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민이 파이팅!” “조금만 더!” “오빠, 여기야 여기!”…. 정상에 도착해 있던 사람들이 고함을 질렀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정상민(34)씨 머리 위로 설산(雪山)으로 에워싸인 히말라야 칸진리봉(해발 4700m) 정상이 보였다. 남은 거리 50여m. 상민씨는 등산용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땅을 짚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상민씨는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가 없다. 네 살 때 교통사고로 잃었다. 나흘 전 해발 1460m 샤브르베시 마을에서 시작한 길고 긴 산행. 이제 50m면 끝이다. 이미 첫날부터 의족이 닿는 무릎 부위는 피투성이가 됐다.
그날 오전 7시. 해발 3840m 칸진곰파 베이스캠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홉 살 혼혈아 김관우부터 오른쪽 팔이 없는 69세 남궁정부씨까지, 몸과 마음에 진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어떻게 온 히말라야인데, 꼭 오르고 말 거야.” 왼쪽 다리가 없는 김진희(여·41)씨가 결연하게 말했다. 혼혈 가수 박일준씨가 칸진리봉을 바라봤다. “저거, 혼혈도 오를 수 있다고.”
해발 3000m가 넘으면서 고산증이 찾아왔다. 머리가 아팠다. 구토를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설사에 시달린 사람도 있었다. 김세준 원정대장이 신신당부했다. “절대로 빨리 걷지 마세요. 제가 화를 낼 겁니다.” 병휘씨가 이지연(여·22)씨에게 농담을 던졌다. “꼭 사진 찍어줘야 해, 알았지?” “걱정 마, 오빠.” 지연씨는 오른쪽 발이 없다. 육군사관학교를 꿈꾸던 고등학교 때 기차 사고를 당했다.
힘찬 함성과 함께 정상 도전이 시작됐다. 얼마 못 가서 관우가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나 안 갈래. 여기서 놀래 그냥.” “대장님이 안 가면 우리도 못 가지.” 전대수(41·현대백화점 복지재단)씨가 아이를 등에 업었다.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숨이 막혔다. 박종락(45·안산 상록경찰서 폭력계 형사)씨가 병휘씨를 업고서 걸음을 뗐다. 4000m가 넘는 고산은 유도로 다져진 민완 형사에게도 버거웠다. 스스로 도와야 한다. 병휘씨는 목발을 짚고서 일어섰다.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은 평지에서도 10분 이상 걷기가 힘들다. 첫날에는 셰르파 등에 업혔지만, 이후로 병휘씨는 철저하게 자기 발로 걸어왔다. 그가 말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런데 내가 걷네요. 꿈도 꾸지 못했던 히말라야에 와서 그런가 보죠, 뭐.” 김진희씨는 정상 100m 아래에서 쓰러졌다가 끝내 정상을 밟았다. “그때 정말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기도 싫어.”
정상인이면 두 시간이면 끝났을 산행이었다. 하지만 희망원정대는 길게는 네 시간씩 걸려 정상에 올랐다. 지연씨가 미소를 띠고 정상에 올라왔다. “너 정말 장하다.” 사람들이 지연씨 어깨를 두드렸다. 간경화를 앓고 있는 박일준씨가 올라왔다. 힘든 몸에, 발바닥에 큰 물집이 생겨 포기하려고 했던 도전이었다. “화도 나고… 기분도 좋고….” 혼혈 가수가 하늘을 바라보다 입을 다물었다.
산행 내내 말이 없던 남궁정부씨가 상민씨와 병휘씨를 끌어안았다. “지연아, 상민아, 병휘야, 우리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자.” 노인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상민씨가 말했다. “내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 알겠어요. 살아 있는 게 감사합니다.” 채성태(41) 사랑의 밥차 사장이 말했다. “두 번 다시 못 올 겁니다. 이렇게 모두가 모두를 도왔으니까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사랑합니다, 모두들!” 아침에 쌓였던 눈은 모두 녹았다. 계곡 저편 설산에는 새들이 날아다녔다. 하산 길에는 키 작은 고산 꽃들이 피어 있었다. 힘들게 오르던 길에는 보이지 않던 꽃들이었다.
사고로 팔 다리를 잃은 사람들과 사회적 편견 속에 상처를 입은 혼혈인들이 히말라야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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