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기독교 자료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

예인짱 2012. 10. 31. 05:11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

 

 

존 스토트는 1921년 4월 27일에 태어났으며, 할아버지(John Robert Stott)와 아버지(Arnold Walmsley stott)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는 현존하는 탁월한 설교가이자, 복음 전도자이며, 기독교 학자이고, 저술가다. 그는 20세기 후 반에 기독교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계 복음주의 신앙의 대표적인 목회자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 복음주의 신앙 운동을 주도했으며, 세계복음주의협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를 창설하여 그 시대를 이끈 장본인이다.

그는 평생을 영국 런던의 한 복판에 자리한 올소울스 교회 (All Souls Church)의 설교자로 사역했다. 특히, UCCF(한국의 IVF)와 국제복음주의연맹(IFES․International Fellowship of Evangelical Student)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복음주의 학생에 깊이 관여했으며, 세계복음화를 위한 복음주의 선교 운동 로잔회의(Lausanne Congress, 1974)의 산파역을 맡아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을 입안했다. 존 스토트는 설교와 강연을 통해 복음에 대한 충실한 증거를 하였으며, 무엇보다 여러 기독교 교리에 대한 도전에 대해 올바른 응전을 하도록 애썼다.

 

지난 1999년, 필자는 존 스토트를 만난 기회가 있었다. 동양권에서 최초로 열리게 된 IFES 의 세계총회인 ‘World Assembly 99’ 주강사로 선정돼 내한한 그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한국의 영적 성장과 부흥을 격려하며, 지나간 역사와 다가오는 새 천년을 앞두고 이 시대야말로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가장 확고한 복음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한 가지 있다. 그가 새를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나는 단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평서문이 아닌 강한 명령문으로 ‘새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영향도 큽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시골의 숲으로 가서 ‘입은 다물고 귀를 크게 열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명령과 아버지의 훈련으로 나는 어릴 때부터 새를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로 다니면서 각 나라의 새를 관찰하고 배웁니다.”

 

필자가 그를 주목하는 것은 비단 그의 사역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저서『현대 교회와 설교』에서 제시한 ‘다리 놓기’ 설교 이론을 통해 신학도와 목회자들에게 많은 영감과 도전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평생을 그의 사역지에서 성경적인 설교에 헌신해온 설교가이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 전 세계의 격변기에 태어나다


존 스토트의 아버지 아놀드 스토트(Arnold Stott)는 명성이 높은 의사였다. 영국의 전문 의료진이 모여 있는 할리(Harley Street) 가에 진찰실을 두고 있었다. 아놀드 스토트는 교육과 계몽주의 신봉자였으며 인도주의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만한 신랄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언어 사용도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과학적 세속주의자요, 세심한 자연주의자였으며, 전문적인 식물학자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이런 영향을 받아 어린 존 스토트는 어린 시절부터 나비 수집에 관심을 가졌고, 조류 관찰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Timothy Dulley Smith, John R. W. Stott, p.47). 아놀드는 의사로서의 특전을 행사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가끔씩 교회에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머니 릴리 홀랜드(Lily Holland)는 정기적으로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갔다. 그녀는 성실하고 상냥하고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남편과 잘 조화를 이룬 사람이었다. 이 부부는 서로에게 헌신했고 자녀들에게도 헌신했다. 그녀도 역시도 남편처럼 강한 성품을 가진 여인이었으며 원칙에 충실했다. 하지만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고요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홀랜드 여사는 매우 창의적이었으며 자녀들에게 손수 물건을 만들도록 가르쳤다. 그녀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인이었으며, 그 목소리는 존 스토트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녀는 존 스토트를 데리고 여러 강연에 참석했고, 자녀가 잠자리에 들 때 기도를 가르쳤다. 존 스토트는 10대 중반까지 어머니에 의해 신앙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스토트의 부모가 결혼 초 웨스트 캔팅턴 에디슨 가에 살 당시인 1921년 4월, 존 스토트가 태어났다. 그의 위로는 조안, 로즈메리, 조이 등 세 누이들이 있었다. 그는 외아들로서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반면, 그의 바로 위 누나는 상대적으로 설움을 받고 자랐다. 존 스토트는 태어 난지 한 달 후에 할리가로 이사했다.

