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Bible

사무엘과 사울

예인짱 2008. 6. 3. 13:18

  사무엘과 사울 (8-15장)


엘리와 사무엘

사무엘과 사울

사울과 다윗

엘리

사무엘

사무엘

사울

다윗의 초기 생활

한나 기도

어린
사무엘

엘리
죽음

법궤

왕의
요청

초대왕
사울

마지막
연설

사울
승리

사울
거역

기름
부음

골리앗
죽음

다윗
도피

유랑
생활

사울
죽음

2:11 

4

5

8   

9  

12

13  

15

16  

17

18

21

   31



 

* 사무엘과 사울: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과도기(8-15장) *  <참고 지도>(사울의 생애)


 

1.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8장)

  사무엘이 나이 많아 늙게 되었을 때에 그는 그의 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삼았다(1). 사무엘의 장자는 "요엘"(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이었고, 차자는 "아비야"(여호와는 아버지시라)였는데,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브엘세바'는 '일곱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으로, 족장 시대부터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창 21:31). 또 이 곳은 고대로부터  근동과 애굽의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요충지였으며, 이스라엘의 최남단 곧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로부터 약 80km나 떨어진 곳이었다. 사무엘이 이 곳에 자기의 두 아들을 두어 보조 사사로 삼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1) 사무엘 자신이 늙었기 때문에 이곳까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2) 이곳에 사사를 둠으로써 인접국인 블레셋의 간섭을 배제하려 했다. 사무엘이 라마에서 멀리 떨어진 가나안 남부지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보조 사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 사무엘의 행위를 좆지 않고 그릇되게 처신하였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공정해야 할 재판을 왜곡되게 만들어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2-3).

 

 이러한 소식을 접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은 함께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갔다(4). 그들은 사무엘에게 가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않는다"고 항의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무엘에게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5). 그들은 더 이상 연로한 사무엘이나, 그의 불량한 두 아들에게 희망을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정 정치를 포기하고 주변 국가들과 같은 왕정 제도를 요구하였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의 왕정 제도를 가진 나라들과 전쟁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 그 당시에는 나라를 구하지만, 그 아들에 의해 부패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정 제도보다 왕정 제도를 더 강력한 제도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일에 실증을 느끼고, 다른 나라들과 같이 왕을 세워 그의 지도를 받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내놓은 제안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는 장로들의 말을 듣고 이 문제에 대해 여호와께 기도하였다.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6).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버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버려 그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 것같이, 사무엘에게도 불신실하게 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8).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들이 하는 요구를 다 들어주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왕정 제도가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알려주라!"고 지시하셨다(9).

 

  사무엘은 기도를 마친 후에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다음과 같이 왕이 어 떤 일을 할 것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10). 1) 왕이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말과 마차를 끄는 마부를 삼을 것이다. 2) 왕이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관리(천부장, 오십부장)를 삼고 부릴 것이다. 3) 왕이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밭을 갈고, 자기 밭에서 추수하는 추수꾼을 삼을 것이다. 4) 왕이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병기들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되게 할 것이다. 5) 왕이 백성의 딸들을 데려다가 자기 향료와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로 삼을 것이다. 6) 왕이 이스라엘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거두어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7) 왕이 백성의 소득의 1/10를 세금으로 거두어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8) 왕이 백성의 노비와 소년들, 그리고 나귀들을 데려다가 자기가 원하는 일을 시킬 것이다. 9) 왕이 백성의 양의 1/10을 세금으로 거두고, 백성들은 그의 종이 될 것이다. 10) 이러한 왕의 압제를 인해 백성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나, 여호와께서 응답지 않으실 것이다(10-18).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왕정 제도의 어려움을 설명하신 것은 인간을 왕으로 삼는 것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면 하나님은 자비롭고 공의로와서 그들을 자비와 의로 대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백성의 왕이 되면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악한 폐단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대신 연약하고 악한 인간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이 모든 설명을 듣고도 계속해서 왕정 제도를 요구했다. 그들은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19-20). 그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세움을 받는 사사보다는 왕을 세워 항상 그 나라를 지키는 일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무엘은 이 모든 말을 듣고 여호와께 나아가서 그 모든 말을 들은 대로 고했다(21). 그러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고 지시하셨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들을 위해 왕을 세울 것을 약속하고, 모든 백성들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지시했다(22)(호13:11 참조).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왕정 제도를 허락하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서 왕을 세우시되 자신이 택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셨다. 그리고 그 왕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조건으로 하여 왕의 권한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는 신정 제도를 당시의 상황에 맞게 조정한 것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왕이 자신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통치하면, 그의 모든 권위를 지켜 주시고 그를 형통케 해주셨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임의로 행하면 하나님은 그 왕을 폐위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당시의 상황에 가장 적절한 신정 제도를 싱시하셨다. 이러한 점에서 이스라엘에 세워질 정치 제도는 왕을 대리인으로 세우는 신정 체제라고 할 수 있다.

 


 

2. 사울 왕국의 시작(9-12장)   참고 지도: (사울의 생애)

 2-1.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9장)

