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건강한 모델교회

목장교회란 무엇인가?-이동원목사님

예인짱 2009. 2. 26. 13:31

목장교회란 무엇인가?
몬 1:1-7
이동원


제3세계 신학연구소에서 발표된 논문가운데 "중국 기독교와 삼자운동"이란제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1966년 문화혁명이후 1979년까지: 이 시기의 문화운동은 모택동과 유소기의 노선대립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시기가 교회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기간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를 언젠가는 치러야할 불의 단련이라 생각했고, 이후 기독교인들은 가정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시기에 교회는 교파주의의 극복, 평신도 지도력강화, 신학교육개혁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좀더 설명을 드리자면 공산주의의 등장이후 중국에서의 기독교운동은 계속 위축되어 갔지만 모택동이 소위 문화혁명을 시작하면서 모든 교회는 폐쇄되었고 모든 선교사는 중국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중국 기독교의 종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모택동 실각이후 다시 중국이 개방되었을 때 중국에는 문화혁명이전보다 적지 않은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약5천만)이 존재하고 있었고 오히려 교회는 더 순수한 모습으로 개혁되어 있었던 것(교파주의의 극복, 평신도의 지도력 강화)을 보고 세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교전문가들은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이 문화혁명 이전부터 중국 교회 내에 존재했던 '작은 무리 운동'과 같은 소그룹운동의 영향이었고 이런 운동이 자연스럽게 지하교회(처소교회) 혹은 가정교회를 탄생시킨 배경이라는 데에 견해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운동의 최초의 그림은 중국이 아닌 신약시대의 초대교회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빌레몬서 2절에서 바울사도는 빌레몬이라는 이름의 평신도 지도자에게 편지를 쓰면서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비단 본문뿐이 아닌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초대교회는 일종의 가정교회, 우리교회식으로 말하자면 목장교회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나 중국 지하 처소교회가 그 암울한 시대의 희망이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목장교회가 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목장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한번 더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목장교회는 '확장된가족'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는 소위 '핵 가족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핵가족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유머가 있습니다. 며칠전 어떤 교우 한분이 월간조선에 나온 유머를 복사해서 주셨는데 거기 보니까--"김정일 죽었다가 깨어나도 서울에 올 수 없는 몇가지 이유들"1)수도권에 총알택시가 많다,2)골목마다 대포집이 있다 3)남자들은 폭탄주를 마신다, 4)서울에는 비행 청소년들이 너무 많다, 5)거의 전부가 핵가족이다. 핵가족시대에 사람들이 반드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확장된 가족(Extended family)입니다. 교회는 바로 확장된 가족 공동체인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바로 가족임을 역설합니다. 예컨대 갈6;10에 "착한일을 하되 믿음의 가정들에게 먼저 해야한다"고 했을 때 믿음의 '가정'이란 말이'가족'(family)이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엡2:19에는 "너희가 더 이상외인도 아니고 손도 아니라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 문제는 교회에 와서 성도들을 만날 때 가족임을 느끼십니까? 여기에 목장교회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에서 정기적으로 몇 가족이 매주 모여 기도하고 삶을 나눈다면 그들이 가족의 연대감을 느끼게 될 까요? 물론이지요. 그들은 친 가족이상의 가족의 연대감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3:35)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저는 1세기의 성도 빌레몬의 집에서 모인 교회가 바로 이런 확장된 가족교회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 집니다.1-2절에 보면 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물론 빌레몬의 가족들이었습니다.(자매 압비아는 그의 아내, 아킵보는 그의 아들).그런데 아킵보가 다시 골로새서4:17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데 그가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암시됩니다. 이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는 에바브라라는 사람이었습니다.(골1:7) 학자들 가운데는 골로새 교회가 바로 이 빌레몬의 가정교회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 빌레몬등의 몇 가족이 모여 빌레몬의 집에서 탄생시킨 교회였을 것이다라는 추정이 가능해 집니다. 이상적인 마을 목장교회는 4-5가정정도가 모인 교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교회 에선 자매 목장이나 형제 목장보다도 부부와 가족으로 이루어진 확대된 가정교회들이 많이 개척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거기서 핵가족을 넘어서서 영적인 형님, 누나, 부모, 믿음의 할아버지,할머니를 경험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가족교회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2.목장교회는 '만인제사장' 교회입니다.

종교개혁이 남긴 가장 큰 기여는 일반적으로 만인 제사장직 의 발견이라고 일컬어집니다.
특별한 사제나 목사같은 영적 지도자만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의 발견입니다. 동시에 종교개혁이 남긴 하나의 숙제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성도가 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첫 종교개혁이 사제의 손에만 있던 성경을 평신도의 손에 넘긴 사건이었다면, 둘째 종교개혁의 과제는 아직도 사제의 손에만 있는 사역을 평신도의 손에 넘겨 평신도로 하여금 사역자가 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 가운데 구경꾼이 아닌 일꾼으로 복음의 사역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일반적으로 20%미만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면 교회출석자의 80%는 구경꾼으로 다니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이것은 구조적으로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교회내에 사역의 자리를 만들어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장교회, 셀교회의 경우에는 평균적으로 80%가 사역을 하고 20%만이 방관자의 자리에 있게된다고 말합니다.(10명이 목장교회에 나오면 8명이 일하고 2명은 구경합니다.)왜냐하면 셀교회에서는 사람의 은사가 쉽게 찰되고, 또 구조적으로 서로에게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어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 목장교회의 경우, 각 목장마다 행정부장, 선교부장, 구제부장, 중보 기도부장, 찬양부장, 전도부장, 새교우환영부장, 친교부장, 교육부장등을 의무적으로 두어 일하다 보면 모두가 사역에 뛰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사를 따라 모든 성도가 사역하는 만인 제사장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원의 모습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에 대하여는 '동역자'로 호칭하고 있고, 압비아에 대하여는 자매, 아킵보에 대하여는 '군사'로 칭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으면 군사라 불렀을까요? 당신은 군사입니까? 혹시 무단 이탈자는 아닙니까?

