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교회의 한국적 도입, 장벽은 무엇인가?
본질은 외면, 열매에만 관심두는 현실적 모순을 극복하라
▲건강한 교회로 가게 하는 셀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정준모 목사.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박주의'는 갖가지 히트상품을 양산했다. 태신자초청주일(총동원주일), 제자훈련, 다락방전도, 오이코스전도, 영성목회, 그리고 셀교회(목회)에 이르기까지.
최근 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단연 ‘셀(Cell)’목회다. 셀을 도입하지 않은 교회는 구식이고, 셀을 강조하지 않는 목사는 게으르거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고루한 이로 비춰진다. 수십 년 동안 구역제도를 가동해 오던 교회가 앞다투어 셀조직화하고 있다. 셀, 목장, 순, 다락방, 사랑방…. 모두가 교회 성장을 강요받고 열망하는 목사들에 의해 도입되는 셀의 다른 이름들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그들의 열망대로 셀 목회를 통해 본질을 회복하고 있는가? 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맞고 있는가?
비교적 셀 목회를 일찍 도입해 적용했고, 한국만나셀 대표로서 셀 목회 관련 교재를 10여 권이나 저술한 정준모 목사(대구 성명교회)는 “아직 한국교회의 셀은 사례는 있으나 모델이 없다”는 말로 현재의 열광이 거품이라고 평가한다. 정 목사의 냉혹한 평가는 자신이 담임하는 성명교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셀 교회만이 오늘날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가 사도행전적 교회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확언한다. 교회가 갈수록 대형화함으로 인해서 수동적이 되고 소외되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 생명체적 공동체로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셀의 도입이 건강한 교회로 만들 수 있는 대안이지만, 그 길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한국교회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정 목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개척교회에서 시작된 셀은 개울에서 수영을 배운 이와 같아 바다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위태롭고, 기성교회에서 셀을 도입하는 것은 오래된 콘크리트 벽체를 허는 것보다 힘들다."
정 목사는 한국 셀 교회의 문제점을 몇 가지 제시한다. 셀의 본질이 진정한 복음에 입각한 예배의 회복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목사들은 셀 목회의 번식(전도, 수적인 성장)에서 매력을 느끼고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님의 임재와 공동체의식이 셀의 본질임에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코이노니아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하는 상황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많은 셀 모임에서 복음에 대한 감격과 삶 속에 나타난 주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기보다는, 월드컵이나 패션, 바겐세일 등의 잡담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외형은 갖췄으나 본질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 목사는 계속해서 한국교회에 도입된 셀의 문제점을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찾는다. 기존의 한국교회가 ‘주일중심, 교회중심, 건물중심’으로 대변된다면, 셀 교회는 ‘주중에 가정이나 어디에서나’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근본적인 접근방식이 다른 두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가치관의 충돌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외국의 경우도 셀 교회가 성공한 케이스가 침례교회, 오순절, 독립교회임을 기억한다면, 한국의 대다수 장로교회-한국의 경우 교단이나 교파적 차이가 선명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의 모든 교회가 해당될 것이다-는 가치관의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또 그는 “셀 목회를 성공시킨 외국과 다른 한국의 문화적 격차도 셀 교회의 성공적 정착을 곤란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정 목사는 "셀은 지극히 서구적인 용어이자 개념"이라고 평가하고 “셀 교회의 핵심요건 중 하나인 나눔을 위해서 가정을 개방해야 하는데 서구사회와 달리 우리의 정서는 자신의 가정을 타인에게 속속들이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고, 아내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급진적 전이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정 목사는 끝으로 문화적 차이와 관련해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목사들은 권위주의적이고 설교 중심의 목회에 익숙해져 있는데, 셀 교회는 이러한 목사들과 맞지 않는다. 