  왕정을 허락 받은 이스라엘은 이제 왕이 될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이스라엘은 열방과 같은 왕정 제도를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왕을 허락하는 대신 몇 가지 안전 장치를 두어 하나님의 주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셨다. 첫째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왕을 임명함으로 왕권을 견제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왕이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는 선지자를 통해 그의 왕권을 보호해 주셨다. 그러나 왕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경우에는 선지자를 통해 그에게 경고하셨다. 둘째로 하나님은 왕의 직책을 언약의 직책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왕을 세울 때에 그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다. 이러한 예식은 일종의 언약예식이었다. 이 예식은 왕으로 하여금 언약 백성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도하겠다는 것을 서약하는 예식이었다. 이 예식을 통해 하나님은 왕이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그를 지켜주시고,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 그를 왕에서 폐위시킬 수 있었다.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인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하셨다. 사울은 외적인 표준으로 볼 때에 왕으로 뽑힐 이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중에서 유력한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이상적인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용모에 있어서도 준수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1-2).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사이에 있는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다(수 18:11). 그러나 그들은 사사 시대 말기에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게 하고(삿 19:22-30), 다른 지파들의 징계를 받아 600명만 남기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삿 20:29-44,47). 그러므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가장 적은 지파가 되었다. 이 지파 중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나왔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즉 이스라엘 초대 왕이 수행하여야 할 선결 과제는 무엇보다도 각 지파 간의 결속과 단결을 공고히 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은 각 지파 간의 불필요한 견제나 시기, 그리고 경쟁을 극복해야만 했다. 특히 베냐민 지파를 사이에 두고 있는 강력한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갈등과 주도권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약한 막내 지파가 선택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유력한 사람'(깁보르 하일)이라는 말은 '부유하고 강력한 용사'라는 것을 의미한다.기스는 살아 남은 600명에 속하여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삿 20:46) 땅을 분배받았기 때문에 부유했을 것이며, 베냐민 지파 중에는 용사들이 많았다(삿 20:16).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었다. (대상 9:39)을 보면 '넬'이 실제적인 기스의 아버지이고, 여기에 언급된 '아비엘'은 기스의 할아버지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히브리 어법상 '아들'(벤)이란 말은 1대 자손만을 뜻하지 않고, 후손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고 있다. '사울'은 '구하여 얻은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울'은 이름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세워질 이스라엘의 왕임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8:10). 준수한 소년('바후르 와토브')이란 말은 직역하면 '젊고 잘 생겼다'는 말이다. 이는 사울의 풍채가 뛰어남을 의미한다. '소년'으로 번역된 개역 성경은 적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 말은 아직 미성숙한 남자아이가 아닌, 전투력이 있고,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으며, 결혼할 정도로 성숙한 젊은 청년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70인역과 갈대아역은 이를 '(성인)남자'(아네르)로 번역하고 있다. 그의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했다. '키'는 사람의 외모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사울의 장대한 신체는 강력한 통치력을 갖고 자신들을 다스려 줄 왕을 요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8:20).

 

  기스는 암나귀들을 잃고 사울에게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사울은 그 명령을 순종하여 온 베냐민 땅을 다 돌아다니면서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다녔다(3-4). 그는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살리사 땅-사알림 땅-베냐민 지파의 땅을 두루 찾아다녔지만 잃은 암나귀를 찾을 수 없었다. 에브라임 산지는 가나안 땅 중부의 구릉 지대로서 비옥하고 수확이 풍부한 곳이었다. 이곳은 에브라임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된 곳이었다.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는 에브라임 산지의 남쪽을 차지했다. 사울의 집은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영토의 남부에 있는 '기브아'였다(10:26). 살리사 땅은 '제3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땅으로 세겜 남서쪽 약 32km지점에 있었다. 사알림 땅은 '자칼(여우의 일종)의 땅'이란 뜻이며, 벧세메스(6:9)와 아얄론(수 10:12)중간에 있었다. 에브라임 산지 일대인 살리사, 사알림, 베냐민 땅 일대를 두루 돌아다니는 동안 사울은 어느덧 40km 이상의 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마침내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 근처의 숩 땅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성실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하기 위해 기스의 암나귀를 잃게 만드셨다. '숩 땅에 이르렀다'라는 말은 사울과 그의 사환이 에브라임 산지를 한 바퀴 일주한 뒤, 다시 자신들의 성읍에 가까운 곳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숩 땅에 이르게 되자 사울은 그 사환에게 암나귀들을 찾는 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는 암나귀는 고사하고 그의 부친이 자신들로 인해 더 걱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때에 함께 갔던 사환이 사울에게 그 곳에 있는 선견자에게 가서 암나귀가 있는 곳을 물어보자고 제의했다. 사울은 사환의 말을 듣고 마지막으로 선견자를 찾기로 결심했다(5-9). 하나님은 사울이 떠날 때에 그 사환을 붙여서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하는 일에 협조하게 하셨다. 사울은 선견자를 만나기 위해 라마로 갔으며, 그 곳에서 물을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선견자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10-11). 사울은 그 소녀들의 도움을 받아 선견자를 찾아 가다가 사무엘을 만나게 되었다(12-14). 하나님은 이미 전날 밤에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사무엘은 사울을 보고 그가 바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세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15-16). 사무엘은 선견자를 찾는 사울에게 자신이 그가 찾는 선견자임을 밝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잔치에 동석하기를 요청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이 가장 작은 지파인 베냐민 지파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집안의 사람이라고 대답했다(17-21).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마을 잔치에 참여해서 그를 위해 미리 준비한 음식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잔치가 끝난 후에 사무엘은 성에 들어가서 지붕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밤을 지냈다. 그리고 사무엘은 다음 날 동이 틀 때에 사울과 그 사환을 깨워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때에 사무엘은 사환을 먼저 앞서 가게 한 후에 몰래 사울을 불렀다(22-27).


 2-2. 왕이 된 사울(10장)

  사무엘은 사환을 앞서 보낸 후에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부었다. '기름병'은 목이 좁은 그릇이다. 당시에 여기에 담겨졌던 기름은 사무엘이 이 때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거룩한 관유였던 것 같다(출 30:23-33). 기름을 붓는 일은 그 직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기름을 붓는 것은 그에게 신적 사명과 권위를 부여하여, 하나님의 일을 공식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임직의 의미가 있었다. 또한 이 기름부음은 하나님께서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사 61: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은밀하게 기름을 부은 것은 사울이 백성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소명을 철저히 깨달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후에 사울에게 입을 맞추고 여호와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았다고 선포했다(10:1). 이 입맞춤은 권위에 대한 인정과 존경의 표시(시 2:12)이며, 또한 은혜 받는 자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당시에 이러한 입맞춤은 대부분 상대의 입이 아닌 손, 무릎, 이마, 혹은 옷 등에 행했다.

 

  그 후에 사무엘은 사울이 왕으로 선택받은 일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몇 가지 증거를 더 제시하였다. 사무엘은 사울이 사무엘을 떠난 뒤에 베냐민 경계인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사울의 아비 기스가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2). '셀사'는 라마 근처, 그리고 벧엘의 남쪽으로 약 8km 지점에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창 35:19)에 따르면, 그곳은  베들레헴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사울은 사무엘과 함께 있었던 '라마'를 떠나 자신의 성읍 '기브아'로 가는 도중에 '셀사'를 지나야 했을 것이다. '라헬'은 야곱의 아내 중 가장 사랑 받은 여인으로서(창 29:18, 30), 요셉과 베냐민을 낳은 생모였다(창 30:22-25; 35:18). 그녀는 온 가족과 함께 세겜에서 벧엘을 거쳐, 이삭이 살던 헤브론으로 올라가는 도중 임산(臨産)하여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인해 죽었다(창 35:16-19). 그 때에 야곱은 그녀를 이 곳에 장사를 지내고 그 곳에 묘비를 세웠다(창 35:20). 또한 사무엘은 사울이 그 곳에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 나무에 이르게 되면,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올라가는 세 사랑을 만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무엘은 마치 현장에 서 있는 것처럼 그 세 사람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했다(3).