 

존 스토트가 태어난 1921년 전후의 10년은 세계사적으로 상당히 격변기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75년에 걸친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지면서 소련이 생겨났다. 1918년 제1차 대전이 종결되었고, 1919년에는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을 만들었다. 1920년에는 미국 주도의 국제연맹이 창설되었고, 1921년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당 당수로 선출되었다.

 

영국 역시도 많은 격변을 겪는데, 1920 영국 공산당이 창당되고, 1924년에는 노동당 정부가 세워졌다. 전후 경제 불황이 닥치고 26년 총파업이 일어났다. 조금씩 종교적 세속화의 과정이 일어나면서 자유주의 사상을 필두로 전통적인 종교 관념을 침식해 들어갔다. 1930년대는 독립된 교회들이 모여 현대적 의미에서의 영국 국교회가 생겨났다. 결론적으로, 1920년대는 현대로 들어서는 하나의 출발점이었는데 그 중요한 시기에 존 스토트는 안정되고 행복한 가정에서 아동기를 보냈다.

 

 

새를 관찰한 오클레이 홀 시절


존 스토트는 어린 시절부터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가 반대했다. 존 스토트는 1929년 만 여덟 살 반이 되던 해 글로스터셔에 있는 오클레이 홀에 진학했다. 이 과정은 그의 아버지가 다닌 사립학교 럭비에 가기 위한 예비과정이었다. 이 학교는 런던에서 160km 떨어져 있었고, 따라서 그는 어린 시절을 예비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다.

 

어린 시절의 기숙사 생활은 다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잘 적응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오클레이 홀은 특히 기독교적인 기초 위에 세워진 학교였다. 학교 예배당에서 들리는 예배 외에도, 하루 일과는 빅 스쿨에서의 아침 기도로 시작해서 저녁기도로 끝이 났다.

 

존 스토트가 기독교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친구 제라드 어빈을 통해서다. 제라드 어빈은 학교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계로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존 스토트는 주말에 친구 집을 방문하기 좋아했고, 어빈에게서 기도와 무릎 꿇는 방법 등 신앙의 행위들을 배웠다.

 

오클레이 홀에서 존 스토트는 새의 관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새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고, 노트를 기록했으며 글과 책을 남겼다. 이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오클레이 홀 학교 주위는 전원적인 곳이어서 자연과 새들을 관찰하기에 적절했다. 존 스토트는 1930년 8-9월 사이에 40개 정도의 새 관찰 목록을 기록했다.

 

 

럭비-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한 장소


그 후, 존 스토트는 럭비 학교에 진학했다. 럭비에서 존 스토트는 학생회장으로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시절은 평생의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지한 시기였다. 존 스토트는 럭비 학교에 간 이후 첫 번째 학기를 제외하고 여전히 새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서 자연사학회 조류학 부문의 시험을 보고 회원이 되면서 새에 대한 관찰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자신과 두 명의 친구가 주축이 되어서 지역 사회에 선행을 행하기 위해서 ABC학회를 설립하였다. 이 학회는 사회로 복귀하려는 부랑자들을 목욕시켜주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진정한 회심을 하기 전에도 존 스토트는 이렇게 그 안에 사회적 양심이 있었다. 그것은 그 부모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정정당당한 경기 태도를 매우 중시 여겼으며 세상이 그 기준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때는 매우 격분했다.

 

1936년 대량 실업이 발생하면서 존 스토트는 노동자 계층과 더 많은 접촉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 존 스토트를 계속해서 기쁨을 준 것은 음악이었다. 그는 럭비 채플과 학교에서 인기 있는 바리톤 독창자였으며,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했다. 음악이 존 스토트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존 스토트는 언제나 함께 했던 새외에도 방학동안 많은 것을 즐겼다. 테니스와 롤러 스케이트와 수영을 즐겼다. 그는 또한 방학이면 부모들과 함께 낚시도 즐겼다. 존 스토트는 37년까지 새에 대한 관찰을 계속했다. 럭비 학교생활 37년쯤에는 캠브리지에 입학할 정도의 자격을 갖출 만큼 학업에도 열심이었다.

