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기독교 자료

동로마제국(비잔틴)의 멸망이 주는 교훈

예인짱 2008. 2. 28. 11:34

동로마제국(비잔틴)의 멸망이 주는 교훈

 

476년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다.

그후 천년동안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발전한 동로마제국은 결국

1453년 5월29일 이슬람세력의 침공으로 난공불락이라고 자부햇던 콘스탄티노플성이 함락당한다. 

 천년의 제국이 무너져 내린 날이 5월 29일이다.

 

서양의 문명과 동양의 문명이 극적인 교집합을 만들어 가게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결과에 가정은 없지만...............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있다.

 

1453 년 5월 29일 오전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이지요 !!!

이날의 승자 정복왕 술탄 메메드2세, 패자 콘스탄티누스 황제 동로마제국 비운의 마지막 황제이지요.

 

천년왕국(330-1453) 비잔틴 제국 은 이렇게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성소피아 성당의 입구에 들어선순간 이른 아침시간이라 매우 적막했지요

정말 그날의 살육현장의 외침이 들려오는듯하여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런게 정말 역사 현장여행 의  참맛이지요 ,,,,


말이 나온김에 그당시 상황을 좀더 나누어 봅시다.


점점조여오는 막강 신흥세력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 앞에

심각한 위험을 감지한  동로마황제 마누엘2세는 같은

기독교 국가인 서유럽제국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들을 막아내기위한 군대와

자금지원을 받기위하여 서유럽순방에 나섭니다 ,

말이 순방이지 그는 결국 자신의 제국을 포위하고있는

이교도와 싸우기위해 원조를 구하기위하여온 절박한 구걸자 신세였지요,,

 

이때 영국헨리 왕의 측근은 이렇게 기록했다합니다,

“이위대한 기독교계의 군주가 사라센인들에게 떠밀려

저동방 끝에서 이먼 서방끝의 섬나라까지 찾아와 구걸해야만 하는신세가 되다니 , 오호 통재라,,,, ”


이때 이 비잔틴제국은 이미 북아프리카의  만은 식민지 , 드넓은 터키 중부평원 의

옥수수가 지천으로 생산되는 비옥한  아나톨리아 땅 , 발칸반도 조차지 등등 다 내어주고

이좁은 콘스탄티노플 성안에 쪼그라들어 천년제국의 위신이 아주 말이 아닐때이지요,,,

 

결론적으로 성과는 없었지요,

 영국,독일 프랑스 ,몇몇 이태리 도시국가들 ,

모두 국내외 복잡한 사정등으로 ,재정고갈,백년전쟁,게르만침입, 흑사병,기근, 기타등등 ,

도움을 줄수업는 상황이 되지요 ,

 

무역국가인 인 제노아 , 베네치아 만이 , 이들은 동방무역로 확보가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으므로,

앞으로 이 싸움 에서 얻게될 공과를 열심히 계산하여 얼마간의 도움을 약속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피렌체 공의회에서 기독교제국의 의 최후보루인 로마교황청 에 도움을 청하면서

굴욕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정교를  로마 교황청의 감독교구 밑으로 들어갈것을 약조합니다,

 

1000년 동안 지켜온 그리스정교, 동방정교 가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지요,,

이때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은 이굴욕적인 종속에 결사반대 했지만 어쩔수 업었지요,

 

우리의 그리스정교가  로마교황청에 예속되느니

차라리 메메드의 노예가되는것이 났겠다 할정도로 뿌리깊은 갈등이었지요,,,

 

그러나 로마교황청도 옜날같지 않아서 별힘이 업었지요   교황이 직접 나서서

도움을 호소했지만 별 신통력이 업었습니다,,

이유는 국내외 복잡한사정 도있었지만 무엇보다 교황권위 의 실추가 더큰 원인 이었지요,,


드디어 운명의 날 ,

1453년4월1일 미명 , 메메드2세는 그동안 역대의 선조들이 이루지못했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위한 총공격을 명령합니다,,,

우선 이슬람 율법대로 항복하면 재산과 생명을 보장한다는 형식적인 통보를 한뒤에, 

수만은 공성장비 , 우르반의 대구경 괴물대포 등 신병기로 무장한 10여만명 의 오스만 제국군대는

불과 7000 여명의 수비대가 지키고 있는 콘스탄티 노플 을향해 미친듯이 돌진을 합니다 ,

선발공격대 뒤에는술탄의 친위대인 예니체리 독전대가 공격하지않고 뒤로내빼는

병사들을 사정업이 베어버립니다, 살벌하지요,,,.