 

  다볼 상수리 나무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울은 라마를 떠나 기브아로 가던 길이었으므로, '다볼 상수리 나무'는 기브아 근처 어디에 있었을 것이다. '벧엘'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제단을 쌓기 훨씬 이전부터 (창 12:8;13:3, 4) 요새화 된 성읍으로 발전되었다. 이곳이 이렇게 일찍부터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능선 지대인 이곳에 많은 샘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은 신약시대 전까지만 해도  물통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고, 야곱도 이 곳에 단을 쌓음으로(창 28:19; 35:1-7)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성역으로서 인식되었다(삿 20:18-28). 따라서 사무엘 당시에도 벧엘은 라마와 같이(7:16;9:12), 별도의 제단이 있어서 하나님께 제사가 드려졌을 것이다. (Keil, Fay, Smith). 염소 새끼 셋은 세 사람이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릴 제물이었으며, 떡 세 덩이는 소제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것이었다(레 2:4-6). 그리고 포도주 한 가죽 부대 역시 희생  제물과 함께 하나님께 드려질 제물이었다(1:24; 민 15:6-7). 사무엘은 그들이 사울에게 문안을 할 것이며, 떡 두 덩이를 사울에게 줄 것인데, 사울이 그것을 받게될 것이라고 하였다(4). 벧엘로 가는 순례자의 이러한 행동은 그들이 벌써 사울을 지도자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삼하 8:10; 왕하 10:13). 떡 두 덩이를 사울에게 준 일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사울을 존경하는 의미와 함께 사울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함이며(9:7), 2) 이스라엘의 모든 값진 것이 사울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 부분적  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고(9:20), 3) 그 떡이 하나님께 바쳐질 예물이었다는 점에서, 사울을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로 인정하는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10:1; 9:16).

 

  사무엘은 그 후에 사울이 블레셋의 영문이 있는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사무엘은 그때에 산에서 선지자의 무리가 에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에 사울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사울이 선지자의 무리와 함께 예언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사무엘은 이 때에 사울이 변하여 새로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5-6). '하나님의 산'(기브아트 하엘로힘)은 '하나님의 기브아'라는 뜻으로서, 이는 사울의 고향인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를 가리킨다(Keil, Fay, Smith). '기브아' 앞에 '하나님의'란 말이 붙은 것은 그곳에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사울이 왕이 된 후에 이곳은 '사울의 기브아'라고 불리워졌다(11:4; 15:34; 삼하 21:6., 요세푸스는 이곳이 예루살렘 북쪽 약 1시간 거리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울은 자기 고향 성읍 기브아로 들어가는 길에 제사를 드리고 내려오는 선지자의 무리들과 만날 것이다. 블레셋 사람의 영문은 1) 블레셋 족속이 권위의 표시로 세운 '기둥'이거나, 2) 블레셋 족속이 공물을 받기 위해 설치한 행정관서였거나, 아니면 3)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을 감시하고 통치하기 위해 세운 '수비대'였을 것이다. 후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신의 군대로 이곳을 공격한 것을 보면(13:3-4), 이곳은 블레셋 족속의 군사기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지자의 무리(헤벧 네비임)에 대해서는 성경에 분명한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이들은 사무엘의 영적 지도를 받으면서 훈련을 받던 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L. Wood, F. R. Fay). 여기에서 언급된 '산당'은 라마(7:17), 벧엘(3절) 외에 또 다른 제단이 있는 성지였던 것 같다. 따라서 여기에 언급된 '선지자의 무리'는 이때에 그곳에 순례하기 위해 왔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구약 시대에 '여호와의 신' 곧 성령(창 1:2)이 임하는 일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선택된 지도자에게 때와 필요를 따라 나타났던 현상이었다(16:13; 민 11:25; 삿 6:34; 11:29; 14:6,19; 15:14).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지도자를 택하고 인정하셨다는 확증일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일을 통하여 그 지도자에게 맡긴 일을 잘 수행토록 특별한 은사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구약 시대의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임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때로 떠나가기도 했기 때문에(16:14), 본질상 오순절 이후 임하는 성령, 곧 구원의 문제와 관계된 신약 시대 중생과는 다른 것이다(요 3:3, 5).

 

  여기에서 사울이 한 '예언'도 선지자의 무리가 한 것과 동일한 것임이 분명하다. 즉 사울 역시 선지자의 무리와 마찬가지로 그 마음이 감동되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Smith, Fay). 한편 이때 사울에게 있어 이 예언은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했음을 확증해 주는 외적 증표의 하나요, 아울러 그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기름 부음 받았음을 확증해 주는 내적 증표가 되었다(Keil). 새 사람이 된다는 말은 사울에게 있어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1)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할 자로 부름 받았다는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1절; 9:20-21). 2) 이스라엘을 구출하기 위한 열망이  맹렬히 타오르게 되어, 적극적이고 담대하게 활약하게 될 것이다(11:6).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러한 일이 모두 임하면 기회를 따라 행하라고 지시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고 가르쳐 주었다(7). 사무엘은 사울에게 먼저 길갈로 내려가라고 지시했다. 사무엘은 그 후에 자신이 그 곳으로 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갈 때까지 그 곳에서 7일을 기다리라고 지시했다(8). 사무엘이 사울을 먼저 내려가도록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무엘 자신은 백성들을 소집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고, 2) 사울은 자신을 성별할 기회를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그때에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온 백성들에게 공개하려는 기회를 가지려고 했다(11:14). '번제'는 전적 헌신을, '화목제'는 감사와 친목을  위한 제사이다. 이러한 제사들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위한  위임식과 관련된 제사들이었을 것이다. 사울이 이 말을 듣고 사무엘을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으며, 사무엘이 말한 모든 일도 그 날에 모두 이루어지게 되었다(9-13). 하나님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맡겨진 일을 감당하도록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 즉 이제 사울은 이전의 사울의 모습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막중하고도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여야 할 처지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런 은혜를 주신 것이다. 사울은 집에 도착해서 모든 일을 숙부에게 고했지만, 자신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14-16).

