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술진흥재단 제2기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학 강좌’
고려대 윤사순 교수(한국철학)의 성리학 강좌
윤 교수는 ‘조선시대 유학의 도덕철학: 한국 성리학과 실학의 윤리사상’을 5주 동안 소주제별로 나눠 강좌를 진행한다. 윤 교수는 ‘권선징악을 위한 성리학적 응보론’을 주제로 고려시대의 국가 기본 틀이었던 불교가 조선 초에 배척당하고 성리학이 꽃을 피운 배경을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를 통해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진다.
“유학자들은 고대부터 '어떻게 생활해야 할 것인가'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공자 이래 도덕설과 정치설이 다른 어느 정치사상보다 잘 발달되었으며 유학에서 이상적인 삶을 구현하려 할 때에는 도덕을 정치보다 앞세웠다.” 조선 성리학이 도덕과 같은 특정 분야에선 중국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 결과, 심성설과 같은 특수 분야에선 중국의 주희설보다 더 높은 수준에 올랐다. 도덕과 같은 일정한 분야의 성리학 이론을 철학차원에서 고찰할 때에는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이론을 빼놓아선 곤란하다.” 원나라의 배격과 함께 원에 예속된 고려가 숭상했던 불교까지 배척당했다고 윤 교수는 설명했다. 매우 적극화됐다. 조선 성리학자들은 초기부터 정책 이상의 이론 차원에서까지 불교를 배척했다. 조선 초에 집권층 성리학자들은 불교풍의 예속(禮俗)을 청산하고 이를 성리학적 예속으로 대체하려 했다.”
그 선봉에 섰던 사람이 바로 이성계 다음으로 실권을 행사한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정도전이다. 이후 불교 배척의 근거로 삼은 정도전의 성리학 사상을 윤교수는 설명했다. 집중적인 불교 배척의 이유로 삼았다. 그 방법은 상소문이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불교의 그런 폐해와 철학사상 차원의 이론적 약점과 폐단까지 철저히 비판하는 형식으로 불교 배척에 앞장섰다.” 심기리편(心氣里篇), 심문천답(心問天答), 불씨잡변(佛氏雜辯). 이는 기(氣-노장사상)의 작용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심보다 기가 더 근원적이며 기는 이치의 근원인 리(理-성리학)에 의해 움직이므로 불교보다 노장사상이, 노장사상보다 성리학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또 심문천답에선 불교의 중요 사상 중 하나인 ‘선악응보설’을 성리학의 리기, 심성 등의 용어로 대체하려 했다.” 모든 현상세계를 오행(五行)의 기(氣)로 보는 성리학과의 근본적 차이를 설명했다. 인체는 가체지만 사망 후에도 정신만은 불멸, 윤회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도전은 일정한 기(氣)의 불량으로 생긴 병이 의술에 의해 치료되는 사례를 보면서 인과이론은 오류라고 주장한다.” 복선화음(福善禍淫)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비슷하다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 ‘인간이 선행을 하면 하늘이 복으로 보응하고 악행을 하면 하늘이 화로 보응한다’는 복선화음(福善禍淫)을 주장했다. 응보설을 불교설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그는 응보설에 담긴 선악의 도덕정신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항상 올바른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실제에선 악한 사람이 복을 받는 일(복선화음의 전도)도 있다는 점에서 그는 철학적 난제에 부딪혔다.” 천국과 지옥 등의 보상심리 위에 세워진 불교의 타율적 원리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정도전의 보응설은 ‘복선화음의 전도’라는 난제를 스스로 적극적으로 깨달아 실천하는 자율적 원리를 통해 해결코자 했다는 설명. 복을 주는 하늘을 하느님(상재), 우주 또는 리(理) 등과 동격으로 본 정도전은 하느님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몸의 기로 말미암아 생기는 물욕은 경(敬), 성(誠), 의(義), 용(勇) 등의 유교 원리로 다스리고 태생적으로 타고난 리(理)가 곧 인의예지(仁義禮智)이므로 이 본성을 따르는 한, 복선화음이 뒤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권선징악의 근거를 적어도 불교보단 더 합리적으로 제시, 조선 초 통치이념으로 성리학이 불교의 자리를 대신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말했다. - 조행만 기자, chohang2@empal.com
(2) 율곡은 천재형, 이황은 노력파 - 오륜체제의 연구
(3) 일제, 복상론(服喪論) 통해 조선 역사 왜곡
17세기 조선은 중국 뛰어넘은 ‘예학 전성시대’
|
(4) "땅덩이 둥글다" 양반지배사회에 충격
박지원, 정약용 등의 인간평등주의로 발전
실학(實學)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다. 조선시대 초기 성리학자들도 성리학을 가리켜 실학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성리학자들은 불교를 ‘헛된 학문’, 즉 허학(虛學)이라 칭하고, 불교와 비교해 성리학을 실학이라고 자칭했다. 갖추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기에 접어들면서 왜란과 호란이 발생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지는 등 성리학이 실학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그리고 17세기 초 ‘실학’이 대두하는데, 실학자들은 과거 성리학자들이 불교를 비판했듯이 성리학을 현실 풍토에 맞지 않는 ‘비실제적인 사상’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와 비교되는 자신들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칭했다. 17세기 초 등장한 실학자들은 당시 양반 지배층 중심사회를 개조할 ‘개혁안’들을 적극 모색하면서, ‘학문 방법’에 까지 새로운 변혁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성리학자들이 도덕원리 탐구만 옳은 원리이며, 나 자신을 위한 학문이라 하면서 그것에 탐닉하고 있는데 대해 못마땅해 하면서 이전까지 ‘잡학(雜學)’이라고 경시해왔던 ‘박학(博學)’을 나 자신을 위한 학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송나라 때 일어난 신유학인 정주학(程朱學)보다 더 상위에 있는 본원유학(本源儒學)까지 거슬러 올라가, 일찍이 중용(中庸)에는 유학의 방법으로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辯), 독행(篤行)을 들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박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맹(孔孟)의 본원유학이 지닌 ‘실제성 중요시 정신의 회복’을 내세우는데, 이 경향은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을 비롯, 수사학(洙泗學)을 표방하는 정약용(丁若鏞, 1762~1836)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設),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반계수록(磻溪隧錄),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박제가(朴齊家 , 1750~?)