 

<출처: 교회와 신앙>

 

 

 

 

그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 (John Stott) 

<존 스토트의 생애> 로저 스티어 지음, 이지혜 옮김, IVP

<제자도: 변함없는 핵심 자질 8가지> 존 스토트 지음, 김명희 옮김, IVP

[240호] 2010년 09월 29일 (수) 18:23:11 정모세 hismetaphor@hanmail.net

   
▲ <존 스토트의 생애> 로저 스티어 지음, 이지혜 옮김, IVP, 463쪽, 1만 8000원
똑같이 한 사람의 생애에 대해서 그리기는 하지만, 자서전을 읽을 때와 전기를 읽을 때 느낌이 다르다. 내밀한 고백이 있고 없고의 차이도 있고, 사건들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시선도 다르다. 특히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 중 어떤 것을 글에 포함시킬지에 대한 판단 또한 다르다.
 
존 스토트가 직접 자서전을 써 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고, 이제 우리는 티모시 더들리 스미스의 <존 스토트: 탁월한 복음주의자>에 이어 로저 스티어의 <존 스토트의 생애>(이하 <생애>로 표기)를 통해 그의 삶과 사역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복음주의자들이 교황을 선출한다면 아마도 존 스토트를 지목할 것이다’(이 유명한 언급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2004년에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데이비드 브룩스는 그 칼럼에서 마이클 크로마티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16세기 유럽 개혁주의자들 이후로 존 스토트에 견줄 사람이 없을 것 같다’(존 스토트가 <타임>에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된 후 빌리 그레이엄이 한 말)고 추앙받은 사람의 삶은 우리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스미스가 쓴 전기가 너무 두꺼워서 읽다가 포기했다는 사람이 많았을 뿐 아니라 책 자체도 절판되어 있던 차에, 적절한 분량으로 스토트의 다양한 면목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해 줄 책을 만나 반갑다.

바로 몇 달 전에는 스토트가 쓴 <제자도: 변함없는 핵심 자질 8가지>(이하 <제자도>로 표기)라는 책이 나왔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88세의 연로한 스토트는 이 책이 자신의 고별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전한다. 스토트가 저술한 50여 권의 책들 가운데 <제자도>가 연대적으로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제자도>는 전기가 아니지만, 그의 생애 말년의 고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생애 전체에 대한 회고와 소망이 담겨 있는 그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생애>는 (영국에서) 원래 2009년에 출간되었고 <제자도>는 2010년에 출간되었기에, 존 스토트의 탈고 과정을 생각한다면 <제자도>가 그의 최종적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두 책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령 <생애>에서 2006년에 스토트가 옷을 갈아입다가 의자에 걸려 넘어져서 엉덩이뼈가 다치는 이야기가 간략하게 지나가듯 나오는데, <제자도>의 ‘의존’이라는 장에서 스토트는 그때의 체험을 좀더 자세하게 서술하고 느낀 것들과 깨달은 것들을 전달해  준다.

   
▲ <제자도: 변함없는 핵심 자질 8가지> 존 스토트 지음, 김명희 옮김, IVP, 167쪽, 8000원
그렇다면 아마도 <제자도>를 통해서 <생애>에 관한 스토트 자신의 직접적인 발언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생애>를 통해서는 <제자도>에 있는 스토트의 발언의 깊이와 배경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짤막한 서평에서 시도해 보려는 것이다. <제자도>에 있는 각 장의 주제를 간략하게 요약하고(거의 문자적 요약이지만, 가독성을 위해서 인용 표시는 하지 않겠다), 이어서 <생애>에 있는 각 주제와 관련되는 삶의 내막들('Inside Story', <생애>의 원제)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급진적(철저한) 제자도

스토트는 자신이 ‘급진적 제자’(The Radical  Disciple, <제자도>의 원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선택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철저한 제자도를 회피하기 때문이며 또한 예수님이 주님이시기에 우리에게는 복종할 영역들을 취사선택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포괄적이고도 철저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스토트는 그 생애를 통해서 비록 “발은 늘 뻘밭에 빠져” 있었지만(<생애> 19쪽) 그리스도의 급진적 제자란 무엇인지 드러내 주었다. 그는 평생 한결같이 최선과 충성을 주님께 바쳐 왔으며, 영국의 다수 그리스도인들이 잊기 쉬웠던 사회에 대한, 가난한 약자들에 대한, 환경에 대한, 제3세계 그리스도인에 대한 온전한 성경적 관심을(그래서 균형을) 강조하기 위해 애썼다. 존 스토트의 생애는 바로 한 급진적인 제자 이야기다.

