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상담심리학

행복과 성공을 부르는 긍정의 심리학

예인짱 2009. 1. 16. 14:16

행복과 성공을 부르는 긍정의 심리학

 


마틴 셀리그만

 

자존감은 자신감과 다르다

 

자신감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 즉 어떤 일이나 목표를 스스로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럼 자존감은 무엇인가. 자신만이 지닌 특별한 가치에 대한 인식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실제로 자신을 자신답게 느끼는 것이다. 자신감은 조건에 관련된 것이고 자존감은 존재론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감은 조건이 달라지면 변동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지만 자존감은 조건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자기 가치 인식이다.

 

사람은 자신감으로는 항상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자신감은 외적 조건에 의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조건이 변하면 자신감을 상실해버리고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안정과 평화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높은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자존감을 방치하면 그래서 자존감이 지나치게 낮아지면 자기혐오에 빠지고 만다. 낮은 자존감은 오만과 시기와 질투가 따라 붙는다. 다른 사람의 결점을 끄집어낸다. 대인관계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야행성 경향을 나타내기 쉽다. 남들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자기중심적인 행동은 자기 집착으로 이어지고 자기 집착은 스스로에게 굴레를 씌워버리므로 자기 자신마저 지키지 못하고 자기 파멸에 이르고 만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존중을 받고 싶다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중요성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핵심은 나 자신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난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해야 한다. 상처를 주거나 마음 아프게 한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직접 사과하라. 이런 과정은 나의 자존감을 고양시키기 위해 취해야 할 과정이다. 건강한 인격은 높은 자존감에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결실이다. 이런 건강한 인격에서 높은 책임감이 나타나고 높은 책임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받침대가 되게 한다. 건강한 사회는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높은 자존감은 왜 중요한가?

 

자존감이 높으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자기의 가치성을 스스로 존중하기 때문에 삶이 단순해진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쉽게 풀어간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쉬운 문제라도 그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사소한 문제도 큰 문제로 비화시켜서 그 문제의 무게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과 양육이 지상 과제가 된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역할 모델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높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높은 부모는 자녀들에게 우상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당당하기 때문에 이런 부모들은 자기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에도 솔직하게 모른다고 대답해준다. 이런 부모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부모에게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와 사이에 격이 없어지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이 높은 자녀, 감성지수가 높은 자녀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고 서로 믿는 분위기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 곁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든다. 높은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하는 내적 난방시설과 같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고 자신에게 충실한다. 집착과 충실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집착은 자기중심적이지만, 충실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바라는 것이 왜 잘못인가?

 

나는 일을 하면서 많은 영화배우들을 만나게 되었다. 배우들의 생명은 인기이고, 배역이다. 좋은 배역에 발탁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는 배우들을 보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우수한 신체적인 조건과 훌륭한 연기로 인기 배우가 되어도 항상 그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과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거기다가 영화평론가들의 평론도 배우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조건이다. 배우들의 생존의 구조는 항상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초점을 맞추어 산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환경과 조건이 자기 자신을 좌우하지, 자기 존재감이 자기 자신을 좌우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곪아 터지는 피곤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스스로에게 엄청난 과부하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이 과중한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마약을 하고, 과음을 하며, 방종한 삶을 살기도 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게 되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지 못하고, 항상 다른 사람이 기준이 된다. 그래서 성형수술을 통해서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붙잡아 두려고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남의 평가에 대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따라서 마음에 여유가 없고 불안과 초조가 안개처럼 서려 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다른 사람의 시선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스스로 스타이고 스스로 VIP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의식 세계가 크고 풍요롭다. 이런 부요의식으로 의식이 넉넉해지면 자기 자신을 칭찬할 뿐만 아니라 남을 칭찬해 줄 수 있는 여유로움으로 나타난다. 칭찬해 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칭찬은 따뜻한 기류와 같고, 밝은 빛과 같아서 사람들이 호감을 갖고 주위에 모여들게 된다. 

 

당신의 자존감은 어느 정도인가?

 

남들의 안 좋은 점을 들춰내고 흉을 보고 있다면 자존감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이다.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똑같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태도로 대한다. 나 자신이 프리즘이 되면 그 프리즘을 통해서 나타난 현상은 일곱 가지 무지개의 현란함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일을 한다면 자존감이 낮다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삶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난파선과도 다를 바가 없다.

