가 있다. 성경은 그것이 영적이든,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복'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며, 오늘날 인간은 전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서로 깊은 관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에 대해 분명히 이해하고, 아울러 복에 대한 개념을 올바르게 가르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축복의 복음을 널리 전하여야 할 것이다.

 


1. 재림의 목적

1) 약속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오신다.
예수님의 초림에 대해 기록된 구약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장차 재림하실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예수님께서도 친히 몇번이고 재림하실 것을 강조하셨다. 예수님께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는 말씀대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반드시 오실 것이다(마 24:30).

2) 죽은 자를 일으키고 성도를 영광스럽게 변화시키기 위해 오신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은 부활하게 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영광의 형체와 같게 변화된다(빌 3:20,21). 진행되는 순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살전 4:16,17).
사도 바울은 이것을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0-53)라고 묘사했다.

3) 사망을 멸망시키기 위해 오신다.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재림하시는 주님과 주님의 군대를 대항해서 싸우나 적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는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게 되고 나머지는 예수님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계 19:11-21). 또한 만국을 미혹하던 사단도 결박을 당해 무저갱에 던저져 일천년 동안 갇혀 있다가 잠깐 놓인 후에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게 된다(계 20:1-10). 주님께서는 음부와 사망도 불못에 던저져 일천년 동안 갇혀 있다가 잠간 놓인 후에는 0:14)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6)는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

4) 구속받은 성도들을 예비하신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처소를 예비하러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와서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하셨다 (요 14:2,3). 때가 이르면 주님께서는 택함받은 성도들을 모으셔서 곡하는 것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신다(계 21:4).

5)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다.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듯이 주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딤후 4:1). 주님께서는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양과 염소를 분별하시고(마 25:31-33), 알곡과 가라지를 가려내어 알곡은 곡간에,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마 3:12).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심판하실 때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마 16:27).

 

2. 재림의 시기

주님은 두 번 재림하시는데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이 그것이다. 공중 재림은 기름 준비된 성도들을 데리러 오시는 것이며, 지상 재림은 원수들을 무찌르고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1)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정확한 날짜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요, 이단이다.

2) 복음이 온 인류에게 증거된 후에 오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고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오신다(마 24:14)고 말씀하셨다.

3)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후에 오신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멸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일어나 주님을 대적하게 된다.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2,3)

4)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신다.
예수님께서는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강림하시며(살전 4:16), 나팔 소리가 들릴 때 성도들이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

5) 노아의 때와 같이 오신다.
예수님께서는 홀연히 재림하시기 때문에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니라"(마 24:37-39) 고 말씀하시면서 어느 날에 주님께서 임하실지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셨다(마 24:42).

 

3. 재림 전후의 사건들

1) 공중 재림
공중 재림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기록된 것같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는 것이다. 그 때에 기름 준비된 성도들은 공중으로 들림받아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욕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육의 몸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된다(고후 3:18). 주님께서는 기름 준비된 교회를 이와 같이 공중으로 부르시는데 이것이 이른바 교회의 휴거(Rapture)이다. 휴거된 교회는 공중에서 주님과 함께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하게 된다(계 19:9).
환난 전에 교회가 휴거된다는 성경적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두 번 심판받지 않는다.

(2)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와 소돔과 고모라의 때를 비유로 들어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지 않을 것을 계시해 주셨다(마 24:37-44).

(3) 예수님께서는 장차 올 모든 일을 통과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하시지 않고, 이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눅 21:34-36).

2) 7년 환난
휴거된 성도들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하는 동안, 지상에서는 극심한 환난이 계속된다. 이 환난의 기간이 7년일 것이기 때문에 '7년 환난'이라고 한다. 이 말이 성경에 문자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나, 다니엘서를 보면 '한 이레'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7) 여기서 '그'란 옛 로마 판도에서 나올 왕으로 적그리스도를 가리키고, '한 이레', 즉 7일은 7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가 장차 유대 민족으로 더불어 7년 동안의 언약을 정하고 그 이레의 절반인 처음 3년 반 동안은 언약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후 3년 반 동안은 언약을 깨뜨리고 유대 민족에게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키며, 미운 물건 즉 가증한 우상을 세우고 극심한 핍박을 가할 것이다. 그러나 기름 준비한 교회는 이 환난을 통과하지 않고 환난 전에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3) 지상 재림
공중에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끝날 때, 예수님께서는 들림받은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강림하시게 된다.
이를 '지상 재림'이라 한다. 그 때에 인류의 최후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전쟁에서는 짐승의 표를 이마나 손에 받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으로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된다(계 19:17,18). 또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잡아서 산 채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지고, 사단을 잡아 무저갱에 가두어 놓을 것이다(계 19:20-20:3). 이로써 7년 환난은 끝나고 일천 년간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다.

