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노인복지

한겨레,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 노인 돌봄의 현장에 뛰어든 8개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다[출처] 한겨레,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

예인짱 2020. 1. 2. 14:23

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은 지금도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정부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고 노인 돌봄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10년, 우리 사회의 노인 돌봄 수급자와 요양시설, 요양관련 종사자들은 모두 안녕한 걸까? 학대나 비리가 끊임없이 제기됨에도 공론화하기 꺼려했던 이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요양보호사가 되어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불편한 진실에 다가섰던 8개월간의 기록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39만 명. 노인 인구는 2025년 1,000만 명을 넘고, 2035년에는 1,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치매 환자로 추정되는 노인은 75만 명 정도다. 정부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해 노인 돌봄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보기 어렵고, 자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인들이 국가의 보조를 받아 요양원에 들어가거나, 집에서 재가요양보호사들에게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고 있다. 2019년 3월 현재 약 57만 명의 노인이 장기요양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노인의 수가 늘면서,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인의 수도 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부천 ㅇ요양원에서 일한 지 15일째 되던 2월 12일 오전, 요양보호사 권지담 기자가 영상 일기를 찍고 있다. 이날 주제는 이 요양원에서 5년간 머물렀던 102살 정순실(가명) 할머니가 새벽에 숨졌다는 이야기였다. <출처 - 필자 제공>

요양보험사가 되어 장기요양보험제도 속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해 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10년이 넘은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노인 돌봄’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일부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학대나 비리에 대한 고발성 뉴스는 있었지만 실제 요양기관이 어떤 곳인지, 그 안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의 삶은 어떤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보도는 없었다. 간접체험이나 당사자의 제보, 혹은 인터뷰를 통한 보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장기요양 제도의 문제는 유치원 비리 문제와 닮았다. 하지만 당사자와 가족, 이해관계자들 모두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기 꺼려했다. 당사자인 노인은 문제제기를 할 힘이 없었고, 부모를 요양원에 보낸 보호자들은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의 문제제기가 필수적이었다. 숨겨진 곳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직접 현장을 경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요양원에 취업해 직접 취재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 26일부터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평균나이 쉰여섯의 교육생들과 함께 3개월 넘게 동고동락했다. 240시간의 교육 시간을 이수하고 실습을 거친 뒤 시험을 치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육아 경험이 없는 20대를 선뜻 받아주는 요양원은 없었다. 전국요양서비스노조를 통해 부천 지역에서 취업할만한 명단을 뽑아, 다섯 곳의 요양원에 전화도 해보고 무작정 찾아도 가봤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직접 요양원을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과 요일을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요양원을 찾아 이력서를 내밀었다.

기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인천과 부천, 두 곳의 요양원에 취업해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기사 쓸 거리를 찾아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취업 5일째는 노트북을 켜놓고 잠이 들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잠시도 맘 놓고 쉬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오면 온몸에서 땀 냄새와 기저귀를 갈 때 뿌리는 목초액 냄새가 진동했다. 요양보호사의 하루가 너무 빡빡하게 돌아갔기 때문에 틈틈이 화장실에 가거나 창고에 몰래 들어가 휴대폰에 메모를 해놓곤 했다. 퇴근 후에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중요한 사건은 영상일기를 찍은 뒤에 별도로 자세하게 메모를 해두기도 했다. 요양원에서 노인의 목소리와 요양보호사들의 이야기는 짧게라도 녹취를 해놓고 나중에 풀었다. 한 달간 요양보호사로 일한 뒤 푼 녹취만 115개,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다닐 때부터 매일 기록한 취재일기는 A4 용지로 100장이 넘었다. 내가 경험한 요양원이 특정 사례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요양원뿐만 아니라 재가(방문)요양보호사와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학대, 비리까지 장기요양제도의 문제점 전체를 짚어야했다. 미처 경험하지 못한 방문요양센터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이주빈 기자는 경남, 강원, 충청, 경기, 서울 지역의 방문요양보호사 14명을 만나 최소 3시간 이상 깊이 있는 인터뷰를 했다. 또 방문요양보호사 216명을 설문 조사하고 이들의 노동환경을 분석해 기사에 담았다.

