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주몽은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남하를 했다. 그리고 압록강변에 나라를 세운다. 주몽의 아들들이었던 비류와 온조는 부여에서 온 주몽의 맏아들 유리 때문에 자신들의 입지가 불안전해지자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남하하여 백제를 세운다.
아마 그들은 더 먼 지역, 어쩌면 바이칼 부근에서 왔을 지도 모른다. 나중에 부여는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그러면 그 당시 그들은 말이 서로 통했을까? 여기서 분명한 것은 고구려와 백제는 시베리아 만주에서 남하해 왔다는 사실이다. 백제가 왔을 때 남쪽에는 이미 먼저 와 자리 잡고 있던 삼한이 있었다.
야쿠트인은 40만이 넘는다. 사하공화국의 중심 민족이다. 그래서 여기선 소수민족으로 치지 않는다. 언어 유형으로 보면 야쿠트어는 터키어 계통이다.
시베리아에 자리 잡은 순서를 보면, 시베리아의 최초 원주민은 축치인과 유카기르인이다. 이들은 기원전부터 이 지역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 에벤사람들의 얼굴.
에벤키와 에벤족이란 말은 러시아 혁명 후 30년대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퉁구스란 말의 어원은 중국어로 “tun-gu”, 즉 “동쪽 사람들”을 뜻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이 러시아어에서는 ‘퉁구스’라고 되었다. 또 다른 말로 이것은 ‘툰-후’인데 한국인의 일족이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13세기경에는 칭기즈칸에게 밀린 투르크어족의 일파가 바이칼 호수 유역에서 북진한다. 이들은 말을 탄 사람들이고 소를 기르는 정착민이었다. 이들은 순록을 기르던 순한 민족 퉁구스족을 만난다. 이들은 퉁구스족을 정복하기도 하고 동화시켜 같이 살게 되었다. 이들이 지금 사하공화국을 주도하는 야쿠트인이다.
야쿠트란 명칭은 에벤키어에서 왔다고 한다. 에벤키 사람들은 이들을 “요코”라고 불렀다. 여기에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우트’가 합성되어 ‘요쿠트’가 되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어두에서 ‘요’ 발음을 회피한다. 그래서 러시아어로 야쿠트가 되었다. 이들이 중앙 대평원에 자리 잡자 원주민 퉁구스족은 다시 밀려났다. 에벤키, 에벤족이 주로 타이가와 툰드라 산악이나 숲 속에 자리 잡은 이유이다.
에벤키족은 상당수가 중국 흑룡강성, 몽골 지역에도 있다. 이것은 에벤키와 에벤을 비교할 때 에벤이 에벤키에서 분화되었을 것으로 보는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야쿠트인과 퉁구스인의 경쟁에서 퉁구스인들이 밀려난 원인은 생업 수단의 선택이었다. 야쿠트인은 말과 소를 키웠다.
반면 퉁구스인들 즉 에벤키와 에벤인들은 순록을 선택하였다. 말과 소는 정착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순록은 정착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정착민 야쿠트인은 문화를 만들고 전통을 형성할 수 있었다.
21년 전 한류가 있기 전 이미 이 사람들은 한국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스스로 한국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대학교에 한국학과를 만들었다. 이곳에 한국 기업이 진출한 것도 아니다. 한국어를 공부해서 취직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래도 사하-한국학교는 이 공화국 최고 명문 중 하나가 되었다. 올해 가을엔 레나 강 건너에 있는 꽤 큰 학교에서 태권도부를 만들고 한국어를 필수로 배우게 한다. 많은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어한다. 왜? 그냥 한국이 좋아서?
- 강덕수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E-mail : kangds@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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