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주제를 묵상하며,
행복이라는 주제안에 얼마나 깊고 깊은 세계가 자리하는지,
행복이라는 베이스안에 얼마나 깊고 큰 세계를 담을 수 있는지,
그런 묵상을 할 수 있음이 행복이다.
행복이라는 단어속에 들어있는 깊고 깊은 의미는 입는 행복이다.
얼마나 행복을 입었는가가 행복을 가름하는 가름자인 것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쓸 수 있는 자는 신앙안에 거하는 사람임을 더욱더 깊게 실감한다.
행복은 입은 자요, 그 입는 세계가 소유적이거나, 상황적인 사람은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행복을 외적인 주제속에서 찾는 그 자체가 행복을 쟁취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being의 세계요,
그 being의 한 복판에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영원히 내게 입히시는 선물이신 주 예수가 계신 것이다. 그 선물안에서만 진정한 입는 행복이 자리하는 것이다.
내 존재가 은헤덩어리임을 아는 자만이 입는 행복안에 거하는 자인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은혜위에 은혜러라."
이런 깊은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에게 행복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국한된 한계에 머물고, 그 사람은 또다른 물동이를 찾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가슴에 담으며,
과거완료, 현재완료, 미래완료가 완성된 가운데,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 자로서,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를 누리는 자가 내 존재임을 깊게 자각하고 자각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삶의 현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being의 행복을 가진 자만이 입는 행복을 완성하는 자요, 그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안에 in된 자로 서게 되는 것이다.
이 행복을 가진 자가 비로서 깨닫는 행복이 "주는 행복"인 것이다.
행복은 주는 행복이다. 내가 가진 것을 주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후히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리라.
이 말씀의 의미를 가슴에 담는 자가 행복한 자요, 그 행복이 자리하는 자가 진정한 가치를 담은 행복자인 것이다.
우리에겐 참으로 많은 것을 줄 수 있다.
작은 미소, 작은 인정,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하여, 내가 가진 지식, 내가 가진 기술, 내가 가진 재능, 내가 가진 힘, 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주는 행복을 가진 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자인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피신다고 하셨다. 무엇을 가졌는가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주는 자로 사는 가를 살피신다고 하셨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헐 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옥에 갇힌 자에게 찾을 것을 권하시는 것이다.
주는 행복이 있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행복한 곳이 될 것이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그 행복의 가치가 자리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멋진 행복을 누리는 자가 될 것이다.
이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내 자신이 우리가정에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우리 교회에 행복을 주는 사람으로,
우리교회가 이 세상에 행복을 주는 교회로,
주는 교회가 되길 소망하고 소망한다.
그날이 오늘이요,
그 현장이 지금 처한 모든 현장임을 가슴에 담고,
주는 행복의 삶의 현장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이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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