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삶/역사,추억이야기

김홍도의 그림세계

예인짱 2008. 10. 1. 15:07

김홍도 金弘道 (1745∼ ? )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士) 또는 첩취옹(輒醉翁) 등 다얀하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도화서화원(圖畵署畵員)으로 그의 나이 29세 때인 1773년 영조어진(英祖御眞) 제작에 참여했고, 81년에는 정조어진익선관본 (正祖御眞翼善冠本) 도사(圖寫)의 동참화사(同參畵師)로 활동하여 찰방(察訪)을 제수받았다. 이 무렵부터 명나라 문인화가 이유방의 호를 따라 단원이라 자호하였다.
찰방으로 있을 때 김응환(金應煥)과 더불어 정조의 명을 받고 금강산 등 강원도 일대를 여행하며 그곳의 명승지를 그려 바쳤으며, 산수ㆍ도석ㆍ인물ㆍ풍속ㆍ화조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에 이름을 크게 떨쳤다.
91년 정조어진원유관본(正祖御眞遠遊冠本) 도사의 동참화사로 참여하여 그 공으로 충청도 연풍현감(延豊縣監)에 임명되어 95년까지 봉직하였으나 퇴임후 만년에는 병고와 가난에 시달리다가 여생을 마쳤다.

 

 


 

단원은 당대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 장면을 포착하여 등장 인물들의 성격 묘사
에서부터 성별, 계층, 연배, 직업에 걸맞는 복장, 자세, 표정 등을 밀도 있게 다
루어 우리 선조들의 삶을 표현하는 양식적 모범을 완성하였다. 토속미 넘치는
풍속화인 씨름과 무등 등에서 보여준 해학은 바로 우리의 모습 그것이다.

 

김홍도 화법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 묘사의 철저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50대 이후 사경풍속의 평범한 언덕, 길, 들녁, 나무, 잡풀 묘사에서는 김홍도의
무르익은 완숙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림 뿐만이 아니라, 그는 음악의 대가였
고 빼어난 시인이었으며, 일찍부터 평판이 자자했던 서예가이기도 하였다.

 

목동귀가-이 그림은 담백하게 우린 연한 먹색을 바탕으로 시원하게 부감한 공간감, 간일한 필치의 유연한 농담 구사, 얼기설기하면서도 분방한 독필의 사용 등 50대의무르익은 원숙미와 회화적 깊이를 뽐내고 있다. 현감에서 파직된 다음 해에 그린 것으로 사경풍속도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낚시-옥순봉, 사인암 등 단양 풍경과 산수 인물, 화조, 영모 20점으로 꾸며진『병진년화첩(丙辰年畵帖)』중의 작품으로 50대 초반 김홍도의 자신감 넘치는 수묵 감각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만월대 기로세연계도는 개성 지방의 은퇴한 관리들이 송악산의 만월대에서
잔치하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전체 화면에 등장하고 있는 250여 명의 사람들
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이, 마부, 그리고 술에 취해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취객, 심지어는 벙거지를 쓰고 밥 빌러 온 거지의 모습도 보인다

 

섬세한 필치와 한적한 분위기가 50대 이후 김홍도의 심상을 유감없이 말해 주
고있는 포의풍류도 에서는 지필묵과 파초, 칼, 술, 책 등과 함께 앉아 비파를
켜는 선비의 모습을 그렸는데, 김홍도 자신을 그린 자화상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