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일기

가혹한 기준의 덫(2)

예인짱 2008. 12. 4. 02:11
날짜:
2008.12.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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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기준의 덫을 가진 사람은,

첫째, 압박감을 경험한다

절대 긴장을 풀고 인생을 즐길 수가 없다.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고 나아가도록 재촉하고 재촉하고 또 재촉한다. 자기가 하는일은 그 일이 무엇이든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둘째, 부정적인 감정들을 초래한다. 

스스로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끊임없이 좌절하고 화가 나며 만성적인 본노와 심한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해내야 할 다음번 과제에 사로잡혀 있다.

 

셋째, 시간에 대한 급박함이다.

불안의 초점은 시간이다. 할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항상 시간을 의식하며 지속적으로 시간의 압박을 느끼고 인생의 잔혹함과 자신이 성취한 것의 공허함으로 인해 우울해 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넷째, 평화로운 상태를 얻지 못한다.

분투끝에 평화로운 얻기를 희망하는 상태가 됐다 하더라도 평화로운 상태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런 상태가 찾아왔다 하더라도 뭔가 다른 것을 찾아 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덫은 스스로 강화된다. 깊은 마음속에서 애써 노력하지 않는 한 절대 편치 않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 난 이게 너무도 당연한 나의 구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덫이라는게 한없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가혹한 기준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기준을 부모의 높은 기대치로 본다. 당신이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부모로 부터 당신에게 수치심을 심어주었을 것이라고 본다.

 

나의 가혹한 기준의 덫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부모님은 그렇게 엄격하지도, 완벽을 요청하지도 않으셨다. 나의 가혹한 기준의 덫은 신앙을 하면서부터 생긴 덫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절대기준에 부합하려는 의지,

그분에게 인정받으려는 강력한 의지와 노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기준에 맞추어 그 기준의 사람이 되려는 의식이 나로 가혹한 기준의 사람이 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교회의 목사로서, 교회를 세워가는 기준과 원칙이 최고를 추구하고, 최고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력한 강박관념이 지나친 기준으로 자리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혹한 기준의 덫을 가진 사람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고, 일과 즐거움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고, 너무 많은 것을 성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고,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여러 활동들이 완수해야 할 의무로만 느껴지게 되고, 높은 기준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게 되어 결국 그 일을 피하게 되고,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함으로 짜증이 나고 좌절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가혹한 기준의 덫 변화시키기

 

1. 모든 것으로 부터 완벽하게 인정받길 원하는 마음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요, 하나는 성도들께 인정받는 것이다. 이 두가지 주제가 나를 짓 누르고 나로 압박감을 갖게 하는 요소이다.

 

내게 있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세움입어 가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명제이다. 이 주제를 바꾸면 존재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이것이 목회의 근본이요, 이것이 목회의 현장이다. 이 현장을 유지하지 못하면 나의 목회는 생명력이 상실한 목회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것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그것이 가혹한 기준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준에 충실하게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문제는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는 기준이다. 이것은 참으로 가혹하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희생과 수고는 참으로 지나칠만큼 나를 힘들게 한다. 이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며 이것저것을 하지 못하며 지내다가 결국은 모든 것을 놓치는 것을 반복한다.

 

이 기준을 바꾸어야겠다는 강한 결심을 한다.

 

2. 시간을 잘 분배하여 가혹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가혹한 기준을 가진 사람은 종종 전체적인 조망을 잃는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시간은 나누어 써야 한다. 그런데 난 시간을 나눌줄 모른다.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면 그 주제에 올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100아니면 0이 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철저히 가혹한 기준의 덫에 걸린채 압박감에 시달리며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시간을 잘 분배하여 집중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집중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집중력과 그렇지 않은 일에 분배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균형잡힌 스케줄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진행되면 많은 부분에서의 가혹한 기준의 덫은 점점 힘을 잃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그 안에서 여러가지 원칙과 기준을 통해 압박과 강박에서 벗어날 대안을 연구해 나가야겠다.

참으로 중요한 전환을 얻게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를 얻게 된것이 너무도 감사하다. 

나의 계획 To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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