방문요양 실태와 보호사들의 고충

올해 3월 기준, 요양원 이용자 약 15만 명보다 2배 이상 많은 약 41만 명이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방문요양은 요양원처럼 공개적인 장소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수급자의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1대 1로 일하기 때문에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보다 각종 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더 높다. 하지만 방문요양보호사가 소속된 기관은 수급자가 다른 기관으로 이동하면 벌이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제대로 대처조차 하지 않는다. 방문요양보호사들은 노인이 센터를 옮기거나, 갑자기 입원하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지역마다 노동 환경이 다르고, 방문요양보호사들이 겪는 고충도 달랐다.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능한 많은 종류의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경남 하동의 방문요양보호사는 몇 백 평의 밭을 매느라 힘들다고 했고, 광주의 방문요양보호사는 노조 탄압, 낮은 임금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부천의 방문요양보호사는 센터가 난립해 일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모든 지역의 방문요양보호사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노동 과정에서 겪는 각종 폭력이었다. 수급자나 가족의 갑질, 성희롱, 과도한 지시는 방문요양보호사 대부분이 겪는 일이었다. 인터뷰를 마칠 때마다 방문요양보호사들은 하나같이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이야기해본 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엄연한 국가자격인 ‘요양보호사’를 마치 ‘가정부’처럼 취급하는 시선 때문에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있어도 가족에게조차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다고 했다. 하소연을 할라치면 “남의 집 일 하니까 그렇지.”, “그럼 일을 그만두면 되잖아.”와 같은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이들이 들려준 열악한 현실은 설문조사로도 증명됐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의 자문을 받아 전국의 방문요양보호사 216명을 대상으로 ‘방문요양보호사 노동실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노동환경, 근무 중 피해, 부당노동, 직업만족도 등에 대한 답변을 받았다.

60% 이상이 초과 노동한 경험이 있었고 절반 이상이 부당업무를 요구해도 참고 넘어갔다고 대답했다. 수급자나 가족으로부터 욕설, 신체접촉, 성희롱 등을 겪은 방문요양보호사도 각각 30%를 넘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직업에 불만족한다는 방문요양보호사보다 보통이라거나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직접 만난 14명의 방문요양보호사들도 모두 ‘이건 나의 천직’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노인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식보다 더 보살피며 그의 마지막을 지키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이들의 노동현실과 바람을 기사에 담아냈다. 구조적인 비리 등을 확인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장기요양기관 836곳을 점검한 결과보고서를 모두 입수하기도 했다. 취재팀은 A4로 6,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의 보고서를 직접 분석해 장기요양시설이 구조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분석 보도했다. 1년 치 현지조사 지원결과서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겨레는 조사 대상에 오른 4%가 채 안 되는 장기요양기관의 1년 평균 부당청구 금액이 94억 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유령직원들을 동원하는 방법으로 인건비를 속여 국민들의 건강보험료를 빼돌리는 구조를 밝혀냈다. 또 건강보험공단이 장기요양시설을 상대로 고발 및 수사의뢰를 해 확정 판결이 난 판결문 39건도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대안을 찾기 위해 국내 외 전문가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더 존엄한 노년’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묻기도 했다. 건강보험공단이 직영하는 서울요양원과 서울의 한 구청이 운영하는 방문요양센터를 취재해 민간 요양기관과 차이점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취재팀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8개월간 취재한 끝에 3부 8회에 이르는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가 완성됐다.

‘돌봄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들

“자리가 다 찼어요. 워낙 인기가 좋아서”, “신청 마감 됐습니다.”, “다른 데 알아보셔야겠네요. 아마 자리 없을 걸요?” 9개월 전인 지난해 9월 6일. 20곳 넘는 요양보호사 교육원에 전화를 돌렸다. 야간·주말반은 이미 마감된 지 오래였고 평일에도 자리가 없었다.

겨우 경기도 부천의 한 교육원에 자리가 났다고 했는데 한 수강생이 갑자기 등록을 취소한 덕분이었다. 교육원당 정원이 40명인데 이런 실정이라니, 요양보호사 자격증의 인기를 실감했다.