4) 천년 왕국
사단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힌 후(계 20:1-3), 이 지상에서는 천년 왕국이 이루어진다. 이 왕국의 왕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이 왕국에 들어올 자들을 양과 염소의 무리를 구별하듯(마 25:31-46) 분별하실 것이다. 그 후에 예수님의 증거를 위하여 순교한 자들과 적그리스도에게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이다.
천 년 동안 지구상의 사람들은 번성하여 가득하게 된다. 이들은 사단의 유혹을 받지도 않고 사단의 권세 아래 있지도 않으므로 죄도 짓지 아니하고 병도 없이 천 년간 번성하게 된다. 천 년 후 이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단을 잠시 풀어놓아 주는데,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미혹을 받을 것이다(계 20:7,8). 그러나 이 선택은 자기 스스로 내린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멸망은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의 결과가 될 것이다.

5) 백보좌 심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계 20:11)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어느 곳에 심판대를 만들어 놓는데 이 심판대가 바로 백보좌이다. 이윽고 심판이 시작되면 그 앞에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서게 된다. 또한 심판대에는 책들이 펴져 있는데, 그 책들 속에는 모든 죽은 자들의 행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서 결코 속일 수가 없다.
한편에는 또 한 책, 즉 생명책이 펴져 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음을 확인시켜 주신다. 이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고 불못으로 던져지게 된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요, 곧 영원한 사망인 것이다(계 20:14).예수님께서는 이 불못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8,49)

6) 신천 신지
성도가 들어갈 하늘 나라는 영원히 새 것이다(계 21:1). 이 세상에는 모든 것이 낡고 더럽고 쇠하여 가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원히 새로운 것이다. 이러한 새 하늘과 새 땅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계 21:2). 이 새 예루살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이다. 그런데 이 새 예루살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계 21:2).
성도들은 불원 장래에 바로 그곳에 들어가 살게 될 것이다. 그곳은 사망이나 고통이 없는 참으로 좋은 곳이며, 영원히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4. 재림의 결과

1) 하나님과 관련된 결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서 각 사람이 그 영광을 볼 것이며(사 40:5),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된다(살후 1:7-9).

2) 교회와 관련된 결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살전 4:16), 살아 있는 자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변할 것이며 (빌 3:20,21; 요일 3:2), 모든 것이 끝날 때 교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게 되며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 될 것이다(계 20:4).

3) 이스라엘과 관련된 결과
그리스도 재림이 있은 후 이스라엘은 다시 모일 것이다(사 11:11,12; 겔 36:24; 37:19-24; 습 3:19,20).
이 때 이스라엘은 크게 번영할 것이며(렘 31:31-34; 겔 36:33-38), 모든 열방에 천국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 것이다(사 66:19).

4) 불신자들과 관련된 결과
이들에게는 불행한 사건이요, 슬픈 날이 될 것이며(마 24:30; 계 1:7), 심판이 있게 될 것이다(마 25:31,32; 살후 1:7-9).

5) 적그리스도 및 마귀와 관련된 결과
지상 재림 후 불법한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적그리스도와 마귀는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살후 2:8; 계 19:20,20:1-3).

6) 우주 만물과 관련된 결과
피조물은 부패의 굴레에서 해방되며(사 55:13; 롬 8:19-21), 생물들은 본래 창조되었을 때처럼 회복되어 평화롭고(사 65:25), 황무지는 아름다운 밭이 되고(사 32:15), 사막에 백합화가 만발한(사 35:1) 천년 왕국과 신천 신지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5. 종말적 삶의 자세

1) 깨어 있어야 한다.
언제 주님께서 부르실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준비는 하되 적당히 하면 안된다. 기름 준비를 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깨어서 기름 준비를 잘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마 24:42,25:2-13).
그러므로 우리는 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늘 깨어 근신하며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엡 6:13-17),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이 기름이란 성령 충만을 말하며 늘 기도와 말씀 가운데 깨어 근신하는 생활을 말한다.

2) 열심히 전도해야 한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부탁이요(마 28:18-20; 막 16:15-18; 행 1:8),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다. 주께서는 몸이 찢기시고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면서도 온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 구원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한다(딤후 4:2). 영혼 구원, 이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사명이요, 목표인 것이다.

3)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천국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세로 하루하루 이 말세의 마지막을 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