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예배를 드리고

죄 많은 여인을 모델로 세우시는 예수님(누가복음7:36-50)

예인짱 2008. 12. 22. 02:10

 

 

 

예수님은 인간을 보실 때,

어떤 기준을 가지시고 인간을 보시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새롭게 갖게 된다.

 

난 무의식적으로 죄 많은 여인 같은 신앙을 좋아했다.

내가 늘 부족하고 연약함을 통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속엔 또 다른 기준이 자리했다.

그 기준은 바로 바리새인 시몬 같은 사람이 되는 기준이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갖고 있는 모델이라는 의식이 암암리에 있었다.

 

죄 많은 여인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궁극적으로는 바리새인 시몬 같은 사람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자리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나의 이런 의식을 터치하셨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인간은 영원히 죄 많은 여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에 담게 하신다.

 

죄 많은 여인에게서 얻어야 할 모델은 무엇인가?

그 첫번째 모델은 바로 죄 많은 여인이 가진 "예수에 대한 앎"이다.

 

예수가 나의 주요, 나의 그리스도요, 나의 영원한 메시야이심을 아는 깊은 인식이야 말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가장 아름다운 믿음인 것이다.

죄 많은 여인은 자기의 죄가 누구로부터, 어떻게 씻음 받을 수 있는가를 영감적으로 안 위대한 진리를 가진 여인이었던 것이다.

 

두번째는 그의 겸손한 신앙의 자리이다.

 

정말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일번, 끝번은 언제고 동일하다.

겸손이다. 그 겸손안에서 신앙은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죄 많은 여인은 바리새인 시몬이 상상할 수 없는 겸손이 자리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사탄은 교만이다.

그 교만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사탄이 하는 짓과 동일한 짓을 한다. 잘난 사람이 그렇게 한다.

그게 문제인 것이다.

 

세번째는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삼백 데나리온이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예수님의 발을 닦는데 쓰였다는 사실이 그렇다.

가룟유다는 이런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거금을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계산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칭찬했다.

 

왜 일까?

가난한 사람을 예수이름으로 돕는 것도 예수님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 자체를 돕는 그 신앙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이를 돕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렸다.

삼백 데나리온보다 더한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을 위해 겸손히 내어 드렸다.

발에 눈물을, 그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그 발에 입맞춤으로,

상상할 수 없는 예수님을 향한 헌신의 마음을 담아 드렸던 것이다.

 

이게 하나님이 인정하는 옳은 사람이다.

이 사람을 만드는 곳이 교회이다. 이 사람이 영적 성숙을 이룬 온전한 신자인 것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이 사람을 만드는 자리이다.

 

예수 같은 사람은,

바로 죄 많은 여인같은 내적 인지와 겸손, 그리고 헌신이 이루어진 아름다운 신앙인 것이다.

이런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 나가자.

이런 신자를 세워가도록 노력해 나가자.

 

세상에서방황할때

전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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