인천 ㅊ요양원 옥상에 노인들의 이불과 옷가지 등이 널려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추운 겨울에도 하루에 세 번 이상 빨래를 옥상에 널고 걷어야 했다. <출처 - 필자 제공>

부천 ㅇ요양원의 목욕실 바닥에 노인들의 방에 있는 이동식 변기들이 놓여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오후 5시30분, 각 방에 있는 이동식 변기를 비우고 소독해야 한다. <출처 - 필자 제공>

9월 26일 교육원 수업 첫날, 수강생 40명 가운데 3명을 빼고 대부분이 50대 이상 중년 여성이었다. “아이 떨려. 이게 얼마만의 공부야.”, “교육원 온다고 오랜만에 화장했어. 마지막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파랗던 가을날, 필기구와 노트를 꺼내든 중년 여성 수강생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교육원장이 성큼성큼 들어와 큰 소리로 말했다. “8년 연속 요양보호사 합격률 전국 1위, 여기는 전국에서 요양보호사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입니다.” 원장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수강생들을 둘러봤다. 그러다 원장은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여러분, 공부 잘한다고 요양을 잘하는 건 아니에요. 요양보호사 일 중 40%는 시험과 상관이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예를 들어볼게요. 중풍 환자가 마사지해달라는 거 성희롱 아니에요.” 첫 예시가 ‘성희롱’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오른쪽이 마비된 중풍 환자가 처음엔 무릎을 주물러달라고 하더니 다음은 허벅지로, 다음은 침대 위에 올라와서 등까지, 수위가 높아졌어요. 요양보호사가 홧김에 ‘어차피 (성 기능이) 되지도 않는 것’이라고 했다가, 환자 아내가 요양보호사를 고소했죠.” ‘성희롱’과 ‘고소’라는 단어에 교육원을 감돌던 설렘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건을 훔쳐갔다거나 밥을 먹고 또 밥을 차려달라는 치매 노인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마세요. 말대답을 했다간 싸움만 나요. 아시겠죠?” 성추행을 경험해도 고소를 당하고,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무조건 순응해야 하는 직업, ‘요양보호사’ 다섯 글자에는 감내해야 할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수업 첫날 점심시간, 분식집에서 함께 국수를 먹으며 김주혜(가명·64) 씨가 말했다. 김 씨는 베이비시터부터 위탁모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다고 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돌봄이라는 게 조금 슬펐다. “아이 돌보는 일이 잘 맞았지만 수입도 일정치 않고 60대가 넘어가면서 일하기 어려워지더라고.” 그래서 김 씨는 ‘아이’에서 ‘노인’으로 돌봄의 대상만 바꿨다. 노인 돌봄은 국가가 주는 자격증이 있으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는 것이다. 맞은편에 있던 양정숙(가명·59)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더 나이들어서 치매가 올까봐 무섭고, 그 전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등록했어.” 양 씨는 환갑의 나이에도 매일 3분단 맨 앞줄에 앉아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결석도 없었다. 양 씨의 목소리에는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 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조용히 있던 박귀숙(가명·69) 씨는 “조금이라도 생활비에 보탬이 되고자 왔다.”고 입을 뗐다. 아들과 둘이 살고 있는 박 씨는 “아들이 ‘엄마가 요양 받을 나이에 뭘 요양보호사가 되냐’며 핀잔을 줬지만 집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요.”라며 버스비 1,300원을 아끼려 공짜로 탈 수 있는 지하철만 이용한다고 했다. 중년 여성들은 뜨거운 국수를 후루룩 넘기며 ‘요양보호사’를 감내해야만 하는 까닭을 다짐하듯 말했다. 생애 마지막 승부인 것처럼 비장하게 말이다. 도전은 쉽지 않았다. 평균나이 56세, 40명의 수강생이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수업에 집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고 허리야.”, “머리 아파.”,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지.”, “졸려죽겠네.” 수업이 하나씩 이어질 때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났다. 잠이 와서 뒤에 서 있는 이, 이리저리 팔을 흔들어보는 이. 고3 학생 못지않게 필사적이었다. 떡과 빵, 사탕, 초콜릿, 커피믹스 등 수강생들 책상에는 항상 잠을 쫓기위한 간식이 놓여 있었다. 강의 시간에 졸더라도 교육원에 올 수 있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몇몇 수강생은 제시간에 교육원에 오기도 쉽지 않았다. “총무님, 프린트 좀 챙겨줘. 손녀 보느라 오전에는 못 오거든. 꼭 좀 부탁해.” 교육원에서 나는 ‘총무’였다. 나이가 제일 어리다는 이유로 뽑혀 회비와 청소 당번 등 잡일을 맡았다. 나의 오른쪽에 앉았던 심미숙(가명·58) 씨는 부탁 단골손님이었다. 손녀를 돌보느라 매일 오후 1시가 돼서야 교육원에 오는 심 씨는 늘 푸석한 민낯이었다. 아이를 돌보다 서둘러서인지 옷매무새는 항상 흐트러져 있었다. 짝꿍 신숙희(가명·50) 씨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내게 교과서를 책상에 놔달라고 부탁했다. 고2 아들과 10살 늦둥이 딸을 학교에 보내고 오려면 오전 9시까지 등원은 무리라고 했다. 신 씨는 교육을 모두 마칠 때까지 ‘지각생’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노인을 돌보기 위해 온 수강생들은 이미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오후 4시 30분인데, 교육원에 다닌 한 달 동안 회식은 불가능했다. 수업이 끝난 뒤 수강생들은 아픈 부모와 시부모, 자식과 남편 등을 돌보러 가야 했다. 그들에게 ‘돌봄’은 평생의 굴레였다. 푸석한 얼굴과 지각을 미안해하는 표정에서 나와 늦둥이 남동생을 키우며 직장에 다녔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노인에게 최고 행복은 편안히 먹고, 먹은 만큼 싸는거예요.” 간호사 출신의 교육원 선생님은 요양보호사의 업무가 노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매번 강조했다. 간병인보다 처우도 좋다고 했다. “간병인은 퇴직금도 없고 경력 인정이 안 되지만 요양보호사는 그만두지만 않으면 월 170만 원을 가져갈 수 있어요. 로봇이 모든 것을 하는 시대에 앞으로 없어지지 않을 직업은 간호사와 요양보호사예요. 우리는 국가전문자격증을 딸 전문직이에요.” 선생님이 말한 핑크빛 미래를 들으면서 50대 이상 중년 여성 수강생들은 ‘저임금 일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필기했다.