 

자신과 남을 비교하며,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을 때에만 기분이 좋다면 낮은 자존감이 만들어 낸 멍든 심리적인 반응이다. 사람은 상품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자기 자신을 물격화시키는 자기비하의 모습이다. 세상 누구도 나보다 잘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비교의식은 자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

 

난 못생겼다, 좀 더 잘생겼더라면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존감이 건강하지 못한 증거이다. 멋지게 보이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행복의 조건을 외적인 조건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행복은 신기루처럼, 잡은 순간에 허망한 것이 될 것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행복의 원천이 마음속에서 솟아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런 행복은 항상 마르지 않는 법이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필수조건

 

삶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누가 나를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엮어져 가는 모든 사건은 내가 주역이다. 그러므로 내가 판단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기의 위상을 낮게 평가해서 스스로 자존감을 무너뜨리면, 낮은 자존감 위에 허위와 과장이라는 가면을 씌우는 일이 일어난다.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과 진실을 바치는 것처럼, 내가 소중하다면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하고 자기 가치성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삶을 역동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열정은 여기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다. 결코 거짓된 것에서 열정이 나오지 않는다.

 

아픔과 억울함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어쩌면 절대로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헤매다 보면 정작 현재에 써야 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역경의 회오리바람이 몰려오면 이 곤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가 고갈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대로 곤경에게 삼킴을 받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긍정성이 있다면 이 긍정성은 큰 힘이 되어서 도전에 맞서 문제를 돌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느 현명한 여성이 내게 남긴 말을 기억하고 있다. 집에 있을 때에는 집에 있어야 하고, 직장에 있을 때에는 직장에 있어야 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현재가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 현재의 중심에 나라는 소중한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온전한 인성은 높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성품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진실하다. 온전한 인성은 다른 사람에게 벽을 쌓으라는 뜻이 아니다. 온전한 인성은 열림의 마음이다. 열린 마음의 소유자는 자신의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실수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은 모두 약점을 가지고 있고 실수를 하기 때문에 실수한 사람을 보면 공감대를 갖는다. 내가 강의하다가 실수를 하면 사람들은 화를 내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실수가 웃음을 자아내어 강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경험이 많다.

 

정직해야 하는 이유

 

나는 약물에 중독되기 시작하면서 내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자꾸만 거짓말을 했다. 하룻밤 사이에 부정직한 사람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양심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거짓을 진실로 믿는 도착현상이 나타났다. 나의 자존감은 깊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나는 재활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 자신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일그러지고 망가진 참담한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거짓이 나를 겨냥한 킬러와 같았음을 깨달았다. 정직의 가치성을 알아가면서 정직은 보다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터득했다.

 

정직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그 이상의 것이다. 정직은 진실함이라는 심장을 가지고 있다. 친구 니쎄와 페테르가 서로 다툰 적이 있었다. 이 둘을 화해시키기 위해서 이 둘 사이에 끼어, 니쎄에게는 니쎄 편이 되고, 페테르에게는 페테르 편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이런 편법을 통해서 망가지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여기에는 진실성이 없는 것이다. 진실성이 없다면 더 이상 정직은 아니다. 정직성의 핵심은 바로 자신의 가치와 기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것이다.

 

정직한 것과 솔직한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솔직하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내뱉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이 솔직성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식성은 솔직하게 나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토설할 때에 나의 감정과 기분이 어떠한가를 밝혀주는 자리까지 나아간다.  솔직은 미시안적이고 정직은 보다 거시안적이다. 솔직이 나무만 보는 것이라면 정직은 전체 숲을 보는 큰 마음이다.

 

웃음과 행복이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

 

유머는 신이 준 선물이다. 웃음과 행복은 영혼의 향신료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똑같은 하루가 주어진다. 이 하루를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한 웃음의 드라마로 만들 수도 있고, 신경질과 찌푸림으로 구겨진 하루를 만들 수도 있다. 낮은 자존감은 환경과 현실, 사람과 사건에 악영향을 받을 때에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높은 자존감은 어렵고도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웃음의 메이커로 사람을 재창조할 수가 있다. 

