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심리교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찾은 생의 길

예인짱 2008. 4. 27. 20:23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찾은 생의 길
 
 






[한겨레] 인터뷰 /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 펴낸 소설가 차현숙

우울증 고통받은 경험담 솔직한 고백
다섯번 자살시도 뒤 소설쓰기로 치유
“정신과 치료 감추려다 되레 화 키워”


우울증은 특히 예술가들에게 잘 찾아오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이 예술적 창조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일예로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Against Happiness(행복에 반대한다)〉라는 책은 예술적 창조의 원천으로서 우울증을 적극 옹호한다. 이 책의 지은이 에릭 윌슨은 심지어 이렇게 쓴다: “가장 큰 비극은 비극 없이 산다는 것이다. 행복을 끌어안는 것은 삶을 증오하는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자아를 혐오하는 것이다. 우울함은 숭고함에 이르는 실마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을 무턱대고 찬양하거나 장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우울증을 앓는 환자 본인에게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것이기 때문이다.

차현숙(45)씨의 새 소설집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이룸 펴냄)는 극심한 우울증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작가 자신의 생생한 육성 고백이다.

차현숙씨는 1994년, 지금은 없어진 잡지 <소설과 사상>을 통해 등단한 뒤 그동안 소설집 <나비, 봄을 만나다>와 <오후 세 시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 그리고 장편 <블루 버터플라이>와 <안녕, 사랑이여>를 내놓았다. 소설집으로는 <오후 세 시…>(2000) 이후 8년 만에, 장편까지 포함하면 <안녕, 사랑이여>(2002)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새 책에서 작가는 우울증으로 고통받은 자신의 경험을 거의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책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여섯 단편이 실렸는데 그 중 다섯 편이 우울증의 원인과 경과, 치료 과정 등을 다룬 일종의 ‘우울증 연작’을 이룬다.

“나의 병명은 만성화된 양극성 우울증이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딸에게 위대한 유산처럼 물려주는 악마의 발톱. 정신의학사전을 찾아보면 양극성 우울증은 모계로부터 유전되며 이십대 초·중반에 발병한다, 라고 적혀 있다. 우울증이 오면 세상의 문이 닫히고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지옥의 문이 열린다.”(<세상 모든 문이 닫히던 날>)

모계의 유전이라는 선천적·생물학적 요인에 복잡한 가족 구성이라는 후천적·환경적 요인이 더해지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책에 수록된 여러 작품들에서 반복적으로 서술되고 있는 대로,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의 첫 번째 배우자와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버리고 새롭게 만나 가정을 꾸려 작가 차씨와 남동생을 낳았다.


“어머니는 저희 아버지와 결합하기 전에 첫 번째 남편에게서 언니 셋과 오빠 하나를 낳았어요. 아버지도 첫 번째 부인에게서 딸 하나를 두었죠. 문제는 앞선 관계가 법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학교에 들어가 ‘가정환경조사서’를 쓸 때 어머니 이름 란에 내 엄마가 아니라 다른, 모르는 여자의 이름을 써야 했을 때부터 혼란이 시작됐어요. 그 전부터 집안에 무언가 음습한 비밀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는 걸 막연히 감지하긴 했었죠. 결혼 신고를 하려고 호적을 떼어 보면서야 내가 엄마의 딸로 올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때 처음 우울증이 왔습니다.”

“엄마와 아버지가 침묵으로 봉인한 비밀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려졌고 우리는 깊은 정신적 외상을 받았다. 수치심과 도덕적 열등감이 우리들 내면에 깊숙히 뿌리를 내렸고 그 감정들은 무의식 속에서 분노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사랑을 상실했고 인생을 증오하게 되었다.”(<메시지를 남겨주세요>)

“그녀(=엄마)의 첫째 딸은 자살했다. 그녀의 둘째 딸은 이혼당했다. 아들은 일부종사 하지 않은 그녀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그녀의 셋째 딸은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며 두 번째 결혼을 했지만 결국 집을 뛰쳐나갔다. 그녀의 넷째 딸인 나는 언제나 위태롭다. 나이가 든 그녀는 자식들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해 깊은 죄의식에 빠졌고, 심한 불면증으로 밤마다 동네를 배회했다.”(<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상처와 고통의 근원인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자신을 갉아먹는 우울증도 함께 사라져 줄 줄 알았다. 1999년 여름, 부모님이 20일 터울로 세상을 떴다. “그런데 예상과는 너무도 달리 중증 우울증이 찾아왔다.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 멍한 상태에서 알 수 없는 자살 충동, 엄청난 죄의식, 사람들과의 불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불안과 공격성과 그리고 허무.(…)그런 정신세계 속에서도 매년 문예지에 작품을 한 편씩은 발표했다. 그 작품들은 지옥에서 썼다고 해도 무방할 거다.”(‘작가 후기’)

‘고통에서 벗어날 권리가 내게 있다’고 일기장에 쓴 그는 수면제를 먹거나 목을 매거나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거나 칼로 손목을 긋는 등으로 무려 다섯 번의 자살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자유로에서 길을 잃다>). 안 되겠다 싶었다. 병원과 의사들에게만 기대지 말고 내 병의 정체를 스스로 파악해 보자, 생각하고 우울증과 정신의학, 심리 등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6개월 만에 심리상담 2급 자격증을 땄다. 이제는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이론적인 설명과 상담을 해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소설 쓰기는 내면에 응어리져 있던 분노와 고통을 밖으로 토해 냄으로써 자기 치유의 효과도 수반했다.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분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서로 쉬쉬 하면서 감추려고만 해요. 그게 오히려 우울증을 깊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 소설을,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나 그 가족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우울증은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신체질환과 비슷한 겁니다.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얼마든지 치유될 수 있어요.”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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