20대 요양보호사가 맞닥뜨린 현실

“어쩌죠. 며느리들이 부담스러워 해서….” 집안일과 육아 경험이 없는 내가 미숙해 보였을까. 나를 환영하는 요양기관은 없었다. 목소리만 듣고 전화를 끊어 버리거나, 나이를 말하면 ‘잘못 전화한 거 아니냐’며 의심을 받았다. 보통 직장에서 선호하는 ‘어린 나이’와 ‘미혼’이라는 ‘스펙’은 노인 돌봄 시장에서 되레 걸림돌이었다. “젊고 멀쩡한 사람이 왜 요양보호사를 해요?” 240시간 교육을 마치고 나와 요양보호사 취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부천의 한 요양원장은 나를 붙들고 ‘왜 요양보호사를 하면 안 되는지’ 20분 동안 설명하기도 했다. 한심하게 쳐다보며 “얼른 돌아가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라”며 내쫓은 곳도 있었다. “선생님 얼굴은 누가 봐도 이 일을 할 거라 믿기지 않는 얼굴이잖아요. 요양보호사하려는 젊은 사람들은 ‘모습’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선입견이지만….” 요양원 10곳을 돌면서 내가 받은 질문과 시선은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 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부천 ㅇ요양원 최미자(가명) 할머니가 환자영양식이 담긴 플라스틱 컵을 들고 있다. 미자 할머니 손에는 365일 수면양말이 씌워져 있고 손목엔 노란색 테이프가 칭칭 감겨있다. 기저귀를 풀어 ‘똥칠’을 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출처 - 필자 제공>