이역사적인 콘스탄티노플공방전 , 공성과 방어의 진수를 보여주지요

반지의제왕 에 나오는 핼름계곡 전투인가 이 공성전투를 모델로영화를  찍었다지요,,

 

** 골든혼 바다에 나타난 메메드2세 전함

 

 

 

**  성 공방전

 

 

 

**  요새화된 콘스탄티노플

 

 

 

 

**  우르반의 괴물대포

 

     항가리의 대포기술자 우르반 , 처음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대포 주조소에서 일을했지만

     봉급이 제대로 안나오자 술탄 메메드 에 접근하여 변절한자,,

     술탄 메메드 밑에서 엄청난 자금지원으로 당시 최대의 대포를 주조하여 성공방전에

     절대적인 공을 세움,,,,

     - 포신 8.2 미터  - 포탄무게 609 키로 - 발사굉음 100스타디움까지들림 (1스타디움"

       올림피아경기장 세로길이) - 하루최대발사량 7 발

     -포이동 병사 700명이 마차에 실코 소15쌍이 끌었다함,,,

 

 

 

 


정말 콘스탄티노플은 천혜의요새 , 난공불락의 요새였지만 ,

 

우르반의 괴물대포가 굉음과 함께 불을 뿜슴니다 , 이제까지 경험하지못한 파괴력이지요,

성벽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립니다, 하지만 황제의 정예군사들도 만만치 않지요

대포의 파괴력을 줄이기위하여 성벽에 가죽이나 모직물을 겹겹이 씌우고 수녀들과

아녀자까지 동원하여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며 정말 용감히 막아내었지요,,,

지금도 이스탄불 아크로폴리스 성벽 에서면 이때의 생생한 광경을 상상할수 있지요 ,,,

언덕 성 에서 바라보면 3면이 바다입니다 그유명한 골든혼(금각만), 보스포러스해협,  

마르마라해협, 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

 

해군력이 강한 콘스탄티노플 에게는 천혜의 방패지요 ,

육지쪽은 3중으로 쌓은 높이 10여 미터 성벽 ,,

정말 천혜의 요새이지요,, 지금까지 10여차례의 공성전을 치렀지만 잘버티어 냈지요,

벌써 7주째  우르반의 가공할 대포와 막강한 제국해군 , 충성스런 보병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노플 의 7000여  황제 수비대 는 정말 잘버티어 내고있지요,,

이들의 방어는 정말 훌륭하였습니다,,

 

골든혼 바다에 면해있는 성곽은 겹성이 아니고 단성으로 되어있고 자금도 모자라서

보수도 제대로 안되어 제일 취약한 지역이었지만 이들은 이약점을 보완하기위하여 골든혼바다입구

에 길이 1키로미터에 달하는 쇠사슬 줄을 걸어놓아 

메메드2세의 제국해군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지요,,

그러나 뛰는놈위에 나는넘이 잇는법, 메메드2세는 지지부진한 전세를 한번에 역전시키키 위하여 

작전회의에서 전함을 육지로 끌어서

골든혼 바다 쇠사슬 안쪽 바다로 들여놓을것을 명령합니다,,,

 

골든혼 건너편 페라지구의 야트막한 구릉(60여미터) 을 넘어 배를끌어 방제쇠사슬 안쪽으로

해군전함을 투입하는 기상천외의 작전입니다,,,

 

 

이름다운 루맬리 히사르 성채

   

  술탄 메메드2세는 콘스탄티노플 공략직전

  이 보스포러스해협 입구 요지에 이성채를

  세워 해협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  지금은 무너저내린 성곽 ,  

 

 

 

 

 

 

 

이날밤,

수만명의 메메드 군사들은 횟불을 발키고 통나무를  잘라 활차를 만들고 이활차에

쇠바퀴를 달어 물에띄워 배 밑바닥에 붙들어 맨다음 드디어 밧줄을 걸고

 배를 끌어 야산을 넘어 전함 100여척을 골든혼 안쪽바다에

집어놓습니다,,,  아 정말 볼만한 광경이었겠지요 .....

 

카르타고 의 한니발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는광경처럼,,,

이때야화 , 암만 밤에 작업을 했어도 페라지구 언덕에는 높은 갈라타 타워라는 감시탑이 있었는데

아무도 이 대작전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역사적사실,,

이유는 이때 감시병이 이탈리아 제노아 용병이었는데 술탄의 군대에 매수되어 보고도

못본체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날이 밝아 성곽 망루에서 입초를 서던 보초병 눈앞에 펼처진 메메드2세의 제국해군의

전함을 본순간 �을 잃고 말았지요,,, 이사건으로 난공불락의 성을 사수하던 7000여

수비대들의 사기는 급격히 무너집니다 , 더구나 온다던 구원병은 물건너같고,,,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식량,물 수송선은 코앞 보스포러스해협에서 술탄의 해군에 격침당하고,,,

비운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는 손수 칼 을 들고 무너진 성벽앞에서 최후의 일전을 진두지휘하다가

장렬히 전사�지요,,,

 

 

공방전 당시 양군 배치도

 

 


역사는 또흘러 술래이만1세   ,

바야흐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황금시대를 구가합니다,,

저멀리 오스트리아 , 헝가리평원 , 발칸반도 전지역, 북아프리카, 이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만 , 터키중부아나톨리아 평원 , 소아시아 ,,,

그야말로 아시아,아프리카,유럽 3개대륙을 호령하는 막강제국으로 군림하지요,,,


또 역사는 흘러 제1차세계대전  순간의 판단착오로 독일편 에 줄을 서서

패전국이되는바람에 그넓은 땅을 다 토해내고 그남아 그들의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의 영웅적인 투쟁에 의하여 지금의 땅덩어리로 살게되었지요 ,

 

동로마제국의 후예들은 오늘의 그리스라고 어느정도 말해도 될듯합니다.