3.목장교회는 '코이노니아' 교회입니다.

목장교회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교회의 본질은 예배가 아닙니다. 목장교회에는성경공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교회의 본질은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목장교회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교회의 본질은 기도가 아닙니다. 목장교회에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장교회의 본질은 찬양이 아닙니다. 목장교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목장교회의 본질은 코이노니아 입니다. 코이노니아란 일반적으로 교제, 친교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코이노니아는 교제이상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삶의 나눔, 삶의 참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삶을 열어 나눌 준비만 되어 있으면 누구나 목장교회에 참여할수 있습니다. 목장교회 모임의 가장 중요한 시간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 자기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눔의 교제가 우리에게 치유와 위로, 격려 더 나아가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콧트란드 국교회 내에서 가정교회 운동을 주도한 톰 알렌(Tom Allen)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메마른 교회 안에서 오아시스처럼 물을 내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살아있는 셀들, 이 밀접한 공동체 그룹들만이 모든 슬픔과 문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으로 삶의 처방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참되고 역동적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생활 즉 신약 성경적 코이노니아를 드러내 보일 때에만 비로소 온전히 그 교회 된 기능을 발휘하고 교회로 하여금 세속적인 세상에 성공적으로 침투하게 할 것이다." 초대교회의 힘이 바로 이 교제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교제하는데서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모인 교회에도 바로 이런 살아있는 교제가 생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5-6절/사랑과 믿음의 교제) 바울 사도는 특히 빌레몬의 헌신(자기 집을 열고 교회처소로 내어놓은)이 낳고 있었던 교제의 영향력을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교제의 결과)이런 교제에서 얻어진 기쁨과 위로로 초대교인들은 세상을 정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4.목장교회는 '전도지향적' 교회입니다.

셀은 생명의 기본단위이며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그런데 셀 즉 세포의 존재이유는 성장이 아닌 증식에 있습니다. 세포는 분열을 통해 자신을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도 일정한 숫자가 되면 반드시 나누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눔의 이유가 전도를 통한 나눔일 때 교회는 가장 건강한 방법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포의 존재이유가 증식인 것처럼 목장교회의 존재이유도 증식 곧 전도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이유가 그들을 통해 또 다른 제자를 부르시고자 함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너희를 택한 이유가 너희로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빌레몬이 속해 있었던 골로새 교회는 이런 열매맺기의 순종을 보였습니다. 골1:6에 보면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증식하지 못한 세포는 병든 세포인 것처럼 재생산하지 못하는 목장은 병든 목장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모든 목장모임에는 빈 의자 혹은 빈 방석과 축복의 리스트를 사용할 것입니다. 주님알지 못하고 살고있는 이들에게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마침내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것이 존재이유가 되는 목장사역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장교회는 철저히 전도지향적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웃들과 쉽게 접촉할수 있고 또 자연스러운 만남의 환경에서 차 한잔을 나누고 작은 도움을 베풀 수 있는 목장교회야 말로 전도의 완벽한 상황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까!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전2:46-47) 마이클 그린이라는 성서학자는 "초대교회의 복음전도"라는 그의 명저에서 "가정의 완전한 비형식성, 긴장을 풀고 쉬는 분위기, 또한 이와함께 병행되는 손님접대야 말로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의 성공적 상황이었다"고 지적합니다. 계속해서 "데살로나가의 야손의 집, 고린도 회당 건너편 디도 유스도의 집, 가이사랴의 빌립의 집, 빌립보의 루디아의 집, 간수장의 집--이런 가정들이 바로 1세기의 세상을 변화시킨 복음전도의 중심 센타 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금년 우리교회 목장교회 출범 선언과 더불어 우리교회 성도들의 가정 가정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쓰임받게 되시기를 축복하고 싶습니다.

로버트 뱅크스 부부가 쓴 "교회,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책에 보면 종교개혁 시대의 한 침례교인이 노래한 가정교회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모이고 있는 이곳은 어떤 곳인가?/그저 하나의 집일뿐, 바닥은 흙/사람들을 보호하는 벽과 지붕/빛이 들어오는 창문, 열린문/하지만 우리 여기 모일 때/이 집은 살아있는 하나의 몸이 되고/ 우리는 주님이 가까이 계심을 아네/저 멀리서부터 오는 말씀과 떨어지는 별들/우리 안에 씨처럼 뿌려진 열정의 불꽃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예부터 전해온 하나님의 이름들/그리고 꿈과 징조와 표적들/이곳에서 우리는 이미 들은 것을 또다시 기억하고 또다시 이야기한다네/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그리고 그분의 식탁에서/우리는 떡을 받는다네/그 떡을 나누어 먹으며/살아있는 표적을 본다네/이 세상에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서로가 서로에게 떡과 포도주라네/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전파해야 할 사람들/바로 여기 이곳에서 그 정의와 평화를 받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