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Bible

고린도교회와 바울

예인짱 2008. 7. 1. 19:50
 

고린도교회와 바울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후 에베소에 가서 3년을 머무르며 글로에로부터 전달된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편지를 쓰게 된다,



고린도는 는 펠로포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하는 좁은 해협 남쪽의 2km지점에 위치한 도시이다. 서쪽에 고린도만(灣)과 동쪽에 샤론만이 자리잡고 있어 고대로부터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이곳은 서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동쪽으로는 이집트와 동방의 상인들이 들어 오는 통로가 되었으며, 그당시 네로 황제는 지협을 뚫는 운하공사를 착공하였으나 근대(1983년)에 와서 완공되였다.



고린도는 펠레포네소스 전쟁(B.C.431-404)이후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주도했던 헬라 동맹의 중심지가 되었고 B.C.14년 로마 루시우스 뭄미우스 장군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후 많은 반로마 운동이 일어 났으나 B.C.44년 율리우스 시이저에 의해 로마 정부의 아가야 지방의 수도가 되어 로마 시민들을 정착시키므로 그 당시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아네네를 능가하는 대도시로 발전하였으며 로마와 그리스도, 유대와 이집트와 시리아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후 고린도는 귀족사회의 악인 노예제도가 만연하여 인구 250.000에 1.3배에 가까운 노예들이 있어 60만의 대도시가 되었으며, 전세계의 문물이 교류하는 천혜의 지역적 천혜를 누리면서도 인류에 혜택을 주는 문화의 중심지가 되지 못하고 그야말로 악의 축이 되고 말았다. 고린도가 부도덕하고 악한 도시로 전락한 가장 큰 원인 은 고린도의 가장 높은 지역에 세워진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우는 "아프로디테"신전의 종교적 영향과 귀부인들의 의 사치로운 행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적 타락한 사람들의 생활은 고린도 교회에까지 미쳐 바울의 편지속에서 강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고린도는 헬라어로 "코린디아조마이"(부도덕의 산실)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그 당시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수천명의 창기들이 여사제로 헌신하고 있어서 밤이면 밤거리로 나와 몸을 팔아 그 얻어진 돈으로 성전을 꾸려 나갔다. 그 당시 평범한 고린도 여인들은 그 창녀들과 구분을 하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두르게 되었는데, 바울은 이러한 풍습을 그대로 교회에 적용하여 여자들은 교회에서 머리를 쓰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교회에 적용된 것이 아니라 고린도지역의 툭수성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여신도들에게 외부로 부터 오해와 공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려진 조치였다.



또한 신전에 제물로 바쳤던 짐승들의 고기가 시장에 유입되어 고린도 사람들은 제물을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데, 이 문제도 교회 성도들 간에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었다. 그러므로 노예의 범람과 창녀들 그리고 이교도의 종교적 행위와 성적인 문란으로 들끓는 고린도는 인간의 심령 속에서 죄로부터의 진정한 자유가 요구되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피조물의 절규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 바울의 환상 가운데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미게도냐 일대에 전해지게 된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때는 A.D.52-56년 사이로 추정된다)



고린도전서 1장 서두에서 바울은 먼저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테네"라고 기록하여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 시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부터 그를 지켜 준 회당장 소스테네가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행18:17). 이것으로 우리는 소스테네가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바울은 2절에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거론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정의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먼저 하나님의 교회가 타락한 세상과 다른 위치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라는 말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고린도에는 다른 방법으로 거룩하여지려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이방신을 예배하는 방법과 그 당시 만연하고 있던 그리스 철학 그노시스에 참여하려는 풍조였다. 바울은 거룩 즉 헬라어로 "하기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 바울은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 기록하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평등하여지는 성도의 권리를 선포하고 있다. 이것은 이 편지를 쓰게된 주 분쟁의 원인이 된 사도와 교부들로부터 발생한 계파간의 알력을 경계하려는 강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바울은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그 이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즉 그리스도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다. 은혜와 평강은 바울 서신의 서두를 장식하는 바울 특유의 인사법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다. 평강은 히브리어로 "살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적 평안으로 메시야 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은혜는 헬라어 "카리스"로서 신적인 매력을 동경하는 헬라인들의 성격을 대변한다. 그 당시 고린도 지역 사람들은 만연된 헬라 철학 사상과 로마인의 마음을 매료시킨 신적 세계로부터 오는 지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도행전에는 그 당시 아덴과 고린도 일대 사람들의 정신적 사상에 대하여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라"(행17:21) 말하였으며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17:22)고 말하였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에 신적 세계를 향한 열정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게된 원인이 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의 이념체제로 나누어져 있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은 신적 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수천년 동안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삶속에서 그들 앞에 세우신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난 신적 체험들을 보아왔다. 따라서 그들의 사고 속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신적 능력이 표출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헬라사람들은 지혜를 요구 하였다. 그것은 그 당시 수많은 철학자들이 나타났고 왕들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이 모두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헬라를 일으킨 알렉산더 대왕도 당시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 수도인 펠라의 궁정에 초빙되어 3년 동안 그에게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가르쳤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우리 교계는 두가지 중심 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하나는 성령의 은사를 중심으로 한 표적이며 또 다른 한편은 서구 신학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한 지식적 세력이다, 그러하여 어느 한편에서는 지도자에게 나타나는 은사를 자랑하고 있고 어떤 교회는 지도자의 학문적 바탕을 중요시한다. 이들을 향하여 바울은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말하였으며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2:14)하였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목사들의 설교를 보면 성경 본문과 전혀 관계가 없는 윤리적인 것, 도덕적인 것 등을 가르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 한 두구절을 인용하여 결국 자신의 생각하는 바와 목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다. 그들은 미사려구를 사용하며 재치있고 능변있는 말로 듣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들의 열정적 언변에 현혹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들은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지조차 알지 못한 체 은혜받았다고 아멘 아멘을 외치며 감격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하여 성도들은 목사에게 질들여지고 결국 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머물게 된다.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은 후 바나바와 안디옥 교회를 개척후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브르기아 그리고 갈라디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다. 그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유럽의 전신인 마게도니아로 건너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빌립보를 중심으로 데살로니가 일대를 지나 아가야, 아덴, 그리고 고린도 지역에 이르러 교회를 개척해 나갔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그러나 그 지역에서 세력을 잡고 있던 유대인의 대적과 우상숭배자들의 극심한 훼방을 받았던 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까지 어떤 세대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온전한 복음의 터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도적 역활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새로운 도약적 비전을 품은 바울은 심기일전하여 하나님 앞에 서원을 세운 후 이미 복음의 기틀을 이룬 유대와 아시아 일대의 형제교회를 방문하여 용기와 힘을 얻고 에베소에 와서 3년을 정착하여 그 뜻을 펼치게 된다.