터어키는 그대로 오스만투르크의 후예들이구요...

그들은 지금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국경분쟁을 이유로 전쟁도 치루었고

지금은 국경선은 그때에 생긴 것입니다.

그리스지역에 살던 터어키사람들과 터어키경내에 거주하던 그리스사람들은

영토분쟁이후 대이주를 하여서 그리스사람들은 그리스로 터어키사람들은 지금의 터어키땅으로

이주해서 살게됩니다.

( 1922년 마침내 터키군은 스미르나에 쳐들어와 마을을 불태우고 그리스인들을 살해하였다.

  며칠사이에 스미르나는 다시 터키 지배하에 들어가고 고대로부터 소아시아에 정주해 있던

  그리스인 약150만명은 난민이 되었다. 이 싸움의 결과로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맺어진

   로잔조약(1923년에 체결됨)에 따라

  동 트라키와 스미르나 지구는 터키의 영토가 되고, 터키영토에 살고 있는

  그리스인과 그리스 국내에 살고 있는

  터키인과의 강제교환이 이루어졌다. 이 조약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상태이다.

  터키와의 전쟁에 패한 콘스탄틴 국왕은 군부의 대두와 함께 실시된 총선거에서 패하고,

  왕정제가 폐지되면서 퇴위한다.)

 

기독교의 성지요 신약시대의 주무대였던 소아시아 터어키땅이 지금은 완전히

이슬람들이 지배하는 불운의 땅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지금의 터어키는 유럽연합에 가입하려고 대단한 공력을 기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종교가 다르기에 그들의 가입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유럽연합국가가 되려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득이 크기에 그렇습니다,

 

터어키와 그리스에서 보낸 보름정도의 시간들은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먼거리를 차로 이동하여 성지를 찾아서 3-4시간 가보면

다 무너진 교회의 터전들과 황무하게 풀만 무성하게 자라나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오늘의 소아시아 교회터.... 그리고 콘스탄틴노플의 영광...

 

성소피아성당내부는 온통 이슬람들이 기독교의 성화들을 회색으로 지우고

모스크로 바꿀려고 많은 공을 들였으나.... 결국 이젠 포기하고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 영광스런 교회의 모습은 성서속에서나 읽혀지는 아쉬움을 남는

성지순례 기간이었습니다.

 

성소피아 성당

 

 

 

 

 

그들은 왜 멸망했나?

 

가장 큰 이유는 분열된 왕권때문이다.

그리고 물질에만 눈이먼 타락한 신앙 그리고 십자군원정군들의 빗나간 신앙들이 주원인이고 

 후기에 황제들이 무능해서 입니다. 어떤 황제는 군대를 해채해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어쨌든 많은 황제들이 무능해서 동로마 제국이 망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즉 자세하게 말하면 교리분쟁입니다.

 이 교리분쟁 때문에 신하들은 우리나라 당파싸움 비슷하게 교리분쟁을 하였죠.

 이것도 생각해보면 신하들의 무능함에 넣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기독교와 조금 관련이 있는 십자군 전쟁 때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기도 하였죠.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패배하여 아나톨리아 지방을 상실하였던 것도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

 

이슬람의 확장은 누가 뭐라해도 칼을 들고 설쳐대는 폭력적인 집단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해도 오늘날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다.

" 코란이 아니면 검을 받아라"

이 말이 일방적인 서구의 논리라고 시브렁대지만

오늘날 그들의 작태는 강패폭력집단과 다르지 않다.

 

진정으로 이슬람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평화적으로 알라신의 뜻을 세우려는 온건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않은 정치깡패같은 집단들이 오늘날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종교를 이용한 정치적 영향력을 전세적으로 확대하고 넓혀보려는 몇몇 원리주의자들의 광기어린

행동들을 주시해보라.

 

어린아이들이 몸에 폭탄을 품고 자살공격을 감행한다.

그들은 이런행위를 성전이라고 찬양하고 그 정신을 물려받자고 교육한다.

 

그들의 그런행위는 일본의 가미가재공격을 위해 젊은이들을 히로퐁먹여

전장으로 보냈던 일제 전쟁미치광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종교는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해서 강요된 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승리는 그의 마음을 열고 그 마음의 중심을 얻는 것이다.

 

공산당들은 총과 칼로

깡패 조폭들은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종교들이 이런 방법으로 세상을 지배한다면 이 세상은 자유가 사라지고

살벌한 공포정치와 폭력이 난무한 세상으로 바뀔것이다.

 

나폴레옹은 칼로 세상을 정복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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