 

웃음은 주변 사람과 함께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웃음은 우리의 정서 중에서 가장 밝고 환한 감정의 조명이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어둠을 싫어한다. 그래서 밤에도 불을 밝혀서 화려한 야경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어둠을 싫어하고 빛을 좋아하는 빛 지향성이 사람의 본성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빛 지향성이 감정의 영역에 나타나는 현상이 웃음에 대한 열망이다. 그러므로 웃음은 사람을 모은다.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끌어 모으는 신비로운 힘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파괴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상념으로 겨냥하지 않는 사람, 내가 얼마나 중요하고 쓸 만한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그 규모가 웅대하게 커진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살맛을 느끼며 살아가는 행복자이다. 이 행복이라는 반다지 안에서 웃음의 강물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 웃음은 주변 사람을 웃게 만든다. 세상의 행복은 여기에서부터이다.

 

나는 멋지다 - 자신을 긍정하고 인정하기

 

자존감은 운동과 비슷하다. 균형 잡힌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 적당히 하다가 중단해버리면 오히려 살이 찌고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자존감이 흔들리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 중단 없이 훈련을 해야 한다. 나는 멋지다라는 일기 프로그램은 이 자존감 높이기 훈련에 큰 위력을 발휘하는 훈련방법이다.

 

첫째,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쓰라. 무엇보다도 자신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가 있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나는 좋은 부모야라고 쓰기 바란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고 자책한다. 이런 잘못된 자화상을 가진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없다. 자녀들은 당당하고 의연한 부모를 보고 당당하고 의연한 삶의 자세를 배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 확신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등의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나는 멋지다 프로그램에 저항감을 느낀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억지로라도 확신을 시켜야 한다. 자시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

 

둘째, 감사합니다라고 쓰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한 면이나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감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한 최고의 처방이다. 감사를 통해 우리는 강해질 수 있으며 새로운 도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가 있다. 감사목록을 만들어서 감사의 조건을 열거해보면, 의외로 감사의 조건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셋째, 도와주소서라고 쓰라. 인생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살아가기에는 자신의 힘이 너무나 약하다. 사람은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관계를 통해서 건전해지고 풍요로워진다. 극한상황에 처해졌을 때 도와줄 이웃이 많은 사람은 틀림없이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다.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신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나는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지만 영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다.

 

꿈과 희망이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

 

꿈은 돛과 같다. 돛은 역풍이든 순풍이든 바람을 생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장치이다. 꿈이 없다면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삶이 피동적으로 떠내려가는 모습이 될 것이다. 꿈은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희망이든지 글로 써야 한다. 그냥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것,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써라.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모두 써라. 꿈을 쓰면 단순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꿈은 이루어 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이 꿈을 꾸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꿈은 삶의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동기가 분명한 삶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높게 책정한다. 꿈이 없는 사람이 역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꿈은 사람의 규모를 무한정 확대하는 영혼 확장공사와 같다. 소인으로 살기를 원하는가? 꿈을 접어라. 대인으로 살기를 원하는가? 꿈을 꾸어라.

 

꿈은 많을수록 좋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꿈꾸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꿈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은 불모지에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비옥한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씨를 많이 뿌릴수록 자라는 꿈도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친한 사람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라. 자신의 꿈을 남들과 공유하는 것은 그 꿈을 자신의 마음 판에 단단히 못 박는 것과 같다.

 

동기부여의 방법

 

동기는 삶에 가치성을 부여하는 힘이다. 자신의 하는 일에 목적이 생기면 동기가 생긴다. 동기는 외적인 동기와 내적인 동기가 있다. 외적인 동기는 보상이나 처벌같이 외부에서 오는 동기를 의미한다. 반대로 내적인 동기는 우리 내면에서 우러나는 동기를 말한다. 자신이 이뤄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성취한 일에 대해 실망스러워하지 않는 감성이다.

 

외적인 동기는 과도한 욕심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불필요한 경쟁심을 촉발해서 많은 적을 만들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외적인 동기는 그 동기가 외부에서 오기 때문에, 이 요인이 소멸되면 동기도 소멸된다.

 

내적인 동기는 영혼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노력과 발전을 통해서 고양될 수가 있다. 내적인 동기 부여는 각자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내적인 동기를 유발하고 그 동기를 유지하며, 그 동기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약속을 해야 한다. 동기부여를 위해서는 자기 코칭 훈련을 해야 한다. 나의 욕구, 문제, 궁금증, 목표는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삶의 방향과 초점을 확정해야 한다.