 

  그 후에 사무엘은 모든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소집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세상의 제도를 따라 왕을 구했다고 말했다. 사무엘은 그들의 요구를 따라 이제 이스라엘 지파에서 왕을 선출하는 예식을 거행했다. 사무엘은 모든 지파들이 보는 앞에서 제비를 뽑았는데, 베냐민 지파가 선출되었다. 그리고 다시 제비를 뽑은 결과 베냐민 지파 중에서 마드리의 가족이 선출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제비를 뽑은 결과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히게 되었다(17-20). '마드리'는 '여호와의 비'란 뜻으로, 사울 가문의 족장이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 사람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Ewald는 그를 '비그리'란 이름을 잘못 발음한 것이 아닌가하고 추측하기도 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비뽑기가 신적인 뜻에 따라 결정된다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 하나님은 종종 이러한 방법으로 역사하셨으므로(민 26:55; 수 14:2;  18:10), 여기서 사울이 제비에 뽑힌 것은 하나님의 뜻이자, 또한 사울 왕국의 정통성이 확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울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께 사울이 이 곳에 왔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하나님은 사울이 이 곳에 왔으며 부끄러워서 행구 사이에 숨어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러면 왜 사울은 자신이 왕으로 선택된 것을 알고도 이러한 행동을 했는가? 이는 1)자신이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혹시 일어날지 모를 여러 가지 사건들을 두려워했거나, 2) 아니면 그의 소심하고 부끄러워하는 성격 때문이었거나, 3) 아니면 그의 겸손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행구'(켈림)는 '물건들'이란 뜻으로서, 아마도 미스바에 모인 백성들의 '여행용 짐 꾸러미'를 가리키는 말이엇을 것이다(Keil). 사람들은 즉시 행구로 달려가서 사울을 찾아 데려왔다. 사람들이 사울을 사람들 앞에 세우고 보니 그의 키가 보통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어깨 위나 컸다. 이러한 그의 외모는 강력한 왕을 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족시켜 주엇을 것이다. 사무엘은 왕으로 뽑힌 사울을 백성들 앞에 세우고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세운 왕임을 선포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두 왕을 위해 만세를 불렀다(21-24). 사무엘은 나라의 제도에 대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쳐 준 후에,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사무엘은 모든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25). 이때에 사울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음이 감동된 유력한 사람들이 그와 함께 동행했다(26). 그러나 일부 비류들은 여호와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울이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울에게 예물을 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울은 이러한 그들의 행동을 보고 입을 닫고 침묵으로 처신했다(28).    


 
2-3. 사울 왕국의 시작(11장)

  사울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사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셨다는 확증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사건을 일으켜서 자신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증거하셨다. 하나님은 이때에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하게 하셨다. '암몬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의 딸을 통해 낳은 아들의 후예들이었다(창19:30-38). 이 족속은 그 후 요단 강 동쪽, 즉 사해 북동쪽을 차지하고, 얍복 강 언덕의 랍바를 수도로 삼았다(신 3:11).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잘 조직된 왕국의 형태를 소유하고 있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들 암몬 족속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그들이 롯의 후손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신 2:19).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혀 오다가(삿 10:9), 결국 다윗에 의해 정복되고 말았다(삼하 12:30). '길르앗 야베스'는 '길르앗의 메마른 땅'이란 의미이다. 이곳은 갈릴리 호수의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요단 강 동쪽 지점으로,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된 영토였다(수 21:6-15). 그런데 사사 시대에 이곳 주민들은, 패역한 행동을 했던 베냐민 지파 징벌에 참여치 않다가 베냐민의 남은 장정들을 위해 처녀들을 제공해야만 했다(삿 21:6-15). 이 때에 암몬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도인 '랍바'(삼하 12:26; 암 1:14)에서 북쪽으로 약 50km 진군하여 '길르앗 야베스'의 맞은 편에 진을 친 듯하다. 그들은 전에도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는 했으나 사사 입다의 활약으로 완전히 패퇴당하고 말았었다(삿 11:32,33). 그런데 그로부터 약 1세기 지난 후에 암몬 족속은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재 침공을 시도한 것이다. 므낫세 지파 사람들은 암몬 족속과 싸울 전의를 잃고 그들과 평화조약을 맺기를 원했다(11:1).

 

  그러나 기고만장한 암몬 왕 나하스는 모든 므낫세 지파의 오른 눈을 빼어야만 평화조약을 맺을 것이며, 모든 이스라엘의 족속에게도 이렇게 할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2). 야베스의 장로들은 나하스에게 7일 동안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에 구원을 요청하고,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으면 그들의 요구를 따르겠다고 답변했다(3). 그러자 나하스는 이를 허락했다. 이것을 보면 그는 온 이스라엘과 맞서 싸울 자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베스 장로들이 보낸 사자들은 사울이 살던 기브아에도 이르러서 그 사실을 보고했다(4). 이 소식을 들은 모든 백성들은 모두 다 울며 슬퍼했다. 그때에 사울이 농사를 짓고 소를 몰고 오다가 오 소식을 듣게 되었다(5).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신에 의해 크게 감동이 되었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큰 분노를 일으켰다(6). 그리고 자신이 끌고 오던 소를 잡아 각을 떠서 온 이스라엘로 보내고 이렇게 전하게 했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좆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렇게 할 것이다". 사울이 이렇게 선지자 사무엘의 권위를 빌린 이유는 1) 자신이 여호와의 선지자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 합법적인 왕이라는 사실과, 2) 암몬의 나하스 군대와 싸우기 위한 군대의 소집이 신적 권위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며, 3) 그리고 사무엘도 자신과 함께 전투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온 백성들로 하여금 사울을 두려워하게 만드셨다.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 암몬과 싸우기 위해서 사울이 있는 곳으로 소집했다(7). 사울이 베섹에서 군대를 세어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30만이었고, 유다 지파는 3만명이었다(8). '베섹'은 세겜 북동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길르앗 야베스로부터는 약 22.5km정도 떨어져 있었다. 한편 '계수했다'(파카드)는 말은 '소집했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사울은 사람들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보내서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전하게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야베스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다(9). 해가 더울 때는 해가 뜨거워질 때란 말로서 정오 무렵쯤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베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숨기고 암몬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내일 그들에게 항복할 것이라고 전달했다(10). 아마도 이 소식을 들은 암논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싸움을 포기한 것으로 알고, 긴장을 풀게 되었을 것이다. 야베스 사람들은 이렇게 계교를 써서 사울의 공격을 간접적으로 도왔다. 이튿날 사울은 소집된 군사들을 3부대로 나누어 암몬 군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새벽에 적진 중으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암몬 사람은 크게 패배했으며 남은 사람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치고 말았다(11).