함께 울고 웃고 자신의 부끄러움까지 공개해야 하는 상황에서 근엄한 목사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가식의 옷을 벗고 지금껏 누려오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목자가 아니면 양으로 소속되어야 하는 장로들이 얼마나 리더들을 세워주고 그들을 따를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많은 교회에서 당회원들이 담임목사의 셀 목회에 저항하는 세력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점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그는 한국적인 개념과 서구적 개념을 접목시키고 절충시키는 선에서, 혁신보다는 점진적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문화가 그렇지 않은데 삶의 나눔이 될 수 없고 가정을 개방할 수 없다는 출발점에서다. 담임목사의 확고한 셀 교회에 대한 이해와 신념이 이 일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셀을 교회 성장이라는 열매만 보고 시작한다면 뿌리부터 잘못됐다. 셀은 예배의 감격과 그리스도의 임재를 회복하는 교회의 본질운동이므로, 오히려 복음적 설교와 교리적 토대 다지기로 차근차근 본질을 향해 나아갈 때, 교회공동체의 나눔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정 목사가 성명교회에 셀 개념을 도입한 것은 지난 98년부터. 벌써 5년이 다 되었지만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다는 판단이다. 기존의 틀이 두꺼운 탓이기도 하지만, 급진적인 시도는 오히려 교회를 어렵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기 위해 서구적 용어를 한국적으로 바꾸는데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셀이라는 표현보다는 '만나 모임'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만나는 만남과 나눔의 약자이다. 만남은 예배, 교제, 양육을 의미하고 나눔은 봉사, 전도, 선교를 뜻한다. 또 '여는 마당, 말씀마당, 나눔마당, 기도마당, 실천마당' 등의 단어를 도입해 용어적 친근감을 주고, 외국 셀 교회의 교재를 번역한 것은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개발한 교재를 사용한다.
커리큘럼은 정 목사가 제시하고 부교역자들이 세안을 만들어 새벽기도 시간에 메시지화한 다음 다시 교역자들이 모여 수정작업을 한다. 그리고 셀 리더 모임 때 예비공부를 통해 다시 점검한 후 정식 교재로 만든다. 현재까지 1집 10권이 완성됐고 2집도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셀 교회 개념이 장로교단의 그것과는 맞지 않는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2집에는 개혁주의 입장을 강조하는 교리적 내용이 삽입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외국의 셀 사례와 원리가 한국적, 성명교회에 맞게 거듭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교인들을 셀이라는 틀 속에 획일적으로 구겨 넣지 않는다는 것. 당회원이나 권사, 안수집사 등 교회 내 기성세대들 중 거부반응이 많거나 셀의 개념에 융화되기 힘든 이들은 그대로 기존의 남전도회, 여전도회 조직에 편성시킴으로써, 기존질서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이들의 필요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에서 성명교회와 정 목사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간증을 간직하고 있다. 얼마 전 30대 부부 셀 모임에서, 5살 난 아이가 트럭에 치어 하늘나라에 간 슬픈 사건을 겪은 부부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셀을 통해 성장하고 목자가 된 부부이다. 정 목사를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 부부는 "목사님, 요즘 하나님의 선하심이란 주제로 묵상을 하고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데, 이 엄청난 일 앞에 어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할 수 있을까요"라며 흐느꼈다. 그리고 몇 주 후 정 목사는 그 부부를 불러 식사를 대접하며 위로하는 자리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을 위해 엄마가 작년 한해 동안 읽어준 동화책이 1천 권이나 될 정도였고, 나름대로 착실히 신앙교육을 시켜온 터이라, 자식을 잃은 슬픔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런데,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셀 목장 형제 자매들의 기도와 돌봄, 나눔에 있었다는 것이다. 장례식 직후는 물론이고 그 후로도 한달 동안 셀 식구들이 수시로 찾아와 위로해주었고, 아이의 엄마가 식사를 거를까봐 자매들이 돌아가면서 반찬을 만들어주고, 저녁마다 모여 찬송, 말씀, 기도로 슬픔을 당한 자신들을 위로해 주었다는 것이다. 정 목사는 이 이야기에서 셀 교회에 대한 확신과 함께, 이를 통해 성도들의 삶에 주님의 임재와 나눔이 있음을 깨닫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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