부천의 ㄱ요양원에서는 황당한 말을 듣기도 했다. ㄱ요양원장은 면접 보러 온 나에게 다짜고짜 ‘현대자동차’ 이야기를 꺼냈다. “현대자동차가 왜 망한지 알아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 분들 강성노조예요. 강성노조 분들은 현대차가 많아요. 그분들 때문에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사람들은 피가 마르는 거예요.” 원장은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마음은 40대가 돼야 하는 거예요. 어른스럽고 성숙해야 한다는 거죠. 원장이 좋은 걸 가르치는데, 업무를 하는데 사사건건 반대하면 안 되잖아요. 나는 얼굴 예쁘고 똑똑한 사람보다 마음이 착한 사람,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아요.” 원장의 메시지는 명료했다. ‘노조를 만들거나 불만을 제기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일해라’였다. “최저임금이 올라서 이제 한 달에 175만 원 정도 돼요. 작년만 해도 157만 원이었어요. 지금은 많잖아요. 그 어떤 직장보다 괜찮아요.” 30분 동안 면접이 아니라 훈계를 받은 기분이었다. 면접이 끝난 뒤, 일어서는 나에게 원장은 명함을 하나 줬다. 자신을 사업가와 정치인이라고 소개한 요양원장의 명함에는 여러 직책과 운영하는 기저귀 업체 이름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래도 우리 전문직이잖아, 전문직. 호호.” 수강생들은 교육원에서 수업을 들으며 국가자격증이 있는 ‘전문직’으로 당당히 일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품었다. 궂은일이지만 누군가의 마지막을 책임진다는 생각에 잘해야겠다는 열정도 생겼다. 하지만 그 자부심과 열정은 요양보호사로 취업도 하기 전에 산산이 부서졌다. 요양보호사가 되려면 자부심과 열정보다는 50대 이상의 나이와 연륜, 불만을 절대 내비치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교육원 선생님이 말했던 ‘핑크빛 미래’는 환상이었던 걸까?

‘제발, 딱 1분만 앉고 싶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앉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앉을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다리가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는 나에게 고참 요양보호사 ‘쌤’들은 ‘요양보호사가 되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교육원에서는 분명 노인들 곁에서 말벗을 해주고 사랑과 애정을 담아서 눈을 맞추라고 했는데, 현실은 침대에 걸터앉기도 힘들었다. 처음 인천 ㅊ요양원에서 사흘간 일했을 때, 그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고만 싶었다. 신입인 내가 눈치 안 보고 앉을 수 있는 곳은 CCTV가 없는 창고와 화장실뿐이었다. 집에서는 보지 않던 아침드라마와 연속극이 요양원에서 일할 땐 왜 그렇게 재밌어 보이던지…. 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힘들 때, 노인 옆에 앉아서 딱 10분만 티브이를 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였다. 영하 10도, 한파주의보가 발령됐는데 젖은 빨래를 큰 고무대야에 담아 옥상에 널어야 했다. 물에 젖어 몇 배는 무거워진 빨래를 낑낑거리며 들고 올라가서 널다 보면 어느새 손이 얼어붙었다. 알고 보니 1인실 노인의 보호자가 방 안에 빨래를 널지 말아달라는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함께 1월부터 일하기 시작한 신입 요양보호사와 나는 그 뒤부터 하루에 세 번씩 빨래를 옥상에 널고 걷어야 했다. 1개당 1,000원도 안 될 것 같은 방문용 실내화 30개를 손빨래하고, 김치도 미리미리 잘게 썰어서 채워 넣어야 했다. ‘보호’와 ‘돌봄’보다 더 많은, 수많은 허드렛일이 두 손에 떨어졌다.