 

1장 불순응

스토트는 <제자도> 1장에서 제자의 첫 번째 특성으로 ‘불순응’을 꼽는다. 기독교는 도피주의도 아니고 순응주의도 아니다. 기독교는 문화 속의 반문화라는 것이다. 기독교가 맞서야 할 현대의 풍조로 스토트가 지적하는 것은 다원주의, 물질주의, 윤리적 상대주의, 나르시시즘이다. 그 각각에 대한 반대로 기독교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옹호하는 진리의 공동체, 검소한 순례자의 공동체, 순종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애>에는 스토트의 불순응 이야기가 여럿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스토트는 자신의 성직자 소명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생적 평화주의자로서, 군복무를 하라는 부모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병역을 애써 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책에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 속에서 참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는지가 잘 나온다. 한국 상류층의 이기적 병역기피와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그는 오른쪽으로는 로이드존스 목사의 복음주의 분파 설립에 대한 요구에 불응하고, 왼쪽으로는 자유주의자들의 각종 비판에 맞서 역사적 성경적 신앙을 충실히 방어했다. 빌리 그레이엄이 로잔 기구의 ‘최고 대표’가 될 뻔했을 때, 스토트는 그레이엄과 직접 만나 그 일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스토트는 신앙 양심의 고집을 지닌 사람이었다. 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기 뜻을 굽힐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스토트의 고집을 <생애>는 잘 보여준다. 

 

2장 닮음

스토트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물론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바로 그것이 평생의 순례 길 끝자락에서 자신이 도달한 결론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은 그리스도를 닮게 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을 때라야 복음 전도는 정말로 효력이 있을 것이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그것을 이루어가고 계신다.

닮는다는 이야기는 변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스토트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그가 십대 중반에 에릭 내쉬를 만나 회심하게 된 일 자체이겠지만, 그는 평생에 걸쳐 꾸준히 성경에 순종하고자 했고 다른 그리스도인의 말을 경청하며 자신을 기꺼이 변화시켰다. 예를 들어, <생애>에 보면 올소울즈 교회의 한 부제의 충고를 따라 현대 세계에 귀를 기울이고 그 세계에 적실한 메시지를 설교로 전하기 위해서 회심 후 중단했던 연극과 영화 관람을 다시 시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토트는 교회의 삶에, 즉 교회가 사회를 섬기는 것과 교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에 관심을 쏟았고, 이를 위해 ‘런던현대기독교연구소’를 세우기도 했다. 연구소 홈페이지에 가보면 그 연구소의 사역을 “세상 속에서 삶의 전 영역의 제자도를 위해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구비시킨다”고 설명한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구체적 성숙을 향한 그의 열심을 보여 준다. 

 

3장 성숙

세계 전역의 경이로운 교회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깊이 없는 성장’이라는 준엄한 평가를 받는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선하고 참된 시각이 필요하고, 각자 그러한 놀라우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을 성숙시키는 것을 교회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스토트는 성숙의 핵심으로 우리가 어떤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지를 더 깊이 성찰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인식과 교제를 통해 스토트는 우리 시대 교회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발견했다. 그는 복음주의자의 확신을 지니고서 성경과 복음의 진리에 깊이 헌신하는 한편, 온전한 제자도를 주창하기 위해서 실천했다. 사실, ‘로잔 대회’라고 흔히 부르는 제1차 세계복음화국제대회에서 ‘복음 전도’라는 주제에다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참여와 복음 전도의 균형을 로잔 언약이라는 선언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데는 스토트의 숨은 섬김이 컸다. 스토트는 로잔 언약을 입안했을 뿐 아니라, 대회 이후의 상임위원회에서의 끊임없는 회귀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계 교회의 성숙을 위해(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기 위해) 로잔 언약의 기본 정신이 계속 유지되도록 고투한 이야기가 전기에 실려 있다.