    

  사울의 인도를 통해 암몬 사람에게 크게 승리한 것을 본 백성들은 그의 왕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에 사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끌어내어 죽이려고 했다(12). 그러나 사울은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신 날에 사람을 죽이는 일이 옳지 않다고 하면서 그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13). 이에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했다.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14).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모든 백성들이 사무엘의 말을 따라서 길갈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여호와 앞에 화목제사를 드렸으며,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크게 기뻐하였다(15). 길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의 첫 번째 성소였다(수 5:2-8). 이 곳은 여호와의 왕권을 선포하기에는 매우 적절한 곳이었다. 사무엘은 이곳에서 여호와의 왕권을 다시 한 번 선언을 했다.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께" 화목 제물(감사 또는 헌신)을 드렸으며, "여호와 앞에서" 크게 기뻐했다. 이러한 기록들은 사울의 왕권이 여호와로부터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열방과 같은 왕정 제도를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는 특별한 왕정제도를 주셨던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길갈에서 사울을 대표로 하는 "여호와의 왕국"을 세우셨다. 사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다스려야 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은 그의 왕권을 굳게 지켜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경우에 하나님은 그를 왕의 자리에서 폐위시킬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는 왕정제도를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셨다.  


 2-4. 사무엘의 고별 설교(12장)-사사 시대의 종결과 왕정 체제의 시작-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신정이 유지되는 왕정 체제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면서도 왕정 제도가 세속화되는 것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사무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기의 아들, 그리고 왕이 된 사울 앞에서 자신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부정한 일을 행하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무엘의 고백에 대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가 남의 물건을 취하거나 뇌물 받고 속인 일이 없다고 분명히 확증했다(1-5). 사무엘은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에 들어오게 하신 일과, 2)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주변 민족들의 지배를 받게 된 일, 그리고 3)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고 자신을 포함한 사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신 일에 대해 언급했다(6-11). 그리고 나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세속 적인 왕을 요구했으며, 그 요구에 따라 사울을 왕으로 세우게 되었다고 말했다(12-13). 사무엘은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왕이 여호와를 섬기고, 그 명령을 좆으면 나라가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백성들과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치신 것처럼 그들도 치실 것이라고 선포했다(14-15).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왕이 '열방과 같은 왕'이 되기를 원했다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왕이 자신의 뜻을 실현하는 신적 대리자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선지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과 왕에게 국가의 축복과 징계의 기준을 제시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왕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무엘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왕정 하에서 잘되기 위해서는 1)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며, 2)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3) 하나님의 인도대로 행해야만 한다고 선포했다.

 

  사무엘은 그들이 왕을 구한 것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기를 거부한 중대한 범죄였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뢰와 큰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때는 일을 베는 때였는데, 이때는 팔레스타인에서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때였다. '밀 베는 때'는 대개 4월 셋째 주일부터 6월 둘째 주일까지로(6:13), 이때는 비가 전연 내리지 않는 건조기였다. 따라서 이러한 사무엘의 예고는 이러한 기상 이변이 그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임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뢰와 비는 뇌성을 동반한 폭풍우를 말한다. '우뢰'(콜)는 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목소리로 여겨져,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출 9:23; 시 18:14; 29:3). 또한 이 날에 내린 우뢰와 비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언제라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대로 우뢰와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다(16-18).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며 사무엘에게 나아와서 자신들이 지은 모든 죄 위에 왕을 구하는 죄를 더했다고 자백했다(19). 그러나 사무엘은 그들이 죄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납해 주셨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이 나라가 잘되도록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 해주었다.

 

 사무엘은 1) 첫째로 이슬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세운 왕과 함께 여호와를 좆는 데서 돌이키지 말고, 전심을 다해 여호와를 섬겨야 하며(20). 2) 둘째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헛된 우상을 섬기지 말라(21)고 선포했다. 또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은 것을 크게 기뻐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다(22). 그리고 사무엘 자신도 이스라엘을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1) 그는 이스라엘을 위해 항상 기도하며 기도하는 일을 쉬는 죄를 결코 범하지 않고, 2) 선하고 의로운 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칠 것이라고 선언했다(23). 사무엘은 이러한 말을 하고 나서, 그들에게 오직 여호와만 경외하고 전심을 대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길 것을 촉구했다. 사무엘은 오직 이 길만이 왕정 체제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살길임을 분명히 했다.  사무엘은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며, 여전히 악을 행하게 되면, 이스라엘과 왕이 함께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24-25). 그리고 이 사건 후로 사사 시대는 저물고, 사울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정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3. 사울의 실패-후기 사울 왕국(13-15장)   참고 지도: (사울의 생애)

 3-1. 불길한 징조(13장)

  그러면 왕이 된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안타깝게도 사울은 신정 체제의 왕으로서의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는 13-15장을 통해서 사울이 몰락하고 그의 왕권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그의 나이가 40세였다(1). 사울은 왕이 된 지 2년에 자신의 왕의 직임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3천 명을 선택했다. 이들은 그가 왕의 직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친위병이었을 것이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역사의 초창기의 이스라엘에게 끊임없는 위협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제철업을 독점하였으며(13:19-22), 우수한 전차 부대를 소유하고 있었다.(15)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상비군이 없었으며,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소집된 지원병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므로 사울은 왕이 된 후에 상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상비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울은 그 중에 2천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하고, 1천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했다(2). '믹마스'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5km, 기브아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해발 약 660m 정도의 고지에 있는 곳이었다. 이곳의 남쪽은 '와디수웨이닛'이라는 협곡과 연결되어 있었고, 남동쪽으로는 가파른 언덕들이 있어서 군사적 요충지가 될 수 있었다. '벧엘 산' 믹마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7km 정도 떨어져 있었으며, 해발 약 960m의 고지에 있는 곳이었다.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베냐민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 기브아로서 사울의 통치 거점이었다(10:26).