 

짜증과 화를 다루는 방법

 

인생은 사람 경험이고 사건 경험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고 사건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과 사건이 우리에게 즐거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갈등이 일어나고 장애물에 부딪치고 울일 웃을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짜증과 화는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짜증과 화를 내버려두면 자기의 인격을 황폐화시키고 대인관계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짜증과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짜증과 화를 내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서 근원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질문, 나를 자주 화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을 열다섯 가지 정도를 써라.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대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들을 상기하는 것은 감정패턴을 찾기 위해서이다. 감정패턴을 찾아내면 다양한 상황에 대해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 질문, 나는 왜 화가 나는가? 나를 화나게 하는 요인이 외적인 것이라면 내가 왜 화가 나는가에 대한 질문은 나의 내적인 심리를 살피는 자기 영혼의 탐색이다. 이 내적인 탐색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미시적인 입장에서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세 번째 질문, 여기에서 나는 어떤 위협을 느끼는가? 나는 위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놈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많은 사람들이 이 세 번째 질문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조사해보면 우리 내면에 어떤 요소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들을 열거해보면 자존감, 자부심(공격받았다고 느낄 때), 정서적 안정(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낄 때), 물질적 안정(물질이나 돈을 잃게 될 때), 개인적 관계, 사회적 인식(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우리의 관점), 미래의 계획(세상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미래에 대한 꿈), 성적 관심 등이다.

 

네 번째 질문,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진실하다면, 진정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 질문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고 나면 그 순간만 시원할 뿐, 다음에 그 사람의 얼굴을 볼 때에 더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원인들을 살펴보면 사소한 것이 많다. 얼마든지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며 짜증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내면의 정체를 확인해보면 낮은 자존감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자존감을 높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불안, 불확실성,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법

 

두려움은 안전이 위협을 받을 때에 나타나는 반응이다. 두려움을 자아내게 하는 원인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면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원인을 제거하든지 아니면 피하므로 안전이 보호될 수가 있다. 이런 두려움은 건강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사실 무근인 허상을 실상인 것처럼 상상해서 두려움을 자체 생산한다면, 그만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며, 이런 두려움은 건강하지 못한 두려움이 될 것이다. 불안, 불확실성, 두려움만큼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도 없다. 두려움에 대한 방향설정은 분명하다. 건강하지 못한 두려움은 없애고, 건강한 두려움은 지키는 것이다.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한다.

 

첫 번째 질문,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를 두렵게 하는 사람의 이름을 쓰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사물이나 대상을 쓰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현재 직업이 잘 못 선택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이와 관련된 두려움 등이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외적인 것들이다.

 

두 번째 질문, 나는 왜 두려운가?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다. 숨겨진 사실이 드러날까 하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원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과 이기성이다.

 

세 번째 질문, 여기서 나는 어떤 위협을 느끼는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패배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겁이 난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이런 용기에서 도전과 극복이라는 두려움을 헤쳐 나가는 바람직한 해법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재빨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내 안에 무엇이 위협받고 있는가? 어떤 식으로 나는 이러한 두려움을 부추기고 있는가? 거짓 자부심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는가? 어떤 욕심을 내고 있지는 않는가? 이런 원인들을 찾아내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햇빛이 비치면 안개가 사라지듯이 말이다.

 

목표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모든 그리움에는 미래가 있다는 스웨덴 격언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 알아야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꿈을 갖는 순간부터 삶은 생동감을 갖기 시작한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현재상황이 무엇인가에 대한 좌표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 현실 좌표인식이 확정되면 바람직한 푯대가 무엇인가에 대한 목표의식이 확실하게 터를 잡아야 한다. 목표가 정해지면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이정표가 세워져야 한다. 바로 방법론이다.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는 알고자 하는 결과이다. 우리가 열망하는 푯대를 제시하는 청사진이다. 곧 바람직한 상태를 의미한다. 예컨대 더 유쾌하고 명랑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때 짜증을 덜 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목표가 아니라 방법이다. 그러나 화나 증오심을 느끼지 않으며 진정으로 인내하고 행복을 느끼는 상태는 목표가 된다.