 

4장 창조 세계를 돌봄

무시되고 있는 급진적인 제자도의 몇몇 측면 중 하나가 바로 창조된 환경을 돌보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자연이 신격화되어서도, 또 착취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사람은 자연의 책임 있는 청지기로서 자연을 돌보아야 한다. 그러한 돌봄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표현되도록 해야 한다. 급격한 세계 인구 증가, 지구 자원의 고갈, 쓰레기 문제, 기후 변화 등은 지구의 심각한 문제들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의 성경적 개념에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을 시급하게 포함시켜야 한다.

스토트는 물론 성경적인 관점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또한 그 자신이 무척이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웨일즈에 있는 스토트의 휴식처 훅시스가 그에게 제공한 평화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두드러지게는 그의 ‘새 관찰’에서 이러한 점이 드러난다. 아버지에게 배운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은 이후 그가 탐조를 취미로 가지면서 더욱 개발된다. 스토트는 전 세계 곳곳에서 사역을 펼치는 동안에도 새를 관찰하는 시간을 꼭 가졌고, 한곳에 처박혀 연구와 집필에 몰두할 때에도 책상 위에는 새를 바라보기 위한 쌍안경이 꼭 놓여 있었다. 그가 여든 살 때 거의 죽음에 다다른 적이 있었는데, 그 발단은 인도를 방문한 스토트가 ‘목 주변이 파란 물총새’를 발견하고 뒤쫓다가 경계석에 부딪혀 강둑에 나동그라진 것 때문이었다(새를 쫓아 뛰어가는 여든 살 할아버지의 열정을 떠올려 보라!). 그는 자연을 하나님의 창조 세계로 깊이 사랑하고 책임감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5장 단순한 삶

‘단순한 삶에 대한 복음주의 언약’이 발표된 적이 있다. 로잔 언약에 표현된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의를 좀더 깊이 살펴보기 위해 모인 대회에서 발표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가치관과 기준과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새로운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도 세계의 굶주린 자들에 대해 인식하며 반응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한 국제적인 개발이 필요하고, 정의와 정치 영역도 불의한 상황을 바꾸기 위한 중요한 영역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복음 전도라는 증인의 사역과 단순한 삶이 깊이 연결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가장 작은 자를 섬김으로써 주님을 섬긴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생애>의 추천사를 보면 스토트의 단순한 삶을 보여 주는 그의 허름한 하늘색 양복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개인적으로 나도 1993년 원주에서 열린 IVF 전국수련회에 참석해서 그 양복을 가까이서 직접 보고 확인한 적이 있다. 그의 투명한 피부처럼 얇은, 닳고 닳은 양복이었다. 스토트는 자신이 사역하는 지역과 전 세계의 가난한 자들에 대해서 항상 기억하며 살았다. 그가 올소울즈 교회에서 부제로 일하고 있을 때에는 가난한 노숙자들의 생활을 직접 겪어 보기 위해서 노숙자로 변장하고 길거리에서 잠도 자고 구호소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제자도>의 저작권료는 랭햄문서사역에 기부되는데, <생애>를 보면 가난한 나라에서 기독교 도서를 출간하기 위해 일하는 그 단체의 출발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계 각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랭햄 장학금에 대해서도 나온다. <제자도>뿐 아니라 존 스토트 저서의 인세 대부분이 그렇게 사용된다.

 

6장 균형

교회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스토트는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교회와 관련된 구절들을 살펴보면서, 교회는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일과 교제하는 일에 균형을 잡아야 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세상에서 증거하는 일에 균형을 이뤄야 하며, 이 땅의 거룩한 순례자이자 또한 시민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지 기억할 때 이러한 제자의 포괄적인 정체성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스토트는 그 무엇보다도 목회자와 설교자로서 교회를 섬긴 사람이었다. <생애>의 중반부까지의 이야기들은 그가 목회자로 성장하고 또 교회를 말씀으로 온전히 섬기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교구의 각 집들을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인을 돌보았고 특히 소외받기 쉬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친절히 대했다. 스토트가 머물 곳 없는 사람에게 기꺼이 자기 방을 내주었던 일은 흔한 일이었다고 <생애>는 밝힌다. 스토트는 교인을 사랑했고, 교회를 사랑했다. 균형 잡힌 교회, 성숙한 교회에 대한 그의 열망은 그가 오랫동안 섬긴 올소울즈 교회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그가 동료 목회자들에게 권면한 내용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7장 의존