의 북학의(北學議), 정약용의 경세유표(經世遺表)와 목민심서(牧民心書). 그것이 단순하게 본원유학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학사에서 고증학, 성리학 등 새로운 사상이 발흥할 때는 으레 공맹의 본원유학 회복을 빙자하는 것이 관례였다는 것. 홍대용을 거친 정약용에서 마침내 정점을 이루게 됐다고 윤 교수는 말했다. 이처럼 성리학적인 사고풍토가 팽배하던 상황에서 실학적 사고가 대두된 원인은 당시 시대 여건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획기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새로운 천체관인데, 홍대용(洪大容이, 1731~1783)이 서학(西學)을 통해 소개한 ‘지구설(地球說)’과 ‘지동설(地動說)’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른바 세계(天下)가 중국을 중심에 두고 편성‘된 것처럼 여기던 전통사고를 뿌리부터 뽑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윤 교수는 말했다.
성리학자들이 진리로 여겨오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天圓地方)” 라는 관념들 버리게 하고, “땅은 정지한 채로 있으며, 하늘이 움직인다(天動地靜)”는 성리학자들의 믿음마저 쓸모없게 만들었다.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인간과 타물들을 하늘같은 제 3의 입장에서 보면 균등하게 평가되지, 인간을 더 우월시하지 않게 됨을 지적하면서, ‘인간과 타물의 균등관’을 도덕적 본성이라고 주장했다. ‘양반전(兩班傳)’과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박지원이 두 작품을 통해 양반상민의 신분차별과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귀천 관념에 도전했던 것은 홍대용 등 실학자들에게서 나온 ‘인간평등관의 싹’이 자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이강봉 편집위원, aacc409@naver.com
|
(5) “조선시대 유학은 현실을 이야기했다”
윤사순 교수, 순수한 유학정신 계속 이어가야...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72)는 한국 철학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세계에 한국 전통철학을 소개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황(李滉)의 저작 중 도덕 법칙과 실천 문제에 관해 탐구한 논문 ‘존재와 당위에 관한 퇴계 이황의 일치시(一致視)’을 발표해 세계 철학계의 큰 주목을 받은 데 이어 이후 ‘퇴계 이황의 성선관(性善觀)’, ‘인성, 물성의 동이(同異) 논변에 대한 연구’ 등을 세계 학계에 발표하며 한국 철학의 위상을 높여왔다.
한국 유학에 대해 그가 연구한 모든 것을 쏟아 놓았다. 곽신환 숭실대 교수 사회로 이광호 연세대 교수, 최영진 성균관대 교수, 허우성 경희대 교수와 청중들로부터의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으며, 윤 교수는 각 질문에 대해 일일이 사례를 들어 답변하는 열의를 보였다. 한국 유학을 ‘인간과 인류를 이롭게 하는(弘益人間) 정신’에 따라 이 위대한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려는 한국인의 노력의 결과라고 정의하고, “앞으로 이를 증명할 기회가 더 많이 있기를 강렬히 소망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비록 정치적으로 예송이 당쟁의 발단이 됐지만, 그것은 예학을 정치에 이용한 사람들(집권자들)의 문제이며, 禮를 통해 ‘왕실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따졌다는 것은 중국, 일본 등 이웃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합례적인 행위였다”고 강변했다. ‘조선시대에 이룬 성리학의 심연에는 과거 어느 나라 성리학보다 깊은 차원의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이론들’이라고 말했다. 같은 내용이라도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독자적 발상에 따라 다른 나라 성리학에서 보기 힘든 형식의 이론들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심성설’에 있어 그 독창성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 후 사이언스타임즈 기자와 만난 윤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증명하려는 노력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오늘날 현실 상황과 맞지 않는 ‘훈구적’ 연구라는 지적을 자주 들었고, (개인적으로) 당연한 지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오륜(五倫)의 경우 단순한 윤리, 도덕적인 특성에 머무르지 않고, 조선시대 사회계층을 유지하려는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성격까지 내포한 규범”이라고 말했다. 유학을 과거의 것으로 돌리려는 풍조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 유학을 학생들에게 전하면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같은 오래된 그림을 걸어놓고, 현대 감각에 맞지 않는 교육과정을 고집하고 있는 현실 등을 개탄하고 있다며 한국 유학의 근본적이고 순수한 정신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일반 대중에 전할 수 있는 풍조가 하루빨리 조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강봉 편집위원, aacc409@naver.com |
'풍요의 삶 > 좋은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국의 국경을 넘다 (0) | 2009.03.05 |
---|---|
성리학의 이해 (0) | 2009.01.07 |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위에서 10위까지 (0) | 2008.12.08 |
TV 스펀지에서 밝혀진 신비한 상식들 (0) | 2008.10.04 |
메모의 기술 7가지 (0) | 2008.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