스스로가 초라해진 순간도 여러 번.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면 내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노인들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고 탬버린을 치며 트로트를 불러야 했다. 요양보호사 쌤들과 블루스를 추며 땀이 날 때까지 허리를 흔들기도 했다. 차라리 기저귀를 가는게 낫지, 반응이 없는 치매 노인들 앞에서 재롱 잔치를 하는 것만큼 비참했던 순간이 없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나는 매번 무대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야 했다. “요양보호사는 팔방미인이어야 해요.” 교육원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말한 ‘팔방미인’은 청소, 빨래, 설거지, 김치 썰기, 춤, 노래, 탬버린 흔들기, 기저귀 갈기 등을 모두 군말 없이 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는 걸,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깨달았다. 하지만 그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또 부끄러워해야 했다. 옆에서 나보다 더 열심히 허리를 흔드는 50~60대 요양보호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년 여성들은 요양원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이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살아왔고 강요 당해온 ‘팔방미인’들이었다. 이들이 사회가 돌봐야 할 노인과 아이들을 돌본다면 사회는 이들을 우선해서 돌봐야 하지 않을까. 요양원에서 한 달 동안 일하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정답 없는 노인 돌봄, 인식 개선이 급선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인 돌봄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요양보호사와 요양시설 운영자, 담당 공무원과 전문가, 국회의원 보좌관 등에게 공통으로 들은 말이다. “저도 저와 언니들이 엄마를 돌아가며 모시고 있어요. 솔직히 정답이 없어요.” 보건복지 분야에서 10년 넘게 연구한 연구원들조차 이렇게 토로할 정도였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정답을 찾기가 어렵다.

주거와 돌봄, 요양과 보건의료 등이 통합된 커뮤니티 케어는 ‘방문진료’의 주체인 의료계의 반대와 여러 주체를 책임지고 통합할 기관의 부재로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국공립 장기요양기관을 늘리고 싶지만, 민간기관 운영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주저하고 있다. 노인은 늘고 장기요양보험 기금은 고갈된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운용하고 시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구성원들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노인과 보호자, 이들을 위해 일하는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등 직원들, 노인을 보호하고 챙겨야 할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까지 각자 위치와 구실은 다르지만, 돌볼 부모가 있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가 될 것이란 점은 변치 않는 진리다. 우리 사회의 고위층이라고 불리는 교수나 의사 등 전문직들도 부모와 본인의 돌봄 문제에선 특별히 다른 해결책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대안 정책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노인 돌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요양원이랑 유치원이랑 차이점이 뭔지 알아요? 유치원은 엄마들이 어떻게든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하죠. 요양원은 그 반대예요. 모르고 싶고 알아도 모르는 척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죠.” 이 역시 전문가들이 입 모아 말했다. 자격 기준이 낮고 ‘사립’이 난무해 관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학대와 비리, 그런데도 대부분의 운영을 민간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 요양원과 유치원은 공통점이 참 많다. 하지만 전문가와 돌봄 현장 관계자들은 ‘요양원 문제는 드러내고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치원과 다르다’고 짚었다. 부모를 직접 모시거나 혹은 자주 찾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을 부정한 채 요양기관에 입소한 부모의 ‘무탈’과 ‘행복’을 바라는 것이 보호자 입장에서는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기자님이 치매 부모 요양해봤어요?”, “기자님이라면 요양원 안 보낼 수 있어요?” 기사가 나간 뒤, 어쩔 수 없이 부모를 요양원 등 시설에 맡긴 안타까운 사연들이 이메일과 기사 댓글로 쏟아졌다. 솔직히 자신 없다. 당장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거나 거동이 불편해지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그 결정에 선뜻 “네, 제가 돌봐야죠.”라고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낸다면 최대한 자주 들여다보고 찾을 것 같다. 수백억 원을 들여 지은 시설과 질 높은 서비스도 가족의 방문과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 장기요양보험금이 부족하다면 기꺼이 더 낼 것이다. 우리가 낸 세금이 장기요양기관 민간 운영자들의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 낭비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로 인해 하루아침에 장기요양보험제도가 개선되거나 국공립 장기요양기관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노인 돌봄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다만 기사를 읽으신 분들이 한번이라도 사회적 돌봄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 돌봄을 떠맡고 있는 중년 여성들의 노동에 시선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노인 돌봄 문제는 ‘불편한 진실’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치매에 걸리고 움직일 수 없는 노인,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모두 존엄할 권리가 있는 인간이다. 인권, 노동권과 더불어 제대로 된 ‘돌봄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필요한 핵심 권리다.

글 권지담 / 한겨레신문 24시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