스토트는 자신이 다쳐서 병원에 가고 다른 사람을 의존하게 된 체험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는 자들이고 특히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그런 연약한 자임을 기억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하는데, 바로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에 대한 인식이 겸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의존은 자립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의존의 모습을 보여 주셨듯이 의존은 제자 영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제자도>의 백미는 어쩌면 이 ‘의존’이라는 장과 다음의 ‘죽음’이라는 장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이 시점에 이르러서 더욱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트는 영국인으로 자랐고 영국인으로 살았다. 중년 이후로 그가 지닌 권위 때문에 사람들이 스스로 어려워했다는 이야기도 <생애>에 나온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관리하며 살았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위해 쉴 새 없이 수고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섬김받음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생애>에는 55년간 스토트의 비서로 일한 프랜시스 화이트헤드 여사와 또 그의 여러 연구 비서들로부터 도움받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결국은 연약함이 우리의 특징이고, 그것이 또한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우리의 중요한 지점임을 스토트는 이야기한다.

 

8장 죽음

스토트는 급진적인 제자의 마지막 특징은 죽음이라고 말한다. 성경이 약속하는 생명은 죽음을 통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 안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소평가할 수 없는 생명의 영광이 담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죽음이 우리를 생명으로 안내하는 것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죄에 대해,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자아에 대해, 타문화권 선교를 통해 야망에 대해, 박해와 순교를 경험하며 안전에 대해, 우리의 궁극적인 운명을 준비하며 이 세상에 대해 ‘죽는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죽음의 과정이고 이러한 죽음이야말로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이들”이다.

<생애>를 읽고 나서 <제자도>를 읽으면, 마치 <생애>의 바로 뒷부분을 읽는 느낌이 든다. 두 책 모두에서 스토트가 이제 주님의 품에 안길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제자도>의 ‘죽음’이라는 장은 스토트가 현재 어떤 관점으로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있고, 또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스토트는 여러 차례 위험한 사건을 겪기도 했고(아마존 정글에서 길을 잃은 적도 있다!), 색전증으로 한쪽 눈 시력을 잃었고, 1999년 이후로는 몇 차례 건강이 악화되어 죽을 뻔하기도 했다. 책에는 스토트 부모님의 죽음, 누나의 죽음, 또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가깝고 확실한 죽음 앞에서 스토트는 신앙의 눈으로 죽음을 보고 있다. 그리고 죽음 속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증언한다.

 

그 복음주의자

어떤 사람들은 스토트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스토트가 너무 보수적이라고 제쳐놓기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생애>를 읽으면서 우리에게 복음주의자의 표준이 될 만한 사람 한 명을 발견한다. 물론 스토트는 자신을 이런 분류 기준이 되는 것을 꺼려할지 모르지만, 존 스토트보다 보수적인 사람을 우파 복음주의자라 하고 급진적인 사람을 좌파 복음주의자라고 하면 적절한 기준이 되지 않을까.

스토트는 그의 사상과 발언을 통해서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준을 제시한다. 복음주의의 특징을 서술하는 방대하고 정교한 책 대신에, 존 스토트라는 인물로 복음주의의 기준을 세운다면 우리는 보다 풍성한 정의를 보다 생생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한계 내에서 ‘복음주의’라는 지형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존 스토트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은 아주 유익한 문제 해결 방식이 될 것이다. 스토트는 그의 삶과 사역으로 우리에게 복음주의 신앙이 얼마나 성경적이고 풍성하고 (가슴 뛰는) 모험에 찬 것인지를 잘 보여 준다.

올해 10월 16~25일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는 제3차 로잔 대회가 열린다. 그곳에 모일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은 어떻게 자기를 규명하고 어떻게 우리 시대의 과제를 설정할지 궁금해진다(이번에는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선언의 초안을 잡고 있다고 한다). 아마 스토트는 지금도 그 대회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며 남은 힘을 쏟고 계실 것이다. 그가 수많은 책들뿐 아니라 삶으로도 우리에게 도전과 격려가 되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우리의 사랑하는 ‘엉클 존’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길 바란다.

 

<자료출처: ACTS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