 

 

실라와 디모데 그리고 아굴라 부부와 함께 1년8개월 동안 개척하였던 고린도 교회에는 아볼로가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후 그들로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보고되었다. 사실 그동안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영적인 축복을 받아 부흥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그들의 믿음의 상태가 어린 아이와 같다는데 있었다. 

 

 

성경에는 고린도교회 말고 너희가 아직 어린아이라고 취급된 다른 교회가 있었다. 그들은 이방교회가 아니라 유대인들로 구성된 히브리 교회였다. 사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성민으로 율법과 예배를 맡은 민족이었다. 그러니 시세말로치면 모태 신앙인 셈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5장 12절에서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인지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하였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과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라"(히6:1-2) 말하였다.


바울은 자신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의 사용한 일군이란 단어는 배의 가장 밑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고대 영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당시 배 밑창에서 노를 짓는 노예는 일체 자유가 없는 예속된 종으로 권리와 자유가 박탈된 상태이다. 그들은 죽어야 풀려 날 수 있는 처지이다. 또한 바울은 자신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집을 관리 감독하는 청지기의 직무를 말한다. 그러나 이 직책도 종임에는 틀림없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의 책임이 아볼로에게 있지 않음을 알고 있어다다. 바울이 개척한 이래 고린도교회는 아볼로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데 교세가 확장되면서 분열의 조짐이 생겨 아불로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우리는 아볼로의 난처한 입장을 16장12절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아볼로는 자신이 심은 것이 잘 자라도록 물을 준 하나님의 동역자였음을 밝히고 있다.

 

물론 아볼로는 바울의 제자는 아니었다. 그는 애굽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신학문과 율법에 능통하여 이미 자신이 연구하고 터득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증거 하였다(행18:16 이후 참조). 그러나 후일 아굴라를 만나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사도들에게 맡기셨음을 깨닫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성령으로 하나되었다. 따라서 아볼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혜를 따라 성경을 가지고 그들을 가르쳤다(행18:28)

 

 

바울은 "너희가 이미 배부르고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노릇 하기를 원하노라"(8절) 말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부모와 스승들의 마음일 것이다. 자신의 자녀들이 왕이 되는 것은 자신이 함께 왕노릇하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스스로 높이 올라 왕노릇하는 것은 아비와 스승에 대한 모욕인 것이다.

 

바울은 그들이 왕노릇하기까지의 자신들의 희생에 대하여 언급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며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하며 후욕을 당한 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 즉 참고 비방을 당한 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10-13). 여기서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였다"는 것은 갖은 독설을 퍼붓는 자들을 위해 기원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주께로 받은 규범이기도 하다.

 

여기서 바울은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하며" 라고 말하여 자신들의 생활을 위하여 친히 일하지 않을 권리도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들이 이처럼 희생을 아끼지 않는 것은 주께서 미말(최 극단의 상태)에 두어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 거리가 되게 하셨다고 증언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의 진리 속에서 화평을 누리기까지는 사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잘나서 이처럼 부요하게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다" 말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6장12절에는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기록되었다. 전후 문맥을 따라 우리는 가르치는 자들에 의하여 권위의 질서가 깨어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볼로가 잘못 가르쳤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륜을 이루지 못한 지식은 사람으로 교만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권위와 질서의 균형이 깨진 고린도교회에 복음 안에서 나은 아들 디모데를 보내기로 하였다. 바울과 함께 생사고락을 하며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진리를 전수받은 디모데는 살아있는 복음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빌립보 2장에서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과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2:22) 말하였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의 지식에 자아도취 되어 스스로 자랑에 빠진 말쟁이들에게 있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 하였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내가 매를 가지고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의 마음으로 나아가랴 묻고 있다.  

작성자 웃는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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