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삶/사단법인 정인 사회복지회

[취재파일] "전국 어디나 똑같은 빵맛이 싫다"

예인짱 2011. 11. 16. 11:40

 

 

 

우리 아파트 상가 가장 목좋은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빵집 A가 있다. 건너편 건물엔 B 빵집이 있다. 단지에서 몇 블록 걸어가면 까페형으로 좀더 근사하게 인테리어를 해놓은 A빵집이 또 있다. 좀 더 걸어가다보면 또다시 A 빵집, 이쯤되면 '국민빵'이라고 불러야 할까.

가끔은 문득 공산품도 아닌 빵을, 다분히 기호식품인 빵을 전국민이 이렇게 똑같은 걸 많이 먹는 나라가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하다가도 편리한 게 우선. 그냥 또 A 빵집을 찾아가 익숙한 소보루빵, 크림빵, 식빵을 담는다.

'어쩐지 많더라니..' 오늘 아침 출근해서 국내 최대 제빵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께뜨의 점포수가 3천 개를 넘어섰다는 뉴스를 접했다. 한 해 동안 300개 가까이 새로 생긴 것으로, 프랜차이즈 빵집은 도심의 인구밀집지역 위주로 빼곡하게 분포돼 있다. 3천 개라니... 한블럭 건너 하나씩 똑같은 상호를 발견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릴 때는 각양각색의 맛을 자랑하던 동네 빵집이 있었다. 세련된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찾아갈 때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기억하는 빵집 주인 아줌마와 인사를 나누던 기억도 난다. 그런 동네빵집들은 대형프랜차이즈의 공세에 하나둘씩 자취를 감춰갔다. 자본의 논리, 효율성의 논리뿐이었다면 공급측면에서 멈췄겠지만, 팬시한 디자인 깔끔한 분위기, 높은 인지도와 인기모델 등을 앞세운 마케팅 등이 새롭게 느껴지면서 소비자들도 프랜차이즈 빵집을 '습관처럼(?)'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약간은 기형적인 빵집 구도를 만들어냈다. 2000년만해도 만7천 개였던 동네빵집은 2011년 현재 5천여 개로 '급감' 했다. 매출로 '게임'이 안 되니 동네 빵집을 운영하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돌리는 사례도 빈번했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빵집을 선호하던 소비자들의 입맛에, 기호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전국 어딜가나 똑같은 빵맛이 정말 싫다' 며 SNS를 중심으로 '동네빵집 살리기'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시작은 한 트위터 사용자의 짧은 글이었다고 한다. '난 가끔씩 없어진 동네 빵집의 빵맛을 보고 싶다'는 글이 누리꾼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각 동네마다 맛좋고 친절한 동네 빵집을 추천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 현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거대 자본력,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소규모 점포의 설자리를 빼앗는다는 '투쟁, 다툼'의 논리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이건 소비자들의 '기호'의 문제라는 생각 말이다.

소비자들은 언제나 다양성을 추구한다. 일시적으로 유행에 대해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너도나도 모방소비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피로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너도나도', '누구나' 대신 '나만의', '차별화되는' 그런 소비를 추구하면서 다시 시장은 그에 소구하려는 변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소비자 기호가 변화하는데 따라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가 바로 그렇다.

이 동네에서도 저 동네에서도 모두 똑같은 맛의 단팥빵, 같은 포장재에 크기도 같은 빵들이 처음엔 안정감을 줬다면 이제 슬슬 일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왜 이렇게 똑같은 걸 전국민이 먹어야 하나'하는 의문, '찍어낸 듯한 빵을 선택해야 하는 건 비극이다. 빵을 선택할 권리마저 줄어드는 건 억울하기까지 하다'는 대안찾기 단계로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동네 빵집 살리기 트위터에 '호박빵', '호두빵', '거북이빵' 등 지역명물이 다양하게 소개되는데 대해 환호하는 건 '소비자들이 선택할 권리를 다시 찾게 됐다'는 데서 오는 어떤 '반가움' 같은 것이다. (아마 지난해말 벌어진 '쥐식빵' 사건 같이 대형프랜차이즈들끼리 벌이는 극단적인 경쟁에 대한 염증도 한몫했을 수 있다)

'동반성장' '상생' 같은 공급자 측면을 조정하려는 시도에서 불러온 변화가 아닌, 소비자의 기호가 움직이면서 생긴 변화, 과연 동네 빵집이 살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상당히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최종편집 : 2011-11-16 11:27

정호선 기자

정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