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기독교 자료

종려주일

예인짱 2008. 3. 17. 12:14


종려 주일



李錫奎 나는 종려 주일이 가까이 오면 이 땅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수많은 사람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를 흔들던 그 옛날 예루살렘 광장 한복판으로 들어가 나귀를 바라보며 주님 안으로 들어가 그 군중이 되어 내가 나를 바라본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고맙고 감사한 것뿐인 그 내 배경 속에서 갑자기 엘리 엘리 사박다니 주님의 간절한 기도 소리가 들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내게 몇 번이나 물었다 주님과 나의 거리는 몇 미터일까? 또 얼마나 낮아져야 나귀처럼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 나귀의 발길처럼 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앞만 보고 달리듯 늪 같은 욕심은 버려야겠지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한걸음으로 달리는 마음 가난한 자만보고 달려야겠지 나는 이 땅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내 고향, 하늘나라로 돌아 갈 때는 이렇게 가고 싶다 주님을 등에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나귀가 되어서

 

 

 
 

1 . 종려주일의 유래

    종려주일(Palm Sunday)은 예수에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셨을 때 종려나무 잎사귀를 사용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요 12 :13). '수난주간'으로 알려진 십자가의 주간은 종려주일에 시작하여 그 다음 주일인 부활주일에 끝났는데, 이 기간이 구세주에게는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린 기간이었습니다. 너무나 슬프고 괴로운 한 주간이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 에워싸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으나, 그는 지나치게 의기양양해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 날의 "호산나" 소리가 머지 않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소리로 바뀌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에서는 종려주일이 가까워 오면 종려나무를 승리의 상징으로, 또는 정복의 상징으로 이용합니다. 한편 종려주일의 합당한 명상을 이스라엘 민족의 초막절 의식규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 종려주일

     

    주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기 위해 지키는 주일로, 부활절 전 주일이며, 수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예수가 부활하시기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펴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환호성을 치던 사실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요 12 : 13, 계 7 : 9).
    그래서 4세기 이날 경부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행진하는 특별한 의식을 해왔습니다. 종려나무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악마를 대적하는 상징물로써 축복의 나무가 되고 있으며, 중세에 와서는 이 행진이 한 교회에까지 가는 풍습이 되었는데, 종려나무를 축복하고 분배해 주면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이 행진 때는 종종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복음서나 십자가, 또는 나무로 만든 나귀 위에 그리스도가 올라앉은 모습을 만들어 행진에 앞세웠습니다. 중세 초엽에는 종려나무가 예배에까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개신교에서도 중세에는 마태복음 21 : 1-9을 읽은 후에 목사와 신도들이 십자가를 맨 앞에 세우고 영광의 찬송을 부르며 행진했습니다. 로마교회는 이 행진에서 다른 성당으로 가거나 자기들의 성당으로 되돌아 왔을 때 마태복음의 수난 기사가 든 찬트(Chant)를 부르며 예배를 드립니다. 행진 때 사용되는 고유한 빛깔은 빨간 색이며 예배 때도 빨간 색을 씁니다. 오늘의 카톨릭에서는 이 행진을 별로 하지 않으며, 다만 사순절 기간 중 수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로 기념하며 종려주일의 예배를 드립니다.

     

    3. 호산나(Hosannas)

     

    히브리어 '호시안나'(Hosianna)라는 말을 헬라적 표현으로 발음한 것인데, 본 뜻은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또는 "아무쪼록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시 118 : 25, 삼하 14 : 4, 시 20 : 9, 마 21 : 9, 막 11 : 9, 요 12 : 13). 이 말의 기원은 시편 118편 25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곧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구약 후기와 초대교회에 와서 메시야 소망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사람을 메시야로 이해했습니다. 이때에 '호산나'라는 말은 남을 칭송하며 존경심을 가지고 인사하는 말이나, 환희를 나타내는 감탄사로 잘못 쓰게 되었습니다.
    신약성서 가운데 여섯 번 사용하였는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 21 : 9, 막 11 : 10)라고 하였으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요 12 : 13, 막 11 : 9)라고 하여 역시 환호의 소리로 사용하였습니다. 민중들이 호산나를 외친 것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불러 내려오시게 하는 것입니다(시 20 : 9). 메시야를 통하여 "우리 아버지 다윗의 왕국이 임한다"(마가)고 했고,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다"(요한)라고 했으며, 또한 성찬식에 성결하기에 앞서서 세 번 "거룩"과 연결해서 쓰였으나, 떡을 땐 후에는 별로 쓰지 않았습니다.
    신약성서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문이 아니라 환호의 소리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카톨릭교회에서는 상크투스와 베네덱투스의 끝 부분에 이 말이 있는데 '만수무강 하소서' '만수무강'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혀 원래의 뜻에서 멀어진 말입니다.

     

    4. 종려나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종려 가지를 들고 호산나라고 부른 사건 때문에 (요 12:12, 13)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종려나무 (히브리어 '타마르' 영어 'Date Palm')에 호감을 가지는 듯하다.목재가 귀했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나 간단한 가구를 만드는데 종려나무를 이용했으나 현대는 그 열매만을 사용한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기후가 상대적으로 더운 요르단 계곡, 사해 주변, 아라바 계곡 등에서 종려나무를 많이 기르고 있다 (사해 가까이 여리고가 종려의 성읍으로 불리웠다. 신 34:3 대하 28:15).

     

    종려나무는 그 키가 곧고 크고, 또 여름을 지나면서 그 열매가 아주 탐스러워지는데, 아가서 7장 7절은 바로 이런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신부의 키가 종려나무 같고 그 아름다운 가슴이 종려나무의 열매 송이와 같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종려나무는 우아함이나 축복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유대 여자들의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다윗의 아들 암논에 의해 추행을 당한 압살롬의 누이 동생 이름이 바로 '종려' (다말=타마르)였다.

     

    유대인들은 매년 가을의 초막절에 일주일 동안 초막을 치는데(모든 사람들이 초막을 치는 것은 아니며, 또 나주 그럴 듯하게 초막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 초막의 지붕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사용한다.종려나무는 암나무, 수나무가 있으며 암나무는 5~6년 생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50여 년 정도까지는 매년 30 Cm 정도 자라다가 그 이후는 성장이 둔화 되는데, 그 키가 약 20m 정도 되는 종려나무는 수령이 약 100년 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