 

  어느 날 요나단은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공격했다. '게바'는 '기브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곳으로, 기브아 북동쪽 약 5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수비대'는 '기지' 혹은 '요새'란 뜻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거점에 설치한 불레셋의' 군사 초소나 진지'였을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영토 깊숙한 곳에 블레셋의 수비대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에 이스라엘이 불레셋에 의해 많은 압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의 진지를 친 소식은 곧 블레셋 사람들에게 들어가게 되었다. 사울은 이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온 땅에 사자를 보내고 나팔을 불어서 길갈로 소집하도록 기별했다(4). 요나단이 블레셋의 유격대를 치게 되자 블레셋은 즉각 반격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병거 3만과 마병 6천, 그리고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벧아웬 동편에 있는 믹마스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보고 두려워해서 굴과 수풀과 바위 틈, 그리고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다(6). 그리고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갔다. 그러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좆는 모든 백성들을 두려워서 떨고 있었다(7).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은 전에 암몬인들의 위협 앞에서 보인 태도와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사울은 군사를 준비하고 사무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사무엘은 사울에게 미리 7일 후에 그 곳에 가서 제사를 집례할 것을 기별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7일이 다 되어가도 오지 않았다. 아마도 사무엘은 약속한 마지막 날이 거의 다 지나가기 직전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약속한 7일을 온전히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백성들이 사울로부터 흩어지는 것을 보고, 제 7일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는 백성의 흩어짐을 막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조치를 취하려 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가 제사를 드리기를 마쳤을 때에 도착했다. 아마도 이 시간은 사무엘이 약속한 제 7일이 거의 끝나 가는 때였을 것이다. 사울은 사무엘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나가서 그를 맞았다(8-10). 사무엘은 사울이 자기 대신 번제를 드린 것을 보고 그를 책망했다. 사울은 자기의 행동을 변명하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번제를 드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11-12). 1) 이스라엘 군사들의 흩어짐. 2) 사무엘의 도착이 지연됨. 3) 블레셋 군대의 공격 가능성. 그러나 그러한 사울의 행동은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과 하나님과 사무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전쟁에 임하기 전에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려야 했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울은 그러한  순종과 시험에 실패함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부적격자임을 입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말은 들은 사무엘은 사울이 망령된 행동을 했다고 책망하면서, 사울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책망했다. 사무엘은 만일 사울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했었다면 여호와께서 그의 나라를 길게 하셨을 것이지만, 그 명령을 거역한 이제는 그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무엘은 그리고 나서 여호와께서 자기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를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다고 선언했다(14). 사무엘은 이 말을 한 후에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갔다.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니 모두 도망을 치고 600명만 남아 있었다(15). 사울은 요나단과 함께 그 군대를 거느리고 베냐민 게바에 진을 쳤으며, 블레셋은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었다(16). 블레셋 군대는 본 부대를 믹마스에 두고, 나머지 군사들을 세 부대로 나누어 이스라엘을 노략질하게 하였다. 첫째 부대는 오브라 길을 통해서 수알 땅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노략했다(17). 오브라'는 벧엘의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이곳은 원추모양의 산지로 형성되어 있었다. '수알'은 '여우'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수알 땅은 오브라 근처에 있었던 넒은 지역이었을 것이다. 블레셋의 제 1부대는 믹마스에서 북쪽으로 진격을 했었다. 둘째 부대는 벧호론 길로 이동하면서 이스라엘을 노략했다(17). '벧호론'은 '동굴의 집'이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믹마스 에서 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있는 곳으로 해발 약 600m의 고지였다(수 10:11). 블레셋의 제 2부대는 서쪽으로 이동했다. 셋째 부대는 스보임 골짜기가 보이는 길로 이동하면서 이스라엘을 노략했다(18). 블레셋의 제3부대는 믹마스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언급된 '광야'는 예루살렘 동쪽에 있던 유대 광야의 북부였을 것이다. 블레셋은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철을 다루는 철공을 남겨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기구를 수리할 때에 블레셋으로 가야만 했다. 이러한 블레셋의 정책을 인해 이스라엘 군대에게는 무기가 없었다. 이스라엘 군대 중에 무기를 가진 사람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 뿐이었다(19-22). 블레셋은 3부대로 나누어 이스라엘을 노략하게 했으며, 그 본 부대는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었다(23).    


 
3-2. 몰락의 징조(14장)

  사울의 통치는 시동이 걸리기도 전에 몰락하기 시작한다. 산상 13장에서 불길한 징조를 보이던 사울의 물락은 삼상 14장에 가면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울은 어리석은 행동으로 말미암아 큰 군사적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요나단의 대범한 선제 공격으로 인해 블레셋 진영에는 큰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요나단의 용맹은 믹마스에 있던 블레셋 군대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1-15).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사울의 부하들이 전투에 가세해서 블레셋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에 블레셋 사람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들도 요나단과 합세했으며, 블레셋의 패배 소식을 들은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나와서 블레군사들을 추격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기선을 잡게 되었다(16-23). 그러나 갑자기 사울은 어리석게도 그 날에 음식을 먹는 자를 죽이겠다고 맹세를 하였다.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피곤한 중에도 사울을 두려워하여 땅에 흐르는 꿀을 보고도 그것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울의 맹세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 꿀을 먹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백성 중에 하나가 요나단에게 사울이 한 맹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요나단은 그이야기를 듣고 부친 사울이 경솔하게 맹세를 하여 백성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고 불평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이 날에 크게 승리를 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이 날에 이스라엘 rnst가들이 블레셋 군사들을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까지 쳤다고 기록하고 있다(31). '아얄론'은 '사슴의 자리'란 뜻을 가진 이름으로, 이곳은 믹마스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블레셋과의 국경에 인접한 성이었다. 이곳은 과거에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을 치고 승리했던 곳이기도 하다(수10:12). 이스라엘 군사들은 금식 중에서도 20km나 떨어진 아얄론까지 블레셋 군사들을 추격할 수 있었다. 사울의 경솔한 맹세로 인해 이스라엘이 금식을 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승리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스라엘 군사들은 극도로 허기가 지고 피곤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러한 사울의 맹세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백성들은 사울이 금식을 명한 시간이 지난 후에 허기진 나머지 정상적인 과정을 밟지 않고, 피가 있는 째로 고기를 먹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백성들은 여호와께 죄를 범하게 되었다. 사울은 이러한 보고를 받고 큰돌을 가져다가 짐승을 잡을 수 있게 하고, 피가 있는 째로 고기를 먹지 말도록 지시했다(24-34).  

