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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 정비업자들이 만든 합승택시

예인짱 2019. 8. 20. 13:10

노천 정비업자들이 만든 합승택시


합승택시라 불렸던 소형 승합차는 미군의 소형 트럭인 스리쿼터의 엔진과 차축, 프레임을 이용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미국의 ‘윌리스 지프 스테이션 왜건’을 모방한 9~12인승을 만들다가 얼마 후부터는 폭스바겐 밴과 비슷한 25인승의 마이크로버스들이 전국 대도시의 정비공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휴전협정으로 서울이 완전히 수복된 53년경부터는 합승택시에 이어 미군의 육발이(6륜) 트럭 섀시를 이용해 만든 대형 버스와 6륜 미군트럭의 뒤차축 한 개를 제거한 4륜 트럭이 인기를 모았다. 

전쟁을 겪지 않은 남부지역에서는 그나마 지붕이 있는 공장에서 만들었지만 잿더미로 변한 중부지역에서는 공장이 불타버려 노천에 천막을 쳐놓고 만들어냈다. 특히 버스는 차체의 골조를 만들 철골이 없어 폭격으로 망가진 기차레일을 잘라 만들고, 차체골조는 나무를 깎아 조립한 후 그 위에 드럼통 철판을 씌우는 식이었다.

이렇게 전국에 퍼져 있는 수십 곳의 정비공장에서 만들어진 버스들은 그 모양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다. 한 공장에서 만든 버스들도 모양과 사용 부품들이 달라 운수업자들이 애를 먹었다. 그야말로 버스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당시 미군들은 우리의 짜깁기 버스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토막 난 미군용 폐차와 드럼통들이 천막공장으로 들어가면 일주일도 안 되어 버스로 변신해 나오자 한국 사람들은 신기를 가졌다고 놀라워했다. 이런 버스는 망치와 산소용접기 그리고 맨주먹으로 만든 걸작들이었다.

60년대 초에는 자동차 정비진흥법이 개정되어 정비업체들을 정리하기 전까지 고물상 허가를 받고 자동차 제조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갖춘 시설 없이 망치 하나로 때려 맞추던 시대라 전국에 부실업체들이 난무했다. 부품도 귀했지만 주먹구구식 기술이라서 수리를 해도 차의 안전을 보장하기가 어려웠다.

구입한 부품들도 미군트럭 폐차 부속품들이라 그야말로 정비업소는 고철상이나 다름없었다. 50년대 말까지 국내 자동차들은 거의가 고물차에 군용폐차를 짜깁기한 것들이라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서 고물상 허가를 받은 곳만 차를 정비하도록 허락했다. 그러다가 혁명정부가 자동차공업 육성정책을 발표하면서 부실 정비업체를 정리하기 위해 정비진흥법을 만들어 일정한 장소, 시설, 기술을 갖춘 업체만 자격을 주었다. 정비진흥법의 등장으로 부실 업체들은 큰 수난을 받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양키트럭으로 만든 노랑차
폐허를 재빨리 재건하여 안정을 되찾던 60년대로 들어서면서 버스의 춘추전국시대를 정리하는 데 앞장선 업체로 신진공업사와 하동환자동차가 있다. 부산에서 정비업체로 출발한 신진공업사는 부품이나 모양을 통일시킨 25인승 마이크로버스를 개발해 60년대 말까지 신진 마이크로버스 붐을 일으켰고, 창업주가 정비기술자였던 서울의 하동환자동차도 이 시기에 규격화한 버스를 생산, 60년대 말까지 전국의 버스를 거의 하동환의 규격버스로 바꾸어 놓았다. 

“형님, 서울 덕수궁 산업박람회에 출품한 우리 마이크로버스가 상공부장관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 참 다행이구먼. 모양도 예쁘고 실내도 널찍해 다른 공장에서 만들어낸 버스보다 사람을 두 배나 태울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래, 운수업자들은 우리 마이크로버스를 보고 뭐라 하던가?”
“아, 운수업자들이 빙 둘러싸고는 여태까지 이렇게 널찍한 승합차는 못 봤다면서, 우선 사람을 다른 차보다 곱절이나 태워 나를 수 있어 수입이 크게 오르겠다고 호평했습니다.”

“그것 봐, 자네는 엔진이 앞으로 튀어나온 보닛형 버스를 만들자고 했지만, 엔진을 실내로 집어넣은 독일 폭스바겐의 상자형 마이크로버스를 본따자고 한 내 주장이 적중했지? 같은 크기의 차체에 엔진을 차 밖으로 밀어내어 보닛형을 만들면 엔진 주위에는 사람이 탈 수 없잖아. 엔진을 실내로 집어넣고 차체를 엔진 앞까지 끌어내면 엔진 주위에 의자를 놓을 수 있어 그만큼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지.”

“사장님! 정말로 바빠지게 생겼습니다!”
“이 사람아, 숨 좀 돌리고 말하게. 왜 그리 호들갑인가.”
“우리 마이크로버스가 상공부장관 상을 탔다는 소식을 들은 버스업자들이 우리 차를 사겠다고 전화통에 불이 났습니다.”
“그래? 이제야 차다운 차를 만들어 팔게 됐으니, 얼른 준비들 해야겠구만.” 

 부산 전포동에 있는 신진공업사의 사장실에서 즐거운 소식을 들은 김창원 사장은 회장인 형 김재원 씨와 그동안 애쓴 보람이 열매를 맺어 한껏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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