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현실적인 주제는 기쁨이다.
기쁨이라는 주제 안에서만 인생은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쉬운 주제가 아니다.
자신의 기준과 원칙이 성숙된 만큼,
자신의 포용력과 이해함의 폭이 깊은 만큼 기쁨은 내것이 되는 것이다.
기쁨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 존재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내 존재의 소중함을 아는 자만이 내 삶의 현장의 소중한 자원을 볼 수 있게 되고,
나와 관계된 다른 이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이유로 자신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경멸하고 박대하는지 모른다.
인간을 지배하는 열등감, 자기비하는 다 자기의 소중함의 기준에 근거해서 생겨난 잘못된 의식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인가?
겉 보기엔 멀쩡한 사람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문제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자들이 아닌가~! 그것으로 자신을 보고, 그것으로 남을 보며 서로 시기, 질투, 미움, 다툼의 현장을 살아가는게 아닌가?
내가 나에게 불만족한데 어찌 기쁨이 있으며,
내 배가 아픈데 어찌 남이 잘되는 것에 함께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소중함이 없이는,
나의 존엄함을 찾기 전엔,
진정한 기쁨은 자리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소중함,
그 위대한 진리를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용서이다.
하나님은 용서이시다.
그 용서의 흔적이 구약은 성막이요,
신약은 예수님의 십자가이시다.
그 앞에 내가 있는게 신앙의 현장이다.
나는 용서하심 앞에 있는 존재이다.
나의 죄, 나의 허물, 나의 모순, 나의 문제,
나의 약함, 나의 부족함, 이 모든 것을 다 품어주시고 녹여 주시는 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넓고 크신 은혜의 품에 난 영원히 안긴 존재인 것이다.
나는 나를 끌어안아야 한다.
나는 나를 포용해야 한다.
난 나에게 너그럽고,난 나에게 예의를 갖추고, 난 나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기쁨을 만드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만들어 내는 용서를 가슴깊이 담으며,
사도바울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한 것처럼 내 안에 용서의 흔적을 가진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눈으로 "너"를 보아야 한다.
나를 향해 가지신 하나님의 그 사랑, 그 용서의 눈으로 말이다.
그래야만 기쁨의 만남이 가능하고, 기쁨의 만남이 가능하고, 기쁨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소중함,
너의 소중함안에 기쁨은 담기는 것이다.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용서인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 십자가로 나를 붙들어 매고,
그 십자가로 너를 대하는 눈이 가득히 자리하길 소망한다.
그게 오늘 나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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