 

  그 후에 사울은 계속 적을 추격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그는 백성들에게 밤중부터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블레셋 군사들을 쳐서 그들을 전멸시키자고 제안했다. 무리들은 이러한 사울의 견해에 찬송을 했다. 그러나 제사장이 그에게 와서 블렛셋을 추격하는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묻기를 요청했다. 사울은 그 의견을 받아들여 블레셋 추격에 대한 여호와의 뜻을 물었으나 여호와께서 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사울은 여호와께서 대답을 하지 않는 죄가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보자고 하여 제비를 뽑았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자기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맹세를 어기고 음식을 먹은 일을 알게 되었다(35-42). 사울은 요나단이 자기의 맹세를 어긴 것을 알고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이 이를 극구 만류함으로 요나단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블레셋 군사들을 추격하지 못했으며, 블레셋 군사들은 자기의 땅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43-46). 우리는 이러한 사울의 기록을 통해서 "과연 하나님께서 사울과 함께 하셨는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전쟁 기사를 보면 진정한 용사는 사울이 아니라 요나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요나단은 용맹한 기습으로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사울의 경솔한 태도에 비해 매우 지혜롭게 처신했다. 이러한 요나단의 용맹과 지혜는 모든 백성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사울의 경솔한 맹세를 어긴 일로 사울이 요나단을 죽이려고 했을 때에 온 백성들은 이를 만류했다. 그들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요나단이 하나님과 함께 하였나이다!"(14:45). 우리는 이러한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인물은 사울이 아니라 그의 장자인 요나단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울은 경솔하고 문제만 일으켰지만, 요나단은 신중하고 용맹하게 처신했다.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을 에브라임 산지에서 몰아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동의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사울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주변에 있는 대적들, 즉 모압고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과 아말렉 자손을 쳐서 승리하였다. 하나님은 그가 싸우는 전쟁에서 그를 승리하게 해주셨으며, 이로 인해 사울은 이스라엘을 주변의 대적들로부터 구해낼 수 있게 되었다(47-48). 이 전쟁 기사에 이어 사무엘서 기자는 사울의 가족에 대해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울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요나단과 이스위과 말기수아였다. 그리고 사울에게는 두 딸이 있었으며, 그 이름은 메랍과 미갈이었다. 사울의 아내는 아히노암이었으며, 군대장관은 아브넬이었다. 사울의 부친은 기스였다. 기스에게는 형제인 넬이 있었는데, 그는 사울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의 부친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울과 군대 장관 아브넬은 사촌간이라고 할 수 있다(49-51). 사울은 살아 있는 동안 블레셋과 계속해서 전쟁을 했다. 그러므로 그는 계속해서 힘이 있는 자들과 용맹한 사람들을 보는 대로 그들을 자기 곁으로 불러들였다(52). 사울은 옛 정치 질서를 바꾸거나 중앙 집권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계속되는 전쟁을 인해 잘 훈련된 군대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항상 힘있고 용맹한 사람들을 모집하였던 것이다.


 3-3. 사울의 불순종(15장)

  그 후에 사무엘은 다시 여호와의 명령을 가지고 사울 왕을 찾아갔다. 이때는 이미 두 사람이 헤어진 지 많은 세월이 지났을 때였다. 다윗은 아말렉과의 전쟁 직후에 기름 부음을 받았다(16:1). 만일 이 때가 다윗이 15세 정도의 소년이었다면(16:11-12), 이 때는 B. C. 1025년경이라고 할 수 있다(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었는데, 이때는 주전 1010년경이었다). 이는 사무엘이 사울과 헤어진  믹마스 전투 때(B. C. 1048년)로부터 약 23년이나 지난 때였다. 사무엘은 사울 왕이 다른 나라의 왕과는 달리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통해 기름 부어 세운 왕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1). 이스라엘의 왕은 열방의 왕과는 달리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대리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선지자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만 했다. 사울은 믹마스 전투 때에 인내하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에게 또 다른 기회를 허락하셨다. 만일 사울이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었다면 그는 멸망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치라는 만군의 여호와의 명령을 전달했다(2).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들이었다(창 36:12,16, 대상 1:36). 그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에 이스라엘의 배후를 기습 공격했었다(출 7:8-13). 이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입은 타격은 매우 컸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을 방해했으며, 또한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의 배후를 기습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아말렉 족속을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간주하시고, 그 족속을 세상에서 진멸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출 17:14, 신 25:19). 또한 그들은 사사 시대에도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난폭하게 침입했다(삿 3:13, 5:14, 6:3,33, 7:12, 10:12, 12:15).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제 자신이 세우신 사울 왕을 통해서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이때에 하나님은 아말렉을 치되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며, 남녀와 소아와 어린 아이, 그리고 짐승까지 모두 진멸하라고 지시하셨다(3). '진멸하라'(하람)는 말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부정한 것을 제거하거나 저주받은 물건을 제사장에게 바치는 행동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뜻에 의해 '헤렘'(바쳐진 것, 금지된  것)은 다른 용도로는 사용될 수 없었으며, 반드시 '헤렘의 법칙'대로 시행해야만 했다. 만일 이 '헤렘'이 산 것이면 죽여야 했으며, 그 밖의 물건들은 모두 불로 태워버려야 했고, 불에 타지 않는 것들(금속)은 하나님께 봉헌되어야만 했다(레 27:28, 신 13:16, 수 6:17). 또한 "남기지 말라"는 말은 '긍휼히  여기거나',  '동정하거나', '아까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드려진 아말렉에 대해 '동정하지 말고'(조금도 아까워하지 말고) 공의대로 철저히 심판하라고 지시하셨던 것이다. 이에 사울은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소집된 사람들을 들라임에서 계수하니 보병이 10만명이었고, 유다 사람들이 1만명이었다(4). 들라임'은 '델렘'(수 15:24)과 동일 지역으로 보인다(Keil). '델렘'(Telem)은 여호수아서에서 유다의 또 다른 성읍 '십'과 같이 언급되고 있는 데, 이를 보면 이 곳은 '십' 근처에 있던 성으로 보인다. '십'은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약 51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렇게 보면 결국 '들라임'은 유다 남쪽의 국경 지대에 있는 곳으로서, 아말렉과의 경계 지점에 있던 성이었을 것이다. 이 성이 아말렉과의 경계 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사울은 이곳을 아말렉 전투를 위한 집결 장소로 채택한 것 같다(Fay). 본문에서 '계수했다'는 말은 '소집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11:8).

