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심리교실

사랑을 속삭이는 뇌...사랑은 '화학반응'

예인짱 2007. 9. 6. 13:00

◇ 사랑은 화학물질이 불러온다
남녀 간의 사랑은 뇌와 생식기 등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에 따라 3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럿거스대 인류학자 헬렌 피셔 교수의 주장이다. 사랑의 첫 단계인 '갈망'에서 남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여성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정상보다 낮아졌다고 한다. 즉 남성은 일정 부분 여성화, 여성은 반대로 남성화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없애려 한다는 것.
온통 연인 생각으로 머리 속이 가득차는 두번째 단계 '홀림'에서는 남녀 모두 페닐에틸아민, 엔돌핀,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이 왕성하게 분비된다. 먼저 '사랑을 부르는 화학물질'로 알려진 페닐에틸아민은 열정적인 사랑을 자극하지만 유효기간이 2~3개월에 불과하다. 엔돌핀은 안정적 기분을, 노르에피네프린은 육체적 쾌감을, 도파민은 만족감과 자신감을 주어 사랑을 유지한다.
불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끈끈한 정으로 맺어지는 세번째 단계 '애착'에서는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주로 관여한다. 포옹을 하거나 로맨틱한 영화를 보면 이들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진다. 특히 옥시토신은 출산과 수유에 관여하는 호르몬으로 모성애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부나 오랜 연인처럼 이성간의 사랑이 깊어지면 마치 모성애를 느끼듯 변하게 되는 것일까?
 
◇ 사랑은 관대함을 부른다
뇌의 특정 부위가 활발하게 움직이면 많은 양의 혈액을 필요로 하고, 이를 '기능성 자기공명장치'(fMRI)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랑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하는 지도 알 수 있는 셈이다. 실험 결과, 연인의 사진을 본 피실험자들의 뇌에서 깊은 미상핵, 뇌간 일부가 활성화했다고 한다. 이 부위는 생존에 유리한 행동, 즉 식욕이나 성욕을 충족했을 때 도파민 등을 분비해 기분 좋은 보상 효과를 불러오는 바로 그 곳이다. 반대로 사랑할 때 특히 비활성화하는 부위도 있었다. 영국 런던대 안드레아스 바르텔스 교수팀은 연인들의 뇌에서 비판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편도체 뒤쪽이 비활성화된다는 것도 알아냈다.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의 외모나 행동에 결점이 있어도 관대해져서 잘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씐다.'는 말이 입증된 셈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종류도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연인간의 사랑과 모성애 모두 같은 부위가 활성화하지만 흥분을 조절하는 시상하부는 연인간의 사랑에서만 활성화했다. 로맨틱하고 순결한 사랑과 에로틱하고 응큼한 사랑은 어떨까? 안타깝지만 아직 두 사랑의 차이점을 뇌 반응으로 찾아낼 순 없었다. 순정 소설에 나오는 애틋하고 지고지순한 사랑과 에로 영화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식 사랑을 구분지을 수 없다는 뜻. 미묘한 사랑의 감정 변화를 기술적인 장치만으로 읽어낸다는 자체가 어줍잖은 시도 아닐까?
 
◇ 사랑보다 흥분이 먼저 온다
2002년 월드컵의 흥분을 잠시 떠올려보자. 생전 처음 보는 남녀들이 한국팀의 한 골에 열광해 서로를 껴안고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이런 기회를 틈 타 '나쁜 짓'을 저지르는 남성들도 있었지만 평소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들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만약 꽤나 매력적인 남성과 이런 포옹이 이뤄졌고, 함께 달아오른 열기도 축하할 겸 뒷풀이 맥주라도 한 잔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실제로 학자들은 남녀가 묘한 흥분상태에서 훨씬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에 빠져서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흥분된 상태에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 심지어 이런 흥분에는 분노, 공포, 질투 등 부정적인 감정까지 포함된다고 한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의 아서 아론과 도널드 더튼 박사는 '카필라노 실험'을 했다. 밴쿠버 인근 카필라노 강에서 이뤄진 이 실험에서 남성들은 튼튼한 나무 다리와 케이블로 된 흔들다리를 건너게 했고, 이 과정에서 매력적인 여성 도우미가 설문지를 받아오도록 했다. 설문 결과가 궁금하면 연락달라는 여성 도우미의 주문에 대해 흔들다리쪽 남성들이 나무다리쪽 남성보다 8배나 많이 반응했다.
설문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흔들다리를 건너면서 아찔한 공포를 느낀 남성들이 도우미 여성을 훨씬 매력적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설문 내용이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참고로 남성 도우미를 참가시켰을 때엔 흔들다리이건 나무다리이건 단 한 명도 연락하지 않았다.
 
◇ 남과 여, 서로 다를 뿐 우월하지는 않다
지난 5월 호주 보험회사 AAMI가 남녀 운전자 2천38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성이 여성보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 음주 운전 등이 많고 사고 발생도 높게 나타났다. 추돌사고 경험은 남성 84%, 여성 74%였으며, 운전 중 광고판 등에 한 눈을 파는 비율도 남성은 51%, 여성은 40%로 차이가 났다. 다만 후진 주차시 추돌사고는 여성이 남성보다 비율이 높았다.
이런 결과에 대해 호주의 심리학 전문가들은 운전 중 사용하는 뇌 부위가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에 종합적인 판단력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지갑이며 리모컨을 못찾아서 아내를 부르는 남편들이 많다. "도대체 뭘 생각하는거야? 그렇게 머리가 나빠서 어떡해?"라고 아내는 면박을 주게 마련.
하지만 이런 일 역시 성별 뇌 기능 차이에서 생긴 것이다. 영국 워윅대 엘리자베스 메일러 심리학 교수 등 연구팀이 모니터상 특정 대상의 위치를 1분 안에 기억하게 한 뒤 테스트한 결과 여성의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여성이 사물의 위치를 잘 기억한다는 뜻.
하지만 공간 감각은 남성이 뛰어난 것으로 나왔다. 하나의 이미지를 여러 각도로 돌려놓은 뒤 같은 것을 찾으라는 테스트에서는 남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앞서 후진 주차시 추돌사고에서 여성 비율이 높은 것도 거울에 비치는 후방 사물에 대한 공간 지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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