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삶/역사,추억이야기

성종의 삶, 죽음

예인짱 2008. 2. 8. 09:37
제9대 성종 -자식이 28명에다, 주색 등창.폐병으로 죽다.-

 

성종은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세조의 손에 의해 키워지게됩니다. 성종은 천품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었으며 활쏘기와 서화에도 능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습니다.
뇌우가 몰아치던 날 옆에있던 신하가 벼락에 맞아 죽어 모두 혼비백산 했는데도 얼룩 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1469년 열세살의 이른 나이에 왕위에 올라 성종의 치세는 열리기 시작합니다.
완성한다는 "성"자를 쓴것으로 보아 많은 업적을 이룩했음을 쉽게 짐작 할수 있습니다. 경국대전의 완성.문화서적편찬. 유교의정착, 변방을 안정시키는등 많은 업적을 이뤄내 민생의 안정과 태평성대를 이루어 냅니다.

 

 성종이 태평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을때는 동서양이 새로운 출발을 만들어 내고 있던 시기였습니다.콜럼버스가 자메이카섬을 발견하고, 디아스가 희망봉을 찾아내어 대륙에 대한 희망이 서양을 휩쓸었고, 로마 교회가 신에게 돈을 내면 죄를 면하게 해준다는 면죄부를 발행하여 신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인 르네상스가 오게 한 씨앗을 뿌리던 바로 그때 였습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조선의 성종은 나라의 기틀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스물 여덞이라는 자식의 수에 있어서도 다른 왕들을 능가 했습니다. 상상을 뛰어넘는 자식의 숫자로 보아 여성을 가까이 하는 성종의 카사노바적 기질이 느껴집니다.
세왕비와 아홉 후궁에게서 낳은 자식이 16남12녀로 성종은 태종의 스물아홉 자식에 이어 서열 2위의 생산력을 자랑합니다. 
 
성종은 폐비윤씨의 사사이후 아들 연산 세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고민에 자연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게 되었고 정사에 매달리다 보니 건강은 점점 나빠졌습니다.그러면서도 경국대전을 비롯한 여러서적을 간행하고,훈신,사림간의 세력균형을 이뤄 왕권을 안정시켰습니다. 더하여 태조 이후 닦아온 조선왕조의 기반과 체제를 완성시켜 조선 초기의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쾌락적인 �에 빠져 듭니다. 젊을때는 술을 잘 못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술이 점점 늘게 됩니다. 임금의 건강을 걱정한 내시가 술울 희석시켜 바쳤다가 해고 당했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12명의 부인이 토라지거나 섭섭하지 않게 돌아가며 찾아 봐야 했습니다. 쉽게말해 낮엔 성군, 밤엔 호색가로 생활 한 거죠.

 

 하루에 간이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알콜 총량은 160g 입니다. 하루에 소주1홉. 맥주1.5병 정돕니다.또,먹은 다음은 이틀정도 쉬게해야 간에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종은 낮이고 밤이고 모임만 있으면 술이니, 몸이 강철이라도 남아 날수없죠.
 
그리스의 철학자 아나카리시스는 "술 한 잔은 건강을 위해,술 두 잔은 즐거움을 위해 있으나, 술 석잔은 방종을 위해 있다"며 즐기되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몸이 허물어질 대로 과음하고 나서, 후궁이라는 꽃들을 찾습니다.

 

공자는 여자를 때없이 가까이 하고,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며 근로와 안일이 도에 지나치면 병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이 세 가지 가운데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여색이 더욱 심하다고 했습니다.

 

 건강을 해친 성종은 검붉은 피가 담에서 섞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상한 것이었죠,<오산설림초고>에는 "조선 임금 중 제일 키가 컸으나, 술을 몹시 좋아했다. 흔히 가까운 궁인들이 모셨으며, 날마다 흰 병풍을  가져 오라 했는데, 하룻밤이 지나면 저부 새빨개졌으니, 피를 내뱉기 때문이다" 라고 적고있습니다.
 성종은 방광염과 전립선염에 걸렸고, 이질과 소갈증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증세로 고생했으며, 승정원에서 자주 의원을 불러 기맥을 진찰하게 했다고 합니다.<성종실록>을 보면 의관 송흠은 성종의 병세를 다음과 같이 진찰하였습니다.

 

<성상의 몸이 몹시 여위셨고,얼굴빛이 위황하고 허리밑에 적취(체증으로 배속에 덩어리가 생기는병)가 있고, 내쉬는 숨은 맣고 들이쉬는 숨은 적으며, 입술이 또 건조하십니다.성상께서 큰 소리로 약을 물으시므로, 아뢰기를 "오미자탕, 청심원 등의약은 청량한 재료가 들어있어서 갈증을 그치게 할 수 있으니, 청컨대 이를 드시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또 성상의 몸을 보건대 억지로 참으시면서 앉으신 듯하기 때문에 마침내 물러 나왔습니다.>

 

 
<성종실록>


 성종은 이런 저런 약을 복용하였지만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 됩니다. 성종 25년 12월24일, 종기 치료에 정통한 전명춘 이란 의관이 임금을 진찰한 후 배꼽밑에 난 종기를 다스리는 약을 써야 한다고 했지만, 손도 쓰지 못하고 갑자기 숨을 거둡니다. 한창 나이인 38세였습니다.

 

 조선 왕들 가운데 30에 가장많은 7명이 죽었습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남자 나이 32세가 되면 근골의 발육이 멈춰지고 인대, 건과 같은 부드로운 골격이 쇠퇴하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30대에 몸을 관리해야만 40대 이후의 몸을 만들 수 있는데 성종은 과색, 과음으로 인해 폐결핵에 걸리고, 등창 합병증이 죽음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13살에 임금이 되어 한시대를 편안히 만들고 12월24일 서양에서는 온 세상에 평화가 내렸다는 크리스마스 이브 축제로 바빴을 그날 성종은 끝내 이승을 하직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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