 

  사울은 군사를 이끌고 아말렉 족속의 성에 이르러서 그 곳에 있던 골짜기에 군사들을 숨겨놓았다(5). 그러나 사울은 아멜렉을 치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에게 선대했던 겐 족속을 피신시키는 일이었다. 사울은 몰래 겐 사람에게 밀사를 보내서 아멜렉 족속이 있는 곳에서 떠나라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겐 족속이었던 모세의 처남(호밥)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내하는 일을 했다(민 10:29-32). 그 후에 겐 족속은 브엘세바 근처에서 살다가(삿 1:16), 남부로 내려가서 아말렉 족속들이 살던 지역에 함께 거주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던 아멜렉을 치는 일에서 이스라엘을 선대했던 겐 족속을 제외시켜 주셨다.  그리고 겐 족속들은 이러한 사울의 기별을 받고 아멜렉 족속이 살던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피신하였다(6). 겐 족속이 모두 피신한 것을 확인한 사울은 마침내 아멜렉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사울은 이때에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의 술에 이르기까지 아멜렉 족속을 쳤다(7). "하윌라에서 애굽 앞 술까지"라는 말은 당시에 아말렉 족속들이 흩어져 살던 영역을  가리킨다(창 25:18). 이러한 기록은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아말렉 족속의 전지역을 초토화 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울은 아멜렉 족속의 왕 아각을 사로잡았으며, 칼로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다(8). 그러나 사울은 이번에도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았다. 그는 좋지 않은 짐승만 죽이고, 아각 왕과 좋은 짐승들은 모두 살려두었다(9). 사울은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마저 잃고 말았다 

  

  바로 이때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에게 사울의 불순종을 인해 그를 왕으로 세운 일을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언급된 '후회'는 인간의 후회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일을 후회하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완고한 사울의 거역을 보고 이에 대한 신적인 슬픔을 의인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창 6:6,7). 이 말을 들은 사무엘은 근심하여 온 밤을 새우며 하나님께 기도하였다(10-11). 여기에서 '근심한다'(하라)는 말은 '(분노로) 타오른다'는 의미로서, '진노했다'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듭해서 거역하는 일을 보고 거룩한 의분을 느꼈을 것이다(Fay). 사무엘은 이로 인해 온 밤을 지새우며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사무엘은 자기의 말대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겠다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했다. 아마도 이때에 사무엘은 하나님께 사울의 불순종을 용서해 주시고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끝내 회개치 않음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무엘은 일찍이 일어나서 사울 왕을 찾았다.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사울 왕이 갈멜에서 승전비를 세운 후에 다시 길갈로 내려갔다고 전해주었다(12). '갈멜'은 헤브론에서 남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던 유다 지파의 성읍이었다. 사울은 갈멜에서 승전비를 세운 후에 유다 산맥을 가로질러 요단 계곡에 있던 길갈로 갔다.사울이 갈멜에서 승전비를 세운 후에 자기 고향인 기브아로 가지 않고 '길갈'로 간 것은, 제단이 있는 곳에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고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사무엘은 길갈로 가서 사울 왕을 만나게 되었다. 이 때에 사울은 반갑게 사무엘을 맞이하면서 자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했다고 말했다(13). 그러자 사무엘은 "그러면 양과 소의 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때에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좋은 짐승들을 살려두었다고 변명했다(14-15).

 

  그러자 사무엘은 사울에게 더 이상 변명하는 일을 "그치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밤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임하여 하신 말을 사울 왕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사울이 스스로 겸손하게 여길 때에 그를 높여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이제 스스로 교만해져서 여호와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는 악을 두려움도 없이 자행하고 있었다. 사무엘은 사울이 아말렉을 멸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짐승을 탈취하는 일에만 급급해 있다고 책망했다. (16-19). 그러나 사울은 자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했다고 변명했다. 그는 자신이 짐승을 남겨 둔 것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로 삼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20-21). 그러자 사무엘은 여호와께서는 제사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신다고 선언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는 형식보다는 마음으로 여호와를 순종하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했다. 또한 사무엘은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가증한 일과 같으며, 완고한 마음을 품는 것은 헛된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사울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명령보다 더 귀중하게 여겼으며, 이러한 일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 없는 중대한 범죄였다. 사무엘은 사울이 여호와의 명령을 저버렸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그를 버려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선언했다(22-23).

 

  사울은 결정적인 사무엘의 선고를 듣고 당황하여 태도를 바꾸어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사무엘에게 자신과 함께 가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울의 고백은 진정한 회개라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그가 1) 계속해서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고 변명과 책임 전가로만 일관하다가, 심판의 선언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시인했기 때문이며, 또 2) 죄의 고백 후에 그 원인을 백성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3) 죄를 고백한 후에도 계속해서 왕위 보존과 명예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사울의 고백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회개가 아니라, 왕국의 상실과 명예의 실추를 두려워한데서 나온 형식적인 회개였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그를 버리셨으므로 그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사무엘이 돌이키려는 것을 본 사울은 다급해져서 사무엘의 겉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사무엘의 겉옷이 찢어지고 말았다. 사무엘은 다시 한 번 여호와께서 사울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셨다고 선언했다. 사울은 왕위에 있었지만, 이미 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 왕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이 범죄했다고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 주기를 부탁했다. 사울은 간곡하게 사무엘에게 자신과 함께 동행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사무엘은 사울의 간절한 부탁을 듣고 돌이켜서 그와 함께 갔으며, 사울은 사무엘 앞에서 여호와께 경배할 수 있었다(24-31). 사무엘이 사울의 요청을 허락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비록 형식적이긴 하지만 다음 왕을 세울 때까지 사울을 통해 외적인 정치 질서를 유지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Gerlach). 2) 사울과 함께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죽임으로써, 사울이 완수하지 못한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Keil).

 

  사무엘은 사울이 처리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그는 사울이 살려 둔 아멜렉 왕 아각을 자기 앞으로 끌고 오라고 명령했다. 아각 왕은 정치적인 왕으로부터 제사장에게 넘겨지는 것을 보고 생명을 구원받은 줄로 알고 기뻐했다. 그는 자신에 종교를 주관하는 제사장에게 가면 살아남을 줄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의 기대와는 달리 그를 죽여버렸다. 사무엘은 아각 왕이 무죄한 자를 죽여 대를 끊은 것같이, 그의 가족도 대가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동형복수법 의 원칙을 따른 것이다. 그는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아각 왕을 죽여서 조각을 내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손을 통해서 그가 이전에 행한 무자비한 행동들에 대해서 엄중하게 심판을 하셨다. 이 일 후에 사무엘은 자기 고향인 라마로 돌아갔으며, 사울도 자기 고향인 기브아로 돌아갔다. 이후부터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다시는 사울을 찾아가서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이러한 묘사는 사무엘이 더 이상 사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울은 왕위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지 못하는 폐위된 왕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이 이렇게 한 것은 그가 사울로 인해 심히 근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은 축복 속에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그의 완고함과 불순종을 인해 더 이상 그를 도울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그를 위해 슬퍼하며 그의 회개를 위해 계속해서 기도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일을 후회하셨다(32-35). 이후부터 사울은 급속한 하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원하신 것은 믿음과 순종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거역하며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더 앞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왕정 제도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김진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