 

목표를 세우면 무엇이 좋은가? 어떤 것을 성취하고자 했을 때, 어떤 길을 가기로 했을 때, 비로소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된다. 목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목표는 다가올 미래와 변화에 대한 불안을 줄여준다. 목표는 삶에 대한 에너지와 동기를 제공한다. 목표를 떠올리면 힘이 솟고 어려운 일도 가능케 한다. 목표는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발전과 진보는 처음 품었던 목표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목표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영적 목표가 있다. 감정과 인간됨의 완성을 도모한다. 직업적 목표가 있다. 일의 성취 열망이다. 재정적인 목표가 있다. 갖고 싶어하는 목적의식이다. 이상적인 목표가 있다. 자기실현에 대한 꿈이다. 사교적인 목표가 있다. 원활하고 행복한 인간관계에 대한 지향이다. 취미 여가와 관련된 목표가 있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에 대한 성취욕구이다.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죽은 고기가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 같은 피동적인 자세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목표를 프로그램화해서 규칙성과 지속적인 노력과 끈기, 꺼지지 않는 열정과 끊임없는 동기부여, 체계적인 관리와 철저한 자기계발이 투자되어야 할 것이다.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은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외부에서 오는 외적 원인이 있다. 주변사람들의 요구나 행동이 원인이 이에 속한다. 다음으로 내부에서 오는 내적인 원인이 있다. 자신에 대한 과다한 기대와 요구가 원인이 될 수가 있다. 내적인 두려움과 다양한 상황에서 느끼는 자신에 대한 인식이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대부분 자기 내면에서 온다. 어떠한 강박관념이나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어떤 사람은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다.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문제는 자신에 대한 인식에 따라서 달라진다. 상황에 대한 인식은 자기의 의지와 결단으로 조절할 수가 있다.

 

스트레스는 내버려두면 안 된다. 잡초는 뽑아주어야 곡물이 잘 자라고, 위생은 살균처리를 잘해 주어야 효과적인 청결상태를 보존할 수가 있는 것처럼 스트레스는 줄여야 한다. 외적인 스트레스는 지나치게 압박이 심한 업무는 피하든가, 아니면 남의 도움을 받아서 과부하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내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정서적으로 성숙하고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면 스트레스는 높은 자존감의 수위에 잠겨버리게 된다.

 

효율성을 만드는 법

 

효율성은 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경제 원리는 가장 적은 것을 투자해서 가장 큰 이익을 창출한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효율성에 바탕을 둔다. 효율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업무를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부하직원들이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최선의 노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우리가 평균적으로 누릴 수 있는 시간은 3만 일, 즉 72만 시간 정도 된다. 이 시간 동안 하지 못할 일은 거의 없다. 문제는 시간을 어떻게 계획하고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시간의 효율성을 파괴하는 요인을 먼저 분석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게으름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다. 일의 방법이 잘못되거나,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한다. 일을 미루다가 마지막에서 몰아서 하는 습관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다. 체력을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또 잘못된 행동양식이나 습관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무계획성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다. 꾸준히 몰두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여기에서 열거하는 시간 허비의 요인을 뒤집어서 적용하면 곧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시간의 효율성을 무너뜨리는 암초와 같다.

 

마음껏 자존감을 높여라

 

누구나 어떤 변화든 가능하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감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세상에 태어난 것 그 자체로 사람은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가치성을 인정할 때부터 높은 자존감은 형성된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삶은 훨씬 단순하고 유쾌해진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관심이나 반응에 대해서 과민 반응을 하지도 않는다. 당당하고 초연한 자세로 의연하게 살아간다. 여기에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는 자신을 칭찬하게 만든다. 나 자신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아름다운 그림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높은 자존감은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갈 때 영원히 나의 영혼의 창고 속에 꼭꼭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 경이적인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뇌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열정으로 나타나고 창의성으로 나타나서 인생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상승기류가 될 것이다. 높은 자존감은 강렬한 내적인 태양이다. 움츠러들지 않고 외부지향적인 삶의 자세로 나타나고, 다른 사람을 폭 넓은 이해력으로 품고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함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이 따른다.

 

 

높은 자존감을 갖기를 원하는가? 이렇게 고백하라. 그리고 외쳐라. 그리고 확신하라.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나라는 사람이 되는 데 있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 나는 충분히 훌륭하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중요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