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심리교실

삼중고 겪고 있는 정신장애우 가족들의 애환

예인짱 2008. 6. 18. 14:46
[정신장애인 인권 리포트] 삼중고 겪고 있는 정신장애우 가족들의 애환
치료비 ‘눈덩이’… 주위선 ‘색안경’… 가족도 ‘우울증’
  • #1. 경북 성주에 사는 이모(64)씨는 평소 “죽여 버리겠다”는 큰아들(45)의 협박에 시달렸다. 제대 직후 조울증에 걸린 아들은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고 생활비와 병원비는 모두 이씨가 부담해야 했다. 치료비 대느라 논밭을 다 처분한 이씨는 올해 5월 “아들을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겠다”며 구급차를 불렀다. 차에 오른 그는 갑자기 흉기를 꺼내 아들을 찔렀다. 살인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이씨는 눈물을 쏟으며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책임진 것이다. 그간 사는 게 지옥 같았는데 이젠 편하다”고 말했다.


    #2.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정신분열병을 앓는 A(43·여)씨.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콱 막히는 증세를 느껴 병원에 갔다. 의사는 공황장애로 진단하며 빨리 손을 쓰라고 했다. 그는 결국 아들과 다른 병원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A씨는 “자녀의 정신장애를 치료하다가 엄마도 함께 우울증에 걸린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정신장애는 환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치료비 때문에 휘청거리는 살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주위의 시선 등은 고스란히 가족의 부담으로 남는다. 대구대 배정규 교수(심리학)는 가족의 고통에 대해 “집안의 모든 돈, 시간, 관심을 오직 치료에 쓰다 보면 나중에는 환자와 하루하루를 같이 지내는 것조차 힘들어진다”고 묘사한다.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환자 가족이 늘어난다. 이들의 표현을 빌면 ‘저(低) 에너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정신장애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애가 발병하면 ‘부모가 양육을 어떻게 했기에’ 하고 따지기부터 하는 게 우리 사회다. 가뜩이나 힘든데 사회적인 고립까지 겹치니 기운이 더 빠진다.” (A씨의 고백 중에서)

    정신장애인 수는 많지만 정작 그 가족들의 모임인 정신보건가족협회의 운영이 그리 활발하지 못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앞장서서 일해 보겠다는 이는 거의 없고 그냥 회원으로 가입하겠다는 환자 가족도 드물 지경이다. 회원이 되려면 일종의 ‘커밍아웃’(본인이나 가족이 정신장애인임을 밝히는 것)이 필요한데 누구도 선뜻 용기를 못 내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다른 단체들처럼 정부 정책에 영향을 끼치기도 어렵다. 취재팀이 만난 환자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끼리 잘 모이지 못하고 결집이 안 되는 게 문제”라며 “압력단체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목소리를 내야 정부도 우리를 주목하고 우리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장애 치료에는 병원비, 약값 등 엄청난 비용이 든다. 어린 자녀가 발병한 경우 ‘남모르게 빨리 치료해 어서 벗어나자’는 다급한 마음에 최고의 의료진, 최고의 약만 찾다가 경제적으로 파산하기 쉽다. “몸속 귀신을 쫓아야 한다”며 1000만∼2000만원을 들여 굿을 하거나 미심쩍은 종교단체의 신세를 지는 사례도 여전하다. 치료 도중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가정이 많다는 것은 환자 가족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만성화된 정신장애를 앓는 성인 환자가 있는 집안은 사실상 포기 및 방치로 치닫는다. 치료비도 문제지만 나이 든 부모가 언제까지 보살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시설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대안을 찾기 어렵다.

    병에 걸린 자녀를 돌보는 과정에서 부모들은 정신장애에 관한 준(準) 전문가가 되다시피 한다. 일부는 사회복지사 등 관련 자격증을 따거나 직접 정신장애 관련 시설을 차린다. 하지만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 정신보건 전문요원들이 정신장애인 재활을 주도하는 현 시스템에서는 가족의 참여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신분열병을 앓는 딸을 20년 넘게 수발해 온 이모(여)씨는 “전문가 집단의 직역이기주의에 가로막혀 가족이 재활 프로그램에 들어갈 통로가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신은 (정신장애인을) 외면해도 부모는 그럴 수 없다”며 “환자 가족은 (재활 프로그램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고 강조했다. 최한식 경기북부 정신보건가족협회장도 “정신장애인은 부모가 챙겨주지 않으면 대책이 없고 결국 낙오자가 될 뿐”이라고 우려했다.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팀장)·이상혁·김태훈·양원보·김창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